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달 2
이쿠에미 료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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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에는 영화를 봐도 집에 얽힌 이야기들만 보게 되더니 이제는 만화에서까지도 집에 도달하게 되니 이건 어떤 조화란 말인가? 주로 보는게 공포영화다 보니깐 특정장소가 정해지는게 당연하다고 말할수 있겠지만 "아미티빌 호러",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과 같은 공포영화속 주인공들 보다 더 흡입력 강한 등장인물들을 만난건 또 어떻게 된거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만화신에 이끌림을 받은게 아닌가 싶다.

요즘 좀처럼 볼수 없는 대가족인 " 하가미 가" 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집에는 먹는것에 무한한 집착을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딸들의 감시자이자 파수꾼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모범생의 길을 따라 엘리트 코스로 나아간 큰 오빠, 그리고 음침함이 묻어나지만 순진하고 순수함을 간직한 둘째딸, 그리고 열혈모드의 셋째딸, 그리고 큰 오빠의 정신적 지주 고양이 포세이돈, 그리고 이 집을 지키는 개 코마루에 이른다. 그리고 이 남매를 둘러싼 관계까지 나아가면서 이야기는 갈수록 복잡해진다.

 1권에서는 이 남매의 각 시점에 따라서 이야기가 새로 구성되고 시작되더니 이번에는 이 남매를 사랑하는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보너스로 포세이돈의 과거이야기도 싣고있다. 고양이의 시점에서 시작하는것을 보면 이 작가도 무지하게 고양이를 사랑하나 보다. 자신의 캐릭터까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고 고양이와의 다사다난한 생활상을 후기에 적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일본 만화가들은 고양이와의 동거가 거의 정형화된 형태로 까지 비춰질 정도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만화가 = 고양이라는 이상한 도식일 생각날 정도로.. 하여튼 만화속에  다루어지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기쁨이 될만한 만화 중에 하나가 될듯 하다.

그리고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대가족의 생활사가 기름칠이 전혀 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너무 기름칠이 안되어 있어서 " 이런것은 조금 기름칠을 하시지요 작가님" 하고 입을 쫙 벌릴정도로 황당하게 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요즘 일본만화의 가족 환경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가족인데도 불구하고 집에 들어오면 자기방에 휙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거나, 대화도 전혀 없다거나, 부모님의 이혼이라거나, 불륜으로 인해 자식이 상처받고 그 상처를 이성에게서 보상받으려 한다거나 하는 그런 모습만 보아오다가 "하가미 가"에 이르니 신선하다 못해 신기했다.  할아버지가 푸딩 다 먹었다고 할머니가 구박하고 슈퍼에 뛰어가고 손녀 남자친구가 맛있는것 사왔다고 계속 놀러오라고 점수를 듬뿍 주는 모습, 복권을 둘러싼 이 가족들의 헤프닝, 그리고  "너희집에서는 된장냄새가 나~~" 로 대변되는 이 집은 그 정형화된 틀을 과감하게 부수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만화를 보다 보면  추울때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방에 들어가고 싶어!" ,또는 밖에 나와 있을때 배가 고파져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맛있는 음식 먹어야지 .." 하는  그런 생각 들게 만들었다. 가족 그 자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훈훈함이 전해져서 좋았다. "정말 괜찮다 , 추천해주고 싶다!" 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어서 리뷰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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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
고바야시 요리코 외 지음, 최재혁 옮김 / 돌베개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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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르메르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나서 공통적인 사실 하나를 느낄수가 있었다. 높고 큰 창이 존재하고 밝게 쏟아지는 햇살과 그 빛을 받아 더욱 환하게 빛나며 알듯 모를듯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이 아닐까싶다. 물론 남성이 그림의 주인공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는 많은 사람을 등장시키는 것을 꺼려하는 듯하다.  많아도 두 세명이면 끝이다. 물론 네덜란드에서 시민계급의 입맛에 맞는 그림( 즉, 시민의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친근한 풍속화)을 그릴수 밖에 없었던 탓이겠지만서도...내가 본 네덜란드 그림들이라 해봤자 정물화를 즐겨 그린 작가들밖에 생각이 안나니 정물화에서 인물을 찾을수도 없는것이니 당대 네덜란드 화가들은 과연 몇명을 화폭에 담았는지 아니면 그네들끼리의 풍속화에는 몇명을 그리자는 원칙이 있었는지 아니면 작가 마음대로 그렸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으니 비교를 해볼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등장인물을 많이 그리기를 꺼려했다고 마음대로 추측해버렸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듯 한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내 그림에 대해서 맞춰보세요 하면서 어떠한 암시나 힌트를 그림 곳곳에 숨겨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베르메르라는 화가는 처음에는 여느 작가들처럼 그런 의도로 하나씩 무언가를 그려놓았다가도 금새 덧칠을 해버리고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이 그림에 그런 암시가 설마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일상적인 소품으로 그냥 스쳐 지나가듯 살짝 그려놓고 붓을 놓아버리는 심술을 부렸으니깐 말이다. 마치  "다른 작가들처럼 그렇게 뻔히 보이게 그리지는 않을테야!" 하면서 "난 다 보여주는 그림은 그리지 않을테야!"하는 듯한 고집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품수도 얼마 되지 않는것도 그가 그리고 싶을때 그리고 그림 외에도 장모의 일을 도와주며 널널하게 살았던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그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베르메르라는 인간에게 관심이 간다. 그리고 그와 직접 옆에서 대화를 하듯이 마치 퍼즐을 풀듯이 마치 소설을 읽듯이 이야기하게 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의 그림이 도난을 자주 당하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다른 의도로 훔쳤다가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묘하게 끌려서  돌려주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베르메르라는 화가의 정보가 거의 없다는점이나 남아있는 작품의 수가 매우 적은데다 진작 여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 , 그리고 유명한 위작 사건에 휘말린 과거가 있다는 점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여러가지 수난을 당한다고 하는데 모두다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매력탓이렷다!

그리고 그의 그림중에서 연애편지를 읽는 그림들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서 창가에 서서 편지를 읽고 있는 여인도 있는가 하면(물론 연애편지겠지?)  연애편지를 다소곳하게 쓰고는 있는데 눈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별로 쓰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는 쓸말이 너무 많아서 무얼쓰지 하며 고심하는 티가 역력한 숨은 열정이 숨어있는 여성이 있기도 하고, 편지 쓰고 있는 아가씨 곁에 서서 보초를 선듯한데 힐끔힐끔 그 편지를 읽어보고는 몰래 웃음 짓는 듯한 유모도 있다. 물론 모두다 이 그림을 보고 느낀 나만의 상상일 뿐이지만...혹시나 이 그림들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편지를 소재로 한 )이 그림들의 제목을 죽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

"편지를 읽는 푸론옷의 여인"

"편지를 쓰는 여인"

"연애편지"

"편지쓰는 여인과 하녀"

"신사, 편지를 읽는 여인, 하녀가 있는 실내"

동양화처럼 다 보여주기 보다 감추고 있는 그의 그림이기에 여러가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수 있어서 그림을 보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가 진실로 담은 이야기는 어떤 것이지는 몰라도 비밀이 많은 베르메르의 그림이라서 더욱 비밀을 캐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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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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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인데 주인공이 전부 여자이다. 그리고 나이 또한 20대에서 중년을 넘나드는 여성까지 넓은 분포로 흩어져 있어서 특정나이때의 여성들만 만날수 있는 한정성 또한 없으며 하나 같이 통통 살아있는 그녀들의 생각, 그리고 가치관 ,그리고 그네들의 사랑이야기까지 한아름 눈앞에 펼쳐지는데 어느 하나 눈길을 끌지 않는 작품이 없었다!  어느 하나 놓칠수 없는 수작이라고 감히 칭하고 싶을 정도로 상당히 재미있었다. 원래 처음 접하는 작가의 소설은 적응하기 까지 꽤 오래 걸리고 그 작가의 생각 가치관 등을 이리저리 파악하느라 소리날 정도로 윙윙 하고 뇌가 움직이기 시작하지 않는가? 나 또한 그러했다. 책을 집어들고 쫙 찢어진 눈을 하고는 작은 허물이라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작은 의지까지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그런데! 첫단편부터 내 시선을 빼앗겨 버리고야 말았다. 처음 접한 작가라 낯설음 더하기  더이상 냉정할수 없는 냉철한 시선이 더해진 나의 눈에 이렇게 필이 팍!하고 꽂혔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만난 그녀는 이랬다. 결혼적령기에 들어선 그녀는 너무나도 순수했고 귀여웠다. 그녀의 귀여운 행각을 하나 포착해보자면...

"지금 어떤 표정으로 울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거울을 들여다본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게 재미있다. 그러다가 정각 소설의 장면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 또 운다.........이런 포즈를 취하면 매력적으로 보일까? 배가 너무 나온건 아닐까?하고 배를 내려다보며, 울면서도 배에 힘을 끌어주어 안으로 끌어당기고, 한 손으로 뱃살을 잡은채, 이것만 없으면 얼마나..하고 생각하는 여자다"

소설책 보다가 눈물이 줄줄 흘리다가 갑자기 자기 우는 모습이 보고 싶어져서 거울을 가져다가 가만히 그 모습을 들여다보는 모습에서 강렬한 동류의식을 느꼈다. '나'라는 사람은 눈물을 거의 흘리지 못하는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라서 소설을 보고 운적이 거의 손에 꼽아도 다섯손가락안에 드는지라 혹시 울게 되었다하면 나자신이 깜짝 놀라게 된다. "내가 울고 있다니...! '하면서 상당히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울다 웃다 한 경험이 있었으니깐..

나말고도 이런 짓을 하는 여자가 또 있었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첫 단편에 이만큼 감정이입을 했으니 다음 작품은 또 과연 어떤 여자가 등장할까 하면서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었다. 재미나고 개성넘치는 여자들이 내앞을 스쳐지나 갔다. 어떤 그녀는 좀체 이해할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고 금지된 사랑임을 알면서도 즐기는 그녀도 있었고, 방광염이라는 병명을 핑계로도 전남편을 만날 이유또한 주지 않아서 스스로가 결혼에서 풀려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좋아라 하는 그녀도 있었다. 그리고 렌의 일족에 푹 빠져 버린 그녀도 있었고...

길에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여성중에서  어느 개인들의 사랑이야기를 들여다 본듯한 기분이다. 도도하고 조용하고 자신감 넘치고 아름답고 멋지고 또는 약하고 부족하고 불편한 그녀들이지만 그 마음속에 담은 각기 다른 사랑이야기는 이다지도 다양하다.  그녀들의 사랑이야기를 듣다 보면 난 과연 어떤 사랑을 품고 있는지 조용히 반추해는 시간을 가질수도 있을것이다. 물론 그대가 그녀라면 공감도는 더욱 크겠지만서도..아니 아예 그녀들을 이해못할수도 있겠지만 그녀들을 전부다 이해하기는 원래 불가능한 일이니깐 그렇게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 단지 그녀들의 이야기에서 어느 하나 자신의 이야기를 떠 올리게 된다면 그리고 자기만의 사랑의 빛깔을 찾을수 있다면 이 책의 소임은 다했다고도 볼수 있을것이다.

마지막에 야마다 에이미라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던것 같다.

"어려운 이론보다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는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라고...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낯선 작가의 책에서 잠깐동안의 행복함을 찾을수 있다면 그것 또한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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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하트 Angel Heart 13
츠카사 호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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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카추카 축 무사생환!

이걸 보고 있단건 내가 지금도 살아있단 뜻이겠지?

야아~~ 축하해!

단! 잘 듣고 명심해! 미래의 나! 넌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받아 자신의 수명을 연장시킨거라구! 넌 그 사람의 희생과 목숨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단걸 잊지마!

절대로!

살아있는 지금을 1초라도 낭비한다는건 그 사람의 생명을 모욕하는 짓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넌 이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살아야돼!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열심히 살아라! 자신이나 타인을 위해서라도!"

어느 여자 연기자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이 우울함으로 물든 날 이 책을 만났다.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구원을 받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이유로 그녀가 죽음을 선택했든 그 파장은 나에게도 찾아왔다. 남의 죽음 사실 별것 아닌일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잘 모르는 타인의 죽음따위는 더욱이...그러나 떠나간 그 빈자리가 아쉬움이라는 단어로 찾아온것이 문제였다. 이런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쥐고 움직였던 말이 바로 위의 글이었다. 심장이식을 받은 어느 남자의 컴퓨터에 저장된 저 이야기가 쥐고 흔들었단 말이다. 그 누구에게는 1초도 아까운 그 시간을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서 살아가야 되겠다고 말하는 그 말에 말이다. 작은것에 영향을 받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또 다른 작은것에 구원받게 되다니...

그리고 별칭 "행복을 가져다 주는 아이"(내가 정해버렸다.) 이야기도 소소한 기쁨으로 찾아왔다. 아주 어리지만 똑똑하고 착하던 어느 소녀가 볼일 보고 돌아올테니 기다리고 있어라는 쪽지를 남긴채 나갔던 엄마와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소녀는 죽음이라는 것조차 인식을 하지 못한다는게 문제였다. 나 또한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서야 죽음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니깐 그 어린 소녀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단어였는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단어는 경험을 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는 단어중의 하나이니깐 말이다. 그런데 그 소녀는 엄마와 약속을 하였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 남에게 친절해야 한다 그것만 지키면 반드시 행복할거야" 라는 엄마와의 약속을.. 그앤 그 약속만 지키면 엄마가 돌아올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슬퍼보이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칠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사람에게 자기가 할수 있는한 최고의 배려를 선물해준다. 그 어린 소녀의 선물에 그 관심어린 시선에 어른들은 행복을 느낀다. 아니 구원을 받는다. 그 어린 소녀가 행한 행동은 어찌보면 너무나도 작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작은 사랑에 포근함을 받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되고 잠들수 있게 되었으니 구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작은 천사에게 구원을 받았듯이 우리들도 우리 주변사람들 중에서 슬퍼하는이 외로워하는 이 힘들어 하는 이를 찾아서 그 작은 사랑을 선물하자! 그러면 살아가는 힘을 얻지 않을까? 그녀에게도 이런 소녀가 있었으면 죽지 않았을까나.. 더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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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라이브 최종진화적 소년 4
가와시마 타다시 원작, 아다치 토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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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쓰노트도 그렇고 이 만화도 그렇고 사람 생명의 가치가 너무나도 하찮기만 하다. 삶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두고 만화는 달음질하기 시작한다. 이 두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 그리고 누가 죽는것은 어느 타인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고, 그 타인의 가치관에 의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 어느 날 갑자기 사신이 되어 버린자들로 인해서 말이다. 뭔가 생각나지 않는가? 최근의 만화 중에 데쓰노트라는 작품이 생각날것이다.  그 만화에서도 주인공 남자애 하나가 모두들 평가하고 죽음의 서에 이름을 기입하고 죽을 시간 장소 사인까지 모두 관장한다. 그에게 잘못 걸리면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뤄야 하는 그 극도의 이분법적인 세계로 독자들을 몰아간다. 마치 선과 악을 직접 선택하라고 직접 결정해 보라고 작가는 우리를 끝까지 몰고 간다. 

그럼 이 만화는 데쓰노트와는 어떤 시각의 차이가 있을까?전자에 비해 이 만화는 죽음을 거부한 후 나타난 새로운 능력을 지니게 되고 그 능력으로 인해 죽음을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니깐 사신의 수가 더 많다고나 할까?죽음의 메시지를 이겨낼수 있는 능력만 갖춘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사신이 증가한다는 이야기가 되니깐 말이다. 각성을 한후 죽음을 행하는 자가 되어버리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자신보다 열등하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죽음을 선사하는 사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무협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구만. 갑자기 자기 자신에게 걸맞지 않은 능력을 얻게 되면 그 힘을 주체못하고 폭주하는 사람들의 심리 그자체로군. 선한 얼굴로 살아가다가 힘을 얻자 악한 자의 얼굴로 변하고야 마는 인간이라..

또한  한명의 사신과 그 사신을 막는자의 구도가 전자였다면 후자는 다수의 사신이 존재하고 그 사신을 막는자는 아주 극소수라는 그런 구도가 성립된다. 20세기 소년이라는 작품에서 친구로 명명하고 죽음으로 몰고가는 녀석과 그것을 막으려는 자들과의 구도와 아주 비슷하다고나 할까?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여기서도 성립한다. 이 만화 뿐만아니라 인간이 만든 세상은 모두 이분법적인 거니깐 뭐라 할수도 없는 거지만서도.. 음과 양, 선과 악, 남과 여 등등으로 나뉘어진 극도의 구도에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으니깐. 그러보니 얼토당토 안한 이야기만은 아니군. 인간의 본능을 극한 상태로 몰아가서 삶과 죽음의 그 상황에 몰아넣었을 뿐이니깐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런지 기대가 된다. 주인공은 친구를 구해내고, 죽음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낼수 있을지 없을지도 궁금하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나아가는 그 과정에서 또 어떤 시련들을 겪고 성장하고 또 어떤것들을 얻을수 있을지 또한 궁금하다. 어떤 답을 선사할런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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