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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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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참 일관성없이 돌아가거나 부조리하게 돌아가는 부분이 포착되면 진리를 파고들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흑백 논리를 따지기보단, 세상이치나 진리를 기반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어하고 때론, 그 속에서 위안을 얻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현인들이 자연의 이치를 읽어낸 지혜가 담긴, 고전을 읽곤 하는데요. 고전을 펼쳐들때면 너무 어려워서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들긴하나, 이해 될때까지 읽고 또 읽으면 그때서야 깨달음이 오기도합니다. 이해하기 힘든 진리와 이치,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힘든 진리와 이치.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진리와 이치를 거슬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급급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엔 절대적인 참된 진리를 추구했던 철학계의 절대강자 소크라테스를 만났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직접 쓴 글이 없지만 그의 제자 플라톤이 쓴, 플라톤의 대화편에 수록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통해서 소크라세트의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내용 및 구성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대해 설명하기 이전에,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 담긴 저작들은 주로 대화형식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의 대화편』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파이돈』, 『항연』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에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정립하여 제시한 글들이 담겨져 있고, 『파이돈』에는 영혼불멸의 '이데아'를 『항연』에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연애의 신 "에로스"를 예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나라가 믿는 신이 아닌 잡신들을 믿는다는 죄목으로 고발을 당하는데, 재판에서 자신의 죄목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를 자신을 변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크리톤』,『파이돈』, 『항연』이라는 대화형 글들이 구분되어 그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데요. 『크리톤』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절친인 크리톤이 처형을 앞둔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탈옥을 권유하지만 소크라테스 자신은 탈옥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이성과 논증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파이돈』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의 추종자들고 친구들이 모여서 영혼불멸의 '이데아'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 한 내용을 담겨져 있습니다. 그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 하지 않고, 죽음을 복으로 받아들이는 소크라테스의 덤덤한 태도도 담겨져 있습니다. 『항연』은 앞의 내용과는 살짝 다른 주제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연애의 신 "에로스"를 예찬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느낀 점


참된 진리를 파고드는 철학을 좋아하지만 철학이란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소크라테스와 마주하면서 알게되었습니다. 공자, 맹자,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등과 같은 현인들과는 몇 차원은 더 높다고 해야할까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이해하기란 책 한 권이 빵꾸(?)날 때까지 들여다봐도 이해한다는 건 진짜 쉽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서평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잘 모르겠습니다.이 책은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으로, 나름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된 책임에도, 어려워요. 쉽게 읽혀졌다는 분들을 보면 존경 또 존경! 


그럼에도, 100%는 아니더라도, 『소크라테스의 변명』만큼이라도 그 내용을 정말로 알고 싶어서, 공부하다시피 내용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정치에 휘말려 불명죄, 청년들에게 궤변을 설파한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어 독약을 마시고 죽는 사형선고를 당하는데요. 처형을 당하기 전, 재판 과정에서 그가 자신에 대한 어떤 변명을 늘어놓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변명으로 번역했는지도 궁금했고요.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죄목에 대한 변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의 절친인 카이레폰이 델포이 신전에 가서 신탁을 얻고자 질문을 던진 내용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p. 18-19)"였습니다. 델포이 신전 여사제는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고 대답했으며, 소크라테스는 신의 대답에 의문을 품기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생각하기에 자신보다 지혜로운 자들을 찾아가서,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눠봅니다. 하지만, 남들이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진짜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무엇보다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결험이 많았고, 그들보다 부족한 자들이 더욱더 분별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남들이 지혜롭다고 여기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들이 스스로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행동이, 그들로 부터 미움을 사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즉,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라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직접한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변형된 듯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참된 진리는 진실하고 솔직한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말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어했고, 자신의 그런 행동을 변명이 아닌 말그대로 떳떳하게 변론을 했습니다. 그 당시 대중들이 듣기엔 변명이고,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선 변론이겠더라고요.


무지를 인정한다는 것, 요즘 사람들도 참 인정하기 힘들어하죠.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그 시대의 사람들도 똑같았습니다. 자신의 허점을 들키고 싶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사람의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깨닫고, 참된 진리를 깨닫기 바라서, 스무고개를 하듯, 사람들과 대화를 계속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덕분에 자신을 깨달은 자들은 그를 추종했을 것이고, 소크라테스로 인해서 감추고 싶은 자신을 들춰내길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멀리하고 싶었을 겁니다. 주로 후자 쪽이 많다보니, 그를 고발하고, 재판을 받게하고 결국 사형을 시킵니다. 세상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진실과 마주하는 것을 아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겠더라고요. 오히려 진실과 거리가 먼 거짓이 제법 달콤하게 느껴지고 거짓을 진실인냥 인정하고 싶어하죠. 무엇이 옳다라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소크라테스는 적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옳다는 것을 끝까지 증명하려고 했고, 그가 죽은지 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그의 사상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참된 진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책글귀


p. '19 '신께서는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인가? 이 무슨 수수께끼 같은 말씀이란 말인가? 나는 내게 큰 지혜가 없다는 것은 물론이고, 작은 지혜조차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고 신께서 가장 지혜롭다고 말씀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신께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거짓일리가 없는데.' 그때부터 한 동안 나는 그 신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라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많이 주저하고 망설인 끝에 신이 무슨 의미로 그런 신탁을 내리셨는지를 알아보고자 한 가지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고 소문이 자자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p. 23 (중략) 아테네 사람들이여, 내 생각에는 오직 신만이 진정으로 지혜롭습니다. 그리고 신께서 우리에게 신탁을 주시는 이유도 인간의 지혜라는 것에는 가치가 거의 또는 전혀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께서 소크라테스라는 나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나를 하나의 본보기로 사용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인간들아, 소크라테스처럼 자기가 지혜에 관해서는 실제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가 너의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이다."


p. 35-36 아테네 사람들이여, 어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 한다면, 그는 지혜로운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지혜롭지 않으며, 무엇을 아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복 중에서 죽음이 최고의 복일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 최악의 재앙임이 확실한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난받아야 할 무지가 아닐까요?


p. 54 아테네 사람들이여, 죽음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비겁함을 피하는 것입니다. 비겁함은 죽음보다 더 빨리 달려오기 때문이지요. 나는 나이가 많아 둔하고 느려서 이 들 중에서 더 느리게 달려오는 죽음에게 이제서야 붙잡혔지만, 나를 고발한 자들은 영리하고 재빨랐기에 더 빠르게 달려온 사악함에 이미 붙잡혀버렸습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사형을 선고받고 떠나지만, 그들은 진리에 사악함과 불의함이라는 불법을 저질러다는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내게 내려진 판결은 내게 집행되고, 그들에게 내려진 판결은 그들에게 집행될 것입니다. 아마도 이 일들은 처음부터 이렇게 되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고, 나는 이렇게 된 것이 적정하다고 생각합니다.


p. 55 여러분을 비판하는 자들을 사형에 처해서, 자기 삶이 올바르지 않다고 누군가가 비판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비판을 모면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도 않고 고상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고상하고 쉬운 길은 여러분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선량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직접 관심을 갖고 스스로 그렇게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내게 사형을 선고한 여러분에게 해주는 예언이 바로 이것입니다. 


p. 72-73(크리톤 편) 소크라테스 : (중략) 그렇다면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다수가 우리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가 아니라, 정의와 불의에 대해 잘 아는 사람, 바로 그 한 사람, 즉 진리 자체가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네. 따라서 정의와 명예와 선 그리고 그런 것과 반대되는 일과 관련해서 다수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고 자네가 말한 것은 옳은 것이 아님이 먼저 분명해졌네. "하지만 그 다수는 우리를 사형에 처하게 할 수 있지요"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


p. 91 (파이돈 편) 파이돈 : 사실 나는 그때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서, 이상하게도 죽어가는 친구 곁에 함께 있을 때 흔히 느끼게 되는 불쌍하고 측은하다는 감정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태도나 말씀으로나 내게는 선생님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지요. 에케크라테스. 선생님은 그렇게 전혀 두려움없이 고귀하게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신이 정해준 운명에 따라 저승으로 가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도 행복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 112-113 (파이돈 편) "(중략) 지혜가 없는 상태에서 즐거움이나 고통이나 두려움 가운데 어느 것을 다른 어떤 것으로 교환해서 생기는 것처럼 보이는 용기나 절제나 정의 같은 미덕은 단지 허깨비에 불과한 것이네. 알맹이도 없고 진정성도 없는 노예에게나 어울리는 미덕이지. 반면에, 진정한 미덕은 그런 모든 것에서 깨끗하게 정화되어 있네. 절제와 정의와 용기와 지혜 같은 것은 밀교에 입교할 때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종의 정화의식인 셈이지.(중략) 나는 '진정으로 깨들은 자들'은 다름 아닌 철학을 제대로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네. 나도 그런 자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지. 그렇게 살기 위해 내 힘 닿는 일이라면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애써왔기 때문이네. 과연 내가 제대로 노력하고 애써서 무엇인가를 이루었는지 아닌지는, 신의 뜻을 따라 조금 후에 저승에 도착해보면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일세."

p. 142 (파이돈 편) "(중략) 지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철학이 그런 상태에 있는 자신의 영혼을 받아들여서는 몸이라는 감옥에서 해방시키려고 애쓴다는 것도 안다네. 철학은 그들이 눈을 통해 어떤 것을 보고 인식한 것 속에는 속임수가 가득하고, 귀나 그 밖의 다른 감각들을 통한 인식도 마찬가지임을 보여주면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런 감각들을 사용하지 말라고 영혼을 차분하게 설득하기 때문이네."


p. 240 (향연-5. 파우사니아스의 에로스 예찬) "(중략) 악한 자는 영혼보다 몸을 더 사랑하는 저 세속적인 연애를 하는 자를 말하지. 그런 자는 한결같은 것을 연애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의 사랑도 한결같지 않다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자기가 연애한 꽃다운 몸이 시들면 '날아가 버려서' 그가 했던 많은 말과 약속을 부끄럽게 만든다네. 반면에, 고귀한 성품을 연애하는 사람은 평생 변함이 없는데, 그것은 한결같은 것과 한 덩어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네.(중략)"


p. 270-271(항연-9. 소크라테스가 들려준 에로스 이야기) (중략)소크라테스께서 말씀하셨다네. "욕망하는 것은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욕망하는 것이고, 결핍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정도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런 것은 아닌지 한번 잘 생각해보게. 아가톤, 그것이 필연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중략) 소크라테스께서 말씀하셨다네. "힘이 센 사람이 센 힘을 욕망하고, 민첩한 사람이 민첩하기를 욕망하며, 건강한 사람이 건강을 욕망한다고 해보세. 누군가는 이 모든 것과 그 비스한 것을 이미 가진 사람이라도 그런 것들을 욕망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그럴 듯하다고 여겨져서 속아넘어가지 않도록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네. (중략)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건강하지만 건강을 욕망한다'라거나, '나는 부자이지만 부자로 살기를 욕망한다'라거나, '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것들을 갖기를 욕망한다'고 말하다면,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네. '이보시게, 당신은 지금 부와 건강과 힘을 소유하고 있으니, 미래에도 그런 것들을 소유하기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겠소. 현재는 당신이 욕망하든 욕망하지 않든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오. 그러니 당신은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욕망한다'라고 말할 때마다, '헌재 내가 가진 것을 미래에도 갖고 있기를 욕망한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보시오' 그러면 그는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겠는가."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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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 시대를 타파할 독서의 기술 - 혼자 읽기부터 북클럽 참여까지 실전 독서 매뉴얼
박순영 지음 / 미래문화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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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직장으로 그만둬서 직장에서 하는 일 외엔 할 줄 아는게 없다는 것을 자각하자, 살아갈 길이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방황하다가 마주했던 것이 책이었습니다. 어떤 장르의, 어떤 주제의 책을 읽을지 몰라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심리학분야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심리뿐만 아니라 마음, 기도, 명상관력 책들을 읽고 있어요.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건, 5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책이 삶에 있어서 유용하다는 것 쯤은 감으로(?) 알고 있고, 흥미롭다는 건 알지만, 책을 잘 섭렵(?)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잘 모릅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읽은 책들에 대한 감상평을 작성하고, 책 속에 있는 글귀를 필사하면서 각인하는 것인데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거든요. 이런 생각이 들때면, 독서지도를 받은지, 아니면 독서모임을 가서, 다양한 독자들이 책을 대하는 태도가 확인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나마 박순영의 난독시대를 타파할 독서의 기술을 읽고 독서에 대한 나의 이런 의문점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얻어봅니다. 



■ 난독 시대를 타파할 독서의 기술 구성


이 책의 표지에서부터 독서의 기술이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 대략파악할 수 있습니다. "혼자 읽기부터 북클럽 참여까지 실전 독서 메뉴얼", "독서 입문자, 독서 모임 운영자, 독서 경영 기업의 필독서"라고 표기 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는 1)책과 함께 숨쉬는 방법이라는 소제목 아래 책을 고르는 방법, 책을 읽는 방법이 담겨져 있으며, 2)사람들과 함께 독서하는 방법이라는 소제목 아래, 독서모임의 특징, 독서모임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 대해서 언급하며, 3)독서 훈련과 독서 커리큘럼이라는 소제목 하에, 공교육 및 장르를 연관시킨 독서훈련법,독서시 주의사항과 참조사항, 저자가 추천하는 장르별 책들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느낀 점


저자는 박풍휴라는 필명으로 "쓸모없는 아이들(1~2권)"을 집필한 저자입니다. 그의 책은 방대한 데이터를 근거로 우리나라 학생들이 왜 쓸모없는 아이들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관한 보완점들을 시대적, 순차적, 사실적, 체계적으로 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독서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책을 두번째로 접했는데요. 저자의 철저한 자료분석과 경험에 근거로 하여 독서와 관련한 내용을 담았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책을 펼쳐보니, 역시나 방대한 문헌, 자료와 책을 접한 유경험자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독서 입문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책을 장르별로 분류하여 장르별 특징을 설명해두었습니다. 그러나 책의 중반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초첨을 둔건 "독서모임"에 관한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 독서모임에 대한 호기심은 있지만, 차마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독서모임의 다양한 특징, 진행방식, 그리고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이 책은 독서에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책 표지에 "독서 공동체로 삶의 지혜를 나눈다"라는 문구가 있거든요. 이 문구가 책의 전반의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을 혼자서 읽으면 한계점을 느끼는 건 사실이예요. 책을 읽을 때 독자로서 내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한정되어 있고, 나의 생각이 늘 옳은 것은 아니기에, 다른 독자들은 같은 책을 읽고 어디에 주로 중점을 두고 있는지, 책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지 궁금할 때가 많거든요. 저자는 독서도 소통의 일환으로 두고, 독서 모임을 통해서 독자들이 다양한 관점의 견해와 혜안을 공유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더라고요. 그러니까, 선입견 없이 세상을 바라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어필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독서모임 이외에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서평쓰기입니다. 책을 그냥 막연하게 읽다보니 책만 읽고, 어떤 내용을 읽어왔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으면, 책을 읽으나마나한 느낌이 들어서, 읽은 책에 대한 독서 감상문을 써왔습니다. 그러나, 독서감상문을 쓸 때도, 책의 내용을 어떻게 요약해야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저자의 말대로 적어도 한 권의 책을 2번이상 읽어야 서평을 쓸 수 있다는데, 진짜 내용만 요약하려면 책을 다시 읽게 되더라고요. 저자는 1) 문학 : 줄거리와 패석 위주의 서평 2)문학 : 등장인물과 해석 위주의 서평 3)문학 : 감상 위주의 서평 4)비문학 : 내용 요약 위주의 서평(책에 대체로 동의하는 입장) 5)비문학 : 비판적 서평 와 같이 다양한 서평예시를 제시합니다. 아직 독서감상문 수준에 그치지 않는 나에겐 서평예시가 아주 유용하더라고요.


여전히 독서초보자인 나로서도, 독서는 여전히 어려운 영역임은 틀림없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독서지도를 받고, 독서와 친해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인이되어서야 알겠더라고요. 책과 친해지는 방법을 몰라서, 책을 쌓아두고 성을 만들어서 놀았던 기억만 있지, 책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간접경험이나 지혜를 얻는 방법을 전혀 모르다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나의 기준과 맞지 않으면 늘 부정적으로만 바라봤지 시야의 영역을 확장시켜서 보질 못해서 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후회하기 싫어서 30살이 넘어서라도 책과 친해지려고 노력해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독서모임의 진행방식과 분위기, 독서모임에서 취해야할 태도 등을 간접적으로 배우고, 서평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독서지도서 혹은 독서지도 지침서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서, 혹은 독서법에 대한 내용이 아주 방대한데, 최대한 읽기 편하도록 축약한 듯한 노력도 눈에 보입니다. 왜냐하면, 독서와 공교육을 관련지은 내용도 있거든요. 책 초반부는 쉬운데 책장을 넘길수록 조금은 난해한 부분도 있어서, 집중해서 읽어야 해요.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앞서 느낀 점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은 도서지도서에 가깝습니다. 독서를 좋아하고 독서로 인해서 세상을 조금더 희망적이고 흥미롭게, 혹은 다양하고 풍부하게 바라보는 시야를 가진 분들이, 다양한 연령층이 독서의 묘미를 함께 즐기고 독서를 통해서 삶의 지혜를 얻었으면 하는 예비 독서 지도사나 독서 지도사인 분들에게 추천하고자 합니다. 독서지도에 대한 내용이 체계적이고 상세해서 독서지도를 위한 참고서로 딱 좋은 것 같아요.



책글귀


p. 35 문체의 독자성이 작가의 스타일입니다. 거기에서 독자는 작품의 분위기와 서술의 호흡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 사람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스타일이 없거나 문체가 저열하다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상투적이고 조악한 단어들을 늘어놓고 있다면 과감히 읽지 않는 것이 지갑 사정과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p. 54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읽은 책의 권수에 목표를 두지 마세요.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며, '많이 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으냐'입니다. 질 높은 독서에도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연구서까지 몇 권 읽어 내는 수준이 된다면, 일반서 중에 함량이 낮아 도저히 참고 읽기 힘든 책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p. 60 '단장취의(斷章取義)'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책이나 말에서 필요한 말만 쏙 골라서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한 뒤 저자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맥락을 무시하고 자신이 저자의 주장과 대비되는지 호응하는지조차도 모르는 책 읽기는 위험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시각이 있어 책의 한 토막만 읽고 넘기는 것은 저자의 본의를 해치고 오해할 위험이 있습니다. 저자가 연구하고 공부하여 체계를 세운 뒤 집칠한 책을, 구성과 맥락을 모두 무시한 채 읽는 것은 좋은 독서 방법이 아닙니다. 책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흐름과 설계를 가졌는지도 중요하니까요.

p. 67-68 반론독서는 가장 재미있는 파생독서입니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저자의 말에 우호적인 태도를 갖게 됩니다. 내가 이만큼 시간을 할애하고 읽느라 노력했으니 이 독서를 매몰 비용으로 여기서 싫어서 저자의 말을 되도록 신뢰하려는 마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일반서의 저자들은 결론 내리기를 좋아하고 독자적인 주장을 하며 특정 사안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의 비약을 하기도 합니다. 독자가 이런 것을 스스로 판별하여 자기 반론을 메모하면 좋겠지만 이것이 어렵다면 아예 반대되는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p. 71 등장인물의 심리를 분석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그들의 '성격이 어떠하다'가 아니라 그들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을 뜻합니다. 등장인물을 '심리적 존재'로 전제합니다. 주인공은 어떤 욕망을 갖고 있으며, 그 욕망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이와 같은 행동 때문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며, 이 사건으로 인해 어떤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그 영향을 받은 인물이 지닌 욕망은 어떻게 평가되고, 다시 주인공의 욕망은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순차적으로 또는 역순으로 따져 보는 방식입니다.

p. 86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시를 해석해 보세요. 해석의 방향은 정말로 무궁합니다. 내가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닐까, 이런 걱정은 무의미합니다. 시는 내가 어떤 사전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 어던 경험을 했느냐, 어떤 처지에 있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집니다. 시는 소설과 달리 단어와 단어, 행과 행 사시에 여백이 훨씬 많습니다. 독자가 감상할 때 할 인은 중간 여백을 채우며 훌적 비약하는 것입니다. 시의 해석, 그 여백은 독자의 체험과 생각입니다. 시작점과 끝은 정해져 있지만 그 사이의 여백은 시인이 독자에게 준 초대장과 같습니다. 이 여백을 채우며 시는 완성됩니다. 독자도 시인이 됩니다.


p. 117 독자가 작품을 읽고 얻은 독서 경험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는 의지가 강할수록 토론에 유리합니다.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인생이 책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죠. 이렇게 책을 통해 깨닫는 바가 독자 인생에 큰 영향을 줄 만한 것일 때 깊은 논의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p. 127-128 (중략) 책을 읽는 목적은 자기 신념을 공고하게 하는 것보다는 자기 생각의 보완과 확대에 있습니다. 다른 독자와의 만남에서 자기 생각을 고수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스스로 독서 효과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p. 129-130 독서 모임에서 '드는 것'은 '받는 것'이며 '말하는 것'은 '주는 것'입니다. 즉, 듣기만 하면 받기만 하는 것이죠. 다른 사람에게 빚만 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합니다.

p. 180-181 서평은 글에 책 내용보다 자신의 독서 경험이 풍부하게 드러난 경우를 말합니다. 서평은 일기 형태나 독후감 형태처럼 독백을 빙자하여 쓴 글이 아니라 분명하게 자신의 서평을 읽을 사람을 의식합니다. 서평은 글을 읽을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 책을 읽어야 할지 말지, 어떤 내용이며 책의 수준은 어떠한지를 알려주는)에 가장 충실합니다. 책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작가의 핵심 주장과 근거를 파악해냅니다. 책의 장점과 한계점도 말해 주며, 만약 작가의 논리에 의구심이 든다면 그런 점을 지적해 줍니다. 적어도 2번 정도는 읽어야 서평을 쓸 수 있습니다. 서평은 특정 책에 관한 리뷰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창작 활동입니다. 독서의 연장선이면서 본격적으로 나의 글을 쓰는 행위입니다. 읽기, 듣기, 말하기 과정을 모두 거쳐 내 언어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서평은 책 한 권에 관한 훌륭한 귀결입니다.


p. 182 책의 정체성은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어야 할 사항입니다. 만약 모르고 읽었다면 읽는 도중에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책 이외에 작가가 어떤 활동을 했고 그동안 어떤 책들을 출간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책이 정체성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문학은 그 작품이 속한 문예 사조나 지역 문학의 특징, 작가의 신념 등을 미리 알아 두면 책의 정체성을 파악하기가 쉽습니다.


p. 183-184 서평은 분명 책에 대한 일종의 평가이므로 쓰기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서평을 쓰려면 이 정도 노력은 감수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서평을 공들여 쓴다는 것은 책을 쓴 작가의 노고에 대한 예의입니다. 문학의 경우에는 비슷한 시기, 비슷한 주제의 작품을 찾아보거나 다른 판본의 번역을 대조해 보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p. 235-236 만약 누군가로부터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자신의 생각을 변호하거나 그의 말을 받아들여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토론의 기본 전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 생각이 비판받는 것을 나 자신이 비판받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얼굴이 화근거리며 상처를 받기도 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또, 비판을 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말을 완곡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저 사람의 생각을 비판하면 상처받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에 어쩌면 비판하려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p. 260-261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잘 읽어도 책을 읽는 것에는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자본주의와 성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가시적인 성취나 금전적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만을 하도록 은연중에 강요받습니다. 독서는 확실히 어떤 가시적인 성취나 이익을 얻어 내려는 목적에는 제한적입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여러분이 비물질적이며 정신적인 향상을 도모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 269 좋은 책, 읽어야 할 책은 건전한 논증으로 이루어진 정합적인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들은 절대적인 진리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전제에서 출발한 결론을 말할 뿐이며, 따라서 상대적인 진리를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 도서가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는 그 책들이 시공을 초월하여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아직도 정신적 작그을 주고 새로운 생각을 재생산하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선조가 고민하고 얻은 다양한 진리가 담겨 있으며 이것들을 허투루 유실하지 않고 축적하고 전달여 더 나은 인류가 되도록 도와줍니다.


p. 358-359 좋은 독자는 책을 잘 이애하면서도 책의 논조에 그대로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비판할 점을 찾고 평가하고 재해석합니다. 우리는 시간 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책은 과거에 멈춰 있습니다. 책이 살아 움직이려면 늘 당대의 좋은 독자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줘야 합니다. 과거의 것을 현재의 잣대로 평가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과거의 맥락에서 이해하되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를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독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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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글쓰기
셰퍼드 코미나스 지음, 임옥희 옮김 / 홍익출판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방바닥만 긁던 시절. 직장을 그만두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다시 일을 시작할 자신도 없었던 내가 방황할 때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건, 책읽기와 빈 노트에 나의 생각과 고민을 편집도 없이 손이 가는대로 적는 것이였습니다. 놀고 있는 상황에 다른 사람들 붙들고 내 인생 한탄하기도 힘들고, 나와 놀아달라고 보채기도 애매했던 시기라, 혼자서 외로움을 자처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책과 노트가 나에겐 큰 위안이 되었죠. 그때 이후로 (맥락없이 쓰긴 하지만) 글쓰기가 습관으로 자리잡혀서, 느낌가는대로 손이 가자는대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글을 "잘"쓰고 싶다는 욕심이 쓰물쓰물 올라오더군요. 특히 영서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영서의 의미를 다치지 않고 부드럽게 잘 쓰고 싶어서 번역관련 글쓰기 책을 도서관에서 찾다가, 너무 이론적인 글로만 적혀있는 번역책자를 포기하고 글쓰기 관련 책을 살펴봤습니다. 글쓰기 관련 책자는 종류가 너무 많더라고요. 그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글쓰기 책을 찾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치유"라는 단어에 꼿혀서 셰퍼드 코미나스의 "치유의 글쓰기"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골라서 대출해서 읽었습니다.


치유의 글쓰기 내용 


1955년 속수무책의 삶을 살았다는 저자. 설상가상으로 원인을 알 수없는 편두통에 오랜시간 시달려야 할 정도로 괴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저자의 형의 권유로 통증클리닉을 찾아가 70대 전문의가 "규칙적인 일기쓰기"를 쌩뚱맞게 제안했다고 합니다. 편두통과 일기쓰기와의 연관성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전문의 제안대로 저자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하루하루 일기를 쓰다보니 어느덧 5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넘겼다고 합니다. 저자에 의하면 편두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편두통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미묘하게 바뀌었는데, 자신이 편두통이라 여겼던 생각에서, 자신은 그저 편두통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서 건강문제 뿐만 아니라, 저자에게 닥친 여러가지 시련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서, 모든 시련을 잘 이켜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0년에 저자는 폐암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암치료를 받고 있던 병원 환자들에게 일기에 적었던 내용들을 말해준 적이 있는데,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일기쓰기가 치유방법으로 의학적 의미가 충분하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저자 자신에게 처음 일기쓰기를 권했던 늙은 의사의 말이 옳았다고 여기며, 그와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글쓰기의 효용을 알려주는 것을 그의 인생에 일차적인 목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영적 그리고 통합적인 측면에서의 글쓰기 이점을 언급하고, 글쓰기는 자아발견의 지름길이라 표현하며,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이끌어갑니다.


느낀 점


"치유"라는 단어에 꼿혀서 선택한 글쓰기 책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단순한 방법론에 대한 내용만 담겨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크게 기대하지 않고 책장을 폈습니다. 그러나 왠걸, 글쓰기를 도구삼아, 미지의 세계같은 나 자신은 물론 나의 감정, 나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고, 삶을 대하는 철학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차원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항상 "나"라는 존재, 그리고 "나의 마음"에 관해서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데, 글쓰기를 통해서 나의 고민을 조금더 진지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도 마음, 정신 그리고 영적인 측면에서 내 맘을 바라보고 삶을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런 내용들이 글쓰기와 관련하여 언급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들을 편집없이 그냥 마구마구 빈노트에 적어보라고 합니다. 다만, 누군가에 대한 원망, 분노를 적어야 한다면, 자신만이 볼 수 있도록 자신과의 비밀을 보장하라고 합니다. 원망이 대상이 내가 쓴 일기를 보게 되면, 괜히 서로 갈등만 겪게 된다는 것을 염려하기도 합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털어내면, 나 자신과 감정을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거든요.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성찰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화해, 내가 꾸는 꿈을 다루는 방법, 기도와 명상, 마지막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슈들을 글쓰기로 마주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혜안까지 제시해줍니다.


가장 와닿는 부분은, 요즘 내가 한창 관심을 두고 있는 기도와 명상입니다. 마음공부를 새벽마다 하고 있는데, 기도와 명상을 하면 마음을 현재에 두고 현재의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컨트롤하는 힘이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기도와 명상을 하기 전엔 섣불리 판단해서 오해를 밥 먹듯이 하고 스스로 상처받기도 했는데, 기도와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섣불리 움직이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거든요. 고민과 생각에 마음을 두고 괴로워하는 일이 많이 사라졌어요. 저자는 기도와 명상하는 동안의 마음과 그 흐름을 적어보고, 또 기도와 명상으로 인한 변화도 적어보라고 합니다. "명상과 기도는 창조주가 정한 진리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직관력을 가다듬게 해주어 몸과 마음, 영혼의 연결고리를 더욱 튼튼하게 만든다.p.244"라고 저자는 언급하는데요. 창조주의 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마음을 내가 내가 잘 알고, 나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가득찬 삶을 살려고, 글을 통해서 지속적인 치유의 과정을 거치고, 나와 같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 책글귀


p. 47 모든 물체는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운동하는 물체는 본래의 속도와 방향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가령 정지한 상태로 있는 책상을 옆으로 밀 때는 힘을 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상은 한자리에 정지해 있으려는 성질 때문에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그 유명한 관성의 법칙이다. 이 법칙을 처음 완성한 뉴턴은 물체의 운동 상태를 바꾸려면 힘이 필요하고, 힘은 질량에 비례한다고 말했다. 정지한 상태의 책상을 옆으로 옮기려면 힘을 가해야 하듯이 글쓰기 습관을 거부하는 타성에 도전할 때도 힘을 가해야 한다.


p. 51-52 더구나 글쓰기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아니라 정신건강과 웰빙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자기 삻에 애정을 갖고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인 것이다. 당신이 그 정도의 사치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투자는 너무도 당연하다.


p. 52 글쓰기가 당신에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는 유일하 방법은 장기간 계속해보는 것이다. 실천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가슴에 차오르는 기쁨이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생활에 활력을 가져다주는지 알게 된다.


p. 55-56 글쓰기를 통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목표는 바로 이것이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놓음으로써 살아오면서 받아온 고통의 짐을 내려놓는 것이다. 당신의 어깨 위에 놓인 짐들은 삶을 병들게 하는 독버섯이었다. 당신은 그 녀석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언제나 녀석의 횡포에 굴복해왔다. 이제 당시늬 어깨 위에 놓인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진정한 치유는 과거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된다. 그 녀석을 액면 그대로 인정해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마라.


p. 72-73 우리는 끔찍한 역경에 처해서도 자기 자신을 배려할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불행한 타입을 돕는 일도 더 할 수 없이 아름답지만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돕고 배려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다. 당신이 정말로 운명의 희생양이라면 손을 세차게 흔들면서 '불쌍한 것!"하고 외치기 전에 '그래도 나는 아직 괜찮아!"라고 말해야 한다. 생존자로서의 자신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아직은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생존자다.


p. 73 당신은 삶의 행로를 가로막았던 불길을 헤치고 지금 이렇게 살아남았다. 그런 사실만으로도 당신의 삶은 소중히 취급되어야 한다. 자기 삶을 가치 있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치유와 회복 과정에 필수적이고, 더 강하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망설임 없이 흡수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p. 93 우리는 마음의 상처를 겪은 후에 원치 않은 생각들이 반복적으로 표면에 떠오르는 경우를 흔히 경험하곤 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면서 망각의 시간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고립의 무덤 속으로 숨으려 한다. 하지만 문제를 미해결의 숙제로 남겨둠으로써 찾아오는 것은 망각이 아니라 심각한 우울증이다. 페니베이커(미국 텍사스대학교수)는 말한다. "용납할 수 없는 생각을 용납하는 일이야말로 건겅한 사고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p. 96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글쓰기는 정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남의 탓을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성찰하게 하는 등 자기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한다.


p. 106-107 치유는 수용과 더불어 시작되고, 희망이 치유의 가능성을 활짝 연다. 희망이 보이는 순간 치유의 가능성은 사방에서 몰려든다. 이 같은 역동적인 변화는 수많은 환자들이 직접 경험한 회복의 원인 중 하나이다.(중략) 무수히 많은 문화와 종교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상징적인 의식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의식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치유와 자유를 선사하지만 분신과 혐오를 내비치는 사람에게는 눈곱만큼도 기회의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p. 111 글쓰기를 계속하다보면 자신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이 점점 자라게 된다. 시작할 무렵에는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인내와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순간 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초 공사는 자신의 직관과 상상력을 믿고, 거기에 몰입함으로써 시작된다.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일이야 말로 자기 치유의 지름길인 것이다. 자신을 치유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는 당신에게 치유로 가는 문은 언제든 활짝 열려 있다.


p. 116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등을 돌리지 마라.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굴지도 마라. 장애물을 억지로 지워버리고 그것을 백지로 남겨두려고 하지 마라.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을 받을 가치가 없는 것처럼 부인하면서 살아가지 마라. 당신이 감당해야 할 몫은 그런게 아니다. 당신의 삶에 얽힌 모든 이야기들이 당신 안에 살아서 꿈틀거리고 잇는 한, 그것들은 당신 삶에서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그 이야기들은 당신을 이곳까지 데려다준 원천이고, 미래로 데려가줄 바탕이며, 나머지 여정 동안 당신과 타인들에게 필요한 힘을 제공할 것이다. 


p. 118-119 내용이 무엇이든 당신의 펜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것들이 당신의 삶 자체이며, 표현할 필요가 있는 귀중한 글감이다. 따라서 일기장에 적어두기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할 문제는 오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 몇 개월 후에는 대단히 중요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는 것이다.


p. 123 문제를 그냥 방치하는 것은 걱정이 늘어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심리적, 육체적 문제로까지 심화될 뿐이다. 이런 행동은 문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당신이 감염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질병이고 불편이다. 질병이든 불편이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당신의 노력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p. 127 당신은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하늘 가득 총총히 박혀 잇는 별들처럼 당신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을 당신은 잘 알고 있다. 글쓰기는 당신의 가장 깊숙한 소망을 재발견하게 해주고, 그것을 그저 생각만으로 존재하지 않게 하는 힘을 줄 것이다.


p. 138 자기배려를 위해 가장 먼제 해야 할 행동은, 마땅히 했어야 하지만 끝내 하지 못한 일드에 대해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긍정이 일기의 내용으로 승화되면 치유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p. 162-163 진정한 휴머니즘은 자신의 존재를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할 리 없고 연민과 동정심을 느낄리도 없기 때문이다.


p. 182-183 '아직은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 행동을 차단하는 습관을 버려라.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한 인생을 위쳡하는 파도 더미를 이겨낼 수 없다.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부인하고 기피할수록 파도 더미는 더욱 커진다는 사실이다.


p. 188 '아직은 아니야' 또는 '나는 결코 할 수 없을 거야"라는 말 대신 '왜 안 되지?'라고 당신 자신에게 당당히 따져 물은 적이 있는가? 이제 일기장에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일기장은 남의 시전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당신만의 공간이니 마음껏 물어라. "왜 안 되지?"라고.


p. 215 나는 인생을 구축하는 핵심 키워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성'이라고 믿는다.자신의 삶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것을 빼앗아오거나 선물 받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이 지시보다 낫다고 했다. 심리치료사인 쉘든코프는 어른이란 불확실성과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상상력을 차단한 채 틀에 박힌 일상에 발이 묶여 살고 있는가? 불확실한 일과 마주치면 불에 데인 듯 놀라며 도망치는 우리가 아닌가?


p. 226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다. 진정한 치유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타인을 비난하거나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대신 자기 책임을 인정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살아남은 자로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치유다.


p. 248 행복에 대한 정의가 사람마다 전부 같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그나마 세상이 제대로 도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에 대한 정의가 하나뿐이라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매일같이 피 터지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p. 256 만약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듯 그렇게 저절로 해복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면, 그런 태도야말로 당신을 행복에 허기지고 불만스럽게 만드는 원인이될 것이다. 또한 한번 찾아온 행복이 영원히 내 것이라고 여기며 손을 놓는다면, 그런 태도야말로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될 것이다.


p. 259 많은 것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당신 안에 있는 축복이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의 일기가 거기에 이르도록 도와줄 것이다. 글을 쓰면, 당신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문을 열게 된다.


p. 266 죽음의 공포에 비해 즐거운 경험이 터무니없이 가볍더라도 그런 감정을 일기에 모조리 적어라. 그 과정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것들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아주 잊고 살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삶에서 기쁨의 원천이 되는 일이 너무도 많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중략)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두려움이 커지기는커녕 자기 자신에 대해 한없이 겸허해지고, 생애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미리 쓰는 유언 편지에서 이미 느꼈듯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인생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p. 275 살아남은 사람에게 긍정은 희망의 밧줄이지만 부정은 또 다른 형태의 자살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라. 이것은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손에 넣어야할 생활방식이다. 내가 서 잇는 황야에서 나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일이 치명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p. 276 글쓰기의 목적은 긍정의 힘을 얻는 데 있다. 자기 스스로 그 힘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행복 바이러스를 만날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영혼의 구원을 시도한 사례들을 더 많이 찾아 읽어라. 일기장에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음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되찾은 사례들을 모아 당신의 느낌을 적는 것도 효과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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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 미국 문학의 꺼지지 않는 ‘초록 불빛’ 클래식 클라우드 12
최민석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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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대학 다닐 때 영문학 자체를 이해 못했어요. 문학이 담은 메세지와 상징을 이해하기 보단, 스토리 위주로 들여다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인간의 내외면적이 밑바닥을 보여주거나, 어둡고 불행한 스토리로 전개되어서 책장을 넘기는 그 자체가 싫었던 것 같아요. 가뜩이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힘들어 주겠는데 우울한 문학마저 접하는 것을 꺼려했죠. 왠만해선 남탓을 안하고 싶은데, 영문학을 대학에서 어떻게 접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탓하고 싶어요. 그런데,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 대학 시절에 접한 문학을 다시 만나고 그 문학이 담은 메세지와 상징, 철학, 그리고 교훈 등을 인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나, 해설서 등을 통해서 문학을 마주하니, 문학이 너무나 재미있고 이젠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진작에 이렇게 접했으면.. 암튼) 많은 문학 중에, 가장 흥미롭게 여기는 『위대한 개츠비』글로 전개되는 개츠비의 이야기가 사실 이해되지 않아서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먼저 관람해서 스토리 전반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 시중에 다양하게 번역된 『위대한 개츠비』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데, 원문과 번역서를 번갈아보면서,『위대한 개츠비』를 더 가까이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소설가 최민석이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의 삶의 여정과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피츠제럴드의 삶이 『위대한 개츠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 클래식클라우드 피츠제럴드 내용 

이 책은 소설『위대한 개츠비』에만 국한된 내용을 담지 않고, 저자 스콧 F. 피츠제럴드의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가 최민석이 피츠제럴드가 태어나 자란 곳, 다니던 학교, 그가 머물렀던 지역과 호텔, 카페 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들이 잠든 곳을 들리면서 피츠제럴드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피츠제럴드의 입장이 되어봅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계급사회, 상류사회를 통해서 받은 상처와 열등감, 혹은 화려한 상류사회를 향한 동경이 그가 써왔던 무수한 작품들 속에 베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소설가 최민석이 피츠제럴드의 발자취를 따라, 피츠제럴드가 머물렀던 호텔과 지역 등을 사진으로 들여다 볼 수 있고, 피츠제럴드의 첫 사랑, 그의 아내와 딸,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피츠제럴드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 어떻게 묘사되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느낀 점 

21세기 현대 미국 대학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미국에서 매해 30만권 이상 팔리고 출판사 랜덤하우스가 꼽은 "영어로 쓴 위대한 20세기 소설" 중 2위를 차지한 소설『위대한 개츠비』(p. 47). 1920년, 스콧 F. 피츠제럴드는 첫 장편소설『낙원의 이편』으로 단시간에 인기 작가로 거듭나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다가, 5년 후, 1925년 두 번째 장편소설『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하지만, 첫 데뷔작에 비해 큰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가 죽은지 10년이 되어서야,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스콧 F. 피츠제럴드가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작가 중에 한 사람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소설가 최민석이 피츠제럴드 생과 작품에 관한 모든 자료와, 피츠제럴드의 발자취를 따라, 그가 머물렀던 곳과 마주하며 간접적으로 그가 되어보는 글의 전개로, 그의 삶이 열등감과 우월감에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콧 F. 피츠제럴드는 가구 사업가 아버지와 부유한 이민자의 딸 사이에서, 1896년에 태어났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살아 생전에,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참 강했는데, 그 영향은 이민자 출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를 무리해서라도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에 보냈으나, 그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상류사회로부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낍니다. 열등감이 극에 달하기 시작한 계기는, 시카고 부호의 딸 지네브라 킹으로부터 실연을 당하는데, 이유는 집안이 가난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첫 사랑으로부터 집안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고, 앨라배마주 대법원 판사의 딸 젤다로부터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또 실연을 당합니다. 그러나, 상류사회로부터 경험한 상대적 박탈감을 토대로 쓴 그의 첫 장편소설 『낙원의 이편』이 대히트를 치면서, 그는 젤다에게 다시 청혼을 하고 결혼에 성공합니다. 데뷔작의 성공으로, 그는 지난 시간의 서러움을 해소라도 하듯, 아내와 함께 상류층 사교계에 몸을 담으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깁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은 그의 상류층의 삶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아내 젤다가 조현병 등에 시다리고, 그 또한 술에 의존하는, 불완전한 삶을 아슬아슬하게 살아갑니다. 한 때 누렸던 화려했던 삶을 포기하지 못했던 스콧 F. 피츠제럴드. 1920년대 유흥, 향락, 사치와 쾌락에 사로잡힌 소비지향적인 시대로, 그는 늘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그의 삶이 있는 그대로 투영된『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합니다. 소설가 최민석이 언급한대로, 『위대한 개츠비』는 자전적 소설입니다. 개츠비가 저자 자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단순히, 첫 사랑을 되찾고 싶어서 금의환향한 개츠비의 순애보와 비극을 담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이릅니다. 돈이 최고였던 시대, 물론 지금과 전혀 다를바 없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 당시에 존재한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과 허무주의를 담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로 사람을 평가하던 시대, 상류사회로 향하는 사다리를 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부와 명예를 얻었으나, 어느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인생이 덧없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스콧 F.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그가 죽은지 10년 후에 재조명 된 것은, 아마도 피츠제럴드가 미리 경험했던, 물질만능 계급사회로 인한 열패감에 시달린 사람들이 많아져서가 아닐까요? 

솔직히, 피츠제럴드 삶을 들여다 보면서 답답했습니다. 자신의 분수와 처지를 빨리 인정하고, 자신과 같은 예술적인 감각이 강했던 아내 젤다의 능력도 인정하면서, 자신의 형편에 맞는 삶을 왜 살지 못했냐며, 그를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자기다운 삶을 살기를 거부했고, 첫 데뷔작 만큼 명성을 얻을 만한 작품을 쓰려고 애를 썼고, 상류사회로 다시 넘어가기 위해서,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자신을 죽음으로 모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거슬렸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는, 지금과 같이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시대가 아니라, 눈으로 보여지는 부와 명예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대였기에, 그는 상류사회에 처절하게 집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죽음의 끝자락에서, 물질을 쫓는 인생이 그만큼 허무하다는 것을 직감했을 겁니다. (그러나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듯 하고요.) 그래서『위대한 개츠비』속 비극은, 부와 명예를 아무리 쫓아도 결국엔 허무하게 끝날 인생을 미리 예견한 듯 그려내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가 최고였던 시대,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그런 시대입니다. 가치지향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가 자리잡고 있어서, 노력해도 상류사회가 누리는 것 만큼 누릴 수 없는 시대입니다. 돈없으면 노력 조차도 배신하는 시대. 성공이 기회는 상류층에게만 주어지는 시대.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위대한 개츠비』에 열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책글귀

p. 17 작가들은 대게 떠돌이다. 작가가 되기 전에 이미 모국의 곳곳을 다니며, 견문을 쌓고 경험의 지경으 넓히고 생각의 폭을 넓힌다(중략). 그러다 조면 본 것이 많아지고, 경험한 것도 많아지니 뭐라도 쓰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들은 대게 하고픈 말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기보다는, 경험한 것을 모두 말하고픈 족속이다. 일단 타자기 앞에 앉아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 자신이 경험한 것에서 받은 영감, 그 영감이 빚어낸 상상, 그리고 그 경험과 상상이 어우러져 창조한 새로운 무언가가 페이지를 채우기 시작한다.

p. 55-58아이로니컬한 것은 작가의 고통이 커질수록, 결과물은 더 빛난다는 것이다. 작가가 쓰지 못해 방황하는 것은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욕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패를 경험한 작가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쓰고자 하는 작품의 기준은 높아져, 쓰는 행위는 고통스러워지지만, 피같이 토해낸 작품은 미완성일지라도 '가장 성숙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p. 107 전업 작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글을 써야 한다. 취재지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생산성 없는 경험을 했다 해서, '바깥 공기 한번 성큼 했다'는 식으로는 쓸 수 없는 노릇이다. 피츠제럴드는 아내가 정신 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에도, 더 이상 책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 무명 시나리오 작가로 지낼 때에도, 계속 소설을 썼다. 빚더미에 앉았을 때에도, 계단을 오르내리기 벅찰 만큼 건강이 악화됐을 때에도, 죽기 며칠 전까지도 희망을 품고 재기작 원고를 썼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는 언제나 써야 했던 작가였다.

p. 150 그나저나 작가는 어떤 존재인가. 자신의 콤플렉스마저도 창작의 동력으로 삼는 존재 아닌가.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를 자기 대신 참전 시켜 무공 훈장을 받게 했다. 그리고 개츠비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인 닉까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으로 설정했다.

p. 153 (중략) 피츠제럴드가 받은 상처의 대부분은 태생적인 것이었다. 유년기에는 곱상한 외모 때문에 세인트폴의 고약한 소년들에게 시달렸고, 청소년기에는 뉴저지의 명문 카톨릭 기숙학교 뉴먼에서 상류층 자제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겪으며 지내야 했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지네브라 킹의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다. 부자 가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태생적 결정 요인에 의해 상처를 주고받는 미국 사회에 대해 그는 어찌 느꼈을까. 그리고 자신들만의 공고한 벽을 쌓아둔 미국의 지배 계층, 그 중에서도 부자들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p. 201 『위대한 개츠비』야말로 원문으로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많은 역자들의 노력으로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그들의 노력과 성취와는 별개로 그 어떤 번역본도 이 아름다운 영어 문장을 완전히 옮기는 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밤은 부드러워』나 『낙원의 이편』과 달리, 『위대한 개츠비』의 문장은 심플하고, 정제돼 있다. 비록, 초반본에 많은 오류가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p. 287 시대와 전체적인 사회를 읽고 나면, 『위대한 개츠비』는 결코 단순한 소설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아메리칸드림이 빚어낸 다분히 미국적인 욕망에 젖어, 사랑마저도 물질로 회복하고자 했던 한 인물의 실패담이다. 동시에, 그 시대가 겪은 사회적 병폐 현상들(향락, 소비주의, 허영)을 병풍처럼 펼쳐놓고 진행되는 사회적 거울이다.

p. 289 그럼에도, 내가 '개츠비'의 실패를 인정하는 이유가 있다. '문학은 태생적으로 슬플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가가 높은 성공의 탑을 쌓아 올린다 해도, 그 탑은 금세 무너질 수 있다. 당대 사람들의 비난에 의해, 독자의 외면에 의해, 시장의 외면에 의해, 혹은 스스로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저지른 실수에 의해, 비단 금전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으로 인정을 받은 작가라도, 이미 받은 찬사를 유지하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려 할수록 작가는 불행해진다. 성공한 작가가 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그 성공한 작가가 행복하게 자족하며 지내기는 스스로 하늘에 별을 만들어 걸어놓는 것만큼이나 어렵다.성공을 맛본 작가는 언제나 과거의 자신과 싸운다.

p. 289-290 살다보면 어려 경험이 축적되고, 그 경험들이 예상치 못한 화학적 작용을 일으켜 평소의 나라면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작가의 전성기란 바로 이런 걸 써내는 때다. 이때, 신은 잠시 자신의 능력을 인간에게 빌려준다. 그리고 이 능력을 빌려 받은 평범한 인간을 평생 과거의 자신과 싸운다. 그 평범하지 않았던 때의 나를 회복하거나, 그때를 뛰어넘는 비범성을 위해 평생 끝없는 싸움을 나 자신에게 거는 것이다.


■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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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쐬고 오면 괜찮아질 거야 -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우울, 불안, 공황 이야기
제시카 버크하트 외 지음, 임소연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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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혹은 "마음의 병",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등은 내 인생의 화두입니다. 나는 끊임없이 마음과 감정을 공부할 것입니다. 마음과 감정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인데요. 예전엔 먹고 사는 일이 바빳기에 마음과 감정을 챙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노력으로 지금 시대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그 때 놓친 마음과 감정의 문제들이 속속들이 튀어나와서 사회적인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는 사회 및 경제공부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마음과 감정은 사회와 경제를 유지하는데 좌우되니까요. 그리고 가난하게 살았던 지난 시절, 나는 부자 혹은 성공한 사람들은 마음의 병 같은 건 전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들이 마음의 병을 운운할 땐 배부른 소리라며 콧방귀를 꼈습니다. 마음의 병은 가난한 사람들의 낙인과도 같은 것처럼 여겼고,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단히 애를 썼으니까요. 그러나, 부자, 성공한 사람, 가난한 사람할 것없이, 조건적인 것을 모두 배제하고 이 시간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라면 마음의 병과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앞에선 자격지심 따윈 버리고, 인간이라면 마음이 있는 존재이기에, 저마다 마음의 고통을 겪는다는 건 절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신작 바람 쐬고 오면 괜찮아질 거야를 통해서 작가 31인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그 동안 아무에게도 전하지 못했던 그들의 마음의 병을 들여다봤습니다. 


바람 쐬고 오면 괜찮아질 거야 내용 및 구성


이 책은 베스트셀러를 쓰고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31명 각자가 직접 경험한 마음의 병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옴니버스식 심리책입니다. 자신의 일상을 방해하고 생사를 오고가게 하는, 괴물같은 다양한 종류의 마음의 병에 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그들 각자가 어떻게 마음의 병 그리고 마음의 병을 겪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극복하고 있으며, 또는 극복했는지를 각자의 경험담을 각자의 색채대로 담았습니다. 그리고 책의 가장 뒷면엔 31명의 작가를 소개하고 그들이 쓴 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느낀 점 


나는 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낸 적이 거의 없다. 사실 나는 내 진짜 모습을 숨기는 것을 사명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부로 그 사명도 끝이다. 이제부터는 당당히 내 모습을 밝히며 살 것이다. 부끄러울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부끄러울 게 없다. 이 말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고, 오늘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p.171(캐런 머호니, 정상보다 특별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결핍을 티내지 않으려고 마음의 병을 숨기고, 이미 사회적으로 유명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뤄둔 걸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마음의 병을 숨깁니다. 예전엔 마음의 병이있다고 하면 무조건 정신병자 혹은 정신질환자로 분류하여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을 취급했으니까요. 그래서 부정적이거나 이상한 마음에 관해선 늘 무시하고, 외면했으며, "정상"의 대열에 들어가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죠. 그러나 마음의 병을 무시하고 외면할수록, 마음은 더 피폐해지고 괴롭기만 했고 인생을 망치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봐왔습니다.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파괴적으로 몰고가는 일이 많아져서, 요즘엔 마음의 병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신이 위험해지기 전에 용기내어서 마음의 병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이 책에선, 앞서 언급했듯이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문학상까지 수상한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작가들이 직접 경험한 마음의 병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마음의 병은 여전히 숨기고 싶은 치부라서, 그들은 마음의 병을 표현하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화려한 이력만큼 마음의 병도 약물중독, 강박증, 공항장애, 조현병 등 아주 다이나믹 하더라고요. 마음의 병의 원인 유전적 환경적인 요인들이 주로 이뤘으며, 그럼에도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마음의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극복해나가는 방식 또한 다양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마음의 병을 글을 쓰면서 승화했고, 여전히 그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아주 극적인 극복방법은 없습니다. 앞서 표현한대로,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거기에 자책하지 않는 것, 그것 뿐이더라고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린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 해서, 마음의 병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고, 잘사니까, 마음의 병은 없어야 한다는 자격지심이 섞인 삐딱한 생각은 버려야겠더라고요. 그리고, 의외로 "마음의 병"이라는 주제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봤을 때, "사람 마음은 똑같구나"라는 공감대가 생기더라고요. 들키기 싫은 허점 같아서 마음이 무너져가도 누군가의 도움 받는 건 죽는 것보다 싫으며, 통제할 수 없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시달리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마음 때문에 이상한 사람을 취급받을까봐 티가나지 않은 고통을 삭혀야하는, 즉 사람들의 시선에 너무 연연해서 마음의 병을 키워 온 사실들에 시선이 멈추더라고요. 마음의 병을 겪으면서 남의 눈치까지 보면 내가 겪고 있는 아픈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없고, 오히려 더 힘겨워집니다. 마음은 있는 그대로 읽어야 진정되고, 있는 그대로 나를 봐야,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작가들은 다른 필력으로 똑같은 메세지를 전하는 듯 합니다.


이 책은 마음의 병을 속시원하게 극복한, 극복기를 다룬 책은 아닙니다. 작가들이 그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의 병들을 아주 적나라게 적어내려간 책이라, 읽다보면 공감도 되다가, 함께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책 제목은 청명한 분위기가 감도는 바람 쐬고 오면 괜찮아질거야 이지만, 청명한 글들을 기대했으나, 밝음과 어둠의 비율을 따져보면 3:7입니다. 그리고 작가들 각자의 필력대로 적어내려간 글들이라, 어떤 글을 문학적이고, 어떤 글을 자기계발적이며, 어떤 글은 이론적인 다양한 필력으로 적어내려간 마음의 병을 마주할 수 있어요. 다만,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한 마음의 병을, 그들도 용기내어서 표현했으니, 독자들도 바람쐬듯 자연스럽게 표현해도 좋다고 손짓해주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지금 누구에게도 말 못할 마음의 병을 혼자서 끙끙 앓고 있다면, 이들의 글을 마주하면서 "세상에 마음의 병을 나 혼자만 겪는 건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얻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마음의 병에 관한 명확한 극복법은 아니더라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나를 어떻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다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책 속 글귀


p. 22 불안증과 싸우던 당시,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 인생이 근사하다는 것과 상황은 늘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안증을 겪고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나는 그 시간 동안 꽤나 많은 일을 해냈다. 삶의 속도가 그전보다 느려졌기는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산다. 그렇다. 나는 이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모리 존슨, 멍청한 괴물과 의사 흉내를 내는 꼬마)


p. 40 자기관리란 말 그대로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거품 목욕을 하면서 나만의 힐링 시간을 갖는 것과는 다르다. 자기관리는 나 자신과 내가 겪고 있는 문제, 타고난 문제와 그 외 문제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 문제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한 뒤,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중략)자기관리는 치료법이 아니다. 자기관리는 지속적인 노력이다. 자기관리를 하다 보면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할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것이다. 자기관리는 많은 경우 과학이라기보다는 끈기와 배짱이고, 처방전보다는 직감이며, 사실보다는 믿음이다. 나는 자기관리를 통해 힘을 얻었다. 내게 자기관리는 흥미롭고 절망적이며 동시에 매력적인 인생 프로젝트다.(사라 자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내가 지키는 일)


p. 49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부터 정신질환을 더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정신질환을 이야기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이미지다. 나는 정신질환이라는 용어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질환이라는 단어는 자동적으로 쇠약함과 전염을 암시하고, 쇠약해진 신체를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치료해야만 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하지만 정신질환은 경도우울증부터 인격장애, 조현병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어 정신질환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그 모든 의미를 담아낼 수가 없다. (로런 올리버, 빛과 어둠)


p. 93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는 것과 실제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나는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비교적 쉽게 인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제길,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기까지가 진짜, 어렵다. 나는 그게 그렇게 싫다. 도움을 요청하면 내가 약해지는 것 같고, 혼자서는 엉망이 된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하는 실패자처럼 느껴진다. (앰버 벤슨, 나를 위한 선물, 상담치료)


p. 105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머릿속 말도 안 되는 생각, 나를 기만하는 생각, 숨이 막힐 듯 나를 억누르는 생각과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되, 말이 안 되는 말을 할 때는 뇌에 맞서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사라 파인,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p. 145-146 모두가 나를 이해할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은 나를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나더러 극단적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겪는 이 고난의 터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내 불안이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불안을 숨기려 하거나, 괜찮지 않을 때 괜찮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불안에 대처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떄문이다. (타라 켈리, 나쁜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며 산다는 것)


p. 156 나는 나한테 '문제'가 없다고 나 자신을 설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평생 나를 다독이며 힘겹게 버텨왔는데 진짜 문제가 나라는 걸 인정하면 텅 빈 내 안이 그대로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낡은 스웨터에서 빠져나온 실 하나를 당기면 옷 전체가 망가지듯 말이다.(킴벌리 맥크레이트, 흘려보낸 시간들)


p. 163 살다 보면 걱정 근심 없이 기분 좋은 날도 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울한 날도 있다. 그런 날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 우울증을 안고 사는 것은 마치 옮길 수 없는 커다란 돌을 들고 다니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돌에 큰 충격을 주어 잘게 쪼개어야만 짐으로만 느껴졌던 그 돌덩이가 단단하고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 변신할 수 있다. (메건 켈리 홀, 나의 우울증)


p. 176 그 모든 건 내 잘못으로 생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다 알아도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왜 정신질환 환자들은 자신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나는 늘 아픈 기분이었다. 비록 밖으로 보여줄 수 있는 상처나 증상은 없었지만, 끊임없이 나 자신과 주위 모든 사람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지우며, 따뜻한 날씨에도 담요를 뒤집어쓰고 흔들의자에 앉아 다시 태양이 떠오르길 기다리는 그런 환자였다.(캐런 머호니, 정상보다 특별한)


p. 233 그때 나는 긴 시간을 들여 내 인생을 꼼꼼히 돌아봤고 아주 중요한 사실을 몇 가지 깨달았다. 먼저 불안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리고 적절한 도구나 약물 복용 없이 나 혼자의 힘으로는 불안을 절대 통제하거나 극복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불안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해서 못난 사람인 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불안을 겪는다.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잡초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정상'이거나 '멀쩡한'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일지도 몰랐다. 그런 깨달음이 내게 희망을 줬다.(캔디스 갱어, 불안과 잡초)

p. 282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이 있다. 감정을 없애려고 할수록 감정은 더욱 거세진다는 것이다. 감정과 맞서 싸우고 감정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면 그로 인한 고통은 더욱 커지고 길어질 뿐이다. 감정은 느끼길 워하고 느껴진 다음에야 비로소 끝이 난다. 나는 감정이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더욱 명학하게 깨닫게 되었다. 또 내가 감정 때문에 죽지 않을 거라고 믿기 시작했다. 또 내가 감정 건너편에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에이미 리드, 중독과 우울증이라는 쌍둥이)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책을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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