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은 <탐구 1>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설명하면서 <말하다-듣다>의 관계가 아니라 <가르치다-배우다>의 관계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의 핵심적 내용으로 설명한다. <가르치다-배우다>의 관계는 <말하다-듣다>의 관계와는 달리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과의 공통된 언어규칙이 전제되지 않는다.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공통된 언어규칙을 공유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의 이러한 불확정성을 기준으로 자신의 가르치는 방법을 교정해야 한다. 그 결과 이 관계에서 결과적으로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 된다. 

고진에 의하면 칸트에게서 공공적인 것은 세계시민적 공공성이다. 그에게 사적인 것은 오히려 기존의 국가적, 사회적 위치에서 행동하는 개인의 행위이다. 따라서 칸트적 의미의 공공성이라는 것은  기존의 통상적 의미로서의 국가적 공공성내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고 자기자신을 기존의 공공성 내에 마주세움으로써 단독적인 개인으로, 도덕적으로 행위함으로써 존재하는 공공성이다. 다시말해 세계시민적 공공성은 개인의 단독성을 전제하고 있고,  그것은 개별적인 것을 취합하는 일반성으로서의 공공성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이 '단독자'로 도덕적 결단을 함에 의해 성립하는 '보편성'으로서의 공공성이며 시간적으로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적 혹은 잠재적인 공공성이라는 것.

들뢰즈에 의하면  헤겔에게서의 공공성은 이와는 다르게 개별-일반이라는 대립항을 통해 성립하는데 이 대립항은 직접적으로 마주서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라는 매개를 통해 '종합'된다. 이 회로속에서 개별의 잔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개별성은 특수성을 통하여 일반성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 속에 어떠한 잔여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칸트에 의하면 개별적인 것을 즉 감성적인 것을 오성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상상적 도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 속에서 개별적인 것 혹은 단독적인 것은 일반으로 환원되지 않는 잔여물을 가진다. 때문에 그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초월적transzendental인 과정이다. 때문에 개별자 혹은 단독자는 그자체로 보편이 된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언명령인 것이다.

다시 비트겐슈타인으로 돌아가 보자. 비트겐슈타인은 초기에는 언어의 단일한 논리적 구조를 승인하였다. 그러나 사실 그가 초기에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도 일종의 '경계체험'이다. 그는 세계의 경계 혹은 사유와 말할 수 있는 것의 '경계'를 말하였던 것이다. 그가 말할수 있는 명제로 이야기했던 것은 논리적 형식을 가진다. 그런데 문제는 그 '논리적 형식'자체는 논리적으로 묘사될 수 없는 불가능성을 내포한다. 그것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수학적으로 증명되기도 하였던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곳이 논리의 경계가 자리잡는 곳이라는 것.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명제 즉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말할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런 난점 때문에 후기에 가서 그는 언어의 의미를 '언어의 사용' 혹은 '언어놀이' '삶의 양식'등과 결부시키게 된다.

이런 문제점은 프로이트에게도 나타난다. 그는 과학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모든 과학은 우리의 심리 장치를 통해 매개된 관찰과 경험에 입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과학(정신분석학)은 이 장치 자체를 대상으로 삼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유비는 끝난다. " (<라캉과 현대철학:홍준기> 에서 재인용)

여기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과 과학과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신분석학은 기존의 과학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왜냐하면 과학은 이미 그자체에 심리적 매개를 경유하고 있으므로. 그런데 정신분석학은 이런 심리적 매개과정 자체를 탐구하는 것. 때문에 무의식에 대한 과학적 존재증명은 무의식 스스로가 대상이자 동시에 관찰주체가 되는 역설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후설도 마찬가지로 이와같은 난점을 <시간의식>에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한편 크립키는 그의 언어이론에서 고유명사를 개체의 여러 성질을 기술하는 것과는 무관하며 단적으로 개체를 '지시'하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설명한다. 고유명사를 이렇게 규정하게 되면 언어는 개별-일반성의 회로로 환원되지 않는 잔여물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잔여물들이 바로 '사회적인 것'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칸트로 돌아가면 이런 사회적인 것이 바로 칸트적 공공성으로 연결된다. 고유명사로 표현되는 국가로 표현되는 일반성으로서의 공공성이 아니라 이러한 일반성으로서의 공공성이 아닌 자신의 단독성을 보유한채 자시 자신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보편성을 도출해 내는 그런 의미의 공공성. 이것이 칸트가 이야기하는 공공성이라는 것이다. 반면 헤겔적 공공성은 그의 인륜 혹은 국가에 대한 설명을 비추어 보면 단독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공공성이라기보다는 특수를 매개로 한 과정의 결과로서의 공공성이다. 이것이 칸트와 헤겔의 차이가 아닐까?  그래서 들뢰즈는 이와같은 헤겔철학의 환원적 특성 때문에 스스로를 반헤겔주의자로 규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같은 칸트의 공공성은 자연스럽게 그의 '윤리'로 이어진다. 그에게 있어서 도덕은  "공동체의 규칙이나 개인의 감정, 이해를 괄호에 넣어서 생각하"는 것(고진)이다. 때문에 그것은 선악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유'의 문제라는 것. 그런데 이 자유 혹은 자유의지는 여러 인과성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성립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인과성들은 서로가 무한히 연결되어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다만 뒤쫓아만 갈 뿐 "모든 사건의 이런 무제한적 계열은 자연에서의 끝없는 연쇄이므로 나의 원인성 역시 결코 자유는 아니다."(<실천이성비판>트랜스크리틱에서 재인용) 스피노자는 이런 인과성의 무한계열은 오직 원인의 원인에 의해서만 즉 신에 의해서만 온전히 파악 가능한 것으로 설명한다. 칸트는 위의 설명에서  이를 승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현실에서는 자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자유였던 것처럼 간주 할 때 즉 인과성의 무한계열을 괄호에 넣고 그것을 알고있는 것으로 가정할때 우리는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은 이 때의 자유는 자기 의지에 의한 행위의 결과가 아니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그런 자유이다. 우리는 우리 행위의 인과성을 괄호에 넣고 자유가 있음을 선언함으로써 성립한 자유를 누리는 존재이므로 우리의 행위에 의한 결과가 어떠한 것이든 항상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것. 자유는 이처럼 초월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므로 그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도 논리적 인과성에 의해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윤리와 공공성을 이처럼 규정하게 되면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타자'이다. 타자는 우리와 공동의 규칙과 규범을 공유하지 않는 존재이다. 그들은 우리의 공동체 밖의 존재들이며 우리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타자이다. 그들은 비록 우리와 공동의 규범과 규칙을 공유하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동일하게 가지고 있음을 승인해야 한다. 비록 그들의 인과성에 대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더라도. 칸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자유를 승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와 공공성은 이처럼 인과성의 경계에서 성립한다. 우리는 인과성으로만 즉 이론적으로만 자유와 윤리를 논해서도 안되고 인과성의 외부에서만 자유를 볼수도 없다.  인과성 자체는 바로 그 스스로의 경계에서 성립한다. 공공성과 윤리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그 사이 혹은 경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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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페이퍼- 예수문서
마이클 베이전트 지음, 박철현 옮김 / 이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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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박스의 정식 번역본이 나오기 전의 책이다. 책 표지도 그렇고 번역의 상태도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영지주의와 신약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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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김상봉씨의 <나르시스의 꿈>과 관련된 기사를 옮겨온다.  얼마전 <서로주체성의 이념> 이라는 신간을 출간한 것으로 보아 김상봉씨는 <나르시스의 꿈>에서 제기했던 서양철학비판작업을 계속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토론회에서 제기되었던 다양한 비판을 얼마나 잘 수용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관련기사를 읽어보면 김상봉씨의 '서로주체성'에서 제기되는 타자가 지나치게 두루뭉실?하고 세밀하게 구별되어있지 못하다는 내용의 비판이 나온다. 또 오늘날 현대서양철학에서 제기되고있는 타자성의 철학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도 아직은 불분명해 보인다. 그것에 대한 구체적 비판도 아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그가 제기하는 '서로주체성'이라는 개념이 독창적  측면 예컨대

"김선욱 : 김상봉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들이 과연 새로운 거냐 하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저는 사실은 (김상봉 선생님의 작업이) 대단히 새롭다고 봅니다. ‘서로주체성’에 대한 개념이 굉장히 공감이 가요. 예를 들어서 ‘커뮤니케이션’이 하버마스가 얘기하는 거랑, 아렌트가 얘기하는 거랑, 테일러가 얘기하는 게 다 다르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것과 또 다른 ‘만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거 같아요.

정말 자기상실을 경험하지 않고, 정말 처절한 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만날 수 없는 그런 세계를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걸 드러내는 데, 그 방식이 장은주 선생님이 지적하셨던 것처럼 서양적이지만, 지금 이 이상의 도구가 어떤 것이 있겠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배우고 있습니다."

와 같은 장점들이 있는 반면 김상봉씨 스스로가 인정하는 문제점..

"김상봉 : 예. (청중, 웃음) 박구용 선생의 비판을 받으면서... 제가 자백을 하고 싶은... 저는 피해자 입장에서 존재를 사유하려 하고 했습니다. 피해자는 어디서도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피해자의 눈으로 보는 것이 철학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도가 지나쳐서 잘못된 피해자 의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로는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의 타자’를 제대로 볼 수 없겠냐는 질책을 잊지 않겠습니다."

"김상봉 : 가장 어려운 지점인데요. 인식은 자동적으로 사물화시킵니다. 사물화시키지 않는 인식이 가능한가? 그러니까 인식 그 자체가 관찰이 아니라 ‘만남’으로 발전할 수가 있는 건가? 하는 게 저 물음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고민하고 있는 게 그겁니다. 논리적인 사유, 사물에 대한 인식, 이것이 전부 사물적인 인식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 져 있습니다. 서구의 인식이. 인격적인 ‘만남’을 모델로 해서 발생하는 지식이 과연 가능한가, 인식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 김선욱 선생님이 지적해주시기 전부터 고민하고 있는 문제인데, 부끄럽게도 아직은 아무 것도 내놓을 게 없습니다."



다시말하면.."사물화시키지 않는 인식이 그 자체로 "관찰"이 아닌 "만남"으로서의 인식으로 발전할수있는가 하는 물음 그리고 "인격적인 만남"을 모델로한 지식이 가능한가? 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지는 의문은 칸트의 철학에서 제기되는 초월성과 그로부터 제기되는 윤리는 어딘지 김상봉씨의 주체개념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르시스적인 주체의 내성으로부터 초월해서 존재하는 타자를 칸트는 그의 초월철학에서 제기하는데 결국 그것은 인식의 수동성을 긍정하는 것이고 이러한 인식의 수동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주체는 김상봉씨의 서로주체성 개념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내가 아직 <자기의식과 존재사유>와 같은 이전저서에서 행했던 것으로 보이는 그의 칸트철학비판을 독해하기 전이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보아서는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또한 데리다의 "환대"개념속에서 발견되는 타자와 라캉이나 지젝의 저작속에서 발견되는"텅빈 주체"개념 등과의 비교작업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정신, 나르시스의 꿈에 질식당하다
'나르시스의 꿈을 넘어서-탈식민주의와 시민적 주체성의 진보' 토론회
텍스트만보기   서상일(dnflwlq) 기자   
▲ 김상봉 교수의 문제적 저서 <나르시스의 꿈>을 두고 교수신문에서 벌어진 김상봉 교수와 장은주 교수의 '1차전' 논쟁에 이어 '2차전'이 벌어졌다.
ⓒ2005 서상일
수준 높은 토론이 벌어졌다.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와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 지난 1월 2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나르시스의 꿈을 넘어서 - 탈식민주의와 시민적 주체성의 진보(이하 나르시스의 꿈)' 토론회가 그것이다.

'나르시스의 꿈' 토론회는 학문의 주체성과 한국 사회의 새로운 시민적 주체성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토론회였다. 그 의미만큼이나 이날 토론자들은 서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그럼에도 겸손함을 잃지 않은 자세로 수준 있는 토론회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수준과 의미만큼이나 이날 토론회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청중들이 몰려 주최측을 당황케 했다. 120여명의 청중이 몰리는 바람에 좁은 장소에 급하게 의자를 마련하느라 진땀을 뺐기 때문이다. 결국 토론회는 예정 시각인 3시를 10분 넘겨 시작됐다.

관련기사
'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인가' 진검승부 벌인다
나르시스의 꿈을 넘어-탈식민주의와 시민적 주체성의 진보
청중의 폭소와 함께한 '철학토크게임'


홀로주체성의 정신적 지향은 제국주의라는 현실적 결과 낳아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나르시스의 꿈>의 저자 김상봉 교수는 이날의 토론을 위해 원고지 600매 정도 분량의 발제를 새로 준비했다. 이전의 <나르시스의 꿈>에서 미처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들이 꽤 있었으며, 더 진전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김상봉 교수는 "서양철학은 아직도 서양철학의 지역성을 명확히 자각하지 못한 철학"이라고 비판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서양철학은 "철학이 시대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식하기는 했으나, 자기들의 철학이 어쩔 수 없이 자기들의 역사와 언어에 의해 제약된 철학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다"는 비판이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서양정신 전체를 "이제나 저제나 자기만을 욕구하는 아집, 아무리 형태가 바뀌어도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집요한 홀로주체성, 그것이 서양 정신의 본질"이라고 규정한다.

김 교수는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서양정신의 본질이 그런 한 타자를 배제할 수밖에 없고, 타자를 노예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정신적 지향은 어떤 식으로든 현실적 결과를 낳게" 되는 바, 그 '현실태'가 바로 북미대륙에서의 원주민 집단 학살과 제국주의라고 말한다.

바로 "그리스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어 온 제국주의의 역사는 그리스에서 태동한 서구적 자유의 이념의 현실태"로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서양정신의 '홀로주체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나르시스의 삶과 죽음은 서양정신의 역사적 발전 단계에 대한 은유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 그 정당성은 인정하더라도 서양정신에 대한 '무모한 일반화'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김 교수는 서구 철학 전체를 '거시적인 시각에서 일관되게 꿰뚫는 통찰'(一以貫之)을 바탕으로 발제문 속에 '나르시즘의 역사'라는 원고를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서양정신에 대한 은유인 '나르시스의 삶과 죽음'은 네가지 단계로 구분된다. 첫째, 나르시스가 타인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대상(세계) 인식에 탐닉하는 단계. 둘째,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자신의 모습에 매혹되는 단계, 즉 나르시즘의 내면화 단계. 셋째,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단계, 즉 나르시즘의 완성과 죽음 단계. 넷째, 지하 세계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강물 위에 비추어 보는 단계이다.

김 교수는 '나르시스의 삶과 죽음'의 네 단계에 대해 "서양 정신이 거쳐 온 역사적 발전 단계에 대한 은유"라고 말한다. 따라서 김 교수는 구체적으로 그리스 철학과 중세 철학, 근대 철학, 현대 철학에 대해 분석하며 나르시스의 삶과 죽음의 네 단계와 결부시킨 해석을 보여주었다.

▲ (좌)김상봉 교수가 발제를 하는 동안, (우)한 청중이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다.
ⓒ2005 서상일
몇몇 서양철학자들의 초보적인 시도가 서양철학의 물길 바꾸지 않아

김 교수가 '타자와 만날 수 없는 정신'이라고 규정한 서양이 최근 타자와의 만남을 위한 철학적 시도를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철학자 레비나스와 데리다를 들 수 있다. 그래서 그간 논쟁에서 이 두 서양 철학자는 서양정신이 김 교수가 지적한 것만큼 '지독하게' 자기동일성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비판의 사례로 거론되곤 했다.

김 교수도 이 두 철학자의 사례에 대해 "오늘날 서양 철학은 아주 조금씩 만남에 대해 말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만남에 관해서 볼 때 서양철학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라며, "몇몇 철학자들의 초보적인 시도가 서양철학의 물길을 하루 아침에 만남의 철학으로 바꿀 수 있다는 듯이 과장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철학이 역사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며 "서양 철학이 만남에 대해 사유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서양 철학이 타자적 정신과 실제로 만날 수 있어야만 한다"고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서로주체성의 변증법은 자기의 확대가 아닌 만남의 확장

김 교수는 이렇게 서양정신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시민적 주체성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김 교수가 제시하는 '서로주체성'인데, 이는 자기동일성을 고집하며 끊임없는 자기확대의 과정을 밟는 '홀로주체성'과 달리, 자기 상실로 인한 아픔과 부끄러움으로 타자를 '잉태'할 수 있는 주체성이다. 이러한 서로주체성이야말로 진정한 '타자와의 만남'이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김 교수는 '서로주체성의 변증법'은 서양정신처럼 자기의 확대가 아닌 만남의 확장을 지향하며, 이때 주체성은 만남을 통해 자기를 버릴 줄 알고 더 넓은 주체성으로 발돔움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로서 우리는 새로운 시민적 주체성으로 새로운 개념의 자유로 진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선욱, 박구용, 김상봉, 장은주, 정세근, 김세서리아 교수.
ⓒ2005 서상일
토론자들, 김 교수의 성과 인정하면서도 강도 높게 비판해

김상봉 교수의 1시간에 가까운 발제가 끝나고, 토론자로 참석한 정세근(충북대) 교수는 "그리스 정신이 유일신을 받아들이는 데, 단절감이 없었다는 (김상봉 교수의) 해석에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며 서양 중세철학에 대한 해석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우리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출발점이 아니라 충분하지 않은 성과"라며 '우리의 철학'을 하자는 형식은 마련한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했으나 아직 구체적 내용은 부족하다며 더 분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1차전의 주인공'인 장은주(영산대) 교수는 김상봉 교수의 작업에 대해 우리가 역사를 통해 시도해 왔던 '동도서기'와 달리 "서도(西道, 서양정신)를 통한 서도의 극복"으로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런 평가를 시도했다.

즉 "서도 그 자체의 관점에서 서도의 한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서도의 내재적 초월을 위한 시도", 또는 "서도의 가장 훌륭한 아우라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아니 그 아우라의 광채에 감탄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한계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으로 평가를 시도했다.

그러나 김 교수의 서양정신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 대해서는 "사회가 변했다"며 다른 견해를 보여주었다. 즉, 김 교수가 통렬하게 비판하는 서양정신은 "서양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버린 낡은 유산"이라는 것이다. 이날 사회자인 홍윤기(동국대) 교수의 말대로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었다.

적절한 첫걸음 딛었으나, 개념을 가다듬고 그 안의 인식 더 치밀히 해야

이어 "유교적" 여성주의를 말하는 김세서리아(성균관대) 교수는 김 교수가 제시한 서로주체성에 알찬 내용을 채우기 위해 '차이-사이의 철학'을 검토해 볼 것을 제안했다. 즉,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면서 동시에 '나'가 아닌 '너' 또는 '그들'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면서 너와 또는 그들과 함께 하는 방법"이라며, "이것을 터득하는 것이 나르시스의 꿈을 넘는 요령"이 될 것이라고 발전적인 제안을 했다.

다음으로 "대한민국에서 김상봉 교수의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으로 자부한다"는 박구용(전남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박 교수는 김 교수가 제시하는 서로주체성이 담아야 할 내용에 대해 "'우리'라는 이름으로 동화되기를 강요하는 억압에 부단히 저항하고 '우리'의 부조리를 고발하면서, 사회적 연대성의 원천인 '우리 안에서 타자'의 자리를 지키는 철학이 되어야 한다"고 발전적인 제안을 했다.

박 교수는 이미 <우리 안의 타자>(철학과 현실사, 2003년 12월 출간)라는 책에서 김 교수의 작업에 관심을 갖고 비판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김선욱(숭실대) 교수는 김상봉 교수의 작업에 대해 "자유와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억압적 구조의 본질을 정확하게 드러낸다"며 그 중요성을 평가했다. 나아가 "여기에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 부버의 사상을 더하고 또 한국인으로서의 경험이 융해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주체성과 자유의 개념에 새로운 이념적 지평을 열어 놓은데, 이 부분에 있어서 적어도 적절한 첫걸음을 옮겨 놓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김상봉 교수의 서양정신에 대한 비판이 매력적인 설명 방식이기는 하지만 다소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즉 "김상봉 교수가 수행하는 반성은 서양의 근대성에 대한 반성"이라며, "김상봉 교수의 작업은 서양 대 한국의 지역적 구도가 아니라, 근대성 대 근대성의 반성의 구도"라고 김상봉 교수가 비판하는 서구가 과연 서구 전체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서 김선욱 교수는 만남의 논리, 서로주체성의 논리, 다른 자유의 논리를 말할 때 "논의가 더욱 정치하게 전개되지 않으면 정치철학적 입장에서는 계속 의심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더 분발할 것을 요구했다.

열정 어린 청중들과 함께 5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회는 사회자인 홍윤기 교수가 "우리를 이렇게 장시간 앉아 있게 할 만큼 문제 자체를 만드는 데 굉장히 성공적이었다"면서도 "그럼에도 개념을 가다듬고 그 안의 인식을 더 치밀히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난 것 같다"고 토론회의 전체적인 평가를 하며 마무리되었다.

이날 토론회는 '한참 물오른' 소장학자들의 열정와 패기, 자신감을 읽을 수 있는 토론회였으며, 자생철학에 목마른 청중들의 열기와 '우리의 철학'에 대한 소중한 첫걸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사회자의 수준높은 유머와 청중의 폭소가 함께한 이례적인 토론회

▲ 통로까지 의자를 놓았고 최대한 밀착해서 앉았음에도 자리가 모자라 끝까지 서서 자리를 지킨 청중들도 있었다.

이번 토론회는 기존 학술토론회의 다양한 관례를 깬 이례적인 토론회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철학자들이 항상 우려먹었던 하이데거나 하버마스가 아닌 이례적으로 한국의 철학자를 대상으로 토론회를 열었다는 점이다(이 점에서 발제자 김상봉 교수는 대단히 행복한 철학자라 할 수 있겠다).

둘째, 학술토론회에 이례적으로 많은 청중이 몰려 열의를 보여준 점이다. 많은 학술토론회가 한 10명, 많아야 20명의 청중을 앞에 놓고 진행한다. 더구나 쉬는 시간이 지나면, 벌써 그 중 몇 명이 사라진다. 그러나 이 토론회는 120여명이 넘는 청중이 몰렸다. 더구나 앉을 자리가 부족해 많은 이들이 불편한 자세로 있거나 또는 서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끝까지 함께 했다.

셋째, 톡톡 '튀는' 사회자의 진행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회자는 논점을 정확하게 집어 주며 토론자의 문제제기의 핵심을 명확하게 요약하고 정리해주어 청중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시종 재치 있는 진행과 청중의 폭소를 끌어내는 유머로 '철학토크게임'을 이끌었다. 사회자의 이러한 여유는 논점의 핵심을 꿰뚫는 혜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 서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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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의 꿈을 넘어-탈식민주의와 시민적 주체성의 진보
29일 장은주 교수, 김상봉 교장 등 치열한 논쟁
텍스트만보기   김재호(yital) 기자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학문의 주체성은 가능한가? 이런 물음에서 논쟁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나르시스의 꿈을 넘어서-탈식민주의와 시민적 주체성의 진보’토론회에 말이다. 1월 29일,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와 참여사회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 장장 5시간에 걸친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장은주 영산대 교수와 철학자 김상봉(민예총 문예아카데이 교장) 간의 그간 논쟁을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고자 마련된 것이다. 장은주 교수는 김상봉 교장의 <나르시스의 꿈 : 서양정신의 극복을 위한 연습>(한길사, 2002)에 대한 서평(교수신문328호)을 썼고, 김상봉 교장은 반론(교수신문329호)을 제기했다. 이후 논쟁은 다섯 차례에 걸쳐 거듭 진행됐다.

논쟁의 핵심은 이렇다. 김상봉 교장은 <나르시스의 꿈>에서 서양정신이 나르시시즘적이기 때문에 한계를 갖는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상실의 경험을 한 슬픔의 해석학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우리’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은주 교수는 그러한 ‘우리’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오히려 김상봉 교장의 시도는 이미 서양철학에 있었다고 비판한다.(교수신문에서 진행된 논쟁에 대해서는 이 글의 맨 아래 정리된 것을 참조하시길.)

▲ 토론회에서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고 있는 김상봉 교장(왼쪽)
ⓒ2005 김재호
김상봉 교장은 이번 토론회를 위해서 62쪽 분량의 새로운 글을 선보였다. 제1부-서양적 주체성의 탐구, 제2부-서로주체성의 이념으로 구성된 글에서 그는 자신의 이론을 좀 더 발전시켰다. 제1부에서 김상봉 교장은 나르시시즘의 역사에 대해서 꼼꼼히 정리한다. 제2부에서는 서양정신 극복을 위해서 다른 주체성, 다른 보편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서양에서 자행된 자기 복제로서의 타자인식과 만남이 아니라, 다른 정신세계의 주체와 진정으로 만나기 위해 제3세계의 만남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어의 ‘meeting'이나 독일어의 ‘Begegnung’은 말자체가 건조하지만, 우리말의 ‘만남’은 풍부한 울림이 있다는 것이다.

김상봉 교장의 시도에 대해 여러 논평이 오고 갔다. 충북대 정세근 논평자는 김상봉 교장의 지적은 한국철학에 대한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은주 교수는 철학 자체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한다. 탈오리엔탈리즘도 극복하는 ‘우리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상봉 교장의 서양정신 분석은 오히려 서양적이라고 일갈한다.

성균관대학교 김세서리아 논평자는 김상봉 교장이 대안으로 내놓은 서로주체성을 이루기 위한 전제로서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자고 한다. 그녀는 차이와 차이-사이의 철학을 강조하면서 한국사회의 여성에 대해서 주목한다. 유교적 여성주의가 아닌, “유교적” 여성주의를 내세우면서 우리를 먼저 확실히 알자고 했다. 전남대학교 박구용 논평자는 김상봉 교장의 시도는 ‘우리의 철학’이고, 장은주 교수의 지향점은 ‘모두의 철학자’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이 둘의 화해가능성으로서 ‘우리 안의 타자’철학을 제시한다. ‘우리 밖의 타자’는 투쟁의 상대로 인정되기 때문에 타자로서의 존재 자체를 의심받지 못한다. 따라서 타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진정한 타자를 주목하기 위해서 ‘우리 안의 타자’를 내세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숭실대 김선욱 논평자는 김상봉 교장의 작업이 “주체성과 자유의 개념에 새로운 이념적 지평을 열어 놓았다.”면서 앞으로 더 정밀한 작업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서로주체성이라는 발견이 과연 한국적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고, 타자가 진정으로 타자성을 발현한다면, 즉 낯선 타자가 식인종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적절한 대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자인 홍윤기 교수(동국대 철학과)는 자칫 어려울 수 있었던 토론회를 잘 정리해주었고 특유의 입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하지만 너무 많은 논평자들로 인해서 김상봉 교장과 장은주 교수의 논쟁이 더욱 진전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청중들의 생각을 들어볼 여유가 없었던 점도 옥의 티였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학문을 해야 할 것인가? 나아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서양정신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현시점에서 제기했다는 것만으로도 김상봉 교장의 노력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고 있는 ‘서로주체성’이라는 개념이 서양철학의 개념들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 지는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서양정신의 극복을 위해서 제시한 제3세계의 ‘만남’이라는 것은 오히려 서양으로부터 가능한지도 모른다. 김상봉 교장이 교수신문 333호에서 지적했듯이. “타자와의 만남에 서툰 것은 서양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상실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금은 서툴지만 앞으로 진정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가? 그가 경도되었던 것처럼 서양정신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더욱 좇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본다.

서양정신은 과연 나르시시즘에 빠졌는가?
교수신문에서 진행된 장은주 교수와 김상봉 교수간의 논쟁

장은주 교수 : ‘우리’도 ‘서양’도 초월해야

장은주 교수는 서평에서 <나르시스의 꿈>에 대해 세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첫째, <나르시스의 꿈>이 서양 철학의 근본을 통쾌하게 비판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열광을 볼 때 김상봉 교장이 제시하는 ‘우리’ 철학의 가능성이 도리어 우리를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니냐는 문제를 던진다. 둘째, 김상봉 교장의 서양 주체 철학 비판이 “나름의 탁월한 통찰”이긴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헤겔이나 칸트 또한 김상봉 교장이 제시하는 서로주체성을 각각 ‘총체적 인륜성’과 ‘도덕적 보편주의’에 담아내려 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셋째, 중요한 문제는 “서로주체성의 올바른 방식”과 “자유의 올바른 실현”인데, 그것이 “왜 꼭 서양이 아닌 ‘우리’의 성취로만 완수될 수 있느냐”며 “그 과제의 완수를 위해서는 우리는 ‘서양’도 ‘우리’도 진정으로 초월할 수 있어야”한다고 강조한다.

김상봉 교장 : 우리는 자신을 비추어 볼 ‘거울’이 없어

장은주 교수의 물음에 대해 김상봉 교장이 답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김상봉 교장은 반론을 통해 우선 장은주 교수가 “우리의 나르시시즘”이라고 지적한 것에 동의하긴 하지만, 자신의 저서에서 쓰인 ‘나르시시즘’은 “오직 서양 정신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며 개념 정립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어서 김상봉 교장은, 자기 상실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는 서양인처럼 자신을 비추어 볼 ‘거울’이 없으며 따라서 “나르시스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또한 김상봉 교장은 장은주 교수가 제기한 두 번째 문제에 대해 “헤겔에겐 그가 사유했던 고유한 역사가 있었다.”며 자신의 서로주체성은 헤겔이 말하고자 했던 것과 같을 수 없다고 반론한다.

그러나 김상봉 교장은 이번 반론을 통해 장은주 교수의 세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장은주 교수는 김상봉 교장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교수신문 330호)을 통해 세 번째 물음을 더욱 구체적으로 묻는다.

장은주 교수 : 우리는 미래를 위한 설계이자 세계 시민이어야

장은주 교수의 물음은 김상봉 교장이 이야기하는 ‘우리’란 무엇이며, 그 ‘우리’가 서양 정신에서의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로 압축된다. 장은주 교수는 여기에서 김상봉 교장의 ‘우리’는 자기 상실의 역사를 경험한 ‘우리’로 제한되면서, “그 자체로 역동화되고 주체화될 수 있는 실체”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장은주 교수는 김상봉 교장이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가 ‘우리 민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냐고 간접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은주 교수는 “우리는 어떤 규정된 과거의 산물이거나 현재의 진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설계”이며 “세계 시민”이어야 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김상봉 교장 : 서양 정신은 정신의 타자는 알아도 타자적 정신은 몰라

이어진 반론(교수신문 331호)에서 김상봉 교장은 새로운 논쟁점을 던진다. 김상봉 교장은 “민족이 서로주체성의 최종적 완성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민족 역시 “타민족과의 만남 속에서 편협한 자기동일성을 지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다. 김상봉 교장은 곧이어 서양 정신이 “정신의 타자는 알아도 타자적 정신은 알지 못한다”며 서양 정신의 한계를 다시금 지적한다.

즉, 헤겔에서 레비나스까지 서양철학자들이 서양 정신 또는 서구 사회 내에 존재하는 타자의 문제는 고민했지만, 서양 정신 밖에 존재하는 다른 정신세계와 충돌해 빚어지는 문제에는 아무런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은주 교수 : 서양 정신도 편협함을 인정하고 반성과 성찰의 노력 기울이고 있어

장은주 교수는 다시 반론(교수신문 332호)을 펼친다. 장은주 교수는 ‘우리’에 대한 김상봉 교장의 주장에 상당한 공감을 표현하면서, 또한 동시에 ‘우리’만 ‘우리의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김상봉 교장의 주장에는 다시금 물음표를 던진다. 이어서 장은주 교수는 김상봉 교장이 주장하는, 우리가 자기 상실의 역사를 경험한 덕택(?)에 “세계사적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대면하고 먼저 사유할 수 있는 인식론적 특권을 누린 위치에 있다”는 문제 설정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덧붙인다.

또한 장은주 교수는 하버마스와 데리다를 예로 들며, 서양 정신의 편협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반성적으로 성찰하려는 노력들이 “‘새로운 유럽’에 대한 철저히 서양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정신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장은주 교수는 중요한 것은 “서양이냐 우리냐”가 아니라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옳은지, 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김상봉 교장 : 서양 철학은 주체성의 역설을 감당할 수 없어

이에 대해 김상봉 교장은 논쟁의 계기가 된 자신의 저서 <나르시스의 꿈>에서 “서양 철학의 유산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적이 없다.”며, 자신은 “서양적 주체성과 자유의 이념을 원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김상봉 교장은, 데리다 역시 열린 유럽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그 방법은 다시 서양 정신의 한계에 갇히고 만다고 강조한다.

덧붙여, “진정한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의 주체성을 타자에게 양도할 수 있어야”하는데 “주체성을 보존하면서도 동시에 주체성을 지양해야”하는 역설을 서양 철학은 스스로 풀어낼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역설을 몸으로 살아온” 우리야말로 타자와의 진정한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김상봉 교장은 주장한다.(교수신문 333호)

장은주 교수 : '문제 해결적 합리성' 필요해

두 철학자의 논쟁은 교수신문 334호까지도 계속된다. 장은주 교수는 앞서의 반론으로 김상봉 교장이 지나친 방식으로 데리다를 비판하고 있다며, “기대하지도 초대하지도 않은 완전히 낯선 방문자에게도 스스로를 열어젖히자는 데리다의 ‘환대’ 개념”은 “적어도 규범적으로는 타인과의 진정한 만남”을 이야기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장은주 교수는 “타인과의 진정한 만남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우리’에게만 유보되어 있는 것”인지 다시 묻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철학의 출발점을 새로 설정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한다. 더 나아가 장은주 교수는, ‘우리’라는 것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체’인 만큼 우리와 서양을 구별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 해결에 제대로 기여하는 학문만이 좋은 학문이고 진짜 가치 있는 ‘우리’의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문제 해결적 합리성”이란 개념으로 압축해 제시한다.

이로써 신문 지면을 빌린 두 철학자의 대화는 끝이 났다. 서평을 통한 문제 제기에서 마지막 반론까지 일곱 편의 글이 교수 신문에 게재됐다. 일곱 편의 글 속에서 ‘우리’와 ‘서양 정신의 극복’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엔 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두 철학자의 대화는 주위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지면 바깥으로까지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르시스의 꿈을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토론회가 기획됐고, 두 철학자는 이 자리를 통해 지면으로 미처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를 얻었다. / 이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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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과 관련된 글을 하나 퍼와 본다. 양운덕씨가 쓴 글인데, 아쉽게도 글의 내용은 지젝의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언제 쓰여진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젝의 후반부의 작업의 성과물은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글이다. 개인적으로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젝이 헤겔철학을 어떻게 그의 라캉주의에 도입 하고 있는가와 같은 부분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지젝의 탁월함은 그의 헤겔철학과의 접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점은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헤겔 변증법과 라캉과의 관계를 상세하면서도 쉽게 논한 글을 어서 빨리 보고싶다. 그런 내용의 글을 아시는 분은 소개좀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적 환상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양운덕 (고려대 강사, 서양철학)


I 문제제기

지젝은 '라깡주의자'를 자처한다. 그는 그가 속했던 슬로베니아 라깡 학회의 다른 구성원들
처럼 라깡의 틀로 전통적인 근대철학(독일 관념론)을 재해석하고, 문화, 예술(특히 영화)을 라깡주의적으로 분석하고, 라깡의 틀로 이데올로기, 권력 이론을 구성하는데 몰두했다. 지젝은 이들 가운데 이론적 성과가 두드러진 인물이다.
흔히 지젝을 라깡의 난해한 개념들을 대중문화 현상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이론가로 본다. 하지만 이런 해석이 단순히 라깡 이론을 쉽게 전달하려는 것만은 아니고 라깡 이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라깡이 '프로이트주의자'이기를 고수하면서 구조주의 언어학 등을 원용하여 '프로이트의 진리'를 일정하게 보완, 수정하고 '다르게' 반복하는 것처럼, 지젝 역시 라깡을 '다르게' 해석하면서 그 이론의 가능성을 자신의 문제 영역(대중문화에서 이데올로기 이론에 걸친 영역)에 펼친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사회 현실과 정치적 영역은 욕망-현실의 다채로운 얼굴들로 나타난다.
프로이트가 제기했던 무의식의 문제틀이 주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욕망, 사회적 증상,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설명하는 틀로 발전된다.
지젝은 초기 저작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에서 자신의 이론적 지향을 제시한다. 그
는 흔한 오해(라깡을 '포스트 구조주의자'로 보는 점)에 맞서서 라깡이 합리주의의 계보를 이어서 '진리'를 다른 방식으로 얘기하는 근본적인 계몽주의자임을 밝히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데리다를 비롯한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라깡의 틀이 차이 철학이 지닌 공허함을 보완하는 다른 길임을 강조한다. 또한 지젝은 '헤겔로 돌아가기' 위해서 라깡 틀로 헤겔 변증법을 재해석한다. 그는 헤겔이 '관념론적 일원론'이 아니라 차이와 우연성을 중시한다고 본다. 그의 부정의 부정, 반성 논리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그것을 이데올로기 이론으로 연결시키는 점은 눈길을 끌만하다. 또한 그는 상품물신성 같은 고전 사회이론의 주제들과 (이데올로기와 무관해 보이는) 라깡의 주요개념들--고정점, 숭고한 대상, 잉여-향유 등--을 재해석하고 연결시켜서 새로운 이데올로기 이론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는 이런 작업이 '이데올로기 이후'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포스트 모던의 덫에 걸리지 않으면서 현대 이데올로기 현상들(냉소주의, 전체주의,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파악하려는 것이

라고 본다. 지젝은 라깡 후기 이론이 (예를 들어서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욕망에서 충동으로) 초점을 옮겼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흔히 라깡을 상징계 이론가로 볼 때 주체가 상징계 안에서 기표들에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고 기표들이 마련한 자리를 부여받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라깡을 '양처럼 순하게' 늘어서 있는 주체들을 질서의 이름으로 길들이려는, 주체들에게 욕망의 허망함을 가르치려는 이론가로 여겼다. 지젝은 이런 해석에 반대하고 라깡의

'실재계'를 전면에 부각시켜서 새로운 방식으로 주체와 사회적 관계의 '진리'를 말하려고 한다. 그는 실재계와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재해석해서 이데올로기 이론, 사회적 환상, 전체주의적 욕망 만들기를 나름대로 이론화한다. 지금까지 개인의 주관적 욕망과 사회 현실을 접맥시키려는 시도들이 별달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지젝은 나름대로 프로이트와 맑스를 '라깡을 매개로' 삼아서 결합시키려고 한다. 그의 욕망의 사회철학이 현재의 사회, 정치적 현실에 참여해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지젝이 21세기의 이론가가 될 수 있으려면 이런 오래된 시도를 보다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업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프로이트와 맑스를 잇는 작업의 중요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젝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시도 가운데 이데올로기 비판과 관련된 몇 가지만 살
펴보려고 한다.


II '나는 알아, 하지만...'의 논리--증상을 고안한 맑스?


라깡은 맑스가 증상개념을 고안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떻게 맑스가 그의 상품을 분석하면
서 프로이트가 꿈, 신경증 등에 관한 분석에 적용한 증상 개념을 만들었다는 것인가? 자못 궁금하다. 지젝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지젝은 맑스와 프로이트의 해석 방식(상품 분석과 꿈 분석)에 근본적인 상동성이 있다고 본다. 이때 양자의 상동성은 그 내용이 아니라 그 구조나 형식이 동형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지젝은 문제가 되는 두 분석에서 형식 자체의 비밀에 주목한다.

 

그는 프로이트가 꿈을 분석할 때 흔한 해석학적 모델처럼 현재적(顯在的:manifest) 내용에서 그 숨겨진 비밀, 곧 잠재적 꿈 사고Traum-Gedanken를 찾지 않는다. 지젝은 잠재적 꿈 사고의 내용이 아니라 이 꿈 사고가 왜 그런 '형식'을 취하는가에 주목한다. 마찬가지로 맑스의 상품 분석에서도 상품의 숨겨진 핵심(노동)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노동이 상품가치 '형식'으로 나타나는가가 초점이다.[각주 1-이런 지적은 먼저 프로이트에 대한 흔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우리 심리 안의 깊은 곳에 감추어진 것으로 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억압에 의해서(Ur-Verdrangung:원-억압) '다른 무대'로 밀려난 무의식은 우리 안에 없다. 무의식은 의식에 들어오기 위해서 의식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꿈 사고는 그 일종이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꿈에서 그 내용이 아니라 꿈 작업의 왜곡(전치와 압축) 장치를 무의식적이라고 보았다. 지젝은 이와 관련하여 무의식이 사고가 아니라 '사고 형식'이라고 본다. 이런 사고 형식은 사고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사고 바깥에 있는 것, 주관적이면서 또 객관적인 것이다. 이런 사고 형식은 상징 질서를 구성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젝은 상품 형식의 '무의식'을 찾는다. 그는 상품 분석에 원용된 물신성(物神性:Fetischismus) 논리와 프로이트가 도착증의 한 형식으로 본 물신주의(Fetischismus)를 연결시킨다.

 

지젝은 상품을 교환하는 주체들에게서 '마치 ...처럼'의 논리를 찾는다. 교환을 하는 동안에 개인들은 마치 상품이 물질적 교환에 예속되지 않는 듯이 행위한다. 물론 그들은 의식적으로는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화폐는 다른 물질적 대상처럼 시간에 따라서 변한다. 그런데 시장의 사회적 현실에서는 마치 그것이 변치 않는 실체를 지닌 것처럼 다룬다. 지젝은 이런 점이 '나는 잘 알아, 하지만...'이라는 물신적 태도와 연결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나는 엄마가 팔루스를 지니고 있지 않은 점을 알아. 하지만...[나는 그녀가 팔루스를 지닌다고 믿어]'. '나는 화폐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물질적 대상임을 안다. 하지만...[화폐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특수한 실체로 만들어진 것이다]' (Zizek, 1989, 18-9)

이런 화폐의 물질적 성격에 따른 신비화는 화폐가 숭고한 대상이고, 이런 화폐의 다른 몸, 비물질적 신체성, '신체 안에 있는 신체'를 믿는 것이다. 교환행위를 하는 동안 개인들의 행위에는 어떤 '오인'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런 오인이 교환행위를 유효하게 하는 필수조건이다. (Zizek, 1989, 20) 이런 점에서 이데올로기의 근본 차원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가짜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데올로기가 그 참여자의 비-지식을 포함하는 사회현실을 구성하는데, 이 현실은 개인들이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에만 유효하게 작용한다. 지젝은 주체의 비-지식이 포함된 점 때문에 이것을 '증상'으로 본다.

 

지젝은 이런 틀로 상품물신성을 새롭게 해석한다. 보통 상품물신성은 인간들 간의 사회관계가 사물들간의 관계라는 (환상적인)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서 생산 자본을 투입해서 잉여가치가 산출된 경우에 이 잉여가치가 노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본이 산출한 것이라고 믿는 태도는 자본을 물신화하는 것이다. 자본이란 사물-신이 스스로 운동하고 잉여가치를 창조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어떤 상품의 가치는 상품생산자들간의 사회관계의 표지이다. 그런데 이런 가치가 어떤 사물(상품, 화폐)의 준-자연적인 속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특정한 상품의 가치가 일정량의 화폐로 표시된다. 지젝은 상품물신성의 핵심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사물들 사이의 관계로 사물화되는 것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구조적 효과로 해석한다. 곧 구조와 요소들 간의 관계에 따른 효과가 마치 한 요소의 '직접적인' 속성인 것처럼 나타나는 점에서 찾는다. 곧 한 요소가 다른 요소와 관계 맺지 않고 그 자체로 어떤 속성을 갖는다는 오인을 문제삼는다.

 

단순한 가치 형식을 살펴보자. 상품 A는 그 가치를 (등가인) 다른 상품B와 관련해서만, 비교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이때 상품 B가 A에 대해서 거울 역할을 한다. 상품B는 A가 그것과 관련되는 한에서만 등가이다. 그런데 B는 A와 관계 맺지 않는 것처럼, B가 그 자체로 A의 등가인 듯이 나타난다. '등가(being an equivalent)'의 속성이 B의 자연적 속성인 것처럼 여겨진다. 비슷한 예를 보자. 한 사람이 왕인 것은 오로지 타인들이 그에게 신하의 관계에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들은 왕이 왕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신하인 듯이 상상한다. '왕이 됨'은 왕과 신하간의 사회 관계에 따른 효과이다. 그런데 사회 안에 있는 이들에게 이 관계는 전도된 형식으로 나타난다. 마치 '왕이 됨'이 사회적 관계와 무관하게 (그들이 자신들을 신하로 여기고 그에게 봉사하는 것과 무관하게) 왕 개인의 자연적 속성인 것처럼 오인한다. 왕-신하의 관계의 산물인 왕이 아니라 '왕은 왕이기 때문에 왕이다.' (Zizek, 1989, 24-5)

 

그러면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어디에서 생기는가? 사고 영역인가 아니면 행위 영역(또는 현실 자체)인가? 지젝은 맑스가 지적한 이데올로기적 착각이 지식의 측면이 아니라 이미 '현실 자체', 개인들의 행위의 측면에 있다고 본다.(*그렇다. 문제는 생각이 아니라 행위Practice이다.) 예를 들어 개인들이 화폐를 사용할 때 그들은 그것에 어떤 마술적인 힘이 없음을 매우 잘 안다. 일상적인 수준에서 개인들은 사물 관계 배후에 인간관계가 있음을 안다. 문제는 그들이 사회적 행위를 할 때 '마치' 화폐가 (사회관계가 아니라) 부 자체를 직접 구현하는 것'처럼' 행위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실제 행위에서 물신주의자이다/물신주의자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사물들의 실제 모습을 잘 알고 있지만 마치 그들이 모르는 것처럼 행위한다. 지젝은 이런 무의식적 착각을 '이데올로기적 환상'이라고 부른다.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근본적인 차원이 (사물들의 실제 상태를 은폐하는 착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회 현실 자체를 구조화하는 무의식적 환상에 있다고 본다. '개인들은 그들이 행위하면서 착각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행위한다.' (Zizek, 1989, 30-3) 이런 물신fetish은 도착의 일종이고, 거세를 거부하는 방식의 하나이다. 그런데 지젝은 이 물신주의의 정식('나는 알아, 그렇지만...')으로 도착적인 '전체주의적 대상'을 설명한다. 전체주의적 권위를 지지하는 자는 자신이(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아주 잘 알지만') 특수하고 뛰어난 자질을 지닌 사람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서 당(黨)-물신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자신들을 역사 의지를 직접 구현하는 자라고 믿는다. 이들은 사회, 역사 발전 객관적인 법칙이 지배하며 당은 객관적인 법칙을 직접적으로 구현한다고 본다. (Zizek, 1

991, 251-2)[각주 2-라깡은 사드가 칸트의 진리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사드적 주체, 희생자에게 가학적으로 행위하는 실행자가 쾌락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그 자신이 아니라 '큰 타자의 향유'를 위해서 일한다. 곧 는 타자의 의지의 도구가 된다. 이런 태도는 이른바 전체주의, 또는 (역사) 법칙을 (불법적으로) 실행하는 수단인 당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라깡은 도착이 환상이 뒤집어진 효과라고 본. 곧 주체가 자신을 대상으로 규정하는 태도이다. 라깡이 환상을 S(빗금쳐진 S) a 라고 했을 때 기표로 대표된 주체가 그의 욕망의 원인-대상과 만나서 분열됨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사디즘적 도착자는 이 구조를 뒤집는다. a S(빗금쳐진 S). 곧 자기 자신이 대상의 자리를 차지한다. 자신을 큰 타자의 의지를 구현하는 수행자로 만든다. 그는 주체를 구성하는 분열을 회피하고 자기의 분열을 타인에게 옮긴다. 사디스트는 타인을 위하여 대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타자의 향유를 위하여 도착자로 행위한다. 스탈린주의의 큰 타자, 곧 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법칙은 최고악의 한 변형이다. 그 자신을 객관화, 도구화하는 것은 오로지 역사적 필연성의 도구가 되려는 확신에 바탕을 둔다. 그는 자신을 큰 타자(역사)의 의지를 실현하는 투명한 수단으로 삼아서 그의 핵심을 이루는 분열을 회피한다. 물론 그 대가로 그의 향유를

전적으로 소외시킨다. 부르조아적 주체가 자유로운 참여의 권리를 내세운다면 전체주의적 주체는 이런 자유가 큰 타자의 것임을 보여준다. 그것과 관련하여 그 자신의 의지는 전적으로 도구화된다. (Zizek, 1991, 234-5)]


III 큰 타자의 결핍을 메워라!--이데올로기적 환상


1. 이데올로기적 고정점

 

지젝은 이데올로기를 환상의 틀로 설명하면서 이데올로기 비판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러면 사회적 환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주체들의 욕망을 틀 지우는가? 라깡은 기표들의 체계에서 기표와 기의가 만나지 못한다고 보았다(S/s에서 /는 양자가 만나는 것을 불가

능하게 하므로 의미는 고정될 수 없다). 기표들은 차이 관계에서 기의 없이, 고정된 의미 없이 떠돈다. 라깡은 이런 기표들을 잠정적으로 고정시켜서 의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고정점(point decapiton)'이 필요하다고 본다.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소파의 등받이를 잠정적으로 소파에 고정시킬 수 있는 것처럼 의미를 일시적이나마 고정시킬 수 없다면 의미는 계속 방황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 담론 공간을 떠다니는 요소들은 차이 관계망에서 고정된 동일성을 마련하지 못한다. '자유'는 무엇이고, 누가 '개혁파'이고, 누가 '민주주의자'인가? 여기에 떤 이데올로기적 고정점이 개입해서 떠다니는 기표들을 꿰매어서(quilting) 그것들의 의미를 고정시킨다. 이런 꿰매기는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을 안정된 전체로 만든다. 지젝은 이와 관련하여 상징질서인 큰 타자가 자체 안에 결핍을 지닌 것임을 지적한다. 그래 이런 큰 타자의 결핍을 채워줄 환상,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라깡은 상징계가 두 얼굴을 지닌다고 본다. 한 얼굴은 상징 질서가 각 요소를 일정한 자리에 배치하고 나름의 의미와 역할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징질서는 요소를 뛰어넘는 전체이고 의미를 배당하는 우월한 주인이다. 그래서 이런 상징 질서는 그 요소들에게 낯설고 넘볼 수 없는 '타자'(l'Autre)로 여겨진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처럼 군림하는 상징 질서는 온전한 전체를 이루지 못한 채 어떤 결핍을

지닌다. 기표들의 차이관계에서 각 기표는 다른 기표와 다르기 때문에 자기이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가능하려면 각 기표의 개별적인 차이들에 앞서는 '차이 자체'가 있어야 한다. '사랑'과 '미움'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사랑'도 '미움'도 아니고 '사랑과 미움의 차이'이다. 그러면 이런 '차이'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이런 '차이 자체'를 나타낼 기호는 없다. '차이'는 고정된 내용을 갖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상징계의 대타자는 상징계 전체의 질서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고정된 내용을 가지지 못한, 즉 결핍된 차이 자체라는 것)

 

라깡은 이런 점 때문에 상징 질서가 결핍을 안고 있고, 이런 결핍 주위에서 상징질서가 구조화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결핍을 지닌 큰 타자(상징질서)는 완결된 전체에 대한 욕망을 갖는다. '큰 타자의 욕망'이란 표현이 어색할 지 모르지만 이런 큰 타자가 전체가 아니므로(pas-toute; not-all) 나름대로 결핍을 채우려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 점을 라깡은 "타자는 현존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2. 큰 타자의 질문--'당신이 (참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젝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주체가 동일시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긋남주목한다. 라깡-알뛰세르는 (상상적, 상징적) 동일시를 통해서 주체와 그의 욕망이 일정한 사회적-상징적 영역에 통합되는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주체는 상징 질서가 위임하는 명령(mandate)을 짊어지고 있다. 곧 그는 상징 관계의 상호주관적 망 안에 주어진 자신의 자리를 갖는다. 당신은 '아버지'/'학생'/'주부'이다. 이렇게 호명된 주체는 그 부름에 답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와 의미에 적합한 자기를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부름과 응답은 일치하는가? 지젝은 이런 명령이 자의적이고, 일정한 역할을 촉구하는 수행적인 것일 뿐이라고 본다. 래서 동일시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항상 틈이 남게 된다. (히스테리적) 주체는 "이것은 내가 (참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주체는 호명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큰 타자가 질문한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Che vuoi?" 교사는 학생에게,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국가가 시민에게, 엄마는 아이에게 묻는다--지젝은 재미있게 mother를 (m)Other로 쓴다. '너는 나에게 이것을 원한다고 했지만 네가 참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너는 무엇을 목표로 삼는가?'

 

큰 타자는 마치 주체가 이 질문에 답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묻는다. 그런데 주체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주체는 왜 그가 상징적 관계망에서 바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모른다. (주체는 이런 상징화가 실패한 빈자리일 뿐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런 타자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3. 환상이 큰 타자의 결핍을 은폐한다

 

지젝은 라깡이 환상을 그 답으로 제시했다고 본다. 이런 (사회적) 환상이 큰 타자의 수수께끼, 큰 타자 안에 있는 결핍을 은폐한다. (Zizek, 1989, 118) (지젝은 환상이 흔히 오해하듯이 단순히 헛된 만족을 주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환상은 '현실'을 구성하고 주체들이 어떻게, 무엇을 욕망할 지를 가르친다. 그래서 개인적 환상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상도 나름의 사회적 '현실'을 구성하고 주체들에게 완전한 사회를 추구하려면 떤 욕망의 좌표를 가져야 하고 무엇을 욕망 대상으로 삼아야 할지를 알려준다)

 

그러면 큰 타자가 환상을 구성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지젝은 라깡 이론의 근본적 차원이 (주체의 분열보다는) 큰 타자의 분열, 큰 타자의 근본적인 불가능성에 있다고 본다. 만약 큰 타자에 이러한 결핍이 없다면 완결된 구조를 갖출 것이다. 그러면 꽉 짜인 타자 안에 있는 주체는 소외를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큰 타자의 결핍이 주체에게 숨쉴 공간을 주고 전면적인 소외를 피하게 한다. (같은 책, 122) 그러면 큰 타자는 결핍을 그대로 두는가? 이 결핍을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 가족, 회사, 교회, 국가가 메울 수 없는 결핍을 지니고 있다면 큰일이 아닌가? 이때 결핍 없는 타자란 환상이 필

요하다. '환상'이 큰 타자 안에 열려있는 빈곳을 채우고, 그 비정합성을 가린다. 환상은 큰 타자가 상징화될 수 없는 어떤 것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주체는 이런 환상을 통과하면서 마 큰 타자 안에서 자신들의 욕망이 조화롭게 정해진다고 여긴다.


4. 사회적 환상 통과하기

 

(주체들이 환상을 통해서 욕망 대상을 찾듯이) 사회적 환상을 만드는 큰 타자는 조화로운 전체에 대한 불가능한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어떤 환상이 필요하고 욕망을 일으키는 어떤 원인-대상이 필요할까? 이것을 지젝이 종종 드는 반유태주의의 '유태인 형상' 만

들기로 살펴보자.

 

1) 먼저 담론 수준에서 '유태인 형상'이 상징적 (중층)결정에 따라 만들어진다. (꿈의 왜곡 작업에서 본 '전치'와 '압축'이 동원된다) 먼저 전치displacement를 통해서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의 자리를 바꾼다. 이 속임수로 사회적 적대를 엉뚱한 곳으로 옮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온전한 전체인) 사회는 불가능한 것'이고, 사회적인 것은 적대에 기초를 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파시즘 이데올로기는 이런 적대가 존속하고 조화로운 전체가 불가능한 이유를 유태인에게 떠넘긴다. 타락의 원천이 사회의 한 부분인 유태인에 배당된다. 적대의 원천인 노동계급과 자본 계급 간의 계급적 적대 대신에 생산계급과 그들을 착취하는 자들(유태인)사이의 가짜 적대가 마련된다.

이와 함께 '유태인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 대립적인 측면들을 압축condensation한다. '유태인 형상'에 경제적(폭리를 취하는 자), 정치적(음모가, 비밀 권력을 지닌 자), 도덕적-종교적(타락한 반 기독교도), 성적(무고한 소녀들을 유혹하는 자) 적대 등을 압축시켜 일련의 이질

적인 적대들이 모아진다. 한마디로 유태인의 형상이 증상, 사회적 적대의 암호가 된다. (같은 책, 125-6) 그리고 이런 왜곡에 더하여 열광적인 힘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사회적 환상을 통과'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유태인'이 환상의 틀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들이 우리의 향유를 훔쳐간다."

 

이처럼 환상은 적대적 분열을 가린다. 라클라우가 지적하듯이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것(the Social)은 항상 비정합적인 것이어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곧 사회는 항상 (상징 질서로 통합될 수 없는) 적대적 분열에 의해서 관통된다. 그런데 이런 적대를 부정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환상은 '완전한 사회'의 비전을 내세운

다. 이것은 적대적 분리에 의해서 분열되지 않은 사회, 그 부분들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룬 사회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렇게 내세운 비전이 실현되지 않는 까닭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어떤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건전한 사회를 타락시킨 외적인 요소, 곧 물신fetish이다. 그것은 '마치' 사회의 불가능성을 긍정적이고,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 이런 물신은 사회적 영역에서 향유를 폭발시킨다.

 

주체들이 환상을 통과하면서 '유태인'에게 귀속시킨 것이 사실은 사회 체제에 불가피한 적대, 무질서이다. 바로 사회에 고유한 적대, 피할 수 없는 내부적 부정성을 '유태인'이란 형상으로 (그 바깥에) 투사한 것이다. (같은 책, 126-8) 이런 점 때문에 지젝은 이데올로기 비판을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폭로하는 작업으로 보지 않는다. 이 환상의 배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 환상은 아무 것도 가릴 것이 없음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초점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IV 마치면서

이상에서 부족하나마 지젝의 정신분석학적 이데올로기 이론의 일부를 살펴보았다. 이런 틀
에서 지젝은 본질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차이의 혼란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며, 동일성의 진리를 추종하지 않으면서도 변증법적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필자는 그의 실천적 이데올로기 이론이 욕망과 현실의 매개, 개인과 사회-역사의 변증법의 모범적인 예가 되길 바란다.

필자가 보기에 지젝은 다양한 작업에서 근, 현대의 서구 이론가들을 라깡적 주제로 재해석하고 그들에게서 라깡적 사고틀을 찾고 라깡적 답을 보충한다. 이것은 새로운 해석의 풍요로움 낳을 수 있지만 라깡주의가 '이론의 주인'이 되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지젝이 앞으로도 여전히 라깡주의자로 머물지, 아니면 독자적인 이론가로 나설 것인지가 궁금하다. 필자는 지젝의 넘치는 '이론 욕망'을 보면서 부러움이 앞선다. 그래서 우리 현실과 문화(의 욕망)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분석과 정치하고 세련된 논의가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욕망 이론가들'이 우리의 무의식적 욕망이 구조화된 현실을 잘 설명할 수 있을 때 그들에게 라깡과 지젝에게 묻고 싶었지만 감히 물을 수 없었던 것들을 물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Slavoj Zizek (1989),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London and New York, Verso.
(1991), For They Know Not What They Do:Enjoyment as a Political Factor. London and New York, Verso.
(1991a), Looking Awry: An Introduction to Jacques Lacan through Popular Culture. Cambridge, Mass and London, MIT Press.
(1992), Enjoy Your Symptom! Jacques Lacan in Hollywood and Out.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1993), Tarrying with the Negative: Kant, Hegel and the Critique of Ideology.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1994), The Metastases of Enjoyment: Six Essays on Women and Causality. London and New York, Verso.
(1996), The Invisible Remainder: An Essay on Schelling and Related Matters. London and New York, Verso.
(1997), The Plague of Fantasies. London and New York, Verso.
(1998), The Ticklish Subject: A Treaties in political Ontology. London and New York, Verso.
Judith Butler, Ernesto Laclau & Slavoj Zizek (2000), Contingency, Hegemony, Universality: Contemporary Dialogues on the Left. London and New York, Verso.
홍준기 (2000), 지제크의 라캉 읽기: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중심으로. 문학과 사회 52호 pp.1881-1899. 2000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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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주의 체제의 실체?

- 1917년 이전의 러시아 – 국가의 폭력 기구가 비대화되고, “위로부터”의 국가 지휘 하의 자본주의가 발전되기 시작한 매우 “전통적인” 사회 – 약 80%의 수출은 농산물이었음. 농촌에서 – 약 3만 호구의 대지주 (주로 귀족)들은 약 7천만 데샤티나, 즉 천만 농민 가구들이 소유한 면적만큼이나 소유하는 등 농촌은 극단적인 “불균형적 토지 소유 관계”에 시달렸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1914년에 도시 공업에서 500명 이상의 대규모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전체의 54%에 달하는 등 노동 계급의 대규모 작업장에서의 집중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았음. 후진적인 러시아이었지만 군사적 “열강”이었기에 군수공업은 세계적 수준에 있었으며, 대표적인 군수 공업 업체인 Putilov 공장 (St.-Peterburg)은 약 3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등 그 당시 세계 최대이었음. 결국 대공장에서 집중된 노동자들이 혁명 사상에 쉽게 노출됐으며, 도시 노동자의 혁명 운동과 농촌에서의 농민 반란 운동이 합쳐지는 순간 제정 러시아 체제나 매우 취약한 러시아 자본가들의 지배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 “복합형 불균형 발달의 과정”은 러시아 혁명을 다 준비해놓았음.
- “고질화된 불만의 상태” – 내전이 종식된 1921년 이후에 사실상 재현됐음. 농민들이 노동자 위주의 새로운 국가를 아직 강력하게 이질시했음. 풍년 때에 곡물의 과잉 공급으로 시장 식량품 가격들이 폭락할 수 있었기에 특히 부농들이나 중농들이 식량 방매를 유보하는 등 “식량 파업”을 벌이곤 했으며 국가는 가격의 폭등을 막기 위해 법정 수매 가격을 정해 그 나름의 “저곡가 정책”을 시도하는 등 농민과 국가는 “準 적대 관계”에 있었음. 트로츠키파의 경제학자 Preobrazhensky – 1925년에 “저곡가 정책을 통해서 농민층을 ‘착취’하지 않으면 산업화와 진정한 사회주의로의 이동을 이룰 수도 없으며 부농들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노동자들을 달랠 수도 없다, 법정 저곡가 정책을 펴서 농촌의 잉여를 산업 투자로 돌리자”는 이야기로 유명해졌음. 결국 국정 참여 기회가 거의 없었던 농민과, 농업보다 산업을 우선시하는 “도시인들의 국가”의 숙명적 갈등.
노동자들이 산업 발전이 지지부진하는 “신경제정책” 시절 (1921-1928)에 높은 실업률 (25%)과 매우 열악한 생활 조건 등에 시달리고 “무엇을 위한 혁명이었던가”와 같은 질문들을 공개적으로 던지곤 했다. 공업 관료 (주로 당원이 아닌 지배인 등)와 당 관료에 대한 불만 – 트로츠키파 등에 대한 상당수 평당원들의 지지로 이어졌다. 반대파의 지지기반 – 공업시설이 가장 밀집한 모스크바의 소콜니키, 크라스나야 프레스냐 등의 지역. 성장률 2%밖에 안되는 1920년대의 소련 도시 사회 –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노조 – 관료화되어 더 이상 “밑바닥”을 거의 대표하지 않았음. 노조의 지도부 – 당원이 아닌 일반 노동자의 비율은 12-13%이었음 (1926년). 일반 노동자와 노조 간부, 십장, 지배인과의 관계 – 거의 “혁명 이전의 예속적인 형태”로 돌아왔다는 평가. 
- “1920년대의 구조적 위기” – 결국 스탈린 지도부가 2 가지 방법으로 돌파했음:
* 포섭 – “미완의 혁명”에 대한 좌절과 불만에 젖은 노동자나 농민들을 위해 “신분 상승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1924년 교육부의 훈령 – 대학 입학은 노조 조합원들에게만 허할 것, 전역 군인과 Rabfak (노동자 출신들을 위한 예비 과정) 출신, 내전의 상이군 등을 특채로 뽑을 것 등을 명령했다. 원칙상 해당 노조의 추천서가 있는 젊은 노동자에게는 고등교육 받는 것은 대단히 쉬운 일이 됐다. 그런데 사실상 1930년에 대학생들 중에서는 노동자, 농민 출신의 비율은 37%에 불과했음. 다수는 전문가, 지식인, 자영업자 출신들이었음 – 대학 입학을 좌우하는 대학 교수들은 되도록이면 노동자/농민들의 비율을 줄이려고 노력했음. 대학 교육은 노동자에게는 무상이었지만 노동자/빈농이 아닐 경우에는 여전히 학비를 징수했음. 1933년 경 – 초등학교 입학률이 거의 100% 이름. 1940년대말 – “문맹 퇴치” 거의 완성. 1970년대 중반 – 거의 100%에 가까운 학생들이 중학교 졸업하게 됨 – 중등 교육 보편화. 대학교 입학생의 총수 – 몇 배 증가하여 1940년쯤에 백만 명에 이름. 그런데, “노동자/농민들을 위한 역차별 정책”들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중의 노동자/농민 자녀의 비율은 사실 1980년대초까지 45% 정도 넘지 못했음 – 여전히 실질적인 사회적 헤게모니는 고학력자 중산층에 있었음. 1920년대의 또 다른 對사회 “유화 정책” – 낙태수술의 허용 (허가제 – 불법 수술의 비율은 약 20-30%), 이혼 절차의 간소화, 동성연애의 인정 등 – 새 정권에 대한 도시 사회 특히 젊은이들의 환심 사는 데에 큰 역할을 했음 - 1930년대 후반에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거의 다 사라졌음.
* 폭력 – 국가에 의한 사회의 무력화와 공포 분위기 조성, 개인의 원자화 – “가시적인 공판” - 1928년의 Shakhty 공판 (“사회주의적인 생산을 사보타주하는 부르주아적 전문가 응징”) 이후 특정 집단들을 겨냥하는 일련의 공판들이 열림. 절정 – 1936-37년의 레닌의 주요 동지 (“파시스트 간첩이자 트로츠키주의적 테러리스트”)에 대한 공개 재판 (“Moscow Processes”). 사법적인 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이미 사회가 경험한 기존의 폭력의 규모를 염두에 두어야 함 – 1917-1921년간에 내전, 대량 기아, 이민 등으로 러시아의 전체 인구가 약 1천3백만 명으로 줄어들었음. 그런데, 1940년에 수용소와 감옥을 합쳐서 수감돼 있는 인구는 정확히 1.850.258명 이었음 – 즉, 다수의 주민들에게 스탈린의 숙청보다도 1917-1921년간의 일련의 참극들이 “진정한 참사”로 보였을 것. 수감자 중에서는 거의 상당수를 이루는 것은 각종의 “정치, 사상범”이었음: 1937-1938년에 정치 관련 범죄로 체포, 수감된 인구는 1.344.923명, 그 중에서는 총살된 인구는 681.692명. 그 뒤에는 연간 총살자의 수가 크게 줄어들어 1940년대에 (정치범에 한해서) 7500명 정도이었음. 대체로 총살되는 이들 – 거의 다수의 “舊 공산당원” 등 잠재적으로 반체제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었던 자 – 잠재적인 적에 대한 “선제공격”. 결과 – 원자화된, 순치된 사회 – “사회적 운동” 가능성의 봉쇄. 
경제적 폭력 – 특히 “농민들의 협동화” – 1929년 이후 – 사실상 농민들의 자율성을 말살시키고 농촌으로부터 잉여를 수취하여 공업부문에 투자시키기 위한 매우 가혹한 “농업 희생 정책”. 결과 – 특히 우크라이나 지방에서의 대량 아사 사태, 아사자의 수는 전국적으로는 1932-34년간 약 4백만 명으로 추산됨. “생존 경쟁” 사회의 탄생 – 하류층 출신의 소련 시민에게는 최대의 과제란 “굶어죽지 않기”, “가족 살리기” 정도. 정권이 안정된 상황에서는 “생존”의 주된 방법은 정권에 대한 충성 – 소련 국민의 “가시적인 충성심”은 상당부분 내면화된 생존의 전략.
* 성장 – 폭력적인 “농촌 말살”을 기반으로 하여 공업 경제는 1930년대에 기적적인 압축 성장을 이루어 도시 주민에 대한 포섭 정책을 가능케 했다. 성장률 연간 13-15%. 1928-1937년간 강철 생산은 3백만 톤에서 1천5백만 톤으로 늘어남 – 거의 5배 정도의 증가. 1930년대말 – 자동차 (연간 20만대), 비행기 생산 등 – 군사화된 중공업의 구축이 거의 완성됐음. 대가 – 실질 임금의 동결 내지 소폭 하락 (1928-1940), 구조화된 과로 (하루 15시간씩 노동), 매우 높은 산재사망률 – 그런데 교육, 의료 분야에서의 국가의 포섭 정책이 민중의 희생에 대한 일종의 “대가”를 지불하는 셈이었음.
결국 – 박정희 정권보다는 오히려 스탈린주의는 “대중 독재”의 형태에 다 가까웠음 – 기본적인 위로부터의 압축 성장 패턴은 비슷해도.

# 스탈린주의를 “사회주의”로 인정할 수 없는 여러 이유:
- 철저한 비민주성.
- 혁명 이전의 시절을 방불케 하는 양극화 - 1930년대 후반의 노동자 월급 평균 150루불, 고급 간부는 보통 3000-4000루불 이상. 같은 탄광에서 광부와 지배인의 월급 차이는 약 80배.
- 전사회의 군사화
- 퇴영적이며 제국주의적 “민족 정책”. 이미 1924년부터 이슬람 공산주의자 Sultan-Galiev 등에 대한 박해 시작 – 1930년 체포, 1937년 총살. “소수 민족 공산주의자”, 즉 소수 민족 해방을 위해 투쟁할 수 있었던 거의 일체 활동가 - 1930년대말 총살됐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상당수의 민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데올로기적 배경 – 국민주의/대러시아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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