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지펴야겠다
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아빠는 마음이 가난하여 평생 가난하였다

눈이 맑은 아이들아

너희는 마음이 부자니 부자다

엄마도 마음이 따뜻하니 부자다

넷 중에 셋이 부자니

우린 부자다

('반올림 - 수림이에게' 전문)


 

찬바람 매서운 겨울날 군불 뜨끈히 땐 방에 들어선 것 같은 따뜻한 시집을 만났다.

'불을 지펴야겠다'는 제목에서부터 올라온 온기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식지않고 내 마음을 따뜻이 덮혀주었다.

 

'반올림'에서 '마음이 가난하'다고 말한 것은 시인 자신을 두고 한 말일까?

하지만 시집을 읽어보면 시인에 대한 느낌이 그 반대로 다가온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모두 애정어린 시선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거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살며시 엿본 듯한 기분이다.

이런 일기 적을 수 있다면 늘 똑같아 보이는 하루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다채로운 시간들이었나 새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젊은 코미디언 이야기가 담긴 시 한 편이 어쩐지 오래 가슴을 울린다.

시를 읽다가 잊고 있던 그 얼굴이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해졌더랬다.

아 맞다, 그때 그렇게 세상을 떠난 그 사람이 있었지...

누군가에게는 평생 쏟을 눈물의 거의 전부를 쏟아내야 했을, 크나큰 슬픔을 가져다 준 이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잠깐의 애석함으로 지나갔던 일. 웃음을 보내기 위해 가던 길 위에서 사고를 당하고 끝내 세상을 떠난 그녀의 이야기를 보며, 나는 앞으로도 가끔씩 그녀를 떠올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웃음을 주려다 세상 떠난 누군가 있었다고.

 

시집 속에 풀어놓은 작가의 '사소한 기억' 속을 거닐며, 내 잊혀진 기억들도 떠올려보고, 이리저리 타인의 삶을 상상도 해보고 포근한 시간이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아궁이에 나뭇가지 밀어 넣으며 불을 때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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