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여행법 - 불편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관하여
이지나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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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데리고 동네를 벗어난 여행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신,쉽지 않은 결심을 세우고 여행을 떠나고픈 갈증이 있습니다. 이지나 작가의 《어린이의 여행법》을 읽어보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동경하게 됩니다. 여행하는 동안, 아이는 부모가 지켜야 하는 작은 존재가 아니라, 또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행 동반자라는 걸,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 어린이의 여행법 내용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십여년간 아이와 함께 국내외 여행을 다닌 스토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블로그나 인스타의 사진 단면으로 보이는 환상적이고 평화로운 여행이 이나라, 여행의 과정에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다이나믹한 여정 속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는 글귀로 가득합니다. 특히, 아이를 통해서 말이죠. 아이 입장에선 힘겨울 수도 있는 여행. 그러나 아이는 여행 중 희노애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 느낀점


아장 아장 걷는 아이와 집 밖을 나가도 무심히 놓였있는 돌맹이와 솔방울,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아이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일이 많아집니다. 아이 낳기 전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자연에 더 가까워지고, 자연의 존재가 당연하지 않다는 걸 그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자연이 주는 장난감(돌, 흙, 나뭇잎, 나뭇가지 등)으로 아이는 감각을 익혀가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휴식을 취하며 햇살이 전하는 따스함과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는 날도 많았지요. 아이와 함께하면, 그동안 무심히 봤고 무관심하게 봤던 것들이 면밀히 바라보는 집중력이 생기며, 지금 존재하는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기도 합니다. 아이는 순수함을 잃어가는 어른들에게 구분짓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힘이 있습니다.

《어린이의 여행법》에 나오는 저자의 아이 얼이도 그런 존재입니다. 책 속에서 묘사된 여행의 여정은 진심에 MSG를 조금 더해서 표현하자면, 블럭버스터급 다이나믹합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몰입하지 않을 수 없을정도로 사실감있게 잘 묘사되어서, 마치 나도 아이와 함께 그런 상황에 놓인 것처럼 심장이 쫄깃했지요.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이 싫어질 만큼 지칠법한 상황에, 아이 얼이는 엄마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합니다.

"엄마, 우리 오늘 행복한 하루 보내자. 세상에서 제일 기분 좋았던 생각을 해봐. 그러면 조금 괜찮아질 거야(p. 33)"

이 글귀만 봐도,아이는 더이상 부모가 지키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이도 때론 부모를 지킬 수 있으며, 껴져있는 부모의 마음의 불을 켜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동반자입니다.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하는 동반자요. 저자도 언급했지만, 낯선 곳을 가면 부모도 결국 아이와 똑같은 입장이되고, 낯선 곳에서 아이와 함께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똑같은 시선에서 똑같이 적응하는 분위기, 아이에겐 어쩌면 스릴 넘치는 모험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물론, 여행 과정 중에서, 부모혼자서만 허덕이기만 한다면, 그 여행은 의미가 없겠지요? 아마 얼이는 부모와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눈으로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본 것들을 공유하며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새로운 경험을 함께 할 때, 아일 동반자로 여기고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머릴 맞대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같이 겪는다면, 아인, 여행이 즐거울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단면적으로 바라보는 부모가 생각치도 못한 말을 전하면서 감동과 위안을 전하겠지요? 그러면 여행은 정말로 즐거운 여정이 될 것 같아요.

사실, 이 책의 제목만 접할 땐, 사사로운 일상 속에서 아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조금더 광범위한 여행을 즐기면서 그 속에서 아이의 순수함을 마주하게 합니다. 아이와 하는 여행은 아일 힘겹게 하는 것이 아닌, 모험처럼 여겨지는 한치 알길 없는 인생의 흐름을 서핑하듯 즐기는 방법을 배워가는 여정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어요.

한동안 아이와는 동네에서, 동네 주변을 거닐면서 세상을 구경했고, 좁은 범위지만 아이는 자기 스스로 느끼는대로 말하고 표현하는 힘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제 형아가 되었다고, 동네 주변을 벗어나서 새로운 공간을 탐험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우리 가족도 얼이네처럼 더 넓은 곳으로 여행을 즐길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왔나봅니다



● 마음에 와닿는 글귀


p. 38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수한 생의 방식을 배워간다는 의미다. 공공장소에서싀 예절과 타인에 대한 예의를 배우지 않고 아이와 여행을 지속할 수는 없다. 내가 얼이와 어디든 함께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매일 함께 하면서 서로의 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도 어른도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다.

p. 39 아이들의 실수는 아직 모르기 때문일 때가 많다. 아이의 미숙함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 모두 그렇게 배우고 자라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을 때가 많다.

p. 53-54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거라고 하던데. 아닌가?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달으며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건가? 그러나 얼이와 함께 해와 비를 맞으며 여행하는 동안 알게 된 것은, 내가 어른이 되는 동안 마음대로 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고 누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이다.

p. 60 아이는 배울 게 참 많다. (중략) 아이들은 어른들이 이미 아는 것도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해야 익힌다.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 그래서 자꾸만 나도 모르게 혼내듯이 말하게 된다. 그런데 얼이는 물을 쏟고도, "앗 몰랐어. 미안해. 가르쳐줘서 고마워."하고 대답한다. 두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 매번 산뜻하게 사과하고 순수하게 고마워한다. 그때마다 오히려 내가 얼이에게서 배우게 된다. 매번 나는 작은 것을 알려주고 훨씬 큰 것을 배운다. 아이에게는 배울 게 참 많다.

p. 68 사유와 경험을 엮어 글을 지었고 여러 계절이 지나 나의 첫 책이 세상에 태어났다. 벅찬 경험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과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하나를 선택했기에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은 그런 게 아니었다. 묻어두었던 꿈은 때가 되자 여물어 단단한 지면을 뚫고 나와 싹을 틔웠다. 책은 작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수고와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상의 수 많은 것이 그렇게 자라고 태어나듯이.

p. 92-93 불편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필연적으로 시간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려면 돈과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우리가 소유와 마음을 쓰는 동안 완성되는 미학과 서사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불편하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게 된다.

p. 105 비행기에 타고 난 뒤에는 아이들이 제한된 환경에서도 즐거움을 찾아내는 데 얼마나 탁월한 재능이 있는지 알게 된다. 케냐 나이로비까지 가는 데에는 환승시간을 포한해서 꼬박 스물네 시간이 걸렸다. 만약 우리가 나이로비에 도착해야 여행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면 그 시간을 견디기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 중이었다. 나는 얼이와 함께 여행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해야 여행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이미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곤 했다.

p. 112 아이와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니, 사람들에게 기억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언제쯤 아이를 데리고 여행해야 아깝지 않은지, 교육효과는 얼마나 있는지, 아이가 정말 '기억'하는지. 여행하는 일은 책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책은 길고 어떤 책은 짧고, 어떤 책은 지루하고 또 다른 책은 깔깔대며 읽는다. 뭉클한 순간이 많아서 두고두고 다시 들춰 보는 책도 있지만, 어떤 책은 한 번 읽은 후엔 책장에 꽂혀 잊혀진다. 아무리 좋아하는 책도 모든 장면을 기억할 수는 없다.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만 모든 책이 다 배울 것이 있고 내게 무언가를 남기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읽는 것 자체의 즐거움이 있다. 때로는 실패한대도, 읽고 나서 모두 잊혀버린다 해도.

p. 113 세계는 한 권이 책이고 여행을 할 때 그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모든 책이 읽은 순간 전부 이해되고 매번 우리 삶을 바꿔놓지는 않는다. 우리는 계속 여행하고 새로운 책장이 펼쳐지지만 그 순간에는 읽히지 않는 여행도 있다. 기억나지 않는 문장과 이해할 수 없는 페이지도 있다. 어떤 책은 모든 것을 바꾸어버릴 힘을 지녔음에도 시간이 지나서야 의미를 갖는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지구를 돈다.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p. 124 끝이 없는 것은 여행이라 부르지 않는다.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끝내 떠나는 우리처럼.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사랑한다. 기어이 그러고야 만다.

p. 141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없다. 너무 무거우면 지치고, 너무 가벼우면 지루해진다. 지루할 때는 새로운 무언가로 채울 수 있지만 지치면 여행을 계속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벼운 가방을 집어든다. 그리고 웃음, 추억, 기록, 예술, 장난 같은 것들을 담았다가 덜어내며 짐을 꾸린다. 무엇이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지 확인해볼 기회다. 가방 안은 하나의 집이고 세계지만, 이것만큼은 언제든 허물고 다시 지을 수 있다. 앞으로도 연습할 기회는 많을 것이다.

p. 148 사진을 찍는 것은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지금 우리가 사진을 보면서 다시 그 시간을 여행하는 것처럼 시간이 더 지나면 이 시간을 돌아보며 지금을 여행하는 날이 오겠지. 그날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시간을 잘라서 프레임에 담아 간직한다.

p. 154 누군가 무언가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건 행복하다. 사랑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다르고 또 모두 닮았다. 때로는 길고 때로는 짧은, 그러나 삶에서 아주 의미 있고 중요한 시기를 공유한 이들은 평생 서로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산다. 나보다 약한 존재를 온전히 돌보고 사랑한 경험은 나부터 구원한다.

p. 191 여행책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다뤄야 잘 팔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곳을 더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하긴 내가 갔던 곳이 방송이나 책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SNS에라도 보이면 그렇게 친근하고 반가울 수가 없다. 내가 맛본 음식, 귀에 익은 음악과 익숙한 내음, 내가 겪은 일, 눈앞의 풍경, 우리는 그렇게 경험과 공감의 테두리를 넓혀간다. '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된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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