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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작고하신 장영희 교수님의 수필집이다.
제목에서부터 선생님의 '기적' 같은, 하지만 본인에게는 '일상'적이었을 그 삶이 그려진다.
영문학 박사이지만 수필가로도 유명한 장영희 선생님의 책을, 사실 나는 한 권밖에 읽어보지 않았다.
그 인연은 바로 『내 생애 단 한번』이다. 그리고 그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필집 중 한 권이 되었다.
이 책은 『내 생애 단 한번』 이후 9년 만에 나온 에세이집이다.
출간 소식을 듣고 무척 좋아했으나, 결국 책 출간을 앞두고 저자가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아 무척 가슴이 아팠다.
책을 받아들고 한동안은 가슴이 아려서 당장 펼쳐볼 수 없었다.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There's nothing that cannot happen today).'(59쪽)
암 판정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본(당시 기고한 글에는 암이 아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의 명언이었다.
우리의 삶은 누구도 추측할 수 없고, 또 그렇기에 수많은 가능성이 숨어 있다. 별안간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내 앞에 나타날 그 '운명'이 좋은 것일지 나쁜 것일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저자의 말대로 떠나갔던 애인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지나가다가 위에서 떨어지는 벽돌에 맞을 수도 있고, 눈앞에서 건물 한 채가 삽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바로 '오늘'이라는, 짧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그 시간에 말이다. 그리고 저자 앞에는 '암'이라는 존재가 나타났다.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래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늘 반반의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61쪽)
책은 시종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이야기들로 나에게 힘을 주려 하지만,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저자를 향한 그리움 때문인지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겨우 서평을 써야겠다 마음먹고 컴퓨터 앞에 앉은 것도 그 때문이다. 너무 처져버린 내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저자도, 독자가 이 책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길 바랐을 것이다, 이런 슬픔과 가슴 아림이 아니라.
이 찬란한 계절은 오랜만에 한번 하늘을 쳐다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 마음속 어린아이가 자유롭게 "와!"하고 감탄하도록 내버려 두기 좋은 때 같다.
"와, 어디선가 빵! 하고 꽃 폭죽이 터졌네. 어디를 보나 꽃 천지네! 하늘은 너무너무 파랗고, 강물은 반짝반짝, 꼬불꼬불, 되게 예쁘네. 와! 세상은 참 아름답구나!"(74쪽)
와, 오늘 하늘은 정말정말 새파랗네! 마당의 꽃 향기도 되게 진하다! 물 뿌린 마당에서 흙 냄새가 섞여 올라와서 엄청 상쾌해! 와와와!!!
나도 오늘은 화창한 날씨에 신난 내 안의 어린아이가 방방 뛰도록 내버려둔다. 이 세상은, 와와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기에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그래서 오늘도 신나게 와와와!!!
그래도 어딘가 허전한 마음은, 여전히 지워질 줄 모르는 그리움은, 끝없이 찾아드는 허전함은 저자가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 쓴 편지를 보며 위안을 받는다. 우리 모두는 '내일'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내일'이 하룻밤을 자고 나서일지, 얼마나 많은 밤을 자고 나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내일' 다시 만나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헤어짐의 아쉬움도 견딜 수 있다.
그 후 LA에 들렀다 한국에 돌아갈 때마다 우찬이는 내년에 보자는 말 대신에 "이모, 내일 봐"라고 말하곤 합니다. '내일'과 같이 짧은 시간 후에 다시 볼 수 있다면 헤어지는 마음이 덜 아쉽겠지요.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겁속에서 하루는, 1년은, 아니 한 사람의 생애는 너무나 짧은데, 그럼에도 우리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내일 봐요"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인지요.(51~52쪽)
장영희 선생님, 선생님이 이 세상을 떠나며 우리에게 남겨주신 믿음을 생각하겠습니다. 선생님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 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를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 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52쪽) 사랑하고 이해하고 믿으며, 우리들의 남은 생을 진실되게, 결코 헛되지 않게 보내겠습니다.
선생님, 내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