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너머 - 불확실한 세계를 돌파하는 과학의 태도
카밀라 팡 지음, 조은영 옮김 / 푸른숲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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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고, 직접 가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호기심도 상당합니다. 그중에 한치도 예상할 수 없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그래서 살고자하는 미래를 설계하고, 그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일종에 장기프로젝트와 같습니다. 한치도 앞도 예상할 순 없지만 적어도 방향성을 잡고 흘러가자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거든요. 그래서 마음가짐과 행동지침과 관련한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이는 삶 자체를 직접 통제해서 안정지향을 유지하는 욕구에서 기반한 태도입니다. 내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삶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저만의 통제권 안에 삶을 두려고 했습니다. 허나, 삶이 그렇게 계획대로 호락호락 흘러가나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AI가 일상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이상 기후 현상과 경제의 불확실한 유동성으로 위기감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우리가 고수한 삶의 방식에 흐름과 패턴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급진적인 변화 속에서 예측불가해진 삶을 받아들이고 불안을 덜어내는 방법은, 카밀라 팡의 《궤도 너머》라는 책을 통해 과학적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자유분방항 성향이라고 여겼으나, 큰 그림을 그리며 계획을 세우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성향이라는 건, 남편을 만나서 결혼식을 올리고 아일 낳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적당히 저만의 역량껏, 예측가능한 범위 내에서 살아가는 걸 지향하기에, 예측불가한 미래는 때론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정해진 틀 밖의 삶을 벗어나보는 것이고, 그 곳에서 혜안과 대안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힘을 실어줄 책이, 과하자가 쓴 책 《궤도 너머》입니다.



>> 저자 카밀라 팡에 대하여



인문학도인 제가 이공계 과학자가 쓴 책에 시선이 간다니. 이쯤이면 독서 편식을 극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이라하면 머리아픈 분야라고 생각했건만, 인문학에서 접해보지 못한 관점을 과학적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으며,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 카밀라 팡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습니다. 그는 생물 화학, 물리학, 화학, 통계학, 역학, 광학, 컴퓨터 과학, 정보 과학 등 과학의 광범의한 영력을 섭렵한 여성 과학자입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8살 때 자페 스펙트럼 장애를, 26살에는 ADHD 진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타이니 봤을 땐 그가 불편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염려와 달리, 그 스스로 자폐와 ADHD만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과학의 여러 분야를 넘나들었고 그만이 터득한 혜안과 통찰에 불확실하게 흘러가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풀어냈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 구성 및 내용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부터 9장까지, 관찰/가설/집중/해석/수정/연결/증명/편향/상상, 그리고 결론에는 덜어내기로 내용이 짜여져 있어요. 또한 관찰로 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보는 법, 가설로 정해진 답이 없을 때 필요한 시각, 집중으로 복잡한 인생을 단순하게 만드는 기술, 해석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읽어는 힘, 수정으로 조금씩 나은 길로 나아가기, 연결로 서로 다른 세계의 충돌로 열리는 새로운 세계, 증명으로 완벽함을 위해 무한히 기다리지 않는 법, 편향으로 나의 편향을 무기로 삼는 법, 마지막으로 상상으로 한계를 넘어 새로운 현실을 설계하기로, 삶을 대할 때 우리가 느끼는 혼란을 구체화하고, 시선을 확장하거나 달리해서, 새로운 현실로 설계해보는 일련의 과정들을 이 책 한권에 담았습니다.



>> 감상평


인문학은 따사롭고 포근하게 느끼고 이공계는 차갑고 냉정하다고 이분법적으로 나눴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이공계를 배척했죠. 과학 실험실이나, 병원 수술방을 생각해도 냉기가 흐르고 딱딱한 분위기가 흐르며 인간적이지 않고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인간미가 없다고 여기곤 하죠. 하지만 지나치게 인문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너무나 두리뭉실하게 봤던 저는, 어떠한 경계도 없이 선을 넘나들며 비효율적인 삶을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음의 에너지는 고갈되어 혼자서 무기력하게 살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고유한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성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저는, 고유한 에너지를 무분별하게 써서,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때 한번 무너지고서야, 때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또한 분별하는 힘이 생겨서, 언제 어떻게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안배할지도 알게 될테니까요.

이처럼,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삶을 한동안 지향하게 됩니다. 치우치다보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요. 저처럼 말이죠. 인문학적 사고와 이공계적인 사고의 균형은 꼭 필요합니다. 특히, 상수가 아닌 변수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서 불안에 떨고 있다면 더더욱 말이죠. 역사적으로 봐도, 세상은 특정 시기에 엄청난 변수(자연재해, 전쟁 그리고 기술발달 등) 로 인해 급진적으로 변화했고 생활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변화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은 위기를 맞이하고 변화에 어느정도 준비된 사람에겐 기회이자 전환점이 되었죠. 안정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닦아놓은 안정적인 길로만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그 길을 걸어가봐야 알죠. 또 거기서 위기가 될지 기회가 될지는 격어봐야 압니다.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삶은 언제나 기회이자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궤도 너머》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과학자는 괴짜 인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과학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사정없이 깰 수 있었습니다. 과학자는 꽉막힌 성향이 아닌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과학자는 일반인이 보기에 말도 안되고, 뻔히 안될 것 같은 영역에 호기심을 가집니다. 이땐 좀 괴짜 같아 보이죠. 과학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을 탐구합니다. 만족스러운 정답을 정해놓지 않습니다. 특정 현상이나 사물을 관찰하고 가설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험하는 과정을 통해서 어떤 결과로 흘러갈지 들여다봅니다. 과학의 여정 속에서 혜안을 찾고 인사이트를 발견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불확실한 삶을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망망대해 물류를 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옛 시설에 비하면 현대는 너무나 편리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미래가 불확실해서 불안에 떠는 이유는 결핍을 못 느낄 정도로 물질 과잉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잉이여서 기준을 정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죠. 이에 과학자는 이때 <덜어내기의 힘>에 대해 언급합니다.


우리는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일과 여가에 대해 모두 같은 난제를 마주한다. 세상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 작은 공간조차 가능성의 측면에서 설명하자면 대단히 크다. 모두 다 가질 수는 없다. 연구 주제를 골라야 하는 박사 과정 학생처럼 결정해야 하고 적당한 범위 안에서 그 결정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자기에게 이상적인 인생이 어떤 모습이닞 알아낸 다음에는 최선을 다해 그 삶을 살면서 그 과정에서 차 버렸던 다른 모든 경로는 잊어야 한다. p. 289

인생은 행운과 행복보다는 난재와 불행의 연속입니다. 명확하지 않는 정답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만족스러운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덜어내면서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그자체가 삶이자 인생입니다.


앞으로 나는 흥미로운 주제를 읽을 때나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신나게 비명을 지를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는 그 불편함이 오히려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그게 과학의 본질이다. 새로운 가능성으로 꾸준히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존재. 이는 곧 캐묻고 탐구하고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늘 있다는 뜻이다. 언제나 한 발을 문밖에 내민 채로 다음에 무엇이 올지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p.291


과학의 본질과 같이, 불확실함을 확실함으로 전환하려는 집착보단 불확실함을 미지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훨 낫습니다. 왜냐구요? 그 속을 탐험하는 재미가 더해질 것이며, 우리가 알지 못한, 새로움을 발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증폭되기 때문입니다. 불안에 떨면 시야가 좁아지고 마음만 고집스러워집니다. 시야를 넓히고 관점을 전환한다면 불확실한 삶은 우리의 새로운 개척지가 될 것입니다.



>> 문장수집


p. 11 우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어떻게든 스스로 해 보려는 무모한 경향을 보인다. 즉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삶을 어떻게 끄려 나갈지에 관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차가 고장 나면 정비소에 간다. 혈압에 문제가 생기면 병원에 간다. 그런데 평생이 걸리지도 모를 인생의 답을 찾는 일에는 무작정 자기의 감만 믿고 도전한다니. 다행히 우리에게 던져진 삶의 중요한 문제들에 막무가내로 접근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아주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전문적 조언이 있다. 바로 과학자들의 집단 지식이다.


p. 12 물론 과학자라고 해서 최선의 삶을 사는 법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실험을 계획하고 그 실험이 찾아낸 증거를 이해하기에 이들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 나는 과학자의 자세와 과학의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 삶의 중대한 질문에 답을 찾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보여 주고자 이 책을 썼다.


p. 17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기회를 발견하는 법, 계산된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 새로운 아이디어에 다가서는 자세,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책임지는 방법 등. 이것들은 과학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요소일 뿐 아니라 삶 전반을 확고하고 충만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나는 삶에 과학을 더했을 때 어떻게 인생이 한층 더 풍부해지는지를 알려주고 싶다.


p. 23 관찰은 과학을 한다는 의미가 무엇이고 과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는 시작점이다. 우리가 오감을 활용하고 모든 경험에 대해 질문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기 시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관찰은 모든 과학자에게 출발점이다.


p. 28-29 과학이 관찰로 시작한다는 생각은 아주 간단하고 직관적이다. 과학적 발견을 끌어내려면 실험이 필요하고, 실험을 계획하려면 가설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가설을 세우려면 반드시 관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관찰은 주의를 끌거나 색다르거나 잘못되었거나 이상하거나 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추가조사가 필요한 무엇을 인지하는 행위다.


p. 34-35 지나치게 개방적인 자세 때문에 갈피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 반대로 마음을 완전히 닫은 채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을 것. 그 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란 모든 과학 수행에서 끊임없이 주어지는 도전 과제다. 이는 내가 내 자폐성 두뇌로 런던에서 길을 찾아 나가면서 매일 겪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p. 45-46 모든 사람이 과학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주변의 세계를 관찰하고 탐색할 때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는 있다. 그러러면 먼저 스스로를 비판하는 관찰자가 되어 자신이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고 왜 그런지를 깨달아야 한다. 나쁜 데이터나 왜곡된 변수를 사용한 실험처럼, 정치적으로 결이 맞는 기사만 신뢰하거나 직장에서 작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피드백만 받아들인다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p. 57-58 과학자는 자신의 생각에 자신감을 자기면서도 증거가 다른 곳을 향할 때는 그 예측을 기꺼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 혹은 추측과 데이트를 얼마나 하든 꼭 결혼까지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의견을 형성할 때 염두에 두면 좋을 교훈이다. 틀렸을 때 의연히 돌아서는 겸허함도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착안하는 능력만큼이나 소중하다. 증거가 다른 말을 하면 아무리 확고했던 의견이라도 수정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더 나은 관점과 근거가 있다면 마음을 열고 경청해야 한다.


p. 67 우리는 가시적이고 증명 가능한 현실에서처럼 가능성의 측면에서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일어나야 하는가?"의 법칙만이 아니라 "무엇이 일어날 수 있는가?"의 원릴르 생각하는 것이다. 학문적 배경이 다른 내가 보기에 이 새로운 설명은 큰 위안을 주는 아름다운 포용이다.


p. 68-69 새로운 가능성에 접근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졌던 확실함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단지 새롭게 마련된 이론적 공간에서 실험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는 과학 연구에서도 올바른 자세고 삶에도 나쁘지 않은 조언이다. 때로는 지금까지 쌓아 온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상상해야 한다.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성취할 가능성을 품은 생산자로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정해진 일상을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시도할 가능성까지 모두 배제한다면 삶은 아주 소심해지고 만다.


p. 110 객관적 해석의 중요성은 좀 더 미묘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모든 과학은 실험이 어떤 제한적인 조건에서 설계되었는지, 다른 방법이나 매개 변수를 사용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변할지를 조사한다. 과학자들은 그들이 이끌어낸 데이터와 발견에 잠재적 오류나 간과한 부분이 없는지 살피면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반대로 좀 더 실험적이고 이론과 밀접한 분야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은 제한된 데이터에서 추론을 끌어내고 함의를 평가해 창의적인 해석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살피기보다 볼 수 없는 바를 추측하려는 시도다.


p. 131 과학 아이디어든, 경력 전환이든, 꿈의 집이든, 언제까지 바라볼 수만은 없다. 어느 시점에는 예비 연구를 멈추고 실전에 나서야 한다. 이곳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이고, 직장을 그만둘 때가 왔고, 이 실험을 계속하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차피 정보를 완벽하게 갖출 수는 없다. 미처 고려하지 못한 가능성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인생에서의 중요한 결정은 실제로 그 결정이 실행되었을 때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때로는 용기를 그러모아 자기 눈으로 본 증거를 믿고, 곱씹기를 멈춘 뒤 앞으로 나가야 한다.


p. 176-177 과학은 단지 다른 이들이 필요하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가진 기술이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놀라운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 회사를 세우려고 한다고 생각해보자. 회사에는 기술만 필요한 게 아니다. 회계, 직원 및 고객 관리, 그밖에 컴퓨터 코드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를 비롯한 사업 운영에 집중할 사람이 필요하다. (중략) 협업이라는 말은 대개 따뜻하고 다정한 의미로 사용되고는 한다. 그러나 현실은 서로 다른 능력, 성격, 가치과을 가진 사람들이 한곳에 엉켜 있는 상태다. 이러한 곳에서 예상되는 약간의 마찰은 필요한 요소다. 오히려 모두가 항상 같은 의견인 것이 최악의 상황일 수도 있다.


p. 178 아주 대다수의 과학 논문에서 저자가 여러 명으로 실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전문화된 연구 영역이라고 해도 온전히 개인의 힘만으로 이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학은 혼자서 개척하고 씨름하는 일이 아니다. 더 많은 발견을 위해 함께 비옥한 토양을 파헤치는 일에 더 가깝다. 공동 연구는 거의 언제나 바퀴를 부드럽게 돌리는 윤활유이자 발전을 가져오는 촉매제다.


p. 219-220 증명을 향한 충동은 과학이라는 작업을 계속 유지시킨다. 그러나 그로 인해 연구자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가게 된다. 혹은 증명을 과도하게 추구하면서 균형감을 잃는다. 이는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경고다. 우리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쥔듯 반짝이는 물체 앞에서 주의가 흐트러진다. (중략) 우리가 추구하는 일이 우리를 의미 있는 목표로 이끌기보다 길을 잃게 할 때가 더 많다. 증명되지 않은 이론이라도 멋지고 유용할 수 있다. 인생도 우리가 성공과 연결 짓는 사회적 지위라는 상징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충만할 수 있다. 과학은 너무 근시안적으로 집중하느라 진정으로 중요한 일을 잊으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p. 223 발견은 언제나 열린 결말이다. 과학 연구는 우리가 증명할 수 없는 것들, 어쩌면 영영 증명할 수 없는 것들 덕분에 계속해서 번성한다. 모든 답을 이미 다 알고 있다면 인새, 그리고 과학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p. 237-238 연구자가 자신이 발견한 것과 분석한 결과를 매 단계 기록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증거가 보여 주는 바를 책임 있게 기록하고, 새로 추가된 정보가 처음에 발견된 사실을 직접 바꾸지 않았는데도 무의식적으로 판단을 바꾸는 위험을 파하기 위해서다(단, 새로운 정보가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할 수는 있다). 모두를 위한 좋은 조언은 다음과 같다. 일단 경기가 끝나고 결과가 정해진 다음, 뒤늦게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우리가 생각한 기록을 수정하는 행위는 대단히 인간적이다. 따라서 그해의 목표든, 직업의 변화든, 새로운 관계에 관한 것이든, 생각을 실시간으로 적어 내려가는 일에 엄청난 함이 있다. 이는 자기가 6개월 전에 또는 2년 전에 얼마나 다르게 생각했었는지를 깨닫고 놀라는 경험 그 이상이다. 이러한 책임감 있는 기록은 우리의 무의식이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었다'라고 믿도록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p. 249 편향을 객관성의 적으로 돌리지 말고 사람들이 어떻게, 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이해할 열쇠로 사용하라. 자기 자신,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 매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편향과 잘 맞추어 나가야 한다. 이로써 자신을 더 잘 인지하고 공감 능력을 키우며 자신에게서 좀 더 해방될 수 있다. 인간이 지닌 편향이라는 풍부한 태피스트리는 삶 그자체의 직물이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바들을 집어 들어 저 태피스트리에 나만의 실타래를 추가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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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 - 청년세대의 정치무관심, 그리고 기성세대의 정치과잉
안성민 지음 / 디벨롭어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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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먹고 사는 일에 급급했을 땐 정치에 아주 무관심했습니다. 하루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데 정치에 관심을 둘 여력이 안되었거든요.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발언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고 무조건적인 복종만 강요받는데 늘 불만이 가득한 반면 열심히 일만하면 보상이라도 해줄 듯한 분위기로 몰고가서 주어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조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만큼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고, 허무함을 느껴서 조직생활을 그만두고 이후엔 번아웃, 공황장애와 우울증 등이 말려왔습니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처절하게 일을 했건만, 내 힘에 부쳐서 결국엔 스스로 낙오자를 자처했던 나. 사회부적응자라며 나를 몰아세우고, 세상과 타협하기 위해서 나 자신과의 싸움을 내적으로 많이도 했습니다. 내 안에서 문제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나만 문제가 있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억울해서, 사회의 흐름에 눈을 돌렸더니 나와 같이 노력했음에도 노력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이후로, 심리공부를 기반으로 사회전반에 대한 문제, 역사의 흐름, 그리고 마지막엔 정치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안성민의 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를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들을 정리해서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 내용 및 구성


책 표지에 표기된 "청년세대의 정치무관심, 그리고 기성새대의 정치과잉"이라는 문구로 책 전반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프롤로그는 "고령화·양극화로 치닫는 대한민국, 청년정치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시작으로, 1) 청년,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 2) 낡고 주름진, 그리고 갈수록 늙어만 가는 한국 정치판 3) 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4) 대한민국, 그리고 청년정치가 가야 할 길, 총 4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대사회에 직면한 청년정치 문제의 심각성과 그 원인에 대해서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하여 면밀하게 분석합니다. 특히 기성세대의 정치과잉이 어떤 영향으로 청년세대의 정치무관심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느낀 점 


저자는 84년생으로,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입니다. 그도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2년차 직장인자 한 집안을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입니다. 국가에서는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외치지만,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 앞에선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지 못하는, 허무함과 무기력을 경험해야하는 사회라는 것을 저자 또한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현대 청년정치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청년정치 문제의 원인과 결과까지 설득력있는 문체로 하나씩 하나씩 짚어가고 있습니다. 정치경제분야임에도, 자료들을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해줍니다. 정치입문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예요. 그만큼, 저자가 평소 대한민국 현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와의 정치적인 갈등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고 갈증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증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을 책을 통해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저 감으로만 할고 있던 것을 자료를 근거로 제대로 들여다보고, 현실을 제대로 직감한 기분이랄까요? 기성세대가 정치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반면, 청년세대는 정치에 아주 무관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기성세대는 당신들이 살아온 지난 역동의 시절과 비교하면서 요즘 청년세대들에게 의지가 없고 당신들만큼 노력안한다고 핀잔을 줍니다. 그러나, 기성세대에 비해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않고, 의지와 열정도 없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하는 건 지양해야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평균나이가 현재 58.5세라고 합니다. 20대 국회의원 기준으로 보면, 20대는 1명, 30대는 딱 2명뿐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2030세대에게 정치는 열려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중년의 정치인들이 2030세대 청년들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까요. 산업화시대,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386 기성세대들은 격정의 역사현상에서 살아남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시대입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국민전체가 힘을 모아서, 단시간에 대한민국 성장을 일궈낸 주역들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희생과 노고에 대해선 정말로 높이 평가할 부분이긴 하지만, 시대는 변화하고, 압축성장으로 인해서 간과해서 터져나오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2030세대들도 힘겹게 감당하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들여다 봐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청년세대는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노력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2030세대는 IMF 키즈로,부모들이 경제적인 타격을 입을 때 한창 학교를 다니던, 경제적인 활동에 뛰어들기에도 애매한 나이에 함께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다보니,공부만이 살길이라며 경쟁에 내몰리면서 학업에 열중했죠. 살기 위해서. 그러나,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면 삶이 나아질 줄 알았지만, 경쟁은 더더욱 치열해지고, 부모의 재력과 권력에 따라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는, '돈도 실력이고 능력인 시대'에 직면했죠.


이런 분위기에 힘을 얻어,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이 힘겹게 구축한 자리를 절대 청년세대들에게 물려주지도 않을 뿐더러, 기성세대의 위치와 자리만을 챙기는 정치를 하거나,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정치를 하는데 급급합니다. 가뜩이나 기성세대 쪽수에 밀리는 청년세대. 무슨 힘이 있을까요. 세대교체를 위해서 새로운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고, 경험을 축적할 기회도 없습니다. 그저 생존만을 위해서 살다보니 청년세대는 정치에 무관심해보이는 겁니다. 정치에 무관심해보이는 세대들이 2017년 국정농단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정권을 막내리게 하는데, 생각없는 세대라면 굳이 광화문 광장에 삼삼오오 몰려서 촛불을 밝히며 나라를 위한 외침을 왜 외쳤을까요? 세상이 잘못 돌아도 제대로 잘못 돈다는 걸, 직시하고 있디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하다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에요.


저자의 말대로 고령화, 빈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대한민국. 힘이 있는 쪽에만 힘이 실리고 힘이 없는 쪽은 아예 힘이 없는, 불균형의 대한민국. 단순히 기성세대만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세대간의 균형을 바로 잡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지금과는 달리, 올바른 흐름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머릴 맞대야 하는 건 사실입니다. 이에, 안성민의 책, 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를 읽으며, 현대 사회흐름과 정치구조를 분석해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간의 불균형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책 속 글귀


p. 18 청년 일자리 문제는 결혼과 직결되고, 결혼은 저출산 문제를 낳고, 저출산은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패턴으로 노년층에도 같은 문제가 생긴다. 노년층이 청년층의 몫을 가져가게 되면 청년층의 소비 저하와 내수시장 붕괴로 이어지는 등 모든 사회문제는 얽히고설켜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대 간 갈등, 특히 청년층의 문제에 제로섬게임 이론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이 함께 잘 살 수 있는지를 근간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p. 18-19 정부가 '다 함께 잘사는 포용 국가'를 선포하고 그에 따라 노력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정치 세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다음으로는 기존 정당들이 청년들을 위한 작은 몫을 떼어주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 일부를 내려놓아야 한다. 한때 민주화의 주역으로 불렸던 386세대 그들도 사회적 변화와 역사적 반성을 통해 정치유산을 물려받은 세대이다. 그리고 그들이 50대 60대가 되어가는 지금, 그들 역시 후배들을 위한 길을 열어줘야 하는 시기이다.


p. 28 청년이라는 시기의 삶은 개인에게 있어 전체 삶을 통틀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결혼하건 아이를 낳건 상관없이 성인이 된 청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노력은 이들이 청소년기에 대학 진학을 위해 학업에 몰두했던 경험이나 막연한 꿈을 향한 동경, 노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왜냐하면, 성인이 되고 난 다음의 꿈과 목표는 앞으로의 생존과 그리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p. 42-43 직장 초년생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동시에 가장 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 이들은 늘 분주하다. 그러면서도 미래를 예측하고 20~3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전망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는데, 2030세대 대부분은 어떠한 직장을 다닐지라도 자신의 미래가 장밋빛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희박하다. 저성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서 예측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청년이 어쩌면 보통의 사고방식인 듯 하다.(중략)이러한 사회 시스템과 분위기는 청년들이 겪는 불합리한 제도와 직장 내 갑질 등에도 제대로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 그저 버티기가 가장 중요한 직장인의 덕목이라고 생각하며 결국 개인의 삶을 내던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직장인의 퍽퍽한 삶에 기존 제도나 정치권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p. 103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중간 정도의 삶을 살고자 하는 젊은 직장인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 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저 생존과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워커홀릭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말 그대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산업화 시대를 겪은 윗세대가 여러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지 못할망정 '노력'하지 않는다는 망언은 삼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청년들의 서글픈 현실은 앞으로도 스스로 고용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니까.


p. 151 그렇다면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란 누구일까? 그 답은 '대의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 누군가를 대표하려는 사람이 갖춰야 할 조건은 지식도 참신함도 경력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누군가의 삶'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위 말해, 있는 집안 도련님, 돈맛을 본 뒤 권력 맛까지 보고 싶은 졸부, 연예인 뺨치는 연기력으로 눈속임을 잘하는 유명인이라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내세울 것 하나 없을지라도 자신이 대변해야 하는 그 누군가들의 삶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


p. 156 자이든 타의든 청년세대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노인 집단이 정치를 좌우하는 현상인 '실버민주주의'를 낳게 된다. 실버민주주의란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국가에서 정책을 결정할 때, 노년층이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하며 일본에서 처음 등장했다. 지난 2월에 열인 자유한국당 당 대표자 경선에서 후보가 이른바 태극지 부대에 효심을 호소한 것도 비슷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는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균형과 견제가 필요한 사회시스템에서 한쪽으로 치우쳐버린다는 것은 결국 균형을 잡지 못하는 상태이며, 이러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결국 사회 시스템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p. 171 많은 국회의원이나 위정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프로필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학력이다. 얼마나 성공했는지, 리더로서 자격을 갖추었는지 등에 대하여 학력을 기준으로 평가하곤 한다. 하지만 학력만이 정치를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중략) 하지만 적어도 '정치'에서만큼은 학벌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란 모름지기 모든 세대와 계층을 고루 대변하는 활동이다. 그렇기에 국민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외계층이나 청년세대들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학벌이나 학업 성취도는 절대 아니다.


p. 186-187 어느 사회에서나 세대교체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이 촉발되고 그 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 진통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무릇 정치란 이러한 갈등과 진통을 소화하고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진로와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주요 역할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혹은 과욕으로 인해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회 전체가 무너지는 경우를 수만 년간의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과거의 386세대, 이들은 이러한 지점에서 자신의 현재 위치와 역할에 대해 아주 겸허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p. 208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데 취직하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던 시대는 갔다. 계층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사다리는 자신의 노력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향해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다리는 대한민국에 이제 없는 듯하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이제 굳어버린 바닥과 굳어진 천장만 있을 뿐이다. 굳어진 바닥은 소득 수준이 낮은 하위계층이 상위계층으로 오르는 것을 막고 있고, 굳어진 천장은 더욱 견고해져 소득 수준이 높은 상위계층이 하위계층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한다.


p. 218 청년들의 삶을 돌보지 못하는 정치 현실은 청년들을 극심한 경쟁으로 내몰았고, 이론 인해 팍팍한 현실에 지쳐버린 청년들은 기존 제도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여력이 없다. 또한, 정치나 경제, 사회문제를 고민할 때 이정표가 되어줄 대상이 없었다. 심지어 자라오면서 보아온 정치권에서 단 한 번도 긍정적인 사례를 본 적이 없는 청년들은 그저 정치에 무감각해지거나 자신의 부모 세대를 따라 자연스럽게 보수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p. 261 모든 것이 격변하는 시대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단 한가지 수십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이는 바로 '후진적인 정치 환경'이다. 더 배운 사람이,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보통사람들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제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정치해야 한다는 사고가 아직 팽배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사회가 제대로 작동된다고 여기는 듯 하다. 하지만 기성 정치인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이 먹혔던, 그리고 국민들도 그저 바보처럼 그들의 손아귀에 잡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던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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