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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라이브 최종진화적 소년 4
가와시마 타다시 원작, 아다치 토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데쓰노트도 그렇고 이 만화도 그렇고 사람 생명의 가치가 너무나도 하찮기만 하다. 삶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두고 만화는 달음질하기 시작한다. 이 두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 그리고 누가 죽는것은 어느 타인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고, 그 타인의 가치관에 의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 어느 날 갑자기 사신이 되어 버린자들로 인해서 말이다. 뭔가 생각나지 않는가? 최근의 만화 중에 데쓰노트라는 작품이 생각날것이다. 그 만화에서도 주인공 남자애 하나가 모두들 평가하고 죽음의 서에 이름을 기입하고 죽을 시간 장소 사인까지 모두 관장한다. 그에게 잘못 걸리면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뤄야 하는 그 극도의 이분법적인 세계로 독자들을 몰아간다. 마치 선과 악을 직접 선택하라고 직접 결정해 보라고 작가는 우리를 끝까지 몰고 간다.
그럼 이 만화는 데쓰노트와는 어떤 시각의 차이가 있을까?전자에 비해 이 만화는 죽음을 거부한 후 나타난 새로운 능력을 지니게 되고 그 능력으로 인해 죽음을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니깐 사신의 수가 더 많다고나 할까?죽음의 메시지를 이겨낼수 있는 능력만 갖춘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사신이 증가한다는 이야기가 되니깐 말이다. 각성을 한후 죽음을 행하는 자가 되어버리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자신보다 열등하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죽음을 선사하는 사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무협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구만. 갑자기 자기 자신에게 걸맞지 않은 능력을 얻게 되면 그 힘을 주체못하고 폭주하는 사람들의 심리 그자체로군. 선한 얼굴로 살아가다가 힘을 얻자 악한 자의 얼굴로 변하고야 마는 인간이라..
또한 한명의 사신과 그 사신을 막는자의 구도가 전자였다면 후자는 다수의 사신이 존재하고 그 사신을 막는자는 아주 극소수라는 그런 구도가 성립된다. 20세기 소년이라는 작품에서 친구로 명명하고 죽음으로 몰고가는 녀석과 그것을 막으려는 자들과의 구도와 아주 비슷하다고나 할까?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여기서도 성립한다. 이 만화 뿐만아니라 인간이 만든 세상은 모두 이분법적인 거니깐 뭐라 할수도 없는 거지만서도.. 음과 양, 선과 악, 남과 여 등등으로 나뉘어진 극도의 구도에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으니깐. 그러보니 얼토당토 안한 이야기만은 아니군. 인간의 본능을 극한 상태로 몰아가서 삶과 죽음의 그 상황에 몰아넣었을 뿐이니깐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런지 기대가 된다. 주인공은 친구를 구해내고, 죽음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낼수 있을지 없을지도 궁금하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나아가는 그 과정에서 또 어떤 시련들을 겪고 성장하고 또 어떤것들을 얻을수 있을지 또한 궁금하다. 어떤 답을 선사할런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