이것이 목회의 본질이다 신 옥한흠 다락방 45
옥한흠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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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광인과 같은 열정은 다른 사람을 빨아당기는 흡입력이 있다.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인 옥한흠 목사는 제자훈련에 미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랑의 교회 목회를 마감하면서 이제는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봉사할 때라고 말했다. 그의 제자훈련에 관한 철학, 확신은 대단한 것이고, 그의 삶을 통해 보여진 것이었다. 거기에 핵심 원리들을 이 책에 써놓은 것 같다.

 이 책은 3부로 되어있다. 1부는 ‘교회로 교회되게 하라’이다. 여기에는 과거 한국교회의 부작용과 교회안에서의 싸움, 분리들을 보아온 저자의 경험을 말한다. 특별히 자신이 자란 교회와 선배 목회자들 통해 받은 인상으로 ‘목회란 이런 거구나’라고 힘들고 하기 싫은 것으로 이해했었는데, 성경적인 근거들을 직접 연구하면서 바뀌게 되었다. 교회의 기본 개념은 첫째, 택함을 받은 자의 모임, 둘째, 그리스도의 몸, 셋째, 성령의 전이다. 이 개념들을 연구하면서 그는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마치 루터가 ‘만인제사상’의 개념을 이해한 것과 비슷한 커다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평신도가 교회의 주체요, 목회자는 일하고 평신도는 양육 받는 차원이 아니라(물론 선행되어야 하지만),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목회로서의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장에는 그의 성도교회 대학부의 놀라운 변화의 체험을 함께 말하고 있다.

 2부는 ‘제자훈련의 한 사람의 철학’을 말한다. 하나님은 다수의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고 생각되지만, 오히려 한 사람을 주목하시고 준비시키신 후 놀라운 일들을 해 오셨다. 그는 이 사실을 주목하였다.

 저자는 더불어 교회론을 다룬다. 개혁주의 교회론(벌코프)의 세 가지를 보면 ‘거룩성-세상과 구별된’, ‘통일성-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고 ‘보편성-민족과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라는’이다. 그러나 한스 큉은 하나 더 한다. ‘사도성’. ‘요 20:21절에 의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의 말씀에도 보면 사도의 보내심이 전 세계 교회의 전 성도 역시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개념이다. 교회는 사도의 터 위에.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소명의 공동체라는 본질이 바로 교회의 사도성이고, 전 교회(the whole church)가 사도성을 계승한다. 이것은 평신도와 목회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그 사도성에 근거해서 평신도를 세우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지성인으로 구성된 WCC의 평신도 훈련 전략은 ‘참여-강단 사역에’와 ‘세속화-세상 속으로 나가 제 역할을 감당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파라처치(para-church)에서는 ‘사람부터 만들자’는 전략으로 그들보다 고급두뇌들이 아니지만 확장되어 갔다. 그들의 실패는 사람이 만들어지기 전에 참여,파송부터 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본색을 드러날 수밖에 없다.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제자훈련의 전략’이다. 이런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나부터 변화되고, 그 목표에 맞는 평신도를 키우는 꿈을 꾸어야 한다.

 3부는 ‘한 사람을 완전한 자로’- 제자훈련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본다. 지상의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백성인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이다. 세상과 구별된 특권과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보냄 받은 소명이 우리에게 있다.

 저자는 3부에서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의 모든 믿는 자들이 제자, 곧 완전한 자가 될 수 있도록 크게 세 가지를 주셨다고 소개한다. 첫째는 성경을 주셨다. 둘째는 교역자를 주셨다. 그리고 셋째로 모델을 주셨다.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로서 사는, 그래서 그 형상을 회복해 가는 사람이 완전한 사람, 즉 그 창조 목적에 합한 사람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훈련에는 목적이 있다. 예수에게까지 자라도록 인격과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자훈련이다. 지킬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치는 것. 주께서 주신 목적과 목표(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를 향해 지속적인 가르침과 훈련이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 손에 성경을 주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전파하고, 가르치고, 치유하는 사역이셨다. 이 일을 위해 바울은 자기 안에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였고, 자신도 힘을 다하여 수고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목회의 본질을 놓치지 말라고 권면함으로 글을 마친다.

 목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본질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목표가 되고, 목표가 있으면 전략이 있고 그 전략에 따라 헌신과 훈련이 있는 것이다. 특별히 과거 교회가 가졌던 선입관을 넘어서서 성경 속에서 참 진리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선입관과 장벽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참 사람, 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먼저 깨달은 사람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탄생되는 것은 전적인 은혜이다. 다만 우리는 마땅히 하여야할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의욕보다 성령을 좇으며, 무턱대고 하기보다는 깊이 성경을 파고들어 나의 것으로 나와서 성경의 사람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자훈련, 목회 이 모든 부분은 먼저 깨달은 지도자가 참 중요하다. 지도자는 말씀이 있고, 목표와 방향성이 있으며, 앞서서 가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인가? 그리고 참 사람이 되어가고, 그를 길러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의미심장한, 흡입력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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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골즈워디 복음 시리즈 1
그레엄 골즈워디 지음, 김영철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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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소개 받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인 93년이다. 모태신앙이었지만, 대학에서 신앙의 혼란과 확신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지 않으면 나의 신앙이 마구 무너질 만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그때당시 한참 신앙에 대한 불확실성과 회의를 가졌었다. 그때 교회의 나의 순장님은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는 데, 신앙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모태신앙인 나에게 있어서는 이책을 보면서 회심(마음을 돌이킴. 회의에서 확신으로^_^)했다고나 할까? 어떠한 면에서 그랬는지 생각해보면 이 책은 나에게 성경의 통일성을 알려주었다. 20년간 신앙생활하고 막연했던 성경이고 말씀이었지만 하나님이 성경 속에 이렇게 통일성 있고, 일관된 말씀을 하셨다면 분명히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신앙에는 활력,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확신, 내 삶을 더욱 열정적이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한 진정한 헌신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단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은 창조에서부터 타락과 구속 그리고 완성이라는 구조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성경속에서 예증과 지지를 많이 하면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경륜속에 있는 구속을 받는 나라'의 관점에서 기록하였다. 우리가 알고있는 나라의 3요소인 국민,영토,주권 이 세가지의 요소가 하나님 나라에도 동일하게 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인데 성경전체의 맥락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초점에 모아진다.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분을 예언하고, 성취하신 구속사건의 드라마 이다. 그러나 그 것은 그분의 나라안에서 이루어 졌다. 그 나라는 예수께서 오시고 그 사실이 기록된 신약에 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창조시 아담에게 있었던 에덴 동산, 출애굽과 함께시작된 모세의 민족 공동체안에도,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안에도 그 나라는 존재하였고 일관성있게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경륜 속에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앞선 것은 모형이고 희미한 예언과 그림자요 전주곡 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언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였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구조들을 설명하며, 여러가지 도표와 구분으로 구약과 신약을 함께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준다. 또한 구약을 어떤 주일학교 교훈식으로만 바라보던 내가 좀더 깊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과 계획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듯이 읽는 이들에게 그러한 유익을 줄 것이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생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필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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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든 디 피 외 지음, 오광만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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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알게된 것은 신대원 1학년때이다. 박영선 목사님이 추천해 주셨는데, 나는 그 강의를 직접 듣지

않았기 때문에 리포트를 써야할 의무도 없어서 읽지 않았었다. 그러나 작년에 휴학중에 다시 소개받아 읽

게 된 이 책은 나의 담당 청년들과 나누기도 하고, 교회에서도 강좌를 개설해서 할 만큼 유익한 책이었다.

  특히 이 책은 장르별로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데, 성경이 장르가 여러가지가 있지 않은 가? 시가서, 율법서, 복음서, 묵시서....등. 이런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어떻게 읽을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성경해석학인데, 성경은 2000년 이상 전에 쓰여진 책이고, 글이기 때문에 그때그시점의

배경과 상황에 근거를 두고, 문법적 역사적 해석을 해야한다는 '석의'에 대한 강조와 그러면 21세기를 살

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이 말씀을 받아들여야하고, 적용해야 하는 가에 대한 '해석학'에 대한 강조를 하고

있다. 이 두가지는 성경을 바르게 읽기위한 필수 과정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읽으면 자기의 배경과 상

황속에서 읽어서 성경의 바른 의미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 의미를 주관화 시키고 축소시켜서 하

나님의 큰 뜻과 연결지어 나의 삶에 비추어 그 말씀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성경의 용례와, 바른 성경적 접근에 대한 충고, 저자들의 친절하면서도 해박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성경이 더욱 친숙해지고, 더 알고 싶어지며, 성경사전이나, 관련 책들을 더 사서 읽으면서 성

경을 읽고 싶어질 것이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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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커뮤니케이션
H.J.C. Pieterse 지음, 정창균 옮김 / 합신대학원출판부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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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번역자이신 정창균 교수님도 평가하신 바와 같이 설교의 방법만을 다룬 책들, 혹은 이론만을 다룬 책들의 불균형적이고, 치우친 책들과는 달리 양쪽 면을 다 다룬 유익한 책이다. 먼저 설교에 대해서 이론적 설명을 심도 깊게 하면서 실제적인 통계적 접근을 통해 설교 양상에 대한 분석을 한다. 그 다음에는 설교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하면서 일방적 전달로서의 설교관을 쌍방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설교로서의 신선한 접근을 한다. 마지막으로 설교 행위로서 다양한 형태들을 소개하며 실제적 예들을 통해 유익을 끼치고 있다. 설교론, 설교와 커뮤니케이션, 설교 행위의 세 장을 읽으면서 제 2장 설교의 양상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 당장에는 시간이 없어서(미리 읽지 못했던 게으름 때문이지만) 못 읽지만 실제 설교에 대한 통계적인 면을 통해 나의 설교에 대한 평가와 쇄신이 필요할 것 같아서 방학 중에 한번 읽어보고 싶다.

초반에 설교론은 이론 부분이고, 쉽지만은 않은 내용이라서 그런지 빡빡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이해가 되며 좋은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이론과 실천의 긴장관계, 상호 보완관계는 항상 있어왔다. 이론이 강한 사람은 꼭 실천이 약하고, 그 반대도 많이 있어왔는데, 사실은 그렇게 될 수도 없고, 되서도 안된다. 이론이 없는 데 어떻게 정확한 실천이 나올 수 있는가? 실천이 없는 이론은 탁상공론이 아닌가? 설교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이론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하나님나라에 실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가에 대한 실천을 다룬 가장 영향력 있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해였다. 설교를 커뮤니케이션으로 인식하는 것은 좋은 관점이라고 생각이 되었고, 나 자신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내용면에서 많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케 되었다. 접근 방법은 새로운 것 같지만, 사실 설교를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으로 보고 차례차례 준비부터 적용에까지 이르는 해석학적인 관점과 설교에 대한 이해는 내가 알고 있고 공부해온 설교학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다만 좀 더 실제적인 도움을 얻는 것은 독백적 설교에 대한 반성이다. 선포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그 설교에 참여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에 이르도록 끝까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엔 청중의 상황에 대한 고려가 더욱 필요함을 알게 되었고, 저자가 조언한 설교 전 토론 그룹과 설교 후 토론 그룹을 통해 피드백을 받는 것은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설교자가 겸손하게 그들의 소리를 듣고 평가 또한 받는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설교의 다양한 형식을 통해서 얻게 된 것은 다양한 설교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진 느낌이랄까? 그러나 꼭 한 번의 설교에는 한 가지 형식만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러티브적인 요소와 시적인 요소를 함께 하기도 하고, 교훈적인 설교 형식도 함께 첨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에 대한 아쉬움은 설교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가 이 부분에 관심을 덜 둘 수도 있을 것이고, 책의 방향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교수님이 말씀하신 설교에 있어서의 성령의 역사하심의 중요성이 설교에 대한 포괄적인 책이라고 한다면 꼭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로이드존스의 책에서 느꼈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설교가운데 기대하고 사모하는  것, 기도로 설교를 준비하는 것(묵상의 지속은 강조하였지만), 잘 준비된 설교가 성령의 역사로 회심과 변화가 일어나는 것 등의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설교에 대한 좋은 관점과 이론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설교라는 저자의 논지에서는 꽤 매끄럽고 신선하며 유익했던 것 같고, 그에 따른 실천의 방법을 잘 다룬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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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담긴 설교 - 21세기설교 1
워렌 W. 위어스비 지음 / 요단출판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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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학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근래에 읽은 설교에 관한 책 중에 이처럼 재미있고, 알차고, 상상력과 영감을 자아낸 책은 이 책이 으뜸이다. 돌아오는 주일날 오후에 바로 설교를 하게 되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설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수도 없이 깨지게 되었다. 설교 본문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그 본문에 대한 적용을 이 책을 보면서 계속해서 하게 되어서 생각보다 진도는 천천히 나간 셈이다. 그러나 읽는 가운데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창조적이고, 영감있는 하나님의 생각이 떠오르고, 말씀 앞에 더욱 침잠할 수 있도록 도운 책이기에 더욱 고맙기도 하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상상력과 삶’으로 상상이 담긴 설교의 이론적이고 성서적인 근거를 다루고 있고, 2부는 ‘상상력과 성서적 설교’로서 실제적으로 설교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주제별, 특징별로 어떻게 준비해서 설교할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대체로 요약은 줄이고, 각 부분 부분마다 느끼게 되고 생각하게 했던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중심으로 paper를 써 내려가고자 한다.  

저자는 자신의 논지가 1부에 나와 있기 때문에 2부보다 먼저 1부를 숙독해볼 것을 권한다. 그래서 소감도 1부는 매 장마다 하려한다.  1부 첫 장인 ‘두 설교가 이야기’에서는 후새와 아히도벨을 비교하면서, 그림 그리듯 말하고 그의 우뇌를 정복해서 원하던 결과를 얻어내었던 후새를 말한다. 그는 또한 ‘수도관 은유’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설교가 단순한 진리의 전달이라고만 생각했던 한계점들을 떠올리게 했다. 설교자의 생각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전부이고, 청중의 머릿속에 뭔가를 집어넣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새로운 시각과 도전을 열어주는 출발이었다. 그럼 뭐가 더 있는 가는 물음 말이다.

 '후새가 알았던 것: 사람’에서는 후새를 통해 사람에 대한 탐구의 중요성을 알게 하였고, 사람의 정신의 능력과 상상의 잠재력들을 다시금 알게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상상을 창조하셔서 우리와 교감하신다는 것과 성경을 증언하는 사람도 고대의 기록을 현대에 전할 때에 상상력이라는 가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후새가 알았던 것: 주변 세계’에서는 후새가 압살롬의 마음의 화랑에 그림을 걸어주었고,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를 통해 더 놀라운 것을 보게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저의 ‘성화된 상상의 가치’는 참으로 상상의 중요성을 알게 해 주는 글이다.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깊은 묵상과 숙고는 창조적으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효과적인 전달임을 생각게 했다.

 후새가 알았던 것: 말’에서는 은유의 놀라움을 발견하였다. 은유란 서로 무관해 보이는 두 사물을 ‘말을 통해 운반하여’ 결합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은유는 언어가 작용하는 방식 자체이며, 의사소통 때 불가피하게 쓰고 있음을 알았다. 아, 은유는 필수적이고, 가장 친근한 접근이겠구나!

 ‘설교자여, 내게 얘기 하나 들려주시오’에서는 나단을 통해 뒤로 치는 영향력을 보게 되었다. 자기에게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서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듯 했었는데, 알고보니까 자신의 얘기였던 것을 알게 하는 것은 굉장한 은유의 힘임을 알게 되었다.

 ‘강단에 춤추는 해골, 좌석에 늘어진 송장’은 참 예리하게 우리의 설교의 한계점을 보게 해 주었다. 우리의 준비 없음과 영감 없음에 대한 탓을 청중에 완악함에 핑계대고 있지는 않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생활에 관한 진리가 그들의 상상에까지, 그래서 현실의 삶까지는 전혀 영향을 못 미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공감이 되었다. 청중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충고 라기 보다는 아는 것을 행할 힘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 의욕을 북돋아주고, 그들이 자유와 의지를 마음껏 발휘토록 불을 지펴줌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숨은 파괴자들’은 이 시대의 위험을 말한 장이다. ‘사실주의’의 위험성과 그것으로 인한 상상력 마비를 문제의 핵심으로 잡았다. 포르노와 TV의 가시적인 매체들은 그들의 생각의 틈을 막아버리고 단순히 정보와 즐거움을 제공하기에 그 순간에는 즐거워 보이나 나중에는 단순화되고, 노예와 같이 길들여지게 될 것이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 라디오에 대한 얘기를 하는 데, 나는 라디오와 책 둘 다 참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은유의 신비’에서는 연관짓기와 같은 다리 구실을 하는 은유의 능력을 말하고 있다. 은유는 성경의 세계와 청중의 현실과 연결시켜 주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주어서 풍부한 현실성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 준다. 또한 상상력과 경험의 결합은 확실한 대안임을 알게 하였다. 성령께서 설교자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은유를 통해 듣게 되면 듣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산 진리로 번역하게 됨을 말하였다. 이러한 은유적 설교에 약간의 위험성은 본문을 드러내는 일에 설교자가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과 장점은 잘 드러내면서 은유로서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2부는 실제적인 내용이다. 이 부분은 1부의 내용이 너무 설교가 너무 상상 중심적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주관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깨뜨려 줄 수 있는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본문에 충실하면서, 깊이 있게 성경을 연구하면서 거기에 상상을 더하는 시각이다. 본문에 대한 석의를 통해 기록될 당시에 의미를 숙고하게 해주며, 본문이 오늘의 교회와 나와 청중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숙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본문이 무엇을,어떻게 말하는 가,처음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에서는 단어와 문맥에 대한 정통적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문학적인 장르와 수사학적인 표현 방식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말한다. 또한 원독자에게 무엇을 말하였는 가를 아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한국의 설교자들이 이런 석의 부분에 약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본문을 보는 힘, 문장과 글을 읽는 힘이 약한 것을 느낀다. 누군가 성경연구와 설교는 국어가 약해서 못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저자는 오늘의 교회의 의미를 파악해 보라는 역사신학의 문제도 거론하면서 본문에 대해 교회가 해석해온 역사를 보라고 말한다. 균형있는 관점이다.

‘본문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를 바라보라고 하는 데, 청중을 위한 설교준비, 성경연구가 많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설교는 나의 인격을 통해 걸러진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인격을 관통하여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내가 말씀 앞에 해결된 경험과 부딪혀본 경험과 체험되고, 검증된 내용이라면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나도 참 이런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참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적용에 대한 관점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 전인격적인 변화(지,정,의)를 통해 말씀으로부터 배운 바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다. 감정적인 뜨거움을 추구하거나, 지적인 내용만을 제공받거나, 의지적인 결단은 하게끔 하는 데 내용이 없다거나 하면 모두 불완전한 적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인격적인 적용과 청중의 변화을 향한 설교에 목표를 두자.

실 예를 들어서 자르기와 합치기의 분석과 종합을 보여준 것은 내 설교에 적용해 보기에 유익했다. 무슨 질문들을 던져야 하고, 무엇을 삼가야(언어유희...) 된 다는 것을 알았다.

상상력과 인물설교, 장례식을 위한 위로 설교, 특별한 날을 위한 메시지의 설교의 구체적인 주제를 정하고, 상황과 현실에 따라 설교를 작성해가는 실제적 지침은 급하게는 필요하지 않더라도 두고두고 참고하면서 적용할 필요를 느꼈다. 장례설교는 아직 할 기회가 잘 없지 않은 가? 그러나 막상 장례설교를 부탁하면 막막했었는데, 좋은 지침이 되었다. 인물설교를 하려면 무엇보다 선입관과 편견을 버리고 진지한 탐구와 자료조사가 필요함을 알았다. 전 이해를 내려놓고 무엇보다 거룩한 상상력을 지닌 통찰력으로 예리하게 적용해가는 힘,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의 결실로 나타남을 알았다. 짧은 기간에, 수고 없이 통찰력은 생기지 않는다. 노련함 가운데 통찰은 존재함을 알고 있다.

 유머와 창조력은 내가 나름대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도 장담 못할 것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훈련시키지 않고 적용해나가지 않으면 금방 녹슨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생각들을 훈련하며 좌뇌(논리적 사고)와 우뇌(감성적 사고)를 골고루 훈련하는 것이 필요할 듯 싶다. 창조는 주의 깊은 관찰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알았다. 또한 휴식의 필요성, 재충전과 묵상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열심히 한 다음에 쉬어야 그 쉼이 의미를 더 크게 가질 것 또한 기억한다. 책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갖고, 어휘를 늘려갈 것을 다짐케 한 것은 이 책을 통한 또 하나의 큰 수확이다. 삶 속에서의 도전 정신, 시도해 보고자하는 실험정신이 내게 많이 있었는데 좋은 조언이 되었고 더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결국 이 책을 통해서 본문에 충실해야함과 본문에 대한 고정관념 속에서 딱딱한 진리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성경적인 설교가 아님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달방식과 적용방식의 변화와 보완을 통해 거룩한 상상을 불러 일으켜서, 청중의 전인격적 변화와 삶에서의 열매들을 거두는 종으로 살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설교는 잘 안할 때는 몰랐는데 설교를 계속 준비하다가 보니까, 그리고 성경과 신학 또한 공부하면 할수록 더 궁금증이 많아지고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여 지는 것 같다.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쉽게 생각했던 교만한 태도를 벗어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의 영원한 숙제인 설교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 있는 접근으로 나의 지평을 넓혀주고, 도전을 준 이 책의 저자에게, 소개해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이젠 지속적인 적용과 도전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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