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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미술관 -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별 기대 없이 펼쳐들었다가, 의외의 월척을 낚은 기쁨에 주변에 마구 추천해주고 싶은 책!
(이 책 앞에 읽은 책은, 잔뜩 기대하고 읽었다가 많이 실망했는데, 이 책으로 보상 받은 기분이다.)
표지의 그림과 '하하 미술관'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유머로 마음을 치유해주는 책인가, 생각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라는 부제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그냥 지나갔으면 섭섭할 뻔 했다.
앙드레김 같은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의상학과에 두 번이나 낙방하고 경영학과에 진학해 복수전공으로 영화를 공부한 남자. 시크(chic)한 모델이 될 날을 꿈꾸며 회사에 들어갔다가, 시크(chic)는 커녕 시크(sick)해진 건강과 감성을 되찾기 위해 퇴사하고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난 남자. 1년 동안 빙하를 세 번 타고, 번지점프를 열두 번 하고(!), 발레학교에 다닌 남자. 이 남자, 김홍기가 이 책의 저자이다. 이런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저자 이력을 보면, 읽기도 전부터 책이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작가의 말'은, 이 책을 내게된 이유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책의 제목은 '하하 미술관'입니다. 우울한 소식만 가득한 세상, 그림으로 여러분을 환하게 웃기고 싶었습니다. ... 상처 받은 마음을 그림을 통해 성형하고 싶다면 딱 맞는 책을 고르신 겁니다.'
이미 살짝 넘겨본 그림들에 상당히 매료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 그림들을 만나게 된다는 설렘은 가득했으나,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래준다는 말에는, 난 별로 위로받을 만한 상처가 없는데? 그냥 그림 감상이나 하지 뭐,라고 생각했다.
웃으며, 감탄하며, 심각해지며, 그렇게 책을 감상하다가,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위로 받을 상처가 없다더니, 내 마음 나도 몰랐던가 보다...
마음 깊숙한 곳에 곪아있던 고름이 터져 눈물로 나오는지, 내 안의 아픈 감정을 잔뜩 머금은 눈물이, 주르륵.
'상처란 그런 것입니다. 치유되지 못할 만큼의 무게를 가진 상처는 세상에 없습니다. 언제든 내 의지로 들어 옮겨 놓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상처의 숙명이지요.'(69쪽)
이 책에는 그런 힘이 있다.
웃기거나, 멋지거나, 소름돋거나, 슬프거나, 예쁘거나 엽기적인 그림, 또는 조각, 또는 사진 들과
'경영학도'가 아니라 '문학도' 아닌가, 의심하게 만드는 저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글이 만나,
마음 깊숙한 곳까지 그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뻗어온다.
이 책을 통해, '하하' 웃을 수 있었고, 내 인생의 아름다운 시절을 돌아볼 수 있었으며, 거울 앞 내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고, 앞으로 험한 세상 헤쳐나갈 힘과 용기를 얻었다.
저자는 인생의 두 번째 책인 이 책을 쓰며, '누군가에게 나를 태워 몸을 덥혀 줄 그런 글을 써야 할 텐데'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썼다. 다른 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 한 독자는 그의 글로 영혼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맛보았음을 전해주고 싶다. '이 책이 잘 팔려서 인세로 장가가고 싶'다는, 농담인 듯 진담인 듯한 저자의 말에, 나도 함께 이 책이 잘 팔리기를(!) 바라본다. 책을 읽고나서 든 '딴생각'을 하나 보태자면, 책 표지와 제목이 조금 더 감성적인 에세이 느낌을 주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예를 들어, 소제목인 '삶을 위한 일시 정지'와 그 안의 작품들이 제목과 표지였더라면, 이 책을 만나기 전에 했던 그 망설임의 과정을 생략했을지도 모르겠다. 뭐, 지극히 주관적인 기호 문제이겠지만.(쓰고보니 주제넘은 참견 같아서...흠흠...)
마지막으로,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하여, 외로움에 몸부림칠 솔로들에게 바치는 그림 하나.
'이 죽일 놈의 연애...커플천국을 걷는 싱글들에게'에서...
주정아, <개도 남자다>.
'인간 커플의 닭살 돋는 애정 행각에 질려 산책을 거부하는 개의 표정' 압권!
이 앞 쪽에 실린 <스쿠터 보이>도 재밌는데(완전 푸하하, 터지는 웃음), 사진으로 잘 안 찍혀서 생략.
외롭고 슬프고 지친 영혼들, 이 책보고 위로 받으세요~!
'희망의 힘은 강력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내 육체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런 일들만 계속해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를 기억하는 육체보다는 삶의 근거와 용기, 긍정의 힘을 기억하는 육체를 갖고 싶습니다.'(178쪽)
'삶은 추억이란 열매를 섭취하고 새로운 기억을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추스르는 과정입니다. 행복한 기억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격려하지만, 잊고 싶은 기억은 반복적으로 마음속 깊이 투과되어 상처를 냅니다. 상처(Scar)와 별(Star)은 단 하나의 철자로 인해 차이가 드러납니다. 상처가 숙성되어 향기가 날 때, 저 하늘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비추는 별이 되는 것이지요.'(65쪽)
'여러분 모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수만큼 행복하시길 빕니다.'(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