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소원 -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 모음 마음산책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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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박완서 님이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쓴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 펴낸 책이라 한다. 이미 한 번 출판된 적이 있는데 절판되었다가 <마음산책> 출판사를 통해 다시 세상 빛을 보게되었다. 작가가 이 책의 절판 소식에 유독 많이 아쉬워했던 것은 이 짧은 이야기들 속에 숨어 있는 뜻이 오늘날 더욱 의미 깊으리라 생각해서였다한다. 어떤 메시지가 숨어져 있길래,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개정판을 통해서라도 이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었을까, 많이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작가의 그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에는 표제작 '세 가지 소원'을 비롯해 모두 열 편의 짧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짧은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가 우리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과연 가볍지 않았다. 눈 앞의 부만 바라보며 정작 중요한 것은 빠뜨리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 우리의 아이들이 안전히 자라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 아무렇지도 않게, 심지어는 자연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자연을 망가뜨리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평생을 고생했는데 그토록 바라던 꿈은 세월따라 흐려져버리고 의미없는 것들만 손에 쥐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 단순히 책 속에 등장하는 이들의 일로만 치부하기에는 와닿는 바가 너무 크다.

 

열 편의 이야기 중에 가장 가슴 깊이 와 닿은 글은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예비 엄마 아빠가 새 생명을 맞이하며 달라지는 모습은 정말이지 제목 그대로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었으며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배 속의 아기를 위해 식습관은 물론 일상 생활의 사소한 부분도 바꾸는 엄마. 음식은 아기를 위해 좋은 것만 먹고, 늘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움직이던 몸은 이제 내 이웃을 위해서도 움직인다. '믿음직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무엇이 믿음직스러운 것인가 하는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다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세상인지를 느끼는 아빠. 사람이 빠지는 맨홀, 아이들이 타다가 끊어지는 그네줄, 사람을 치고 달아나는 뺑소니 차, 아이를 유괴하고 돈을 요구하는 파렴치한 등등, 이 세상이 믿을 수 없는 모습이라는 걸 알 턱 없는 아이가 세상에 나와 실망할까봐 아빠는 걱정이다. 그래서 주변의 것부터 하나하나 '믿음직스러운 세상'으로 바꿔나가는 아빠. 그리고 또 아이를 위해 커다란 선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할머니. 할머니는 아이에게 들려줄,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들을 잔뜩 준비하고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이 좋은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가 있으니, 아기는 이 세상에 실망하지 않고 방긋방긋 웃을 수 있겠지? 뉴스를 보다가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자기 가족이 쓰는 거면 저런 식으로 만들겠어?" "자기 가족이 먹을 거면 저런 짓 하겠어?" 모두가 새로 태어날 아기를 맞는 엄마 아빠의 심정으로, 또는 내 가족에게 누리게 해줄 거란 심정으로 무엇이든 한다면, 이 세상은 정말 믿을만한 세상이 될 거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본다.

 

이렇게 좋은 이야기들이 '절판' 앞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니, 정말 애석할 뻔했다. 과연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 모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박완서 작가가 풀어놓는 이 귀한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이 만나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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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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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산악인이 세상을 떠난 여동생을 기리기 위해 K2 등정에 올랐다 조난 당한다. 단백질바 하나와 눈을 녹인 물로 겨우 영양을 공급하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 버티는 그를 구조해 돌봐 준 코르페 마을 사람들. 한 달 여를 그곳에서 생활한 그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바깥의 얼음판 같은 돌바닥에 앉아 공부를 하는 아이들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리라 다짐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굳은 약속을 한 뒤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 산악인이 바로 이 책의 저자 그레그 모텐슨이다. 학교를 짓는 데 드는 돈 1만 2천 달러 같은 건 수중에 있지도 않았지만, 그 약속을 지키고자 그레그 모텐슨은 돈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온갖 노력을 다 한다. 이 남자가 돈도 없이 어떻게 히말라야 산골마을에 학교를 지어주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의 힘으로도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지켜보며 감동에 젖어들었다. 그레그 모텐슨은 성금을 부탁하는 수백 통의 편지를 타자기로 두들기고, 돈을 아끼기 위해 자신은 집도 없이 차에서 생활하며 식비도 최소한으로 줄인다.(이 생활에 지친 여자친구가 이별을 고하기도.)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고 겨우 한 통의 답장을 받았으니 좌절할 법도 한데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 앞에 나타난 장 회르니 박사.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장 회르니 박사는 이것저것 크게 묻고 따지지도 않고 선뜻 학교 건설 비용 전부를 기부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후 재단을 설립해 히말라야 산골마을 곳곳에 학교 등을 짓기에 이르른다.

 

이 책 속에서 누군가가 말하기를, 우리는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지만, 그레그 모텐슨은 그걸 실천에 옮겼다고 했다. 나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그걸 실천에 옮겨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귀찮아서일 수도, 내가 가진 것을 내어줘야 한다는 아까움일 수도, 혹은 나 한 사람이 도와준다고 뭐 크게 달라지겠어?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분명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자기 희생이 전제되지 않은 도움이 어디있을까. 그런 '희생'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내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음을 축복으로 여기고 실천에 나선다면, 어딘가에서 나로 인해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이 세상 살면서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웃음을 줄 수 있는 누군가 있다면, 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는 누군가 있다면, 그것도 조금쯤은 보람된 삶이 아닐까?

 

배움의 기회를 잡아 완전히 세로운 세상을 살게 된 오지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새 세상을 열어 줄 수 있는 것은 그레그 모텐슨이라는 한 '특별한' 사람 뿐일까? 결코 아니다. 그레그 모텐슨이 결코 특별한 사람도 아니었거니와, 그레그 모텐슨이었기 때문에 이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도 다 그처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 능력을 평생 꺼내지 않고 조용히 일신의 평안을 위해 살 것인가, 내 능력껏 내가 가진 행복을 남들과 나누며 살 것인가. 나도 후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겨우 나 한 사람의 힘'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힘껏 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시간이었다. 물론 생각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지만.

 

아들에게 공부를 시키기 위해 염소 오줌통 여섯 개에 바람을 불어 넣어 아들에게 묶어준 뒤 이제 겨우 얼음이 녹은 강물에 흘려 보내고 눈물로 작별 인사를 한 아버지. 염소 오줌통에 몸을 맡기고 얼음장 같은 물에 둥둥 떠내려 가다가 선량한 사람들을 만나 여러 도움의 손길을 거쳐 겨우 학교에 발을 들이게 된 아이. 배움을 향한 그들의 목숨 건 열정이 가슴에 오래오래 남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배우고 싶은 모든 이들이 맘껏 배울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그 세상을 위해 내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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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펴야겠다
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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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마음이 가난하여 평생 가난하였다

눈이 맑은 아이들아

너희는 마음이 부자니 부자다

엄마도 마음이 따뜻하니 부자다

넷 중에 셋이 부자니

우린 부자다

('반올림 - 수림이에게' 전문)


 

찬바람 매서운 겨울날 군불 뜨끈히 땐 방에 들어선 것 같은 따뜻한 시집을 만났다.

'불을 지펴야겠다'는 제목에서부터 올라온 온기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식지않고 내 마음을 따뜻이 덮혀주었다.

 

'반올림'에서 '마음이 가난하'다고 말한 것은 시인 자신을 두고 한 말일까?

하지만 시집을 읽어보면 시인에 대한 느낌이 그 반대로 다가온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모두 애정어린 시선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거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살며시 엿본 듯한 기분이다.

이런 일기 적을 수 있다면 늘 똑같아 보이는 하루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다채로운 시간들이었나 새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젊은 코미디언 이야기가 담긴 시 한 편이 어쩐지 오래 가슴을 울린다.

시를 읽다가 잊고 있던 그 얼굴이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해졌더랬다.

아 맞다, 그때 그렇게 세상을 떠난 그 사람이 있었지...

누군가에게는 평생 쏟을 눈물의 거의 전부를 쏟아내야 했을, 크나큰 슬픔을 가져다 준 이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잠깐의 애석함으로 지나갔던 일. 웃음을 보내기 위해 가던 길 위에서 사고를 당하고 끝내 세상을 떠난 그녀의 이야기를 보며, 나는 앞으로도 가끔씩 그녀를 떠올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웃음을 주려다 세상 떠난 누군가 있었다고.

 

시집 속에 풀어놓은 작가의 '사소한 기억' 속을 거닐며, 내 잊혀진 기억들도 떠올려보고, 이리저리 타인의 삶을 상상도 해보고 포근한 시간이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아궁이에 나뭇가지 밀어 넣으며 불을 때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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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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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결연한 각오를 다지게 하는 제목과, 왔다갔다 고민과 번뇌를 반복하고 있는 듯한 표지 그림 속의 남자.

아지즈 네신이라는 터키 작가와의 만남을 무척 기대되게 해주었다.

터키 문학은 몇 권 접해보지 않아서 당연히 이 책이 이 작가와의 첫 만남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작가 이름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작가 소개를 읽고서야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의 저자라는 걸 알았다.

한창 도서관을 드나들 때는 누가 쓴 책인지 신경 쓰지 않고 손 가는대로 빌려다가 읽었는데, 그때 이미 이 터키 문학의 거장을 만났던 거다. <튤슈...>는 그 내용보다는 예쁜 그림이 담겨 있는 책이라는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아지즈 네신은 터키 풍자 문학의 거장이자, 터키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다. 이 책은 작가가 부르사로 유배 당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이란 이름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유배 시절 회고록,쯤이 더 어울리는 표현 같다.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같고,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그 당시에는 참기 힘든 고통이었겠지만!)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솔직히 말해서, 재미있었다.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게 미안하다, 이 책은. 말했다시피 작가의 유배 시절 이야긴데, 그런 고통을 '푸하하' 웃으면서 읽는다는 게 말이다.(정말 중간중간 '푸하하' 터지는 웃음때문에, 유배 중인 주인공에게 미안한 마음도...) 하지만 정말 재밌는 걸 어쩌리. 솔직히 그간 접했던 (몇 권 되지 않는) 터키 소설들이 다 심오하고 무거웠던지라, 이 책도 다소 무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띠지에 실려 있는 '포복절도할 웃음과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로 가득 찬 성대한 만찬'이라는 오르한 파묵의 추천평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른 귀빈을 맞이하기 위한 환영 인파 속으로 뛰쳐들어가 아주 거창하게 '부르사 입성식'을 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이 도시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유배 생활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굶주림, 사람들의 외면, 자존심과의 싸움, 어이없는 가짜 '진실'... 지금이야 작가 본인도 웃으며 회고할 수 있고, 이렇게 유쾌한 필체로 풀어내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읽을 수 있지만, 정말 그 당시 본인의 심정은 피가 마르고 또 마르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왜인지 잘 모르겠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체포되어(공식적인 이유는 '불온 문서 출판'이었지만)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던 그 시간들을 인생의 오점이나 상처로 기억하지 않고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킨 이 글을 보며, 왜 아지즈 네신이 터키 국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작가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아지즈 네신의 작품들을 만나보고 싶다.

 

정말 정말 유쾌한 책이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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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양장) 겨레 전통 도감 1
윤혜신 글, 김근희.이담 그림, 토박이 기획 / 보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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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국어사전을 들여다본다.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실력 못지 않게 우리말 실력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국어사전 일독에 나선 것. 모르는 단어 찾을 때나 뒤적여봤지 마음 먹고 사전을 읽는 건 처음인데, 그 사전의 세계가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한 번 빠지면 시선을 떼고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사전 속에는 단순히 '글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있고, 경제가 있고, 철학이 있고, 예술이 있고, 종교가 있고, 스포츠가 있고, 그리고 문화가 있다. 수많은 분야의 용어들이 풀이 되어 있다보니, 국어 사전을 통해 뜻하지 않게 우리의 전통 문화를 종종 접하게 된다.

 

국어 사전 속의 한 단어로 만나는 우리 전통 문화는 익숙한 것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또는 '이런 것도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는 이 책의 제목인 '살림살이'에 관한 단어들도 꽤 된다. 몇 주 전에 KBS 1TV '우리말 겨루기'에서 1단계 다섯째 판 문제로 '살강'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2년 동안 우리말 공부를 했다던 여성 출연자가 '그릇 따위를 얹어 놓기 위하여 부엌의 벽 중턱에 드린 선반'이라는 정확한 뜻을 맞췄다. 살강, 어렸을 때 할머니가 발음하시던 그 단어를 들어본 기억이 내 머릿속에서 살포시 떠올랐다. 하지만 대충의 모양새만 짐작이 갈 뿐, 정확히 무엇이다라고 그려내지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 '살강'을 만났다. 다른 어떤 살림살이보다 더 반가웠던 것은 앞에서 말한 프로그램을 통해 접했던 것이기 때문인지도.(나는 그 프로그램의 열혈 시청자다) '살강' 외에도, 사전에서 봤던 이름을 가졌거나, 민속촌에서 옛집 안에 놓여져 있는 것을 봤던 살림살이들이 이 책 속에 대거 등장한다.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의 살림살이를 김근희 님 이담 님의 세밀화와 윤혜신 님의 글로 살려낸 것이다. 특히나 이제는 '전통 문화'라는 것과 너무나 멀어져 버린 듯한 우리 아이들의 시각에 맞추어 씌여져 있기 때문에, 글이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마치 전통 박물관에서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듯한 기분이다. 이 책을 통해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보기 힘든, 그렇지만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혼이 담긴 전통 살림살이들을 만나 볼 수 있어 무척 기뻤다.

 

사전을 보며 자주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이 어째서 사전 속에서 잠만 자고 있을까. 이런 단어는 옛날에 많이 썼을텐데 왜 지금은 발음하기조차 낯설게 되어 버렸을까. 나는 그저 그 단어가 점점 잊혀져감에 안타까워했지만, 생각해보니, 잊혀지고 있는 건 비단 그 단어, 그 글자뿐 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전통 문화가 서서히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져 가면서, 그와 함께 그것들의 이름, 그것들과 관계된 단어들도 함께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미 우리 전통 살림살이를 대체할 만한 더욱 과학적이거나 더욱 실용적이거나 더욱 심미안적인 살림살이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전통 살림살이를 부활 시키자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겠지만, 이렇게 책을 통해서라도 우리 전통을 자주 접하고, 잊지 않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서재에 전통 문화 박물관 하나 들여놓은 기분이다. 참 뿌듯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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