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 삶의 벼랑 끝에서 침묵을 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
피코 아이어 지음, 최지숙 옮김 / 서사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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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매일 숨 가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언제였나요? 개인적으론 10~30대초까지 치열하게 살다가 몸과 마음이 지쳐 공황장애와 마주할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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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예상치 못한 시련, 의도치 않게 짊어져야하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 가족과 지인들의 투병, 그리고 조직과 사회가 준 예기치 못한 배신감과 상실감까지. 세상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우리는 그 속에서 문득 멈춰 서서 길을 잃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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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책은 바로 그런 순간, 우리에게 쉬어갈 수 있는 의자를 조용히 내어주는 따뜻한 신작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입니다. 세계적인 사상가이자 현대판 데이비드 소로우라고 불리는 저자 피코 아이어는 벼랑 끝에 선 현대인들에게 대책 없는 낙관이 아닌, 묵직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이 어우러진 깊은 인문학적 위로를 건넵니다.




책 소개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는 심리치유 에세이지자 인문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말장난이나 뻔한 힐링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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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산불로 집을 잃고 전 재산을 상실했을 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외로움이 사묻힌 어머니를 걱정해야 할때, 딸이 암판정을 받을 때와 같이 가혹한 현실과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상실과 불안이 휘몰아치던 순간, 그는 캘리포이나 빅서에 위치한 베니딕도회 뉴 카말돌리 수도원에서 찾아가 침묵 속에서 사유의 시간을 보냅니다.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삶을 살아가는 진리를 깨닫는 여정을 기록했습니다.


전작 《여행하지 않을 자유》에서 '멈춤'의 가치를 논했던 그는, 이번 신작을 통해 한 단계 더 깊은 내면의 치유 단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인생의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아픈 질문인 '어떻게 상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한 명밀한 해답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저자에 대하여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사상가인 그는 1957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대 수석 졸업이라는 화려한 학업 과정을 거쳐 하버드대에서 석사 및 인문학 명예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글을 통해 세상과 깊이 호흡하는 전업 작가입니다. 글로벌리즘과 쿠바 혁명부터 달라이 라마와 이슬람 신비주의까지, 그가 탐구한 다채로운 주제의 책들은 23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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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매체인 〈타임〉, 〈뉴욕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를 포함한 250여 개 미디어에 매년 100여 편의 칼럼을 발표해 왔으며, 그의 통찰이 담긴 네 차례의 TED 강연은 1,000만 뷰를 돌파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국내 독자에게 친숙한 《여행하지 않을 자유》 외에도 《Video Night in Kathmandu》, 《Lady and the Monk》 등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빅서의 베네딕도회 수도원과 일본의 한적한 교외를 거처 삼아, 소음에서 벗어난 침묵의 삶 속에서 지혜를 길어 올리고 있습니다.



핵심 메시지



피코 아이어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도원을 오가며 침묵 속에서 길어 올린 핵심 사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적이고 명밀한 분석과 부드러운 위로가 공존하는 대목입니다.


01. 비었는 때 비로소 채워지는 이치


내면의 소란함을 덜어낸 상태가 이토록 풍요롭게 느껴지다니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이곳으로 차를 몰고 오며 머릿 속으로 되풀이하던 자문자답도, 다음 주까지 맞추야 할 마감 기한도, 일본에 있는 연인에 대한 걱정도 모두 사라졌다. 전부 다, 깨끗이. 이것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분명한 앎이었다. 비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로 채워질 수 있었다. p. 28


저자가 말한 “비어 있을 때, 비로소 주변의 모든 것들로 채워질 수 있었다”는 깨달음은 현대인의 삶과도 깊이 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음에도 마음은 늘 허기져 있고,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자극과 활동을 찾아 헤매곤 해요. 그러나 공허함은 결핍이 아니라 쉼이 필요하다는 신호, 그리고 마음이 숨을 쉬기 위해 열어둔 작은 틈일지도 모릅니다.


외부에서 밀려오는 자극이 많아질수록 마음의 여유는 줄어들고 시야는 좁아져요. 특히 상실과 시련을 겪을 때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더 옹졸해지기 쉽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억지로 채우는 일이 아니라 고요한 침묵 속으로 자신을 이끌어 들이는 일입니다. 침묵은 우리를 자신에게로 데려다 놓고, 그동안 외면해온 내면의 상태와 마주하게 해줘요.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긴장으로 굳어 있는 몸을 이완해야 합니다. 몸이 풀리는 순간 마음도 비워질 준비를 하게 되죠. 저자 역시 집이 불타는 상실과 절망 속에서 수도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들과 마주하며 자신을 비워내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소박한 공간에 깃든 정적 속에 앉아 있었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고요를 온몸으로 느꼈다고 표현합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조차 그 정적 속에서 더 생생하게 다가왔고, 내면의 소란이 덜어진 상태가 오히려 풍요롭게 느껴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채울 수 없다”는 말처럼, 마음의 영역은 채우려 애쓴다고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워낼 때 비로소 채워질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에 자연의 경이로움, 고요, 치유,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이 들어와요. 앞서 소개된 문구가 말하는 것도 바로 그 이치입니다. 소란과 상처로 가득 찬 마음을 비워낼 때, 우리는 다시 풍요로워지고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어요.



02. 피정이란 도피가 아닌 방향의 전환이자 마음을 가다듬는 일


고통을 치유할 방도를 찾기 위해 50년을 명상해 왔다 해도, 환자를 고치는 의사가 정작 자신의 마음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피정이란, 도피라기보다 방향의 전환이자 마음을 가다듬는 일에 가까움을 나는 점차 깨닫는다. 세상을 자세히 그리고 그 모든 면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때때로 나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면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수도원을 나설 때마다 의식적으로라도 세상의 상처받은 곳이나 절망적인 현장으로 발길을 옮기려 노력한다. 텔레비전에서 동물이 죽는 장면을 볼 때면 괴롭다고 말했던 달라이 라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어차피 일어날 죽음이라면, 차라리 그 장면을 지켜봄으로써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과 함께. p. 83


피정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피난과 닮은 울림을 가집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숨기는 행위처럼 들리기 때문이예요. 하지만 피정의 본래 의미는 훨씬 더 섬세합니다. 피정은 “중요한 결정이나 삶의 쇄신을 위해 조용한 곳으로 물러나 기도와 묵상에 집중하는 수련”입니다. 즉,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세우기 위해 잠시 방향을 틀어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상실을 겪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고, 딸의 병마와 마주하며,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 속에서 그는 수도원으로 향합니다. 피정은 그에게 생존을 위한 피신이자, 동시에 자신을 다시 붙잡기 위한 마지막 시도이기도 합니다. 수도원에서의 시간은 은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세상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 고요 속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들, 그동안 소란에 가려져 있던 세계의 경이로움이 그의 마음을 다시 열어젖힙니다. 그는 피정 속에서 오히려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상처와 절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로 이어집니다. 지나치게 긍정만을 보려는 자신의 습관을 경계하며, 그는 의식적으로 세상의 아픈 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듯, 고통스러운 장면이라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배움을 얻습니다. 결국 피정은 상실로 상처받은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살피며, 다시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됩니다.



03. 고요한 침묵이 주는 지혜


방 안 홀로 있는 시간, 나는 곁에 있을 때보다 내가 아끼는 이들과 더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고요는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이유를 가장 명민한 방식으로 일깨워준다. 고요 속에 있으면 이 곳의 이름 모를 낯선 이들이 마치 뿌리가 맞닿은 친구처럼 느껴진다. 길에서 마주쳐도 우리는 거의 말을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나누는 것은 말하지 않는 그 모든 것 속에 훨씬 더 많이 담겨 있다. p. 29-30


침묵의 의미가 전해지는 대목. 혼자 있는 방 안에서, 저자는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는 순간과 마주합니다. 말이 없기에 오히려 관계의 본질이 선명해지고, 침묵 속에서 서로가 나누는 미세한 감정의 결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고요가 나를 감싸안았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자동차 소음 너무로 파도가 한숨 쉬듯 밀려왔다 물러가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길 아래쪽에서는 성찬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두 시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러고 나서 다시 굽이치는 산길을 세 시간 반 동안 달려 내려왔다. 이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 p.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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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도로의 야간 반사 장치들이 고양이 눈처럼 깜빡거린다. 어둠 속에서 운전자들을 안내하는 표지 기둥일 것이다. 나는 가장 먼 곳에 있는 벤치까지 걸어가 가늘게 이어진 고속도로의 불빛 그물망 위로 별드이 비처럼 쏟아지는 장관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코요테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곳에 온 유일한 이유는, 결국 나 자신을 내려놓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p. 151-152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고요는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저자를 감싸안습니다. 파도는 한숨처럼 밀려왔다가 물러가고, 종소리는 산 아래에서 은은하게 울립니다. 그는 두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을 뿐이지만, 그 시간은 자기 자신을 다시 정렬하는 의식처럼 작동합니다. 또한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그는 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고요 속에서 자신을 비워냈기에 다시 채울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죠. 밤이 내려앉은 길에서, 고속도로의 불빛은 고양이 눈처럼 반짝이고, 별들은 그 위로 비처럼 쏟아집니다. 멀리서 코요테의 울음이 들려오는 순간, 그는 깨닫습니다. 수도원에 온 이유는 결국 ‘자신을 내려놓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말이죠.


침묵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시간을 선사합니다. 직면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용히 설득하기도 하죠. 침묵은 말이 없을 때 관계는 더 깊어지고 선명해지며 자연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비로소 내려놓게 하죠. 침묵은 우리가 힘을 빼고 유유자적 삶의 물류를 탈 수 있는 지혜를 선사합니다.



인상깊었던 점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깊은 상실감 속에서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20대의 나는 성공에 대한 집착 끝에 번아웃과 공황장애를 마주하며 결국 침묵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엄마도 나도, 불행을 안겨준 세상과 사회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삶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고, 그 불행이 너무 커서 더 살아낼 자신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침묵은 예상 밖의 선물을 건넸습니다. 세상과 사회로부터 상처받아 뾰족하게 날선 마음을 서서히 진정시키고,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을 이완시켜주었어요. 마음이 가라앉고 몸이 풀리자, 엄마도 나도 각자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현실을 지혜롭게 견뎌낼 힘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침묵 덕분에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어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결국 모든 것이 조금씩 괜찮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침묵이 외로움의 극치도 아니고, 자신을 고립시키는 암흑의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좌절과 상실감에 매몰되어 불행만 바라보느라 자연스럽고 순리에 맞게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침묵은 다시 보게 만듭니다. 불행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경이로운 자연을 마주하며,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는 힘. 침묵은 그 조용한 방식으로 우리를 다시 삶으로 이끌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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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책
로스 게이 지음, 김목인 옮김 / 필로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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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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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일상을 뒤흔드는 수많은 사건사고를 접하게 됩니다. 불행의 소식을 들으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만약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닥친 불행이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아찔해집니다. 이런 일들을 뒤로하고 나의 일상을 보면 남들보다 못 누리는 것 같고 남들보다 더 불행한것 같다며 불평불만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바운더리 바깥으로 일어나는 위험요인들을 고려해보면, 내가 누리는, 무탈한 지금에서 충분히 사색하고 소소한데서 기쁨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일상을 면밀히 자세히 들여다보는데서 누리는 기쁨에 관한 책이 있습니다. 미국의 에세이스트이자 시인인 로스 게이의 《기쁨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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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흐름에 따라 유유자적 자유롭게 댄서나 발라리나(발레리노)처럼 춤을 추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표지입니다. 화이트와 블루의 조화를 자랑하는 표지에서 이미 <기쁨>이 전해집니다. 세상의 자유를 온몸으로 즐기는 <기쁨> 말이죠!!



>> 로스 게이 작가에 대하여



요즘엔 문학적 감성을 마음에 담고싶은 마음에 시인이나 에시이스트의 글을 마주하고 그들의 글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마침 미국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로스 게이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는 시와 산문을 비롯하여 음악 작업을 통해서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있는(자료출처 책날개)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시 낭송과 음악의 조화를 이룬 앨범을 발매한 적도 있고, 지역 사회와 함께 과일 재배를 하며 나누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인지하고 여린 인간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 구성 및 내용



이 책은 에세이이며, 일기 형식이지만 일기같지 않은 철학서같은 책입니다. 총 102편에 해다하는 글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목도 작가의 느낌가는대로 정하고 내용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기쁨을 고찰하는 글들이 공통적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 감상평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로스 게이는 이탈리아 움베르티테의 한 카페에서 에소프레소를 두 잔 마신 뒤 성에 있는 숙소로 가는 길에(p. 23), 에세이를 1년간 매일 한 편씩 쓰기로 계획하고 결심합니다. 그의 계획과 결심이 실천으로 옮겨져서, 에세이 한 권이 나왔습니다. 기쁨에 관한 주제로 말이죠. 그는 그 주변의 일상을 기반으로 글을 적어갑니다. 뭔가 평범한듯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일상이 아닌 그가 말이죠.


기쁨을 자극할만한 것들을 누리면서 기쁨을 담지 않습니다. 그는 감성적이며 섬세합니다. 그리고 예술과 문학을 포함하여 정치와 사회경제, 인류애적인 조예도 상당합니다. 그의 글을 들여다보면 평소 대중적으로 접해보지 못했던 문학작품이나 음악 앨범에 대해서 알게 되며, 외면하거나 인지하지 못했던 사회문제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로스 게이는 세상 일에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따뜻해요.


그의 글을 보면 식물과 작물, 혹은 과일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자연 속에서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며 세상을 조화롭게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때로 부조리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일침을 가하기도 합니다. 그럼에서 소소함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해냅니다.


그의 글을 보면서 또 느껴씁니다. <기쁨>을 느끼려면 의식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요. 부정적인 감정엔 본능적으로 쉬이 자극 받으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인지하는데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편안함이라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한때 모닝감사일기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감사일기를 매일매일 쓰는게 그렇게 고충일 수 없더라구요. 왠만한 것들에 감사의 테그를 붙였으나, 매일 새로운 감사를 쥐어 짜내려니 감사하는 마음도 우러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굳이 새로운 "감사거리"가 필요했던 걸까요? 그렇지 않잖아요. 늘 똑같은 패턴의 반복일지라도, 똑같은 패턴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인내도 소소하게 기쁨을 누리게 하는데 한 몫합니다.


그는 여유가 있습니다. 세상을 평화롭게 바라보는 여유 말이죠. 그래서 소소한 기쁨이라도 충족할 줄 알며 연약한 인간을 품을 줄도 압니다. 소소해서 불평불만 많이 했던 태도를 반성합니다. 소소함이 일상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걸, 로스 게이는 알려줍니다.


그는 오해없이 의미를 전달해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그의 글을에 몰입하다보면 tmi 정보가 흐름을 막긴합니다. 유유자적 흘러가는 글을 선호하는 편인데 글의 맥이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이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습니다. 허나, 읽다보니 이 또한 그의 배려라고 여겨지더라구요. 그가 경험하는 모든 일상을 세부적으로 공유하고 싶어하는 마음과 오해없이 뜻을 전달하고 싶어하는 마음, 모두 전달되는 것 같았거든요. 로스 게이는 섬세하고 따뜻하며 배려심이 깊은 시인이자 에세이시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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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수집


p. 42-43 수전 손택은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글쓰기의 속도를 높여주는 기술보다 늦추어 주는 기술이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분명 수전 본인도 해당되었을 '손으로 쓰는 사람'이라는 주제에 관한 논문이었던 것 같다. (중략) 나의 경우에누 딱히 어떤 논문은 없지만, 손으로 써 온 것, 특히 이 짧은 에세이들을 손으로 쓴 것이 놀랍고도 완벽한 기쁨이었다는 걸 일러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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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78-79 가장 최근에 커피를 잔 받침 없이 받아 드는 즐거운 경험을 한 곳은 한 에스프레소 카페였는데, 그곳을 좋아하는 건 그들이 만드는 질 좋은 커피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바리스타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커피를 탐닉하는 동안 내 얼굴을 자세히 관찰한 사람. "잔 받침 없이 맞죠? 여기 있습니다." 한 번 갔을 뿐인데 그는 나의 기호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 사람은 정말 최고다.


p. 106 보편적 he가-마술처럼 그의 책에서 모든 가상의 독자와 저자를 남성으로 바꾸어놓으며-만들어내는 남성 중심적 사고, 남성 지배적 사고 혹은 남성 이외에는 지워거리는 사고를 인정하기보다는 그 언어의 마술적 측면을 인정하잦 실제로 언어가 어떻게 상상을 부추기고, 상상이 어떻게 언어를 부추기는지를, 사실 그건 마술 축에도 안든다-그냥 언어에 뭔가를 강요하기보다는 언어를 떠밀고, 언어와 춤을 추자. 그래서 언어가 대명사들과 젠더들, 잠재적 세계의 다양성을 표현하게 하자. 더 나아가 저자의 사고에 담긴 어려움과 풍성함, 사랑스러움을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도록 그 언어를 활용하자.


p. 128 단순한 관찰은 기쁨이 될 자격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지만, 가끔은 그저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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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5-146 짜증은 항상 짜증난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면 여러분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고, 그래서 내가 짜증에 인격을 부여해 내 몸 안에 살 게 한 것이다. 아마 녀석에게 불을 지피는 건 응답받지 못한 감정, 자제력을 잃은 감정안 것이다. 또 가끔 탈수나 허기, 수면 부족일 것이다. 불쌍한 녀석.


p. 173 내가 무언가에 한눈을 팔다가 찾아낸 기쁨, 여전히 그런 식으로 찾고 있는 기쁨(티셔츠 문구 아이디어:기쁨과의 외도)의 특징 중에는 발견하는 느낌이 있다. 한 사람이 무언가, 아마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혹은 초자연적으로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찾아냈다는 느낌, 드러냈다는 느낌 말이다. 기쁨은 어쩌면 무언가를 가리키는 우주의 거대한 손가락 같은 것일지 모른다. 아니, 기쁘믄 우주의 거대한 손가락이 무언가를 가리킨 뒤, 그 무언가(중략)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오호! 아니면 우아, 저거야!


p. 184 좋은 날이다. 우리가 목격하는 유쾌한 것들이 마치 영적인 낭송처럼 들리고, 적어도 좋은 소설의 제목처럼 들리는 날. 혹시 모르지, 나쁜 소설의 제목일지도.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지금이 졸업 시즌이라 내가 일하는 대학교 캠퍼스에 학사모와 가운 차림으로 분주히 걸어 다니는 이들, 분수와 시계탑, 교정의 숲에서 포즈를 취학 있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학교를 상징하는 색의 튤립이 하늘거리는 곳 옆에도 그들이 있다. 정말 농담이 아니다.


p.224 숲이지만 어딘가 교회 복도 같은 느낌도 드는 포포 숲에서의 기쁨은 열매 찾는 법을 배우는 데에 있다. 열매들은 오밀조밀 모인 형태로, 주로 약간 높은 나무 위에 있다. 그래서 가리키는 행위, 특히 혼자가 아닐 때에는 더더욱, 최소한 작은 축복이라고 할 만한 우리 인간의 능력을 쓰게 만든다. 개가 있는 방향으로 포도를 던지고 가리켰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며칠 뒤 아기에게 보라며 새 한 마리를 가리켰는데 여전히 같은 결과일 때 깨닫게 되는 능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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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32 이 모든 사례가 뚜렷이 알려준다. 별종이라는 건 종종 원기 왕성하거나 열정적이라는 뜻도 된다는 건. 이 두 가지 특징 모두 위축되어 있거나 상처받기 쉬운 상태일 때 우리 안에 창피함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시 한 번 자기 안에 숨에 있는 별종으로서의 모습에 대해 스스로가 느끼는 두려움에 주목하게 한다는 것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그 아이의 끝내주는 문워크를 보았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는데, 그때는 그걸 창피함으로 여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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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영주 지음 / 꿈꾸는인생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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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성취를 좋아하는 성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뭔가 하려고 일을 벌려요. 심하게는 오지랖도 부려서 이도저도 뭐도 안되게 하기도 해요. 그중에 뭐라도 얻어 걸리면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인데요. 하지만 지나치게 '성취'에만 몰입하다보면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면도 있어요. 솔직히 그러면 안되는거잖아요. 세상엔 당연하게 존재하는 건 없거든요. 지루하고 무료해도 무탈하게 하루를 넘기고 그런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 감사한 요즘! 그래서 지금에 마음을 더 머무르게 하는 에세이를 만났습니다! 제목은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입니다.





책표지는 생명력이 넘치는 푸르른 여름의 색감을 띄고 있습니다. 모든 계절을 살아가는 생명은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지만 개인적으론 여름날엔 최선의 게이지를 높이게 됩니다. 덥긴 하지만 활력이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살아 숨쉬는, 살아있는, 생명력이 전해지는 표지는 시원함까지 선사합니다. 매순간 받아들이기 힘들고 인정하기 힘들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 순간 그리고 사람들이 있지만 이또한 다른 관점으로 보면 살아있기에, 존재하기에 마주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불평과 불만, 불안 그로 인한 고통도 많긴 하지만 이 또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때가 있거든요. 좋고 나쁘다는 이분법적 관점이 아닌 조화로움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영주 작가의 에세이에 삶의 조와와 다채로움이 예쁘고 편안한 낱말과 표현으로 담겨져있습니다.



>> 작가 이영주에 대하여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속 낱말 하나하나에 몰입해서 읽다보며 순간과 찰나에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때 짐작합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본 사람인걸까, 하고요. 글을 읽다보면 알게되지만, 책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에서도 명확하게 알게됩니다. 작가가 암을 경험한 사람이라는 걸요. 물론 암은 깔끔하게 제거되었지만 언제 재발할지 모를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최대한 안정된 텐션을 유지하면서 지금을 살아내고 지금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귀하다는 걸 알게됩니다. 당연한 것들이 존재한다고 우리가 인지하까지 견뎌낸 시간을 생각하면 '당연하다'는 표현이 얼마나 고귀한지 깨닫게 됩니다.


>> 구성 및 내용



에세이는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라는 제목으로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금더 디테일하게 해당부에 소제목에 맞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제목드 하나하나 보면 일기의 제목 같아요. 내 자신과 전혀 다른 개인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편안한 쾌감을 주는 것이 에세이의 장점이지요!




>> 감상평


평소에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둔 이론서나 자기계발서를 읽기만 해서 가족과 지인, 아이들과 마주할 때 결론에 도달하고 해결책만 제시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감성적인 낱말과 표현이 가득한 문학이나 에세이를 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에세이를 접할때마다 이질감이 들긴 했습니다. 내가 직접 경험 것도, 내가 직접 깨닫고 느낀바가 아닌, 타인의 경험, 느낌, 생각 그리고 감정이라서 내 것이 아닌듯하거든요. 우겨서 겨우겨우 공감대와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 같아서 예전엔 에세이를 참 힘들게 접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에세이가 주는 편안한 감성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마음이 어름장처럼 딱딱할 땐 에세이를 찾습니다. 차가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걸 알겠거든요.


이영주 작가의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에세이가 그러합니다. 암에 걸려보진 않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삶을 간접적으로 겪으면서 성장했거든요. 첫번째로 아버지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 이후로 가족과 친척들이 하나둘 아프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픈 분들을 자주 간호했습니다. 아픈 순간 마음을 내려놓고 생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은 분들도 많았죠. 거기서 배운건 절망이였어요. 일단 아프면 나아지려는 노력보단 포기였고 포기는 생의 마감을 이어졌거든요. 병으로 인한 무기력과 우울감, 알죠. 몸이 건강해도 마음의 병만 앓아도 생을 마감하고픈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간접 경험은 저를 정신차리게 했습니다. 그래도 살아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된다고 말이죠. 나에게 주어진 삶과 시간이 귀하다고 여기는 순간부터 숨결하나하나가 소중해집니다. 나를 둘러싼 일들도 귀하게 여겨지며 지금에 최대한 몰입하게 되죠. 이영주 작가는 그보더 더 섬세하게 지금 누리는 당연한 것들을 소중하게 바라보고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혜안도 에세이에 담았습니다.


죽음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겐 무섭고 남아 있는 가족들에겐 불행처럼 느껴집니다. 저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대로 느꼈거든요. 허나 발상을 전환해보면 죽음이 있다는 건 삶에 끝이 있다는 것이고, 삶이 유한하다는 건 매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귀한 시간이라 최대한 지금에 몰입하게 하는 마법과도 같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그러니 안고 어루만지렴. 무엇이 소중한지 생각하렴. 서로를 안고 만질 수 있는 마지막 날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더 제가 그리 할 수 있을까요. 문드러져 나를 잃어 간다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지금 당장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p. 96-97


하지만 우린 착각하며 삽니다. 삶은 무한다고 여기며 말이죠. 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 "모든 것이 그대로라 오해"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 존재할 것이라는 오해 속에서 살아갑니다. 영원히 그대로이고 무한히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과 오해 속에서 우린 하루하루를 너무 허투로 쓰거나 세상과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불만 가득한 마음으로 불안정하게 살아갑니다. 언젠가 괜찮아지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가지면서 말이죠. 절망보단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현재와 지금에 내가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그리고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유한한 삶의 순간을 소중하고 의미있게 채워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 건강하게!


죽는 것이 별일이지만 실은 사는 것이 참 별일이다. 온몸이 뼈와 살로 이루어져 그 사이를 피가 흐르고, 손을 움직여 글을 쓰고, 입을 열어 먹고 마시고, 어깨를 으쓱여 기분을 표하고, 엉덩이를 붙여 앉아 기다리다가도 발로 뛰어 다가가고, 마음이라는 것이 온몸을 훑고 다니며 요동치는 것이 별일 아니라 할 수 있나. p. 115


살아가는 것, 돈을 기반으로 하는 성공과 성취에만 초점이 맞춰서는 안되는 겁니다. 작가의 표현대로 살로 이루어진 몸 속에 피가 흐르고 몸을 움직이며 입으로 표현하며 몸 속에서 요동치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그 자체가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뭔가요? 이런 건강한 몸의 매커니즘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살다가 건강이 조금만 나빠지면 위기의식을 느끼잖아요. 게다가 주변 사람은 한결같이 평생 존재할 것이라는 오해 때문에 그들에게 함부러하거나 돈들지 않는 마음내어주기 조차도 망설이잖아요.

​

삶은 유한합니다. 시간도 한정적입니다. 한번 흘러간 시간을 다시 오지 않습니다. 보충되지도 않습니다. 흘러간대로 허비하게 됩니다.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절망하고 있나요. 절망해도 됩니다. 다만 시간이 무한할 것처럼 자신을 방치하며 안됩니다. 그 절망마저도 충분히 버텨내는 자신을 귀하게 여겨주세요. 그리고 다시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

그래서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소중히 들여다봐야하고 관심과 사랑으로 자신을 돌보고 주변도 살펴봐야 합니다.

​

지금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이영주 작가를 통해서 또 배웁니다. 지금에 머물다보면 하찮은 것 같은 내 자신도 참 귀하게 보이고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이 감사하게 느껴지거든요!



>> 문장수집


p. 33 시간이 더 흐르면 그리워하는 시간이 달라지겠지. 아빠와 엄마와 오빠가 있는, 연인과 친구들이 있는 또 다른 시간인 지금을 그리워하겠지. 그리워할 시간이 과거에 있지 않고 실은 현재에 있다. 과거는 모두 현재였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사랑해야지. 후회나 미련 때문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p. 63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깨지고 부서진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부축해 일으키고 앉히고 옮겨 낫게 한다. 부축해 일으키고 앉히고 옮기고 낫게 한 사람이 깨지고 부서지기도 하며, 깨지고 부서진 사람이 부축해 일으키고 앉히고 옮기고 낫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모양은 늘 그런가 보다.

​

p. 69 죽음을 태연히 겪어 내는 마음이 생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그 아름다움이 어떠할지 궁금하다. 머지않은 미래에 나도 그것을 체득하여 알 텐데. 조금 이르게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의 내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부러움이나 시기 없이, 후회도 없이. "예쁘다, 참."


p. 75 나 대신 나를 기억해 나를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너는 그렇지 않다,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변호해 줄 사람. 내가 나를 변호해 내지 못할 때 나를 위해 증언대 위에 올라 나를 증명해줄 사람. 나를 보고 들어 기억하는 사람. 나를 나로부터 지켜줄 사람. 내가 엉뚱한 곳을 향해 무릎 꿇지 않도록, 그 전에 내 팔을 세게 쥐고 나를 돌려 세울 그런 사람 말이다.


p. 91 상실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던 누군가의 말은 틀렸다. 대체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무엇을 배워야 한단 말인가. 상실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그저 상실할 뿐이다.

​

p. 104-105 기척없이 갑작스럽다.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순식간에 삶을 뒤흔든다. 모든 것이 그대로일 것이라 은연히 믿지만, 어제의 생활이 오늘 뒤집어지기도 한다. 삶이 영원히 내 것이라 당연시했던 믿음, 아니 그 오해와 착각이 무너지고서야 깨닫는다. 삶이 어쩌면 내것이 전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잠시만의 흔들림에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p. 127 '나를 혼자이게 하면서 혼자이게 하지 않는 사람' 곁에 있고 싶다. 손끝 정도 닿아 있기만 해도 되는데. 아니, 그랬으면 좋겠는데. 생각나는 이들이 모두 멀리 있어서 슬프다. 가까이에 있는 이들이 생각나지 않아 더 슬프다.

​

p. 130-131 각자의 표정은 각자의 언어다. 조그마한 얼굴에 지나온 모든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신 얼굴 근육의 움직임과 내 얼굴 그것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내가 당신을 위해 나의 언어를 포기하고 당신의 언어를 쓸 수 없듯이, 당신에게 당신의 표정을 지워 버리고 내 표정을 얹으라 할 수 없다. 그러니 품을 열어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고 당신을 아는 일에 성실히 공을 들일 수 밖에.

​

​p. 149 이사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중략) 삶의 부피를 늘리지 않으려고 주의한다고 하지만 한자리에 붙박여 있는 동안 생활은 고스란히 쌓인다. 필요한 것들, 필요하지 않지만 있어야 하는(?) 것들, 필요의 여부와 상관없이 어쩌다 보니 있는 것들, 거기에다 있는지도 몰랐다는데 있었던 것들까지. 나와 함께 새로운 집으로 가야 하는 것들을 추려 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처분해야 한다.

​

p. 164 완벽한 계획과 영원히 지속되는 통제는 불가하다. 변화 무쌍한 아이의 지금을 사랑하는 방법은 내가 더 유연해지는 것. '그건 너무 어려워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같은 말은 내가 하기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엄마인 내가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아이가 유연한 사랑을 나에게 요구하니 나는 책임을 가지고 응해야겠지. 그것이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이니까.


p. 199 몸으로 삶을 겪어 낸 사람들의 다정함 속에는 아픔을 지나며 얻어 낸 지혜가 있다. 그거시 절대적인 지식이 될 수는 없겠으나 경우에 맞게 적용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은 곳의 몸을 이롭게 하려면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으며, 몸은 생각보다 더 정성스럽게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서 배운다.

​

p. 211 불안을 느끼는 마음만큼 불안하지 않기를 바라는 존재가 있을까. 불안한 주체는 불안하지 않으려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안은 땅을 뒤흔드는 지진처럼 힘이 세고 어지간해서는 그것을 버텨 내기가 어렵다.

​

p. 213-214 짙어지는 불안의 농도를 옅게 하는 방법은 역시 적당한 일상을 성실하게 사는 것이다. 불안이 치밀어 오르면 팔꿈치로 슬쩍 밀어 둔다. 자기를 보라며 몸부림치면 곁눈질로 살핀 후 모르는 척 한다. 대개는 있지도 않을 일, 거의가 지나간 일들이 불러일으키는 거짓 불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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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 두 자연 생활자의 교환 편지
김미리.귀찮 지음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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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제가 사회초년 생일때 체계가 잘 잡힌 관공서나 조직이

저에게 너무나 잘 맞을 것이라 착각하며 시간을 보낸 적 있습니다.


그 착각의 근원은 안정적인 월급이 나온다는 장점 때문이였던 것 같습니다.


허나, 10여년 조직 생활을 하면서 싸움닭처럼 싸우고

지지고 볶으면서 깨달았아요.

조직 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요.


분명히 일을 쳐내는 분별력과 순발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 또한 착각이였습니다. 타협 따위 없는, 그냥 불도저처럼 밀어 붙여대는 성격에 제 밑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힘들어 했습니다.


위 아래로 갈등 상황에 몰리니,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어린) 저로선 견딜 힘이 점차 없어지더라구요. 

설상가상으로 공황장애까지 엄습했습니다.


공황장애로 인한 무기력과 우울증 덕분에(?)

합리적으로 치열했던 일과 이별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내 자신에게 시간을 쏟아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고 이왕이며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살고픈 욕구가 꿈틀거렸습니다.


"하고 싶은 것에 더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 쓰면서 살고 싶다"라는 책 뒷면의 글귀가 시선을 사로잡는 신간 에세이 를 읽고선 14년 전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합리화할 수 있었습니다.





초록초록 진한 청록의 색감에서 안정감이 전해지는 책표지!

​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라는 제목만 봐도 자연친화적이고, 자연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 것이라는 짐작에 이 책에 마음이 닿은 건 사실입니다.




앞서 서문에 언급했던 마음에 닿은 글귀

​

"하고 싶은 것에 더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을 쓰면서 살고 싶다"

​

지금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너무나 꿈꾸는 삶일 것입니다.

​

이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포기해야할 것들이 많죠.

그중에서 돈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죠.

​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

그래서 자기답게 살고 싶어서 안정적인 직장과 월급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고

적성이 맞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결론 지을 수 있습니다.

​

이런 이유로 누가 옳은 삶을 산다고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

저는 개인적 자유를 누리는게 적성에 맞기는 합디만 자유롭게 개인역량을 부리면서 살아가는 배포가 큰 사람은 아니라는 걸 요즘 실감하고 있습니다.

​

​

그저, 자유를 선택했으니

누릴 수 없는건 감수하고

산다는게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자연적인 색감의 책표지와 어울리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담은 책갈피도 눈에 들어옵니다.


책 제목과 같이 각 계절에 다른 운치와 분위기를 쓴 내용이 책갈피에 담겨져 있어요.



>> 작가 김미리 x 귀찮에 대하여



이 책은 공동집필된 책이예요!

​

<아무튼, 집>과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를 집필한 김미리 작가와, <귀찮지만 매일 씁니다>와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음>을 쓰고 그린 귀찮(김윤수) 이 공동으로 써내려간 에세이입니다.

​

김미리 작가와 귀찮 작가 각자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만큼은 자유로운 시골살이를 자처한 분들입니다. 진짜 말그대로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공통점이 있는 듯하지만 뭔가 살짝 다른 성향을 지닌 작가분들이예요.



>> 책 내용과 구성​




​책의 구성은 아주 간단합니다.

책 제목대로 계절을 담았습니다.

​

김미리 작가는 시골에 있는 폐가를 덜컥 사들여 고친 후 시골과 도시를 오고가며 컨텐츠 제작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귀찮 작가 또한 퇴사 후 시골로 내려와 시골생활을 누리면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현대의 속도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시골생활을 자처한 공통점이 있는 두 작가는

편지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에세이가 전개됩니다.




>> 감상평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을 쓰는 삶.

​

모든 현대인이 원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진짜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 함정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어떤 잠재력을 가졌는지,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이 될만한 일에 혈안되어 자신의 가진 잠재력을 파고들고 역량을 키우는데 시간, 에너지 그리고 마음을 쓰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

허나, 여기에 돈에 조금 궁해도, 손이 많이 가고 마음을 졸여야되는 환경에 놓여 있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을 쓰는 두 작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미리 작가의 시골집 이름은 '수풀집'


번아웃이 와서 숨구멍을 찾고자 시골로 왔습니다.

일주일 중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시골에서 생활을 합니다.




귀찮 작가의 시골집 이름은 '그리고다'

퇴사를 한 해에 시골로 내려와서 시골에 머물면서

그리고 쓰는 작업을 합니다.

​

부럽기도 하면서 동경하게 되고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습니다.

​

저 또한 '심리 상담사'라는 막연한 꿈만 가지고 상담력에 힘을 키우고자

돈이 필요하지만 돈에 속박되지 않고

유유자적 육아에도 전담하는 육아맘이기도 하거든요.

​

하고 싶은 일 혹은 좋아하는 하는 일에 힘을 싣고자

돈보단 시간을 선택한 이는 얼마나 될까요?

시간을 선택한 이들이 금전적 풍요를 누리면서 살아갈 확율을 또 얼마나 될까요?

솔직히 돈과 시간의 가치를 환산하는 건 엄청난 통찰력이 필요하거든요.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원만하게 소화시키기 위해 자유, 시골 그리고 시간을 선택한 두 작가의 삶은 평탄할까요?


사실 현실적으론 감당해야할 고충이 많다는 걸,

두 작가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시간과 마음의 자유를 얻게되면서 감수해야하는 불편한 것들이 있긴해요.

아주 번거롭고 신경쓰일 정도로 사람을 좀 예민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어요.

​

그럼에도, 두 작가는 그 속에서 혜안을 얻고 즐거움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순수한 통찰력을 갖춘 영혼들인건 분명합니다.

​

자연을 품고 살아간다면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최소한으로 감당해야할 것들에서

우리가 더 멀어져 있는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불편한 건 당연하고

불편해야 인간은 움직이며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특히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유유자적 물흘러가는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됩니다.

​

현대 기술의 발전 속도에 따라서 마음과 에너지가 따라 가려니 힘에 부칩니다.

현대인들이 번아웃이 안오는게 이상할 정도지요.

나만 뒤쳐질것 같아서 타인이 긴박한 속도에 맞추느라 정신이 없죠.

번아웃은 잠시 멈추고 쉼이라는 의미인데, 쉼을 자처하는 것도 용기라

여기는 현대인들이 많아져서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를 읽으면

조금 천천히 가도 되는 길이 오히려 멀리 오래토록 걸을 수 있다는 걸 알게해줍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 자연정취를 바라보며

움직이라고 채근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 채근에 못 이겨서 자연에 동화되어야 해요.

그래야 인간은 살거든요.

​

살기위해, 이왕이며 원하는 일에 몰입하며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녀들의 일상에 매려되고 동화되었으며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

또한 작가들처럼 내가 추구하는 프리랜서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지금을 살아가는 용긷 얻게 되었습니다.

​


​>> 문장수집



p.23 결국 저를 꿇리곤 했던 것은 경제적인 문제, 바로 '돈'이었어요.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이니까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지난 13년간 매달 통장에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진다는 뜻이지요. 그게 무서웠어요.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게 아주 많은데,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돈이 없으면 진짜 중요한 것보다 돈 생각을 더 많이, 더 자주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요. 시간의 주인이 될 것인가, 든든한 통장을 가질 것인바. 지난한 고민 끝에 저는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

p. 54 조금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솔직히 이렇게 바쁠 땐 살아남은 작물조차 부담스러워요. 모든 작물은 보삼핌이 필요하고 지금처럼 일이 바쁠 땐 그 보살핌이 버겁거든요. 아무리 방임형 텃밭이라고 해도 한없이 늘어지는 줄기들을 지주대에 묶어주어야 하고, 누렇게 시들어버린 죽은 잎사귀를 정리해야 하고, 과실이 너무 익기 전에 따주어야 하잖아요. (중략) 텃밭을 보고 있노라면 여름방학 내내 일기를 한 장도 쓰지 않았는데 내일 개학인 초등학생의 마음처럼 무겁고 막막했죠.

​

p.70 모든 게 얼마 남지 않은 듯한 체념으로 가득찬 와중에 작가님의 "그래도 그 해 여름 지나고부터 점점 좋아졌지. 다늘 너무 늦었다고 그랬는데, 아주 조금씩이라도 매년 나아졌어"라는 말에 기운이 나버렸어요. 이미 슬픈 결말로 정해져 있다해도, 수풀집의 조록조록 물소리와 나무 도마에 탁탁 칼이 부딪치는 소리를 조금 더 오래 듣기 위해 뭐라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p. 126-127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운 상태로 업무 연락을 확인하다가 컴퓨터 앞에 불려 와 앉고, 컴퓨터를 동료 삼아 점심을 먹고, 그 채로 오후를 맞고, 마감 시간에 쫓기며 야근을 하고는 정수리 냄새를 풍기며 다시 침대로 향하는 하루, 최근의 제 일상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런 하루를 언뜻 보면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자유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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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39 제게 있어 일은 여전히 제 존재와 자아에 큰 의미가 되어주거든요. 일을 함으로써 저의 쓸모와 필요, 제 삶의 가치를 느끼니까요. 단순히 돈이 되는 것을 넘어 내 창작물을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귀하게 여겨주는 데서 오는 기쁨이 무척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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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70 하늘을 향해 치켜든 횃불 같던 연보랏빛 오동나무 꽃, 그 아래서 향기를 맡느라 킁킁거리던 봄날의 한 장면, 큼지막한 오동나무 잎을 들고 달리면서 만화 '개구리 왕눈이'에 나오는 나뭇잎 우산을 상상하던 여름날이 한 장면. 낙엽이 된 오동나무 잎이 담요 같다며, 나무뿌리를 베개 삼고 누워 사그락사그락 몸 위에 잎을 덮던 가을날이 또 한 장면. 바짝 마른 오동 열매 껍데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엔 괜스레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겨울날이 한 장면. '오동나무 맞네!'

​

p. 281-282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새로운 우주와 만난다는 것과 비슷하단 생각을 자주 하는데요, 이렇게 일 년간 편지를 주고 받고 수풀집까지 다녀오면서 근사한 우주를 만나게 된 것 같아 기뻐요. 물론 이번 만남으로 제가 예상보다 싱겁고 별거 아닌 우주였음이 탄로 난 게 아쉽긴 하지만요. 바깥으로 보이는 면이 더 많은 직업이라서 그럴까요? 저는 누굴 만나도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실망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

p. 291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덩굴을 정리하기로 했어요. 머리카락을 잘라내듯 줄기만 조금 잘라낸 후 어떻게 버텨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중략) 무더운 날씨였지만 긴팔 티셔츠 위에 셔츠를 겹쳐 입고 두께감 있는 긴바지도 꺼내 입었어요. 소매단을 장갑 속에, 바짓단은 목이 긴 양말 속에 야무지게 넣어 입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매서운 가시와 털에 더는 긁히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작업 복장이었어요. 작업 목표는 낫으로 덩굴의 줄기를 조각내 당기되, 지면의 시작점을 반드시 찾아내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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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살아요, 돈은 없지만 - 청담 사는 소시민의 부자 동네 관찰기
시드니 지음 / 섬타임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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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소 성취지향의 성향으로 남다르게 살고픈 욕구가 상당한 육아맘입니다.

그래서 성취하고 남다르게 살아가는 어나더 레벨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곤 해요.

​

그들의 삶을 공부하면서

공통적인 면모가 포착되었습니다.

​

어줍잖게 자신을 포장하지도 않고

어줍잖게 스펙과 연봉을 내세우지 않으며

남들에게 보여주기식 소비를 지양하고

필요에 따른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합니다.

오히려 절약과 저축이 몸에 밴 사람들이며

절제력과 인내심이 상당하며

타인을 호구조사하지 않으며

타인 그 자체로 존중할 줄 아는 태도와 매너를 지녔습니다.

​

그런데 이렇게 소탈하게 살아가는 부자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있다고 해요.

그곳은 청.담.동 입니다.



>> 시드니 그녀는 누구인가?


이 책의 저자 시드니는 이미 브런치에서 유명한 작가입니다. '청담동은 명품을 안 입는다'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글을 연재했는데 이 글로 35만 조회수를 돌파했습니다. 이는 부자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을 저자 시드니가 어느정도 해소해줬다는 결과라고 볼 수 있겠어요. 물론 그녀의 필력이 독자들의 마음을 이끄는 어떤 힘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 책의 구성 및 내용



이 책은, 나는 수상한 이웃과 산다/청담동은 드러내지 않는다/청담동에는 왜 독립서점이 없을까/부자동네에서 잘 숨어사는 법라는 제목으로 크게 총 4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자동네의 부자들의 삶, 일반 소시민의 입장에선 늘 호기심이 무심히 곤두서잖아요? 부자들은, 그러니까 부자들에 비해 (재산기준) 일반 서민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진짜 특별한 것일까요? 그리고 항상 돈만 밝히고 교만한 사람들이고 일반 사람들을 대놓고 무시할까요?


부자에 관한, 그러니까 편견과 부러움이 섞인 궁금증이 누구에게나 있을꺼예요. 청담동에서 부자이웃들과 살아가는 저자 시드니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들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정도 해소될꺼예요.








>> 책 읽고 느낀점



저자 시드니는 자신의 브런치에 가볍게 쓴 글 "청담동은 명품을 안 입는다"로 35만 조회수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이 평소에 부자들의 삶이 그만큼 궁금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그들의 이야기는 늘 뜨거운 감자이자 도파민을 급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

그런데 청담동에 우연히 살게 된 저자가, 청담동에 살면서 청담동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곳에서 생활하는 분위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

보통 "청담동"이라고 한다면

가장 무엇부터 떠오르시나요?

​

저는 부.자.동.네 라는 표현부터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 이유는 청담동을 거닐 때 명품매장이 가로수길로 쭉~ 이어져있는 한산한 거리가 기억나거든요. 유동인구는 많지 않으나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고급 스포츠카를 당당하게 몰며 부를 대놓고 자랑하는 듯한, 소시민 배 아프게 만드는 그런 곳이라는 부러운 편견부터 가지게 되죠.

​

허나, 저자 시드니가 담은 책 속의 청담동 사람들은 돈이 있다고 자랑하거나 스펙이 화려하다고 대놓고 표현하는, 허세의 농도가 짙은 또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

오히려 반대로 겸손하고 절제력이 강하며 소소한 옷차림에 아주 편안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아주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저자가 알려줍니다.

​

이 부분에서 아주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100프로 공감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

저도 종로구에 어느 부촌에 밀접하게 붙은 허.름.한 주택가에 살았는데요. 부촌에는 평당 시가가 어마무시한 아파트가 있어요. 아일 낳기 전엔 그곳을 멀리하면서 지나다녔어요.

​

"외부인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강남권 부촌 아파트에선 이를 두고 갑을 논박이 많았던 이슈여서, 봉변을 면하고자 멀리했어요.

​

하지만 아일 낳고 아이의 발걸음대로 움직이다가

금기의 경계를 넘어서 그 아파트로 자연스럽게 입성했어요. 금기표지판 넘어로 발길을 닿는 순간 은근히 긴장했어요. 어떻게든 아일 데리고 그곳을 빠져 나가려는 순간, 오히려 그들은 아이와 저를 환대해주었어요. 그들은 절대 어디에 사는지, 뭐하는 사람인지 등, 부 축적 여부와 스펙 따위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그냥 사람 그 자체로 보고 아일 둘러싼 이슈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했어요.

​

그들 또한 고스펙에 고연봉인 걸 대놓고 자랑하듯 내세우며 절 기죽이는 일이 없었습니다. 서로가 불편해질 수 있는 이슈는 내색하지 않았어요.

​

저자 시드니가 35만 조회수를 달성한 제목의 글처럼, 그들은 명품을 자랑하듯 걸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필요해서 구매하지 일부러 자랑용도로 걸치지 않아요. 무엇보다 겉치레식에 혈안이 된다기보단 내실을 단련하고 성장시키는데 집중해서, 본보기가 된다는 면도 빼놓을 수 없거든요.

​

평소에 부자들이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그들만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관하여 진짜 관심이 많은데요.

그간 자기계발서적인 저서를 통해서 그들을 접했다면 저와 같은 일반인이 직접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느낀바를 글로 담아서 평범한 시선으로 그들과 만난 듯 하여 재미있게 책 한 권을 뚝닥 읽었어요.

​

물론 개인적인 경험이 그 세계와 사람들의 전부라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부자라고 해서

인간답지 못하고 사치스럽다는 편견 정도는 버릴 수 있을겁니다. 저도 근처서 살아보고 그들을 경험해보니 선하고 겸손한 부자들이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세상이 삭막하다는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고 그들의 안정적인 정서에 기대서 행복한 육아를 즐길 수 있었답니다.






>> 책글귀



p.112 가끔 직업 정도 물어보는 분은 있었는데 내가 하는 대답의 이면까지 파악하려는 분은 없었다. (중략) 어느 누구도 지금 거주하는 곳 위치 외에는 묻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나도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신상에 대해 거의 묻지 않는다.


p. 116-117 빈부격차 스펙트럼이 대한민국엣 가장 넓은 이곳은 서로 조심하고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괜히 돈 이야기를 했다가 망신을 당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부를 자랑하거나 괜한 정보를 오픈하면 좋은 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다들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혹여 눈치를 채더라도 말하지 않고 살아가는것, 그게 청담동에서 배운 삶의 지혜다.


p. 125-126 맘카페가 없어도 청담동 어머니들은 평온하게 잘 산다. 맘카페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맘카페는 계륵이라고 본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는 존재. 아이가 커갈수록 불특정 다수가 제공하는 정보보다는 2~3년 앞서 또는 6~7년 앞서서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 어머니 한 분이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감사하게도 내 주변에 그런 분들이 계신다.


p. 173 그런데 청담동은 주거 형태는 비슷한데도 개미 발자국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물론 고급빌라도 섞여 있지만 대부분은 다세대 주택이다. 여름에서 가을이 넘어가는 무렵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고 가을 야구를 시청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다들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조용한 일상을 보낸다.


p. 207 금수저든 아니든 간에 항상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을 보면 삶의 밀도가 높다. 물질이든 마음이든 나의 그릇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오롯하게 거울만 바라보며 내 인생에 뭘 채울지 고민한다. 크든 작드 어떤 노력으로 삶이 변화를 불러일으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고, 인생 자체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타인에게도 관대하다.


p. 221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상이 예측된다는 느낌이 든다. 세상은 생각보다 유기적이어서 눈앞의 사탕이 없어지면 다른 사탕을 사면 되고, 사탕이 없어지면 새로운 간식을 찾으면 된다 인생을 살아가다가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터지면 주변 사람들이나 전문가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복잡하고 거미줄처럼 엮인 세상에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다.


p. 233 그나마 청담동 사람들보다 내가 조금 나은게 있다면 그건 어휘력이다. 고급 어휘나 예술 언너는 잘 모르지만 세상에 떠다니는 다양하고 센스있는 어휘를 많이 알고 있어 대화를 할 때 감정이 될 때가 많다. 이는 내가 인문학 서적이나 소설을 많이 읽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청담동 사람들에게 섞여 사는 비결이 겨우 독서라는 게 어이없지만 물려받은 문화자산이 없는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후천적 생산재는 다독으로 인한 어휘력 뿐인 것 같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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