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한 산악인이 세상을 떠난 여동생을 기리기 위해 K2 등정에 올랐다 조난 당한다. 단백질바 하나와 눈을 녹인 물로 겨우 영양을 공급하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 버티는 그를 구조해 돌봐 준 코르페 마을 사람들. 한 달 여를 그곳에서 생활한 그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바깥의 얼음판 같은 돌바닥에 앉아 공부를 하는 아이들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리라 다짐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굳은 약속을 한 뒤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 산악인이 바로 이 책의 저자 그레그 모텐슨이다. 학교를 짓는 데 드는 돈 1만 2천 달러 같은 건 수중에 있지도 않았지만, 그 약속을 지키고자 그레그 모텐슨은 돈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온갖 노력을 다 한다. 이 남자가 돈도 없이 어떻게 히말라야 산골마을에 학교를 지어주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의 힘으로도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지켜보며 감동에 젖어들었다. 그레그 모텐슨은 성금을 부탁하는 수백 통의 편지를 타자기로 두들기고, 돈을 아끼기 위해 자신은 집도 없이 차에서 생활하며 식비도 최소한으로 줄인다.(이 생활에 지친 여자친구가 이별을 고하기도.)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고 겨우 한 통의 답장을 받았으니 좌절할 법도 한데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 앞에 나타난 장 회르니 박사.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장 회르니 박사는 이것저것 크게 묻고 따지지도 않고 선뜻 학교 건설 비용 전부를 기부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후 재단을 설립해 히말라야 산골마을 곳곳에 학교 등을 짓기에 이르른다.

 

이 책 속에서 누군가가 말하기를, 우리는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지만, 그레그 모텐슨은 그걸 실천에 옮겼다고 했다. 나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그걸 실천에 옮겨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귀찮아서일 수도, 내가 가진 것을 내어줘야 한다는 아까움일 수도, 혹은 나 한 사람이 도와준다고 뭐 크게 달라지겠어?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분명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자기 희생이 전제되지 않은 도움이 어디있을까. 그런 '희생'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내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음을 축복으로 여기고 실천에 나선다면, 어딘가에서 나로 인해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이 세상 살면서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웃음을 줄 수 있는 누군가 있다면, 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는 누군가 있다면, 그것도 조금쯤은 보람된 삶이 아닐까?

 

배움의 기회를 잡아 완전히 세로운 세상을 살게 된 오지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새 세상을 열어 줄 수 있는 것은 그레그 모텐슨이라는 한 '특별한' 사람 뿐일까? 결코 아니다. 그레그 모텐슨이 결코 특별한 사람도 아니었거니와, 그레그 모텐슨이었기 때문에 이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도 다 그처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 능력을 평생 꺼내지 않고 조용히 일신의 평안을 위해 살 것인가, 내 능력껏 내가 가진 행복을 남들과 나누며 살 것인가. 나도 후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겨우 나 한 사람의 힘'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힘껏 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시간이었다. 물론 생각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지만.

 

아들에게 공부를 시키기 위해 염소 오줌통 여섯 개에 바람을 불어 넣어 아들에게 묶어준 뒤 이제 겨우 얼음이 녹은 강물에 흘려 보내고 눈물로 작별 인사를 한 아버지. 염소 오줌통에 몸을 맡기고 얼음장 같은 물에 둥둥 떠내려 가다가 선량한 사람들을 만나 여러 도움의 손길을 거쳐 겨우 학교에 발을 들이게 된 아이. 배움을 향한 그들의 목숨 건 열정이 가슴에 오래오래 남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배우고 싶은 모든 이들이 맘껏 배울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그 세상을 위해 내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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