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 (양장) 겨레 전통 도감 1
윤혜신 글, 김근희.이담 그림, 토박이 기획 / 보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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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국어사전을 들여다본다.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실력 못지 않게 우리말 실력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국어사전 일독에 나선 것. 모르는 단어 찾을 때나 뒤적여봤지 마음 먹고 사전을 읽는 건 처음인데, 그 사전의 세계가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한 번 빠지면 시선을 떼고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사전 속에는 단순히 '글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있고, 경제가 있고, 철학이 있고, 예술이 있고, 종교가 있고, 스포츠가 있고, 그리고 문화가 있다. 수많은 분야의 용어들이 풀이 되어 있다보니, 국어 사전을 통해 뜻하지 않게 우리의 전통 문화를 종종 접하게 된다.

 

국어 사전 속의 한 단어로 만나는 우리 전통 문화는 익숙한 것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또는 '이런 것도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는 이 책의 제목인 '살림살이'에 관한 단어들도 꽤 된다. 몇 주 전에 KBS 1TV '우리말 겨루기'에서 1단계 다섯째 판 문제로 '살강'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2년 동안 우리말 공부를 했다던 여성 출연자가 '그릇 따위를 얹어 놓기 위하여 부엌의 벽 중턱에 드린 선반'이라는 정확한 뜻을 맞췄다. 살강, 어렸을 때 할머니가 발음하시던 그 단어를 들어본 기억이 내 머릿속에서 살포시 떠올랐다. 하지만 대충의 모양새만 짐작이 갈 뿐, 정확히 무엇이다라고 그려내지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 '살강'을 만났다. 다른 어떤 살림살이보다 더 반가웠던 것은 앞에서 말한 프로그램을 통해 접했던 것이기 때문인지도.(나는 그 프로그램의 열혈 시청자다) '살강' 외에도, 사전에서 봤던 이름을 가졌거나, 민속촌에서 옛집 안에 놓여져 있는 것을 봤던 살림살이들이 이 책 속에 대거 등장한다.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의 살림살이를 김근희 님 이담 님의 세밀화와 윤혜신 님의 글로 살려낸 것이다. 특히나 이제는 '전통 문화'라는 것과 너무나 멀어져 버린 듯한 우리 아이들의 시각에 맞추어 씌여져 있기 때문에, 글이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마치 전통 박물관에서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듯한 기분이다. 이 책을 통해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보기 힘든, 그렇지만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혼이 담긴 전통 살림살이들을 만나 볼 수 있어 무척 기뻤다.

 

사전을 보며 자주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이 어째서 사전 속에서 잠만 자고 있을까. 이런 단어는 옛날에 많이 썼을텐데 왜 지금은 발음하기조차 낯설게 되어 버렸을까. 나는 그저 그 단어가 점점 잊혀져감에 안타까워했지만, 생각해보니, 잊혀지고 있는 건 비단 그 단어, 그 글자뿐 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전통 문화가 서서히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져 가면서, 그와 함께 그것들의 이름, 그것들과 관계된 단어들도 함께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미 우리 전통 살림살이를 대체할 만한 더욱 과학적이거나 더욱 실용적이거나 더욱 심미안적인 살림살이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전통 살림살이를 부활 시키자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겠지만, 이렇게 책을 통해서라도 우리 전통을 자주 접하고, 잊지 않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서재에 전통 문화 박물관 하나 들여놓은 기분이다. 참 뿌듯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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