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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 두 자연 생활자의 교환 편지
김미리.귀찮 지음 / 밝은세상 / 2025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제가 사회초년 생일때 체계가 잘 잡힌 관공서나 조직이
저에게 너무나 잘 맞을 것이라 착각하며 시간을 보낸 적 있습니다.
그 착각의 근원은 안정적인 월급이 나온다는 장점 때문이였던 것 같습니다.
허나, 10여년 조직 생활을 하면서 싸움닭처럼 싸우고
지지고 볶으면서 깨달았아요.
조직 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요.
분명히 일을 쳐내는 분별력과 순발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 또한 착각이였습니다. 타협 따위 없는, 그냥 불도저처럼 밀어 붙여대는 성격에 제 밑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힘들어 했습니다.
위 아래로 갈등 상황에 몰리니,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어린) 저로선 견딜 힘이 점차 없어지더라구요.
설상가상으로 공황장애까지 엄습했습니다.
공황장애로 인한 무기력과 우울증 덕분에(?)
합리적으로 치열했던 일과 이별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내 자신에게 시간을 쏟아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고 이왕이며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살고픈 욕구가 꿈틀거렸습니다.
"하고 싶은 것에 더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 쓰면서 살고 싶다"라는 책 뒷면의 글귀가 시선을 사로잡는 신간 에세이 를 읽고선 14년 전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합리화할 수 있었습니다.

초록초록 진한 청록의 색감에서 안정감이 전해지는 책표지!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라는 제목만 봐도 자연친화적이고, 자연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 것이라는 짐작에 이 책에 마음이 닿은 건 사실입니다.

앞서 서문에 언급했던 마음에 닿은 글귀
"하고 싶은 것에 더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을 쓰면서 살고 싶다"
지금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너무나 꿈꾸는 삶일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포기해야할 것들이 많죠.
그중에서 돈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자기답게 살고 싶어서 안정적인 직장과 월급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고
적성이 맞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결론 지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누가 옳은 삶을 산다고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 자유를 누리는게 적성에 맞기는 합디만 자유롭게 개인역량을 부리면서 살아가는 배포가 큰 사람은 아니라는 걸 요즘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유를 선택했으니
누릴 수 없는건 감수하고
산다는게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자연적인 색감의 책표지와 어울리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담은 책갈피도 눈에 들어옵니다.
책 제목과 같이 각 계절에 다른 운치와 분위기를 쓴 내용이 책갈피에 담겨져 있어요.
>> 작가 김미리 x 귀찮에 대하여

이 책은 공동집필된 책이예요!
<아무튼, 집>과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를 집필한 김미리 작가와, <귀찮지만 매일 씁니다>와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음>을 쓰고 그린 귀찮(김윤수) 이 공동으로 써내려간 에세이입니다.
김미리 작가와 귀찮 작가 각자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만큼은 자유로운 시골살이를 자처한 분들입니다. 진짜 말그대로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공통점이 있는 듯하지만 뭔가 살짝 다른 성향을 지닌 작가분들이예요.
>> 책 내용과 구성

책의 구성은 아주 간단합니다.
책 제목대로 계절을 담았습니다.
김미리 작가는 시골에 있는 폐가를 덜컥 사들여 고친 후 시골과 도시를 오고가며 컨텐츠 제작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귀찮 작가 또한 퇴사 후 시골로 내려와 시골생활을 누리면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속도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시골생활을 자처한 공통점이 있는 두 작가는
편지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에세이가 전개됩니다.
>> 감상평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을 쓰는 삶.
모든 현대인이 원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진짜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 함정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어떤 잠재력을 가졌는지,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이 될만한 일에 혈안되어 자신의 가진 잠재력을 파고들고 역량을 키우는데 시간, 에너지 그리고 마음을 쓰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허나, 여기에 돈에 조금 궁해도, 손이 많이 가고 마음을 졸여야되는 환경에 놓여 있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을 쓰는 두 작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미리 작가의 시골집 이름은 '수풀집'
번아웃이 와서 숨구멍을 찾고자 시골로 왔습니다.
일주일 중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시골에서 생활을 합니다.

귀찮 작가의 시골집 이름은 '그리고다'
퇴사를 한 해에 시골로 내려와서 시골에 머물면서
그리고 쓰는 작업을 합니다.
부럽기도 하면서 동경하게 되고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심리 상담사'라는 막연한 꿈만 가지고 상담력에 힘을 키우고자
돈이 필요하지만 돈에 속박되지 않고
유유자적 육아에도 전담하는 육아맘이기도 하거든요.
하고 싶은 일 혹은 좋아하는 하는 일에 힘을 싣고자
돈보단 시간을 선택한 이는 얼마나 될까요?
시간을 선택한 이들이 금전적 풍요를 누리면서 살아갈 확율을 또 얼마나 될까요?
솔직히 돈과 시간의 가치를 환산하는 건 엄청난 통찰력이 필요하거든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원만하게 소화시키기 위해 자유, 시골 그리고 시간을 선택한 두 작가의 삶은 평탄할까요?
사실 현실적으론 감당해야할 고충이 많다는 걸,
두 작가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시간과 마음의 자유를 얻게되면서 감수해야하는 불편한 것들이 있긴해요.
아주 번거롭고 신경쓰일 정도로 사람을 좀 예민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어요.
그럼에도, 두 작가는 그 속에서 혜안을 얻고 즐거움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순수한 통찰력을 갖춘 영혼들인건 분명합니다.
자연을 품고 살아간다면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최소한으로 감당해야할 것들에서
우리가 더 멀어져 있는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불편한 건 당연하고
불편해야 인간은 움직이며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특히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유유자적 물흘러가는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됩니다.
현대 기술의 발전 속도에 따라서 마음과 에너지가 따라 가려니 힘에 부칩니다.
현대인들이 번아웃이 안오는게 이상할 정도지요.
나만 뒤쳐질것 같아서 타인이 긴박한 속도에 맞추느라 정신이 없죠.
번아웃은 잠시 멈추고 쉼이라는 의미인데, 쉼을 자처하는 것도 용기라
여기는 현대인들이 많아져서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를 읽으면
조금 천천히 가도 되는 길이 오히려 멀리 오래토록 걸을 수 있다는 걸 알게해줍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 자연정취를 바라보며
움직이라고 채근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 채근에 못 이겨서 자연에 동화되어야 해요.
그래야 인간은 살거든요.
살기위해, 이왕이며 원하는 일에 몰입하며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녀들의 일상에 매려되고 동화되었으며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작가들처럼 내가 추구하는 프리랜서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지금을 살아가는 용긷 얻게 되었습니다.
>> 문장수집
p.23 결국 저를 꿇리곤 했던 것은 경제적인 문제, 바로 '돈'이었어요.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이니까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지난 13년간 매달 통장에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진다는 뜻이지요. 그게 무서웠어요.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게 아주 많은데,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돈이 없으면 진짜 중요한 것보다 돈 생각을 더 많이, 더 자주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요. 시간의 주인이 될 것인가, 든든한 통장을 가질 것인바. 지난한 고민 끝에 저는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p. 54 조금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솔직히 이렇게 바쁠 땐 살아남은 작물조차 부담스러워요. 모든 작물은 보삼핌이 필요하고 지금처럼 일이 바쁠 땐 그 보살핌이 버겁거든요. 아무리 방임형 텃밭이라고 해도 한없이 늘어지는 줄기들을 지주대에 묶어주어야 하고, 누렇게 시들어버린 죽은 잎사귀를 정리해야 하고, 과실이 너무 익기 전에 따주어야 하잖아요. (중략) 텃밭을 보고 있노라면 여름방학 내내 일기를 한 장도 쓰지 않았는데 내일 개학인 초등학생의 마음처럼 무겁고 막막했죠.
p.70 모든 게 얼마 남지 않은 듯한 체념으로 가득찬 와중에 작가님의 "그래도 그 해 여름 지나고부터 점점 좋아졌지. 다늘 너무 늦었다고 그랬는데, 아주 조금씩이라도 매년 나아졌어"라는 말에 기운이 나버렸어요. 이미 슬픈 결말로 정해져 있다해도, 수풀집의 조록조록 물소리와 나무 도마에 탁탁 칼이 부딪치는 소리를 조금 더 오래 듣기 위해 뭐라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p. 126-127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운 상태로 업무 연락을 확인하다가 컴퓨터 앞에 불려 와 앉고, 컴퓨터를 동료 삼아 점심을 먹고, 그 채로 오후를 맞고, 마감 시간에 쫓기며 야근을 하고는 정수리 냄새를 풍기며 다시 침대로 향하는 하루, 최근의 제 일상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런 하루를 언뜻 보면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자유롭지 않습니다.
p. 139 제게 있어 일은 여전히 제 존재와 자아에 큰 의미가 되어주거든요. 일을 함으로써 저의 쓸모와 필요, 제 삶의 가치를 느끼니까요. 단순히 돈이 되는 것을 넘어 내 창작물을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귀하게 여겨주는 데서 오는 기쁨이 무척 큽니다.
p. 270 하늘을 향해 치켜든 횃불 같던 연보랏빛 오동나무 꽃, 그 아래서 향기를 맡느라 킁킁거리던 봄날의 한 장면, 큼지막한 오동나무 잎을 들고 달리면서 만화 '개구리 왕눈이'에 나오는 나뭇잎 우산을 상상하던 여름날이 한 장면. 낙엽이 된 오동나무 잎이 담요 같다며, 나무뿌리를 베개 삼고 누워 사그락사그락 몸 위에 잎을 덮던 가을날이 또 한 장면. 바짝 마른 오동 열매 껍데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엔 괜스레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겨울날이 한 장면. '오동나무 맞네!'
p. 281-282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새로운 우주와 만난다는 것과 비슷하단 생각을 자주 하는데요, 이렇게 일 년간 편지를 주고 받고 수풀집까지 다녀오면서 근사한 우주를 만나게 된 것 같아 기뻐요. 물론 이번 만남으로 제가 예상보다 싱겁고 별거 아닌 우주였음이 탄로 난 게 아쉽긴 하지만요. 바깥으로 보이는 면이 더 많은 직업이라서 그럴까요? 저는 누굴 만나도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실망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p. 291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덩굴을 정리하기로 했어요. 머리카락을 잘라내듯 줄기만 조금 잘라낸 후 어떻게 버텨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중략) 무더운 날씨였지만 긴팔 티셔츠 위에 셔츠를 겹쳐 입고 두께감 있는 긴바지도 꺼내 입었어요. 소매단을 장갑 속에, 바짓단은 목이 긴 양말 속에 야무지게 넣어 입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매서운 가시와 털에 더는 긁히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작업 복장이었어요. 작업 목표는 낫으로 덩굴의 줄기를 조각내 당기되, 지면의 시작점을 반드시 찾아내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