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인류학자들
아이셰귤 사바쉬 지음, 노진선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마음은 세계일주를 누리고픈 욕심은 엄청나지만 실상을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육아맘입니다. 대신 저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 비록 똑같이 반복되도 지루해하지 않고 열악해도 견뎌내는 힘이 있습니다. 이는 저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장점이 발현될 수 있는 이유는, 매순간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재미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같은 것도 다르게 보이고 심지어 새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단조로운 일상이 세계일주 못지 않은 즐거움과 짜릿함을 선사해주기도 합니다. 또한 당연하게 존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쌓여서 여기까지 왔는지 알게되면, 그 당연함은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으로 탈바꿈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반복적인 일상도 여행하듯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단조롭지만 다채롭게 일상을 담은 에세이를 발견했습니다. 아니 소설이라고 해야 될까요? 에세이와 소설의 어느 경계에 있는 아이셰굴의 《인류학자들》입니다.



푸르른 초원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화롭고 편안해 보이는 사람들. 그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다른 포즈로 같은 곳을 향해 보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죠. 책 표지 속 풍경은 이 책의 주인공 아시아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녀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람으로, 동물의 왕국이나 네셔널지오그랙 같은 대형 다큐멘터리가 아닌, 공원에서 사람들의 루틴을 지켜보며 이를 다큐멘터리로 담는 작업을 합니다. 사람들의 루틴과 규칙에 매료된다는 아시아. 아시아의 관점으로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 작가 아이셰굴 사바쉬



작가 아이셰굴 사바쉬는 튀르기예 출신의 작가로 미국에서 인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파리에서 남편과 아이와 살고 있으며, 영어로 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 《인류학자들》을 보면 관찰자 아시아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생으로 살았고, 현재는 파리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그녀와 아시아는 똑닮았습니다.



>> 구성 및 내용



책의 구성은 단조롭습니다. 에세이처럼 글은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제목도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똑같은 소제목이 반복됩니다. 특히 "공원에서'라는 제목이 많은데요. 이는 매일 공원에서 사람들의 루틴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는 아시아의 관점을 보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소제목도 반복됩니다. 소제목은 똑같은데 내용은 다릅니다. 이는 똑같은 일상이라도 다시 들여다보면 다른 에피소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짐작케 합니다.



>> 감상평


에세이 같지만 소설인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이 어느 나라에 각자 어느 국적을 가진 사람들인진 알려주지 않습니다. 사실 읽으면서도 계속 궁금했지만 절대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관찰자 시점의 여주인공 아시아와 그녀의 남편도 마누도, 각자 다른 국적을 가진 존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으며, 그들이 타지에서 만나 결혼 후 정착했던 작은 집에서 조금더 넒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할 타이밍이 왔다는 걸 그들은 인지합니다. 그리고 도시와 도시 외각을 다니며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그들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자국에서도 정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그들은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타지의 도시에서 그들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려 합니다. 확장이라기보단 자리잡아간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그들은 타지에 온 외국인이여도,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시아와 마누에겐 친구들과 이웃이 있습니다. 아시아와 마누가 이사한 첫해에 만난 외국인 친구 라비, 유일한 현지인 친구 레나, 그들 집 두 층 위에 사는 테레자 할머니, 그리고 사라와 샤론, 폴까지!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도, 어쩌면 친구들과 이웃과 함께하는 즐거움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에서 벗어나 아사아의 관점에서보면, 아시아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람으로, 사람과 그 주변을 다채롭게 경험하고 그들의 루틴과 규칙을 들여다보는 재미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일상을 촬영하고 그 일상에 담긴 소박한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탐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이 도시에 남아 일상의 규칙을 세우고 싶었다. p. 14

그게 내가 촬영하고 싶은 주제였다. 느릿느릿 여유롭게 빈둥거리는 하루. p. 19

위의 관점을 가진 아시아. 아주 소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학자 관점으로 보면 그 속에서도 다양한 세계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놀라웠습니다. 인류학자의 관점으로보면 일상은 절대 단조로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편견의 장벽이 사라져서 더 다채롭고 광범위하며 심지어 새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인류학자 관점으로 관찰하려면 한 발짝 물러나서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도 없고 갈등으로 인한 감정적 타격감도 덜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그저 신기하다는 느낌만 남아있습니다.

단조롭고 심심하게 바라본 일상을 조금더 면밀하고 깊이있게 바라보면 한치 앞도 모르는 삶의 여정을 즐길 줄 알게됩니다. 이 지루함과 이 단조로움과, 이 고통이 언제 끝나느냐 불평하는 것보단, 주어진 삶 아니, 내가 살고자 한 거처, 지역 혹은 다른 나라를 어떤 관점으로 볼지 고민해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당연하게 여긴 것들이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연들이 누적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것은 존귀한 것이며 절대적으로 무료하게 바라봐선 안됩니다. 존귀하게 바라보면 자신이 선택한 모든 것들도 존귀하게 보여질 것입니다.

타지의 이방인인 아시아와 마누. 그들이 정착해서 살아가야할 곳이 어디이며 정체성은 확립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소설을 통해서 알게됩니다. 자신들이 선택한 나라와 도시, 거기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소소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삶이라는 걸, 그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 문장 수집


p. 11 우리는 루틴 지키는 걸 좋아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 느꼈던 강렬한 설렘과 그것이 점차 퇴색되어 가는 것이 지겨워졌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확장해야 할 때였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삶의 기반을 다져야 할 때였다. 그 표현은 우리와 거리가 먼 말이 었지만 좀 더 안정적인 삶을 꾸려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했다.


p. 12 서로 마주 보며 식탁에 앉는 것은 일종의 이식이었다. 우리 삶에는 의식이라 할만한 것이 거의 없었따. 의미가 있는 의식이든 아니면 적어도 전통이나 국가,종교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담긴 의식이든. 그래서 이런 사소한 일상이 중요했다. 난 아침이면 꼭 마누와 함께 식탁에 앉곤 했다.


p. 14 매물로 나온 집을 보러 갈 때마다 도시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일과 휴식을 위한 공간의 배치, 물건을 보관하고 진열하는 방식, 우리와 너무나 다른 그들의 우선순위에 매료되었다.


p. 21 마누와 난 예전에 다른 곳에서도 살아보았다. 하지만 이 도시에는 어딘가 우리가 삶에서 원했던 분위기와 조화로운 생활 환경이 있었다. 이 도시의 시간은 우리의 삶과 같은 박자로 흘러갔다. 우리는 이곳의 색감과 경계선, 장식, 동네 구성에 감탄했다. 아직 이 도시가 익숙하게 느껴지진 않아싿. 그저 익숙해지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린 이 도시의 방식을 받아들였다.


p. 31 나는 자율성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너무 빠르게 적응해버렸다. 자율성을 도덕적 가치이자 의심의 여지 없는 바람직한 상태로 여긴 것이다. 분명 가족의 눈에는 이런 내가 낯설다 못해 아예 남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p. 39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나는 인류학자의 눈으로 일상을 관찰하곤 했다. 사소한 상호작용도 이야기로 풀어내기 위해 인류학자의 관점으로 되새겼다. 복잡하게 얽힌 논쟁의 층을 분석하려고 할 때, 영상을 편집할 때, 특별한 행사에 가려고 옷을 차려입을 때마다 나는 인류학자의 관점을 떠올려 여기저기로 이동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살펴보았다.


p. 47-48 공원에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나는 낯선 사람들의 루틴에 매료되었다. 그들이 사는 하루의 짜임새를 더 깊이 파고드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촬영을 계속하며 나 역시도 내 안에 오랫동안 잠재했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각자 정말 이상하고 고유하고 독특한 면이 있었다. 이런 고유함은 일상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p. 62-63 누군가의 삶에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 그것이야말로 내가 어떤 장소에 뿌리내린다고 상상했을 때 떠올랐던 감정이었다.


p. 77 아시아, 마누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엄마가 말했다. 결혼이란 부부가 함께 추는 융통성 없으면서도 복잡한 춤이며, 선을 넘는 순간 조화가 깨진다는 엄마의 결혼관에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사랑관이라고, 마누와 내 관계는 단순한 예의범절 따위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p. 79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것이 가져올 미래를 그려보는 데는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한 요소가 있었다. 결국 선택지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문제를 너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p. 84-85 라비와 마누, 난 심리 치료라면 질색했다. (중략) 그런데도 우리는 심리 치료가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자기 탐닉적인 헛된 행위라며 못마당하게 여겼다.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자본주의와 동일시했다. 우린 심리 치료가 소비를 부추긴다고 생각했다. (중략) 상담이 내담자 안이 어떤 퇴폐적인 부분을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며 죄책감을 버리고 삶을 온전히 즐겨야 한다는 반복된 확신 탓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사주려는 강한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상담을 피상적으로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p. 155 내가 젊다는 사실을 깨우친 건 충격이었다. 최근 들어 더는 내가 젊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음은 다른 시절, 그러니까 애쓰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미래가 저절로 굴러 온다고 믿었던 시절의 전유물인 듯했다.


p. 159 몇 년 전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집을 얻었을 때는 우리 삶에 며칠만 머물다 사라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았고, 그들 중 대다수는 그 후로 다시는 보지 못했다. 우린 지낼 곳이 필요한 친구의 친구들을 재워주었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자주 저녁을 먹었다. 당시에는 그게 지극히 정상으로 느껴졌다. 낯선 그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늘 궁금했다. 마누와 나는 가끔 소파에서 재워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때 우리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는지 새삼 감탄했다.


p. 170 그 돈으로 우리는 대들보가 가로지르는 천장, 사용하지 않는 벽난로, 전망 좋은 창가 공간이 있는 그 집을 구매하겠다고 부동산에 말했다. 다른 집은 보고 난 후에 금세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우리 삶과 아무 상관없는 공간처럼 느껴지는 반면 그 집은 방문한 후에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대들보가 보이는 그 집으로 이사한 뒤에도 변하지 않을 것들을 이야기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류학자들
아이셰귤 사바쉬 지음, 노진선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지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늘 불안할 수 있지만, 주인공 커플의 인류학적 관점으로 일상을 어찌 들여다볼 지 너무나 궁금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자연이나 사물들이 전하는 소릴 갑자기 듣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것 같나요? 현대 세상의 기준에선 분명히 비정상적인 증상이라 여기며, 혼란스러울 겁니다. 심지어, 자신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고 싶은 심정에 이르기도 하지요. 하지만,우리의 감각이 이미 죽어있어서, 그 감각이 살아나고 있다고 인지해보는 건 어떨까요? 조용한 공간에 가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보며, 자연과 사물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집중해보면, 제법 흥미로울 것 같아요. 여기, 사물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단절될 뻔한 세상과 다시 연결되어 진정한 소통을 배워가는 소녀의 이야기 《우주를 듣는 소년》 있습니다.



● 우주를 듣는 소년 줄거리


아빠 켄지를 갑작스럽게 잃은 10대 소년 베니. 베니에겐 남편을 잃은, 저장강박증이 심한 엄마 애너벨만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와 남편을 잃은 상실감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가질 시간이 없었습니다. 베니가 갑작스럽게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다며 과민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를 보고 흐느끼는 유리창의 울음소리, 선생님을 가해하라고 지시하는 사악한 가위의 목소리까지, 베니의 귀와 마음을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엄마 애너벨은 베니의 증상이 심각하다는 걸 눈치채곤, 소아정신과병동에 입원을 시키게 됩니다. 베니의 증상을 정신과적인 측면에서 비정상적으로 바로보는 시선들. 소아정신과 멜러니 박사를 비롯해서 학교 관계자들과 친구들에겐 베니는 이상한 존재입니다. 마음과 집 안팎으로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움에 힘겨워하는 베니. 베니의 도피처는 도서관이였습니다. 사물과 책들은 도서관에선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아서, 베니는 여름방학 내내 도서관에서 생활했고, 개학 후에선 무단결석을 자처하면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만난 알레프와 철학자이자 시인 부랑자 슬라보이를 만나면서,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 느낀점


소설의 제목만 봤을 땐 환타지 소설일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책장을 펼치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심오한 인생철학소설이라는 걸 감지할 수 있었지요. 이야기 전개를 위해 등장하는 장르들도 다채롭습니다. 심리, 역사, 철학, 사회, 환경과 인류애적인 관점이 방대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방대한 맥락의 소설임에도, 이야기의 흐름은 잘 연결되어 몰입감을 더합니다.

소설은 베니와 책의 입장이 교차되면서 전개됩니다. 참 독특한 전개인데요. 이런 전개는, 책이 마치 베니의 삶을 만들어가는 느낌이기도 하고, 베니 자신의 자산의 삶을 이야기로 엮어서 책으로 만들어가는, 두 가지 느낌을 다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베니는 어린시절부터 추억을 만들어준 사랑하는 아빠 켄지의 죽음 이후로, 자신을 둘러싼 사물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합니다. 현대정신의학적인 관점으로 봤을 땐, 베니의 감각은 비정상적입니다. 그런 시선때문에, 베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엄마 애너밸과 소아정신과 담당자 멜러니에겐 함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오해가 더 증폭되고, 베니는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리의 부랑자 슬라보이와 미지의 소녀 알레프를 만나면서, 베니가 사물이 이야기를 듣는 것은 베니만이 고유한 능력이자 재능이라는 걸 인지하게 됩니다. 베니과 그들과 함께 하면서,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자신을 받아들이며,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의 인연생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연결 매개는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에서 인연들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있는 베니와 베니의 엄마 애너벨에게 도움을 손길을 전하면서, 고립될 뻔한 그들이 세상과 연결되어,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극적인 전개는 없지만, 우리 각자 서로 구분짓지 않고, 서로서로 연결되어 한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이 소설의 메시지가 그렇게 친절하게 와닿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사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베니를 보고, "과연 베니가 비정상일까? 베니를 이상하게 몰아가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주변사람들이 비정상일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더해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감각에 귀를 기울리고 자연과 주변이 전하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적은 있는가?"라고요. 갓난 아일 키우고 아이의 감각을 키우고 감각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다보면, 우리는 우리의 감각과 본능에 집중하게 되고,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아이를 자연에 가장 먼저 데리고 갑니다. 즉,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 베니는 감각이 잘 발달한 아이이고, 자신의 감각을 어찌 다룰줄 몰라서,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으나, 어른들은 그를 비정상으로 몰아갔지요. 감각을 잃은 베니가 비정상이 아니라, 베니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감각을 잃은 것일수도 있습니다. 베니의 말에 조금더 귀를 기울여본다면,그들이 잊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더 면밀히 살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재는 이미 미래세상이라고 여겨질만큼, 기술문명이 우리 일상에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가 스스로 느끼지 않아도 무엇이든, 아주 자동적으로 얻으며, 시각적으로 혹사 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감각에 몰입할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길 꺼려합니다. 이미 자본주의에 기반한 미래기술문명이 편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지요. 편리해진 삶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감각에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들이 썩 편치 않아보입니다. 부정적인 얘기만하는 것 같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지 않으려하지요.

허나, 자신의 감각과 마음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차가운 기계가 되어, 우리는 미래사회 속에 부속품으로 살게될지도 모릅니다. 미래사회에 도태되지 않으려고 인간 본연의 감각과 본능을 무시하게되고 편견과 선입견은 극대화될 것이며 차별은 일반화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감각을 다시 깨우지 않는다면, 물질문명과 풍요 속에 살아도 편협해지는 인간으로 변모할 수 있습니다.

인간인 우리는 감각에 귀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야하며, 마음의 시야를 넓혀서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되찾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각기 다른 입장이나 환경의 사람이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의 인연생기>를 한번쯤 생각한다면, 우리는 시공간을 넘어서 함께 존재한다는 걸 알게될 것입니다. 다양하고 다채로울 수 있으나, 현대 삶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누군가를 배척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한 공간에서 존재하고, 떨어져있어도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만 가져도, 지금을 살아가는데 호기심을 잃지 않게됩니다. 아무리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아도 함께 살아가는 힘도 생겨날 수 있거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이 타고난 오감과 본능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더 절실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 맘에 와닿는 글귀


p. 55 그리고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책의 존재 이유도 그거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표지와 표지 사이에 최대한 오랫동안 안전하게 간직하는 것. 우리는 당신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에 대한 당신들의 믿음을 지속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당신들의 기분에 관심을 쏟고 당신들을 완전하게 믿는다.

p. 55 책에게도 기분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비운의 여인들에 대한 이 낭만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어떤 기분일지 한 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로 끝나고 '너'로 시작하는 경계선이 피부에 표시되어 있다면, 열정적으로 그 경계를 넘는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런 순간들에 사실 우리는 당신들을 부러워한다.

p. 64 다른 목소리들은 꿈속에서도 나타났어. 그렇게 시작된 거야. 마치 한 목소리가 문을 열자, 나머지가 따라 들어온 것 같았어. 꿈을 문과 같아. 또 다른 현실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 거지. 그리고 일단 그 문이 열리면 조심하는게 좋을 거야.

p. 65 어두운 면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쪽으로 가고 싶어하지 않아. 그보다 사람들은 밝은 면에서 안전하게 머무는 편을 선호하지. 하지만 예술가와 작가와 네 아버지 같은 음악가들은 어두운 매력에 저항할 수 없어. 그건 책들이 잘 아는 영역이고, 좋건 싫건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게 우리의 임무야.

p. 95-96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심지어 그런 일이 시작되었을 떄도 당장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미친짓을 하는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온갖 일상적인 물건과 옷, 심지어 저녁 식사까지 입과 눈, 태도와 자유의지를 가지고 마치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행동한다면 결국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유의지. 물건들은 정확히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돼지갈비와 플란넬 셔츠. 포춘쿠키와 고무 오리. 심지어 젖가락도 뭔가 하말이 있었다.

p.96 -97 처음에는 그것이 목소리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목소리는 인간이 내는 소리다. 아, 맞다. 동물도, 새들도 목소리가 있다. 그러니 목소리는 생물에게서 나온다고 치자. 그리고 보통의 경우 목소리가 말을 할 때는, 뭔가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소리들은 그냥 아무렇게나 지껄였고, 설령 그런 소리가 뭔가를 의미한다 해도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지독히 답답했을 것이다.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누군가가 나타났는데, 하필 그것이 멍청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으니 말이다. 그들이 항상 짖어대는 것 같고 짜증 내는 것처럼 들렸던 것도 놀랍지 않다.

p. 97 처음에는 목소리들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떨 떄는 생각이 머리와 동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는데 실은 머리 안에 있는 것이지 않나? 음, 그런데 그 목소리는 내 생각이 아니었다. 그건 외부에 있었다. 그것은 달랐다.

p. 98 내가 목소리에 귀를 맞추는 법을 배운 건지, 아니면 사물들이 내가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거다. 아마 우리가 서로를 훈련시켰을 거다. 그리고 그러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 몇 달동안 목소리가 왔다 갔다 했고,몇 주씩 들리지 않고 지나가기도 했다.

p.181 사물들은 여전히 속삭였다. 그들은 여전히 말했고, 나는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들은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이곳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이곳은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는 모든 것에 제자리가 있고, 사서들이 그렇게 되도록 관리한다.

p. 191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단어들이 그 의미로 그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그것들이 말하려는 것을 이해하려면 시작으로, 문장과 문단과 장, 그리고 책의 첫머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책은 어딘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 첫 장의 첫 음절에서 시작해서, 그는 입술을 움직여 단어들을 읽었고 단어들이 결합하여 문장이 될 때 입밖으로 소리 내어 발음했다. 마치 단어들이 그의 입술에 생기를 불어넣고 그의 혀를 빌려서 세상에 속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p. 248 도서관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지. 공공도서관은 꿈의 사원이고, 사람들은 늘 여기서 사랑에 빠지지. 어쩌면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이야. 책은 결국 사랑의 작품들이야. 우리의 몸이 육체적 결합의 신비를 즐기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라도, 우리 중ㅇ에 가장 재미없고 딱딱한 책들, 가장 낭만적이지 않은 책들조차 인간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어.

p. 275 몇 년 동안 나는 어조와 목소리를 이해하는 데 능해졌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 조금 힘들었는데, 사람들의 거짓말과 농담은 내게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아서 처음 글 읽는 법을 배우고 음절을 소리 내어 읽어야할 때처럼 연구하고 연습해야 했다. 우선 사람들의 말소리를 익힌 다음 기계적으로 암기해야 했다. 사물들은 정직해서 더 쉬웠다. 그것이 사람과 사물 간의 차이였다.

p. 301 어쩌면 늙은 부랑자 취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말은 이상하게 말이 되는 것 같았고 갑자기 그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백만 개쯤 생겼다. 정확히 철학적인 질문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용적인 질문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당신은 어떤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나요? 목소리가 당신에게 뭐라고 말하고, 당신은 목소리가 말하려는 것을 이해하나요? 목소리가 친절한가요, 잔인한가요? 그것이 자해를 하라고 말하나요? 늘 목소리를 듣나요? 목소리가 특정한 사물에서 나오나요, 아니면 그냥 허공에 무작위로 떠다니나요?

p. 328 내가 미술에 소질이 없다고 해서 꼭 창의적이지 않은 건 아니었어. 보틀맨이 그렇게 말했고, 그는 시인이기 때문에 알아. 그는 내가 과민하고 초자연적인 청력을 지녔으며 그래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라고 말했어. 내게 필요한 건 그저 나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그것을 이용해 스스를 표현하는 것뿐이라고 했지. 그것이 보틀맨이 하는 일이야.

p. 354 (등장인물 부랑자 시인 슬라보이의 말) "어린 학생, 내가 시에 대해 말을 좀 하겠네. 시랑 형상과 공백의 문제야. 내가 빈 종이에 어떤 단어를 쓰는 순간, 나는 혼자서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네. 거기서 나오는 시는 나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형상이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물론 결국 해결책은 없어. 더 많은 문제가 있을 뿐이지. 하지만 이건 좋은 일이네. 문제가 없다면, 시도 없을 테니까."

p. 356 (등장인물 부랑자 시인 슬라보이의 말) "나는 자네를 믿는다네. 그건 그 의사의 문제야. 자네는 자네의 문제만을 처리할 수 있어. 자네가 목소리를 듣는다면, 도와주는 게 자네가 할 일이야. 자네는 비서가 되어야 해. 대필자가 되는 거지. 혹시 대필자가 뭔지 아는가? 그건 받아쓰는 사람이야. 받아쓰기가 뭔지 아는가? 그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적는 것이지. 어쩌면 그게 시야. 어쩌면 그게 이야기이고. 남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자네가 목소리에 형상을 부여하는 걸세."

p. 359 사물들의 꿈 이야기가 바로 그래. 사물들의 느낌 혹은 목소리는 말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자마자 이야기가 증발하기 시작하지. 그래서 내가 받아 적은 것이 그토록 형편없는 거야.

p. 360 나는 목소리가 들릴 때면 대체로 목소리를 차단하거나 대체카드를 이용해 쫓아버리려 했어. 그냥 내버려두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 내가 그 얘기를 했더니, 그의 덥수룩한 눈썹이 이마로 올라갔어. 그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어. 내가 목소리를 드는 것은 재능이라고, 그것들을 차단하거나 쫓아버리려 하면 안 된다고 말했어. 그리고 내가 식탁 다리 이야기를 잘하는 걸 보니 재능이 상당히 뛰어나다면서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했지. 자기가 쓴 글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으니 닥담할 것 없다고 했어. 나는 글쓰기에 대해 잘 모르고 국어 과목을 잘해본 적도 없어. 그래서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몰라. 너는 알거야. 너는 책이니까. 아는게 마땅하지.

p. 458 그것은 이상한 감각이었다.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 이래로, 그는 진짜로 귀 기울이는 습관이 사라졌다. 목소리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듣거는 되지만, 굳이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부분은 그러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것은 달랐다. 그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게 다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너무나 단순하고 아름다웠다. 상승했다가 하강하고 휘파람 소리를 냈다가 점점 줄어들었다가 다시 커졌다. 그것은 진짜였다.

p. 571 그리고 우리도. 넌 우리도 안에 받아들였고, 일단 네 안에 들어가니 우리는 너의 감각의 관문에 도달하여 마침내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 혀로 맛보는 것, 피부로 만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지. 결국 책이 원하는 건 바로 그거야. 우리는 몸을 원하고, 우리는 처음으로 몸이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할 수 있었지. 우린 몸이 불러일으키는 의식을 지각할 수 있었어. 우리가 너에게 묶이지 않은 세상을 주었다면, 이건 네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어.

p. 610-611 여자들은 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신이 충분한 존재가 아니라는 지속적인 두려움을 떨여낼 수 없는 걸까? 그들은 왜 늘 뒤쳐져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 왜 그들은 더 나아질 수 있고 더 나아져야 한다고 느끼는가? 그들이 티셔츠를 개키고 아이들을 키우고 경력을 관리하고 삶을 영위하는 방식을 통제하기 위한 단순한 규칙들을 원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은 옳은 방법과 그른 방법이 있다고 믿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 것이 있어야만 했다! 옳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을 찾고 규칙을 배울 수 있다면, 삶의 모든 부분들이 제자리를 찾고 그들이 행복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p. 616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책은 단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책'이라는 개념은 그저 편리한 허구일 뿐이며, 우리 책들은 그것이 출판업계에서 경리 담당자의 필요와 두말할 필요없이 작가의 에고를 충족하기 때문에 그 개념을 따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물론 개별적 책들이 존재하며, 어쩌면 당신은 지금 손에 한 권을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우리의 전부는 아니다. 자만심 덩어리처럼 보일 위험을 감수하고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이기도 하고 다수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변하는 다수이며, 무형의 흐름이다. 형태를 바꿔가며, 우리는 책장 위의 검은 표시로 인간의 눈을, 그리고 소리의 분출로 인간의 귀를 만난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당신네 인간의 마음속을 여행하고, 따라서 우리는 융합하고 증식한다.

p. 664 우린 진짜여야 해. 그리고 그건 '네가'하고 있는 일이야. 그것이 너의 철학적 질문이었잖아. 기억나? '진짜란 무엇인가?' 모든 책은 가슴에 질문을 하나 품고 있고, 그게 너의 질문이었어. 일단 그 질문을 던졌으니, 네가 답을 찾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야. 그래, 맞아. 우린 네 책이야, 베니. 하지만 이건 너의 이야기야. 우린 널 도울 수 있지만, 결국 네 삶을 살 수 있는 건 너뿐이야. 네 엄마를 도울 수 있는 것도 너뿐이야.


>>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인 관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2월의 어느 날
조지 실버 지음, 이재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나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서 자기계발서나 성공적인 삶을 위한 방법론적인 이론서들을 읽다가, 머리도 식힐겸 오랜만에 로맨스 소설 12월의 어느 날을 읽었습니다. 사랑과 관련한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어떤 스토리로 전개될지 궁금해서 책장을 바로 펼쳐봅니다. 



■ 12월의 어느 날 줄거리


그냥 그저 그런 따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로리의 2008년 12월 21일. 버스 안에서 온갖 복잡한 생각을 하던 중, 버스 차창 밖으로 어느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문제는 차창밖의 남자와 로리가 같은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러나 서로에 대한 강렬한 끌림에도 불구하고 버스 밖에서 마주하지 못한 그들은, 만나지도 못하며 바로 이별해야만 합니다. 버스 차창 밖의 남자에 대한 여운이 너무나 컷는지 로리는 그를 잊지 못하고 1년의 시간을 날려 버릴 뻔한 찰나, 차창 밖 버스보이는 세라의 남친이 되어 로리 앞에 나타는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을 마주합니다. 세라는 로리에겐 절대 없어선 안될, 자매 그 이상의 소울 메이트며, 그녀의 남친 잭은 로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자라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소설은 잭과 로리의 관점을 교차하면서 전개됩니다. 로리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 잭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누릅니다. 잭 또한 1년 전 겨울 버스 안에서 로리와 눈이 마주친 이래로 로리를 자주 생각했지만, 세라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버스 차창 밖의 남자라는 사실을 로리에게 숨기지만, 로리에 향한 마음을 최대한 감추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 느낀 점 


사람은 나이가 어리나, 나이를 적당히 먹으나 사랑에 서툽니다. 마음은 통하지만 이해관계에 얽혀서, 혹은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사랑이 어긋나거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거나, 사랑에 아파본 적 있나요? 개인적으로 20대에 이성에 눈을 뜨고 누군가를 좋아해도 좋다는 표현을 못해 시간만 끌다가, 그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좋아할 타이밍을 놓쳐서 땅을 치고 후회한 적이 있어요. 반대로, 분에 넘칠 정도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처음 좋아한 사람한테 마음이 꼿혀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멀리하는, 미련한 사랑도 해봤습니다. 내 마음이라는 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되면 갑자기 복잡해지고, 어리석어지기도 하며 우유부단하는, 갈길을 종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사랑"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서툴러지는, 젊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소설 -, 12월의 어느 날을 읽고, 사랑 때문에 힘겨워했던 지난 20대가 떠오르더라고요. 참, 지금의 사랑을 얻기까지 많은 인내의 시간을 보낸 것도 생각났고요.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는데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데요. 이 소설에서는 자그만치 10년의 시간을 두고,복잡 미묘한 사랑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소설은 읽으면, 영화 "러브, 로지"가 생각납니다. 이 영화에선 여주인공인 남자주인공을 오랜시간 짝사랑하는, 고구마를 수백개 머금은 듯한 답답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도 생각납니다.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어긋나는 사랑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답답합니다.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 로리가 "때로는 인연을 잘못된 때에 만나기도 해요(p. 489)"라고 언급한 것처럼, 내가 원하는 사랑을 제때 이뤄내기도 힘들고 그만큼 인내의 쓴맛도 필요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사랑하는 두 사람만 느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사랑은 이뤄지기 전 쓴맛을 제대로 보게 한 후, 이를 극복하면 단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죠. 사랑은 수학공식만큼, 아니 수학공식처럼 복잡 미묘합니다. 그래서 사랑 때문에 안 울어본 사람 없잖아요.


앞서 언급한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이 바로 맞으면 좋지만, 사랑은 타이밍이고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고, 특히 이뤄지지 않거나 이별 후에 느껴야하는 상실감은 말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랑에 갈증을 느끼며, 사랑을 채우거나, 사랑을 이루기 위해나름의 인고의 시간을 보냅니다. 사랑에 상처를 받지만 사랑으로 치유하지만 이뤄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나 큰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로맨스소설입니다. 다만, 극적인 클라이막스는 없습니다. 로리와 잭의, 서로를 향한 사랑에 대한 내면적인 갈등이 소설 전반을 이끌어 나가는데, 사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듯 하여 살짝 지루한 면도 있습니다. 사랑을 품은 사람들의 감정이 전부 거기서 거기라는 건 알지만, 사랑을 두고행복한 결실을 맺기까지 얼마나 버거운지를 들여다 볼 수 있었어요. 



책글귀


p. 62 운명의 장난으로 세라와 내가 같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새해 각오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내 마음은 털끝만큼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 몰랐을 때가 훨씬 편했다. 그때는 그를 상상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그때는 붐비는 바에서 그와 마주치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를 발견하고, 그의 눈이 내 눈과 만나고, 우리 둘 다 서로를 기억하고, 다시금 기적이 일어나 준 것을 기뻐하는 공상이 허락됐다. 


p. 71 로리와의 사이가 어색히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어색하다. 그게 내 탓이란 것도 안다. 그녀는 아마 나를 보기 드물게 따분한 별종으로 생각할 거다. 내 화술이 그녀 옆에만 가면 말라버린다. 한 번 보고 계속 생각나는 여자였던 로리를 세라의 친구로 재설정하려 용쓰는 데 정신 에너지가 몰린 탓이다. 거기다 끔찍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여파도 크다.


p. 81 우리는 다시금 침묵에 빠진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뭐라도 할 말을 이리저리 찾는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할까봐, 그에게 나를 버스 정류장에서 본 기억이 없느냐고 물어보게 될까 봐. 조망간 내가 이 망할 충동과 싸울 필요가 없어지기를, 그 기억이 내게서 중요성도 타당성도 잃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희망한다. 이 또한 지나가기를.


p. 82 내가 실제로 생각한 건, 내가 두 사람 다 많이 좋아한다는 거고, 바로 그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p. 93 이제 어젯밤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나는 잭과 어떠한 부도덕한 짓도, 적어도 오늘 아침 전통적인 의미에서 낯을 붉힐 어떠한 짓도 하지 않았다. 막말로 그에게 젖가슴을 내보인 것도 아니고, 사랑 고백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떳떳한 기분은 아니다. 솔직히 선을 넘은 건 사실이니까. 비록 가늘어서 거의 보이지 않는 선이었지만. 지금껏 낚시줄처럼 발목에 엉켜 있던 그 선이 언제라도 내 발을 걸어 넘어 뜨리고 나를 결국 거짓말 쟁이로 만들 것만 같다.


p. 160 사랑을 찾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깨달음 같은 건 나도 작게나마 챙기고 있다. 나는 회복실에 입원 중인 환자와 비슷한 상태다. 내 실수들을 스스로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있고, 잭과 저지른 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고, 여전히 좋은 사람이며, 여전히 세라의 진정한 친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는 내게도 행복해질 자격이 생길지 모른다.


p. 257-258 꽃은 항상 이런 식이다. 한때는 더없이 화려하게 만발해서 사람의 관심을 요구하고, 우리도 그 더없는 아름다움에 넋을 놓는다. 하지만 한순간에, 그야말로 한 순간에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된다. 꽃은 시들고 꽃병의 물까지 갈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흉물이 된다.


p. 410 나는 내 인생과 엮어 있는 잭 오마라라는 뿌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는 나의 너무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고, 나도 그의 일부가 되어 있다. 뿌리가 끊기는 문제점은 그것이 가끔은 나무를 완전히 죽이기도 한다는 거다. 하지만 그건 감수해야 할 몫이다. 내 결혼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무두를 지키기 위해서.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리얼라이즈> 이후 T.M 로건의 새로운 소설 《29초29를 만났습니다. 저자는 주로 현대의 사회문제들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전개합니다. 지난 번에 읽었던 소설 <리얼라이즈>도 SNS로 인한 진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힘, 즉 판단력이 약해지면 얼마나 큰 혼란을 경험할 수 있는지를, 소설로 보여준 작품이라면, 이번 소설 《29초29》은 힘을 가진 자가 지신만의 권한으로 힘없는 자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29초 줄거리 


내게 이름 하나를 주십시오. 한 사람의 이름을. 내가 그 사람을 사라지게 해주지(p. 144)


두 남매의 엄마이자, 대학 계약직 강사로 간간히 생활하며 정규 교수를 목적으로 고군분투하는 세라. 설상가상으로 남편 닉은, 자신을 찾아야겠다며 세라와 가족을 떠나있는 상태. 혼자서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하는 그녀의 절박한 상황에, 그녀를 옥죄는 한 사람 앨런 러브룩이 있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아주 뛰어난 학자이자 재능있는 연구자이며, 특히 그의 전문 분야에 있어서 이미 세계 최고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미 사회적 세계적으로 그의 역량은 정편이 나있어서, 대학은 그를 통해서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어서 그의 이면에 어둡고 비열한 모습이 있다할지라도, 눈을 감아 주는 상태. 앨런 러브룩은 그런 그의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세라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하며 그녀의 절실함을 쥐고 흔듭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디어도 그가 자신의 것인냥, 중간에 낚아채며 뻔뻔하게 굽니다. 세라는 치욕적인 상황임에도 겨우 버텨내고 있던 어느 날, 세라의 딸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위험에 처한 상황을 목격합니다. 아이를 위협하는 남자를 향해서 세라의 차를 몰아붙이고 그를 들이받고 아이가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들이받힌 남자의 동료가 세라의 차 번호를 찍은 후 그 자리에서 뜨는데, 세라는 그들이 그녀에게 보복할까봐 극도로 불안한 일과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를 평소에 주시하고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그녀에게 복면을 씌우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그녀가 마주한 사람은, 세라가 구해준 아이의 아빠, 볼코프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마피아이자 대부호였습니다. 세라로부터 소중한 딸을 지키는 신세를 졌다며, 신세를 갚을 기회를 주라고 합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사라졌으면 하는 한 사람의 이름을 볼코프에게 알라주면 볼코프의 전문방식(?)대로 그녀의 인생에서 누군가를 사리지게 해주겠다는, 썸뜩하지만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느낀 점


이 소설을 읽으면 미투운동이 생각납니다. 각 분야의 최고라고 알려진 사람들이 꿈과 성공을 갈망하는 힘없는 자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던, 암묵적으로 묵혀서 세상에 털어낼 수 없던 진실들을 표출할 수 있었던 그 운동. 저자인《뉴욕타임즈》가 할리우드의 성추문 관련 보도하기 1년 전인 2016년부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추측하자면,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절대 권력자들이 이미 꿈이 크고 성공을 원하는 힘없는 여성들에게 성상납을 강요하며, 꼭 성공의 동아줄이라도 되듯, 변태적인 행위가 이행되고 있었으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묵혔던 진실이 언론의 보도로 인해서 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들의 권력은 꿈이 절실한 여성들의 경력 혹은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진 치욕적인 폐해를 시사했습니다. 


소설 초반부터 앨런 러브룩은 세라를 희롱하는데 진짜 화가 나더라고요. 그리고 세라의 입장에 감정이입되는 건 당연한거고요. 그녀와 같은 성희롱을 당한 건 아니지만, 내 위치를 바로 잡기 위해서 치열한 노력을 해도, 결국엔 힘있는 자들의 한마디에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정규 교수의 자리를 두고 세라와 같이 성상납을 요구받는 입장이 된다면, 상상만해도 너무나 끔찍합니다. 정규교수직에 대한 절실함을 볼모로, 절대 권력자 앨런 러브룩의 압박을 견뎌내는 건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살고자 허우적대는 고통과도 같은데, 그 순간, 신세를 갚겠다면 그녀에게 나타난 러시아의 대부호인 볼코프의 제안에 그녀는 고민하다가 29초의 통화로 앨런 러브룩이라는 이름을 남깁니다. 그리고 앨런 러브룩이 실종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간접적으로 그를 사라지게 한 것이라며 불안해 합니다. 그러나 왠걸, 독자가 상상했던 당연한 전개로 이야기는 흘러가지 않습니다. 실종되어 사망했을 것이라 짐작했던, 러브룩은 살아서 돌아와, 그의 실종이 세라와 관련있다고 확신하는데, 아오- 솔직히 이 장면에서 정말로 환장합니다. 앨런 러브룩은 자신의 분야에서 명성을 얻을만큼 훌륭한 인재라는 점에서, 상또라이지만, 엄청나게 치밀하게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힘없는 세라의 상황은 이전보다 더 심각해집니다. 그렇게 확신에 차서 세라에게 신세를 갚겠다던 볼코프의 허술함에도 화가 났습니다. 활활 불타오르는 세라의 절박한 삶에 석유를 드립다 붙는 형국같아 보였으니까요. 진짜, 여기서 "볼코프의 힘은 세라를 돕는데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일까"라며, 세라의 입장에 다시 한번 몰입하면서, 읽었던 소설 《29초29》. 


소설의 초반에선 화가 솟구치고, 중반에 들어서면서 세라의 힘겨운 내적갈등을 보고 있노라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그저 답답해서 책장을 덮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후반부에 들어서서는 내가 예측했던 사실과 다르게 급커브를 터는 듯 전개되는 반전에 사실 깜짝 놀라기도 했고, 세라는 후반에 가서도 앨런 러브룩의 똑똑한 치밀함에 극으로 내몰립니다. 책장이 몇 장 남지 않았는데, 끝나지 않는 치욕적인 세라의 처절함. 세라는 이렇게 끝나는 것인지, 손에 땀을 쥐며 결말을 집중해서 들여다봤습니다.


추리소설이라곤 하지만, 단순히 추리소설이라 단정지을 수 없는 《29초29》 현실에서도 이런 일들이 허다하고, 특정 음흉한 엘리트 카르텔 무리들은 힘없는 자들의 꿈과 성공을 자신의 손에 달렸다며 우쭐대고 있으니까요. 문명이 발달하고, 지성인이 많아지면 힘없는 자들은 비이성적, 비인간적, 야만적인 처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교활해지고 심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너무나 씁쓸했습니다. 비난 해외에서만 그렇습니까, 언어와 문화만 다를 뿐, 사람이 가진 욕망은 누구나 비슷하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에서, 더욱더 쓰라립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힘을 길러서 용기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지금 생을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 책글귀


p.80 그런 다음 스테레오의 음향을 최대로 높이고 운전대를 꽉 쥔 채 소리를 질렀다. 좌절감과 굴욕감에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 모든 부당함에 대해 소리를 질렀다. 억울해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서, 그리고 너무도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건 단지 화에 그치지 않았다. 그 이상이었다. 그건 분노였다.


p. 133 "아닙니다. 진정한 선행이란 조금의 사심도 없는 행위지요. 보상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겁니다. 그 특성상, 진정한 선행에는 사실 보답이란 걸 할 수 없습니다."

p. 215 그동안의 노력이, 그 모든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 그 모든 공부와 시험, 박사 학위, 면접, 잠 못 들던 밤과 단기 계약직, 고군분투, 희생, 트라우마, 가끔 찾아와준 작은 승리. 다 아무것도 아닌 게 디었어. 0. 무(無). 러브룩이 모든 패를 다쥐고 있으니까.

p. 414 계획이 파편들이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러브룩이 아직 살아 있음을 알게 된 바로 그 순간부터, 세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할 때 조차,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합쳐지고 있던 조각들이다. 마지막으로 던질 주사위가 될 계획이었다. 


p. 462-463 세라가 일어났다. 몸을 꼿꼿이 세우고 서서, 자신이 만든 무기를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꽉 쥐고 있었따. 굴복하고 싶은 마음이 자신에게서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그 모든 이성이, 논리와 상식이, 걱정과 우려가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지난해의 그 모든 좌절과 분노를 끌어올리고 몇 달간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 그 모든 두려움을 들이켜며, 이 감정이 온몸에 퍼지도록, 전부 이 남자에게로 향하도록 했다. 그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본모습을 감춰왔던, 그렇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 남자를 향해. 끝을 내야 했다, 어떻게든. 




■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