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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인생의 중간항로에서 만나는 융 심리학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심리, 마음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요즘,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인 위기는 누구나 겪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흔히 청소년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사춘기라 하며,
그 시기를 어떻게 거쳤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일, 생김새, 성격, 성장배경이 다르듯
사춘기의 시기도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사춘기만큼 자신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시기도 없을 겁니다.
어린시기에 겪으면 진짜 혼란은 극대화되고 방황하는 일도 많잖아요.
이런 질풍노도의 시기는 청소년기에만 온다고 단정 지을 수 없잖아요?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과 주변을 두고 엄청난 고민을 하는데 100톤짜리 짐보다
심리적, 마음으로 짓는 짐이 더욱더 무겁게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청소년기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집안의 불화로,
사춘기 때 찾아오는 온갖 혼란을 겪어도 마음을 눌러야 했습니다.
안그래도 집안 상황이 어려운데, 나마저 엄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학교생활에서 서러운 경험을 해도 절대 엄마에게 이야길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판단해서 힘든 마음을 삭혔던 것 같아요.
어딘가에 해소를 하는 법만 알았더라면
짓눌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잘 삭히는 습관이 감정 컨트롤을 잘하는 것이라 착각을 했습니다.
잘 버텨내고, 잘 이겨내고, 잘 참아내고... 마치 저만의 능력인냥 뿌듯한 적이 많았지요.
그런데, 30대 가까워지면서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밀려왔습니다.
순간 당황스러웠어요.
매사에 주어진 일이나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나,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켠에 묵직한 뭔가가 쓰물쓰물 터져 나오려는 거예요.
터져나오는 느낌을 의식한 듯, 저는 습관적으로 또 누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눌려지지가 않더라구요.
누르려고 모든 힘을 써도 버겁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누르던 힘을 빼버렸더니,
마음 속에 묵혀있던 분노, 슬픔, 괴로움 등이 봇물처럼 터져 나왓습니다.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며 당황스럽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러나...이러면 안되는건데..'
감정컨트롤이 저만의 능력인 줄 알았는데, 실력발휘를 못했다는 자괴감도 들어서
제 자신에게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라요.
저에게 실망하고 미워하고 경멸하는 모습에, 마음은 더욱더 혼란스러웠습니다.
나중에 심리관련 서적들을 읽어보니,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무시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몰랐던 거예요.
부정적인 감정 자체는 좋지 않는 감정, 나쁜 감정, 해로운 감정이라고만 인색했지,
바깥으로 뻔은 시선과 의식을 자신에게 돌려보라는 신호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구요.
위와 같은 심리적, 감정적인 맥락을 조금더 구체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책이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라는 것을, 책일 읽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마흔에 가까운 서른 후반대가 되면서
마흔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서 읽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마흔'이라는 표현에 꼿혀서 책을 선택한 것이지요.
■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내용
저자는 융학파의 정신분석학자로 마흔이 들어서는 시기에도 심리적인 위기가 찾아오는데 저자는 이를 '중간항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책의 서문에는 중간항로를 사춘기, 노년과 죽음 사이에 놓인 인격을 재정의하고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이자 통과의례와 같은 것(p.9)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중간항로라는 심리적 위기를 겪기 전에, 우리 자신은 부모, 성장배경, 사회 혹은 문화적인 영향을 받아 인격이 형성되며,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형성된 잠정적 인격으로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기 보단, 잘 살아갈 수 있을 법한 삶의 조건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을 산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이 지속되면 내면적인 자기감sense of self과후천적으로 형성된 인격 사이에서 불균형이 커지면서 마음에서 일렁이는 혼란과 고통을 억누를 힘이 없거나 보상으로도 달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잠정적 성격(가짜 자신)과 진정한 자신 사이에 불균형이 일어날 땐 무기력증, 우울감, 도박중독, 외도 등으로 다양한 현상들이 불거져 나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분노, 화, 욕망 등)과 어두운 충동을 의식하되 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진정한 자신을 거듭날 수 있도록 새로운 방향과 에너지를 준다고 합니다. 중년의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짓눌렀거나 억압했던 감정들이 점차적으로 튀어 나오면 우리는 그만큼 내면적으로 갈등을 많이 겪게 되지만 저자는 숨겨져 있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 환영할 만한 현상이고 말합니다. 즉, 중간항로라는 것은 사실상 고통을 수반하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힘겨운 단계이지만 거짓된 자신을 죽이고 진정한 자신으로 거듭나서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 느낀점 ::
이 책을 읽고 지금까지 제가 경험했던 심리적인 다양한 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좋은 사람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어야만 주변 사람들에 관심과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외부환경에 시선을 많이 맞췄습니다. 외부환경에 시선을 맞출수록 내면적인 욕구가 표출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 표출하고 싶어질수록 마음의 돌 같은 것으로 튀어나올 듯한 욕구를 마구마구 짓눌렀습니다. 이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생계 혹은 생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내면적으로 솟구치는 욕구는 무조건 억눌렀지요. 그러나, 진정한 내면이 부정당하고 억눌림 당하는 횟수가 늘어가다보면 저자가 언급한대로 잠정적 성격과 진정한 자신 사이에서 엄청난 불균형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은 갈망이 커져갑니다. 이 책을 미리 읽어두면 중년에 찾아오는 심리적 위기감에 미리 대처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적어도 마흔이 되기 전에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노력해야 하며, 지금껏 억눌려서 힘겨웠던 마음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된 자신과 진짜 자신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때문에 힘겨울 수 있습니다. 중간항로와 과정을 이해하면, 이 과정을 거치는데 수반되는 고통과 혼란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만큼 내면적으로 성장하고 진정한 자신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 책 속 한 줄 ::
p. 29 우리의 삶은 콤플렉스가 하는 일에 무지한 만큼, 그리고 본성과 실제 선택들 사이의 점점 벌어지는 간격을 깨닫지 못하는 만큼 비극이 된다. 마흔의 위기감은 대부분 그 간격에서 나오는 아픔에서 비롯된다. 내면의 자기감과 후천적으로 획득한 성격 사이의 불균형이 너무 커진 탓에 더는 그 고통을 억누르거나 보상을 달랠 수 없게 된 것이다. (중략) 마흔의 스트레스 증상은 후천적 성격 아래에 숨어 있던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며, 다시 태어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환영할 일이다.
p.30 중간항로란 잠정 인격에서 진정한 성인기로, 거짓된 자기에서 올바른 자기로 옮겨가기 위해 내면으로부터 일어나는 소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p. 38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역사가 역동적이고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인 정신 안에 들어 있는 까닭에, 우리는 과거에 의해 정의되고 지배당하기 쉽다. 누군가의 배우자, 부모, 가장 같은 제도화된 역할에 길들여져왔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들 역할에 투사해버린다.
p. 64-65 투사된 이미지가 닳아 없어지는 일, 그리고 자신 속에 늘 존재하던 기대와 희망을 버리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지만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외부세계가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버려야 나는 나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생긴다. 두려움에 가득 차 어른들이 구원해주기를 바라는 각자의 내면아이에는 이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이미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투사의 결과로 나타난 내용물을 인식하고 깨달음으로써 유년기로부터 자신을 해방하는 거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p. 88 성장하여 스스로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삶은 무자비하다. 단순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성장은 중간항로에서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요구사항이다. 이는 결국 타인의 중재 없이 자신의 의존성, 콤플렉스, 공포를 직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몫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육체적·감정적·정신적 안녕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p. 89-90 페르소나는 자아가 사회적 삶의 조건에 의식적으로 적응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내면에서 다양한 페르소나와 사회적 역할을 발전시킨다. (중략) 외부세계와 어울리기 위해 페르소나를 쓰는 것인데도, 우리는 타인의 페르소나를 내면의 진실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우리가 행하는 역할이 우리 자신이라고 믿어 버리기 일쑤다. (중략) 역할이 바뀔 때 우리는 자기상실을 경험한다. 페르소나는 개성인 척 가장하지만 융이 지적한 대로 이는 근복적으로 '진실이 아니며, 개인과 사회 사이의 타협일 뿐이다'. '사회화된 자기'인 페르소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만큼, 우리는 내면의 진실에 접근하면 외부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불안에 시달린다. 따라서 중간항로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과 페르소나 사이의 관계가 급격하게 바뀌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