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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 모멸에 품위로 응수하는 책읽기
곽아람 지음, 우지현 그림 / 이봄 / 2021년 6월
평점 :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순간 내가 쓴 책인 줄 알았다. 야심도 없고, 욕심과 질투로 마음에 옹이가 지는 걸 싫어하며, 문학적인 인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그건 바로 나였으니까. 그리고 작가처럼 나 또한 '마음에 어는 점을 만들지 않고,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밑바닥까지 추해지고 싶지 않으며, 최대한 우아함과 품위를 유지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
'책에 대한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감상보다 내가 직접 읽고 느껴야 진짜라고 여겼기 때문에. 타인의 평가와 감상에 젖어 색안경을 끼고 작품을 바라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이 책,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와의 만남은, 조금 촌스럽게 느껴질지라도 운명이라 말하고 싶다. 게다가 작가님은 그리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녀가 마치 나의 샴쌍둥이처럼 여겨졌다.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뭐 이리 비슷한 점이 많은가. 타인에게 나의 감정을 내보이는 것을 꺼려하는 내가, 그녀의 글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아니, 스무 권의 작품을 통해 20명의 여성을 만나는데 왜 자꾸 눈에서 물이 나오는가 말이다!!
어떤 작품을 소개하는 책을 읽을 때의 묘미를 이번에 깨달았다. 특히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들. 이미 읽어본 책들도 꽤 되는지라 더 공감하기도 했고,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어 뜻깊었던 시간들. 수많은 여성 중에서도 나에게 재발견된 인물은 '신지식 선생'이었다. [빨강 머리 앤]의 첫 우리말 번역자로 알려진 신지식 선생. 2013년 이루어진 첫 인터뷰를 통해 두 사람은 마음을 나누는 '동류'가 된다. 그런 신지식 선생이 이 세상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갔을 때의 작가의 마음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마흔 아홉이라는 나이 차를 뛰어넘은 진실한 우정. 책이라는 매개체로 이루어진 멋진 인연이었다.
제목과 어울리는 우아함을 가장 잘 표현한 인물로 [빙점]의 요코와 [우아한 연인]의 케이트를 꼽고 싶다. 죄인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시작된 온갖 구박과 멸시를 견뎌내며 마음 깊은 곳까지 추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쓴 요코.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 싸우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던, 조지 워싱턴의 101번째 규칙 '양심이라 불리는 천상의 불꽃이 가슴속에 항상 살아 있게 노력하라'는 지침을 따르던 케이트. [우아한 연인]을 읽을 때 왜 자꾸 케이트에게 끌리는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작가의 명쾌한 글들로 인해 겨우 깨닫게 되었다. 올해 [빙점]과 [우아한 연인]을 꼭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우아함은 교양의 영역에 있다. 부유함이라든가 도회적인 것과는 다른 문제로 어느 정도의 천성과 어느 정도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독서란 교양을 쌓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면서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 훈련법이다.
항상 멋진 사람이고 싶었다. 그 어떤 일이 닥쳐도 무릎 꿇지 않는 당당함과 꼿꼿함, 타인의 잣대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과 우아함을 가진 사람이고 싶었다.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나는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작가의 글을 보니 바로 이것인가 싶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교양이란 것을 쌓고 싶어서. 매 순간 흔들리더라도 매일 우아하게 살아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