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책이 몇 달째 베스트셀러에 올라와있다. 얼마 전에 읽어봤는데 참 괜찮은 책인 것 같다. 지난주 평강과 화목에 대해 설교를 하면서, 우리는 화목케 되었고 화목케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화목케 하는 가장 큰 무기이자, 도구는 칭찬이다.

 사람은 어떤 자극이 왔을 때 반응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지할 수 있고, 판단해서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 자극과 반응사이에 커다란 간격 또한 우리에게 자유의지의 여지로 주셨다. 이 여지를 잘 활용하면 낙심된 사람에게 큰 용기를 줄 수 있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구원의 소망을 줄 수 있으며, 잘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더 잘할 수 있도록 마음껏 격려도 해 줄 수 있다. 이것은 칭찬의 위력이다.

뭐 잘한 일이 있어야 칭찬을 하지? 나는 올곧은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 빈말은 못한다. 이것이 나의 태도였다. 내가 보기에 잘하면 칭찬, 못하면 무관심이나 나에게도 피해를 주면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 나였다. 그런데 잘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을 드러내고, 꾸짖기만 하면 안 된다. 바른 반응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잘못한 것을 지적하기는 쉬운데 잘한 것을 칭찬해주기는 어렵다. 내가 그의 잘못에 지적하고 정죄할 권리가 있는가? 그를 아끼기 때문에 다음에는 그렇게 안하게 하려고? 그것도 죄 된 본성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우리가 판단자가 되어서 잘잘못을 구별해내는 판단자가 되려는 태도 말이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지만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정말 그를 사랑한다면 그의 잘못을 드러내서 우리의 입으로 꾸짖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서게 해주어서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가장 사랑하는 태도일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죠?’라고 묻는 다면 로마서 12장 15,16,18절을 나누고 싶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스스로 낮은 데에서 처해서 바라보라. 그리고 모든 사람으로 평화하라. 이것이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임을 보여준다.

사람은 우는 자들을 보면 동정심이 들어서 그런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울어준다. 그러나 즐거워하는 자, 잘한 자를 보면 왠지 모를 질투감이 몰려오고 그를 낮추어야 내가 편안한 마음이 어느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지 않고, 저 사람이 내 입장을 생각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이야~ 이것이 내 모습이구나!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의 저자는 잘못을 했을 때 하는 전환반응과 칭찬의 고래반응으로 사람들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잠깐 소개하면 전환반응은 5단계가 있다. 1단계, 질책 없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2단계,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알게 하라. 3단계, 타당하다면 내가 책임을 져라. 4단계, 일을 분명하게 이해했는지 확인하라. 5단계, 신뢰와 확신을 표현하라. 상대가 원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다루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잘못을 말할 때는 항상 그 사람에 입장에서 공감하며, 함께 아파해야할 것 아닌가? 이러는 가운데 그는 안도감과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성경적인 생각이다.  나는 그 변화하고자 하는 과정을 또한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고래반응은 참 신선했는데 4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단계, 즉시 칭찬하라. 2단계, 구체적으로 칭찬하라. 3단계,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하라. 4단계, 계속 잘하도록 격려하라.

 우리는 아이가 슬퍼하거나 잘못하면 달래고 꾸중하기 바쁜데, 오히려 즐거워하고 잘한 일에 관심을 더 가지고 함께 기뻐하고 칭찬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런 기쁨과 칭찬과 격려에 더 집중하는 가운데 아이는 무엇이 부모를 기쁘게 하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의 공동체는 주 안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기쁨이 넘쳐날 줄 믿는다. 죄에서 이기는 것이 죄의 목록을 다 들춰내서 ‘이거 안하게 해 주세요’라는 고백보다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 지체를 사랑하는 일, 진심으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일을 통해 그의 지친 어깨는 펴지고, 사랑과 선으로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고, 악이 정복되는 역사가 나타날 것임을 믿는다. 이러면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학교에 얼마나 멋진 일이 많이 일어날까!!  

 하나님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화목케 하는 것과 관련 없는 비전은 더 이상 비전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것은 야망에 불과하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워주고,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 존귀한 자라 인정받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가 당신으로 인해 기쁘고, 당신은 우리의 공동체에 없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있음으로 우리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당신은 너무 멋있습니다. 오늘 참 아름답네요. 반찬이 어쩜 이렇게 맛있을 수 있죠? 요즘 학업이 많은가 봐요. 열심히 하는 그대가 멋져 보여요 힘내세요(교회 늦게 오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칭찬을 멋쩍어 하는 경상도 싸나이가 많은 예수가족교회. 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정말 칭찬은 정말 예수가족을 춤추게 할 것 같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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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들어가면서...

이 책을 처음 소개 받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인 93년이다. 그때당시 한참 신앙에 대한 불확실성과 회의를 가졌었다. 그때 교회의 나의 순장님은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는 데, 신앙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모태신앙인 나에게 있어서는 이책을 보면서 회심(마음을 돌이킴.회의에서->확신으로^_^)했다고나 할까? 이 책은 성경의 통일성을 알려주었다. 20년간 신앙생활하고 막연했던 성경이고 말씀이었지만 하나님이 성경 속에 이렇게 통일성 있고, 일관된 말씀을 하셨다면 분명히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신앙에는 활력,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확신, 내 삶을 더욱 열정적이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한 진정한 헌신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단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서론

이 책은 성경을 읽을 때만다 부딪히는 문제인 어떻게 고대에 쓰여진 그 본문의 의미를 오늘의 세계에 사는 우리에게 바르게 적용하는 가 하는 점을 다루고 있다. 곧 간격 메꾸는 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쓰여졌는 데 그 다리를 세우려면 어떤 종류의 간격이 존재하는 가를 먼저 알아야 하고, 성경의 기본 구조를 앎으로 이 구조위에서 구약 및 성경 전체를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살아있는 통일체로서 보자.


 제 1장. 구약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1. 먼저 질문해 보자. 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약은 수세기 동안 복음시대의 사건들과 적절한 연관을 갖고 있지 못했으므로 전(前)기독교적인 것으로 보였을 뿐아니라, 저급 기독교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문자적으로 있는 그대로 구약을 적용하려하고, 어떤 이는 자신들과는 완전히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고, 어떤이는 전체적으로 건조하고 지루하고, 장황,귀찮,혼란스러워서 읽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 그러면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약도 하나님의 계시라는 확신 때문이고, 올바르게 해석된다면, 모두에게 더 많은 흥미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2. 알레고리적 해석 vs 종교개혁시대의 해석

성경의 통일성을 파악치 못함으로 초기의 성경 강해자 들은 거짓된 길들로 빠지고 말았다. 자연적인 의미 뒤에 감춰진 ‘영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신약의 내용에 의해, 혹 후에는 교회의 교리에 의해 조절되었기에 합법적인 해석 방법인 듯 보였으나, 알레고리는 신약이 구약을 사용할 때 신약 자체가 적용한 그 조절 방식을 취하지 못 하엿고, 그 대신 구약의 자연적인 의미와 신약의 가르침과의 연관성이 개인의 독창성에 내맡겨질 수 밖에 없었다.

  ex. 어거스틴의 알레고리적 해석 

* 종교개혁의 길.

성경의 권위를 되찾을 때 교회와 구원에 대한 성경적 교리 뿐만 아니라, 성경에 대한 성경적 교리도 재확립하였다. 따라서 개신교의 해석법은 성경의(분명하며 또한 성경 스스로 해석하는) 명료성이라는 개념에 기초된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 밖 - 이른 바 무오한 교회 -에서 가해지는 해석의 권위를 제거함으로써, 성경 자체에 내재된 해석의 원리를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활용하였다.

3 sola - sola              ( human experimental side )

            sola              ( God's inintitive side)

            sola              ( sole source of authority for christian & the church )

이 모든 것이 christcentric한 표현이다. 구약의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그리스도와 유기적인 연관성을 지니므로 의미를 갖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도 그분의 은혜의 사역인 복음 속에서, 즉 나사렛 예수이신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그 절정에 이르는, 살아 움직이는 한 역사의 한 부분이 되는 것. 즉 복음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의 역사를 통하여 활동하시는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신구약성경은 그 자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과정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 자신의 자기계시(self-disclosure) 과정을 전개시켜 놓은 것.


 구약성경은 모두를 위한 것인가?

신약성경 때문이다. 신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성취되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데, 이 약속들은 오직 구약성경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즉 약속의 성취는 오직 그 약속들이 담겨 있는 문맥 안에서라야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신약은 구약에 대한 지식을 전제하고 있다.

구약은 성경이며, 이 성경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으며, 구약은 신약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 가를 근거해서 풀어야한다. 신약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에 대해 권위있는 해석을 제시해 주는 것이기에 그렇다. 즉 구약의 목표인 복음의 구조를 통해서 구약을 보아야 한다.

구원역사는 진행해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구원역사의 진행과정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그 목표와 초점을 두며, 거기서 그 성취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역사적 사실들이 오늘날 자주, 개인의 주관적인 영적 체험을 강조하는 다소 신비적인 풍조의 우세로 인해 과소평가되고 있다.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이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약 2천년 전에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안에서 어떤 일을 행하셨다는 선포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것을 확고히 고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날에는 그 구원 얻는 믿음이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것에 대한 신뢰라고 더 많이 묘사되고,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생각되고 있다. 거듭남, 믿음, 성화는 중요하지만 복음의 열매들이다. 이 객관적(구원 역사적)인 사실이 파악될 때에야만 비로소 개개인 그리스도인의 주관적인 경험도 이해될 수 있다. 성경전체의 연관성과 통일성을 아는 관점 즉 'total perspective'는 정말 중요하다


 제 2장. 간격 메꾸기

간격은 시대와 문화의 간격이다. 역사적 문맥의 차이.

* 갈라디아 교인과 우리. 1세기와 21세기의 차이.

- 요 1:12 전도와 연관성? 그러나 1차적으로 본래의미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메시야로서 육체적으로, 또 문자 그대로 오심을 말하는 것. 대부분 유대인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하고, 인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 인물중심의 성경연구 맹점 - 먼저 그 인물들과 사건들의 역사적, 신학적 독특성을 고려해야한다.


* 해석의 필요성 - etenal relevance, historical particularity사이의 간격.

성경 전체를 꿰뚫는 그런 통일된 주제가 있다면, 성경 메시지의 구조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 문맥(context)을 무시한 본문은 변명,구실,핑게(pretext)이다. 함부로 뽑아서 사용해서는 안된다.

즉 성경은 통일성을 지닌 문서임을 기억하자. 그 통일성이 진정한 의미를 지니려면 어떤 성경 본문이든지 그 실질적인 문맥은 성경전체가 되어야하며, 주어진 성경본문이 직접적인 문맥 뿐 아니라, 성경 전체안에 계시된 구원의 전체적인 계획과도 연관을 가져야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드러나게 된다.

* 요약 - 어떤 한 text는 성경 전체에서 시작되며, 점점 좁혀가서 그 본문의 의미를 비춰봐야 된다.


 제 3장. 구약 성경은 무엇인가?

1. 문학적(literal)인 면.

2. 역사적(historical)인 면.

3. 신학적(theological)인 면.


1. 문학적(literal).

- genre : 율법서, 역사서, 선지서, 시가서. 문자적인 해석이나 단 한가지 해석 방법만을 고집하는 것은 주의하라. 장르별로 접근해야 한다.


2. 역사적(historical)인 면

- 조감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시간과 역사를 초월하여 존재하시지만, 하나님은 역사속에서 활동하시기 때문이다(우리의 인식을 위해). 연관성없이 활동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목적을 가지시고 역사의 전과정에서 활동하신다.

구약성경의 역사는 이스라엘만의 역사가 아니며, 하나의 종교 역사 또한 아니다. 훨씬 그 이상이다. 신적, 신학적 역사이다. 종교 역사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다루심을 쓴 하나님 자신의 기록인 것이다.

즉 목적을 지닌 역사이며, 하나님의 활동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인간의 활동으로서 그 사건들을 서술하였다.

하나님의 계시를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들과 의도들을 선포하심으로 인간에게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기초하여 활동하시며, 하나님께서 그 사건들을 자신의 말씀으로 해석하시는 이 모든 것을 기록함으로써 계속 증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이 그 역사의 기록을 조정하는 것이다.

 cf. E.H Car의 역사란 무엇인가?


3. 신학적(theological)인 면.

- 신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 자신께서 계시하신 하나님에 관한 지식. 성경신학이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인간의 역사 속에서 활동하신 바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연구이다. 성경 연구에 가장 중요한 관심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그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그 계시의 흐름이다.

* 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의 피라미드


- 우리는 우선 계시, 즉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가와 신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을 그 분께서 말씀하시고 활동하시는 문맥(역사)과 분리시켜서는 안되며, 그분께서 자신의 활동을 말씀하시는 방법(문학)과 분리시켜도 안된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무시하지 않은 채 성경의 본질적인 통일성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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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블랜차드(겅호, 하이파이브, 열광하는 팬,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가 말하는 인간과 크리스챤.

  1절. 블랜차드의 핵심개념과 이론소개.


그는 최근에 더욱 알려진 경영 컨설턴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는 알기쉽게 경영과 의식을 전해주는 사람으로서 전세계에 수많은 기업, 경영자, 사회직장인에게 영향을 끼쳤다. 또한 목회자와 함께 여러책(예:예수님의 리더쉽)을 공저한 크리스챤으로 알려졌다. 그의 책 4권 ‘겅호, 하이파이브, 열광하는 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핵심 개념만 도표로 정리해 보았다.

 

겅호(조직 관리)

하이파이브(팀웍)

열광하는 팬(서비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인간관계)

1

가치있는 일을 한다(자신의 일의 가치 자각)

분명한 목적과 가치제공(참여 이유 부여)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라

(경영자의 비전)

즉각적으로 칭찬하라

(잘한 일에 초점)

2

목표달성에 필요한 일을 스스로 결정한다

(명확한 목표)

기술 향상과 권장

(능력의 강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아내라(고객의 비전)

사람들이 잘했거나 잘해낸 일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라(과정을 칭찬)

3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한다(Win/Win,보상)

팀 능력 창조

(공동의 조화)

하나를 더 전달하라

(1%씩 지속적인 개선)

사람들이 한 일에 대해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하라

4

 

장점 강화 유지

(빈번한 포상과 인정)

 

계속해서 일을 잘해나가도록 격려하라

     

< 표 2. 켄 블랜차드의 4권의 책 핵심개념 비교 >

그는 경영에 큰 4개 분야를 4권의 책에 담아 놓았다.  이 책들은 작고 짧게 기록되었지만 의미심장하고, 핵심적이고 명쾌하게 자신의 논지를 밝히고 있다. ‘겅호’는 조직관리 측면에서, ‘하이파이브’는 팀웍에서, ‘열광하는 팬’은 서비스 측면에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인간관계에서 각각의 핵심적인 내용을 말한다. 이 책들은 스티븐 코비가 말한 성품윤리적인 면이 약해지고, 즉 내면의 변화에 대한 면이 약해지고, 성격윤리적 접근이 강해졌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가치를 추구하고, 분명한 목적과 함께함의 강조 면에서 성품윤리적인 면이 보이지만 성격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이렇듯 전문화된 측면이 강화되면서도 기본되는 도덕적, 윤리적 마인드를 놓치지 않음으로서 통합적인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음이 보인다. 이러한 사항들을 조직과 개인에게, 가정과 직장에 실행함으로서 커다란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또한 이런 책들이 요즘 가장 많이 팔리고 있고, 독자인 일반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다.


  2절. 그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성경적 인간관의 비교.


그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기독교 사회학자이며 사상가인 자끄 엘룰의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에 잘 나타나 있다. 자끄 엘룰은 그의 책에서 말하기를 ‘우리 문명에서 일어나는 첫 번째 큰 문제는 모든 것이 ‘수단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집단 목표를 상실한 채, 거대한 수단만을 갖고 있다. 그 수단의 최우선 전제는 ‘인간의 행복’이다. 인간은 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철학자들이 과학을 탐구하였다. 그러나 과학은 점점 더 기술적 목적에 부합하여야 하였고, 마침내 과학은 더 완벽한 수단을 창조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세상 전체가 수단의 손에 넘어갔다.’1) 이러한 수단은 결국 자기 정당화 과정을 거치고, 인간은 전혀 수단을 통제하지 못하며, 모든 영역을 지배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켄 블랜차드의 책에서도 볼 수 있다. 오직 조직의 생산성과 효과성을 향상시켜 수단을 많이 낳는 것이다.

그러나 자끄 엘룰에 의하면 크리스챤에게 목적과 수단의 분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수단과 목적이 동일한 것이고, 수단을 통하여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이들은 목적 자체가 상대화되고, 모호해 졌기에 저마다의 목적을 좇는 것 같아도 수단을 좇는 것이다.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은혜로 목적을 부여 받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위임한 사명, 즉 목적과 수단의 일치를 세상에 나타내 보여주어야 한다. 목적 자체를 세우는 것은 인간이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이다.2)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나님이 목적을 세우시고, 인간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 목적을 이루시는 것이다. 블랜차드의 효과적인 경영원리와 기술은 당장의 삶의 유익은 줄지 몰라도,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그 목적에 의거한 본질적 인간됨의 삶을 영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성경에 근거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성경에 우리의 목적과 권위를 부여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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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경영과 크리스챤 경영의 차이 고찰(기업경영적 측면).


리처드 츄닝교수는 그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일반 경영의 생활방식은 개인적인 자율성에 중점을 두지만, 성경은 개인의 가치를 확인시킨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창조물이자 종이자 청지기로서 부름 받았다.”1) 일반 경영을 하는 그들은 개인적인 독립심, 경제, 물질적인 소유, 사회적 지위 그리고 여가등에 관한 자기만의 주관을 발전시키나,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기업을 운영하고, 서로 일하고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제도화 한 것이다. 좀 더 성경을 근거로 다른 차원에서 말하면, 기업경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마 22:37-40)하기 위해서 존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웃을 섬기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돌린다는 것은 기업경영에 빛을 비춤으로(마5:16) 하나님이 기업가들에게 맡겨진 귀한 사명, 즉 그의 백성들의 삶을 잘 돌보는 것이다. 이것에 더 심화시켜서 고려대 이장로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보다 차원이 높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기 위해서이다.” 즉,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고, 기업에게 주신 능력 안에서 최대한 발휘하여 이윤을 얻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다”2). 여기에 나는 덧붙여서 말한다. 이것은 기업경영 뿐 아니라, 정부기관, 직업을 하는 모든 사람에 해당하는 정의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님 앞에서의 청지기로서 섬기며,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고, 그들을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을 근거로 표로 정리해 보았다.  

 

일반 경영

크리스챤 경영

주체

경영자와 구성원의 자신의 확신

하나님과 그분의 주권 신뢰

목적

이익(이윤)과 자아실현가치의 추구

하나님의 창조 파트너로서 사명감당, 기업과 기관에 샬롬1) 공동체 이룸, 이웃을 섬기는 것

성취

경영자와 구성원의 노력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이루심

동기

자아실현 욕구와 야망, 사회 기여욕구.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그 뜻을 이루려는 열정(청지기 의식)

< 표 1. 일반 경영과 크리스챤 경영의 차이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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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계보를 통해서 본 원론적 연구


경영학은 어디서 왔는가? 뿌리없는 나무가 없듯이 사상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실재를 알 수 있다. 여기서 먼저 근원철학과 패턴철학에 대한 정의를 할 필요가 있다. 근원철학은 인류의 창조부터 지금까지의 원 사상의 흐름, 큰 줄기를 나타내는 철학으로서 히브리 철학과 헬라 철학을 들 수 있다. 동양철학도 거기에 들 수 있을지 모르나, 창조부터 흐르는 사상의 원류에서 좀 떨어져 있으며, 인류 역사의 큰 흐름에 적은 영향을 미쳤고, 경영학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러나 히브리 철학과 헬라 철학을 근원 철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의 로고스, 한 근원된 존재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경의 사상, 즉 히브리 사상만이 근원철학이다. 그러면 헬라 철학은 무엇인가? 그들은 물음을 시작한다. 궁극적 실재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죽으면 어디로 가야하는가? 역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등의 물음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런 물음자체는 인간의 타락에서 기원한다(창 3장).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물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헬라철학은 나왔다. 그들은 참된 궁극적 실재가 무엇이냐를 묻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면서 헬라철학이 탄생했으며, 그 철학은 예수님 오실 당시에도 풍미하던 철학이다. 히브리사상과 헬라사상이 독특하게 융합되어 계시를 기록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히브리 사상적 계시를 헬라의 언어와 철학의 분석과 어우러져서 지금의 성경연구를 가능케 한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났다. 이때에 하나님의 로고스와 인간의 로고스의 통합(원래 하나였던 로고스)이 최초에 나타났다. 이 때부터 역사의 주기를 거치면서 초기 기독교에 융성했던 히브리사상이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를 만나면서 헬라철학과 그에 이어지는 인문주의(문예부흥)에 더욱 물고를 터 주었다. 이것은 곧 쉐퍼가 분석한 대로 ‘인간의 의지는 타락하였으나 지성은 타락하지 않았다(불완전 타락)’는 것이다. 곧 ‘인간의 지성이 자율적’1)이 되어 앞으로의 하나님을 떠난 자율적인 사고와 문화의 발전에 물고를 튼 것이다.

그 후 16C로 들어와서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에 히브리사상과 헬라철학이 만나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의 불완전타락과 자율에 따른 인간자각의 진보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주권과 전적타락이 동시에 강조되는 독특한 시기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인류는 엄청나게 융성과 진보를 맞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서양의 패턴철학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교육되기 시작했다. 칼빈 시대에는 신학, 법학, 의학, 문학 등의 4개의 큰 단과가 있었고, 먼저 문학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야 전문과정 세가지 중 하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문학 즉, 인문 과정의 기초인 논리학을 시작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 천문학, 자연철학의 기본원리를 배웠다.2) 이때만 해도 경영학은 전혀 없었던 시대이다. 18C에는 청교도 신학의 융성과 맞물려 인문주의의 진보인 계몽주의가 꽃피우는 데, 한 인물이 탄생한다. 그는 경제학 역사의 이정표를 세운 아담 스미스(1723-1790)이다. 아담 스미스(1723-1790)는 18세기의 계몽주의자이며 정치경제학의 창시자이다. 그의 최고 걸작『국부론』은 경제학 저술인 동시에 정치학적 저술이다. 스미스는 철학적인 차원에서 경제와 정치를 바라보는데 이 때 영혼의 문제는 고려사항이 되지 않고 오직 세속세계만이 관심의 대상이다(조순 외(저), 아담 스미스 연구 (민음사, 1990)). 자유경제, 시장의 법칙, 풍요의 진보를 주장했던 그의 주장에 세계는 큰 영향을 받는다. 이어서 아담 스미스에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는 그의 사상에 난점인 부의 불평등을 고려하면서, 1869년 자본론을 통해 경제학에 새로운 충격을 준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분석하려고 한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생산, 유통 및 분배를 지배하는 여러 법칙을 명확히 하며, 아울러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법칙을 밝히는 것이다. 이 둘을 통해 경제구조가 바뀌었으며, 경제학의 발전과 함께 그 경제의 이론과 실제 경제의 활동의 문제 속에 효과성, 효율성 문제가 대두되었고, 경영학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그 후 1차 세계대전 발발할 즈음, 몇몇 사상가들이 경영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에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미국이 경영에 의해 거둔 성과를 보았고, 그 이후로 경영이 독특한 하나의 학문이요, 작업으로 등장하였다. 이때부턴 경영이 단지 ‘기업경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경영은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조직에 통합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과 관련이 있는 분야로 자리매김 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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