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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100자평에 역자님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주셨기에 답변을 드리는게 예의인거 같아서 적어봤습니다. 글이 길어져서 페이퍼로 올려봅니다. 


이 책의 번역자입니다. 이해하기 힘든 비문이 너무 많다니 유감입니다. 저 역시 일부 지젝 번역에 불만이 있는 터라 정성껏 번역하고 여러 차례 교정도 보았습니다. 그래도 번역에 오류가 없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 비문이라면 원서와 대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출간된 책을 검토하면서 서너 개의 오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서평에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비문이 너무 많다˝ 는 말씀은 무책임해 보입니다. 지젝은 그 인기만큼 가벼운 철학자가 아닙니다.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는 비문이 아니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이 책의 서문은 지젝의 다른 어떤 텍스트보다도 난해합니다. 
나쁜 번역에 악평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오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악평은 악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악평의 근거를 제대로 제시해 주십시오.





일단 반갑습니다. 역자님.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서 좀 겸연쩍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하셔서 몇자 적습니다.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 악의라 생각치는 말아 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원서내용이 궁금하던차에 구입하여 대조해 보았습니다. 대조해본 결과 제 의구심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느정도 풀리더군요. 제가 님처럼 번역등의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전체적으로 대조할 시간을 낼수 없기에 서문일부만  살펴봤습니다. 읽어본 결과 가령 이런 문장들이 눈에 띄더군요. 


"이 책은 어떤 존재의 질서에도 구성적인 다양한 수준의 적대에 관한 몇가지 가정들과 함께 결론에 이른다." (본서16쪽)


이 문장은 보면 "비문"이라고까진 아니지만 한번 읽어서는 얼핏 무슨 뜻인지 금방 의미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독해력 좋으신 분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저같은 평범한 독해력을 가진 사람들은 저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이 문장의 원문을 찾아보니까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더군요. 


"The book concludes with some hypotheses about the different levels of antagonism that are constitutive of any order of being,"


이 문장인데요. 제가 번역해보겠습니다. 


이 책은 어떤 존재의 질서에도 구성요소로 존재하는 다양한 수준의 적대에 대한 몇몇 가정들로 끝을 맺는다. 


차이점은 constitutive of 와  conclude with 의 번역차이에서 오는걸로 보이는데요. 님은 그냥 "구성적인"으로만 번역을 했죠.  그런데 이렇게 번역하면 "구성적인"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성요소인, 구성성분인" 이렇게 번역하면 이 표현이 "존재의 질서"와 갖는 관계가 보다 쉽게 드러나죠. conclude with같은 경우도 님은  "결론에 이른다"라고 하셨지만 지젝은 이 문장을 쓰면서 그 내용으로 책을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conclude with라는 표현을 한거죠. 그래서 그 의미를 살릴려면 저처럼 끝을 맺는다. 마무리한다로 풀어서 이야기하는게 지젝이 전달하려는 의미가 더 잘 살지 않았을까요? 그 다음에 나온 오자 "detology"(dentology의 오자)는 교정자의 실수로 이해하겠습니다. 


역어선택에도 좀 미스가 아닌가 하는 부분들이 보이는데요. "self-identical"은 "자기 정체적"(14쪽)보다는 자기 동일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임석진씨도 같은 구절을 그렇게 번역했고요. "positedness"를 "정립됨"이라고 번역하셨는데 이러면 그 '수동적'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임석진씨처럼 "피정립성"이라고 번역하는게 더 나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반성된 결정"에서 결정도 bestimmung의 역어라면 '반성된 규정'(임석진씨는 "반성규정")으로 번역하는게 더 나아보이고요. 기타등등 이정도만 하겠습니다. 


대략 이런 식입니다. 원서와 대조해본 결과 많이 체크해보진 않았지만 오역이나 비문까진 아니더라도 이처럼 금방 이해하기 힘든 지나친 직역투, 번역투의 문장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겁니다. 물론 전혀 이해할수 없는 건 아닙니다. 저야 몇 문장만 풀어서 번역하면 그만이지만 책한권을 통채로 그것도 지젝의 책처럼 난해한 책을 통채로 번역한다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죠. 그런점에서 역자님이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짐작은 됩니다만 책을 통해 독서의 기쁨을 누리길 기대하는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위와같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을 만나면 또 원서를 사서 비교해봐야하는 수고스러운 일을 반복해야만 하게되니 난처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책을 보니 그래도 오역이 넘쳐나는 다른 많은 번역서들 보다는 훨씬 신경을 많이 쓰신 흔적들이 보이긴 합니다. 다만 님이 번역하실때 이정도 직역이면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하고 무심코 해석한 문장들이 간혹 지나친 직역투, 번역투 문장이 되어서 원서를 접하지 않고 번역서로만 보는 독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될수있다는걸 간과한것 같다는 부분입니다. 이런 점만 조금 더 보완해 주신다면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더 나은 역서를 내주실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p.s. 하나만 더 추가해 봅니다. 


empiricist skepticism, which doubts that we can ever form a consistent structure of what reality is out of the only thing we have access to, our dispersed and inconsistent experience, with its multiplicity of data.


역자님의 해석:이는(경험론적 회의주의) 우리가 언젠가는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우리가 접근했던 유일한 것  외부에 있으며, 우리의 분산되고 혼돈된 경험인 현실이라는 것에 대한 일관성 있는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한다. (본서 33쪽)



저의 해석: 경험론적 회의주의는 우리가 다양한 데이타를 통해서만 유일하게 접근가능한, 분산되고 비일관적인 경험의 외부에서 무엇이 현실인지에 대한 일관된 구조를 늘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한다. 


차이점은 역자님의 문장은 we have access to를 과거로 보고 "접근했던"으로 번역했는데 과거로 해석할 이유가 전혀 없고  더 큰 차이점은 님은 out of를  only thing과  dispersed and inconsistent experience를 대등이나 병렬의 관계로 저처럼 보지 않고 only thing에만 걸리는 것으로 보고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지 않게 되니 "분산되고 혼돈된 경험인 현실이라는 것에 대한 일관된 구조" 처럼 "현실이라는 것에 대한 일관된 구조"를 수식하는 것으로 dispersed and inconsistent experience를 보는 어색한 해석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기보다 저처럼  only thing과 dipersed and inconsistent experience가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병렬이나 나열의 관계로 보고(콤마가 그래서 있는 것이죠) 이것들의 전체에 걸리는 것으로 out of를 해석해야 좀더 정확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p.s. 2 쓴 김에 몇 자 더 추가합니다. 


"트로츠키주의의 영구혁명으로부터 서구 마르크스주의(아도르노)를 거쳐 오늘날의 "저항"의 형식들에 이르기까지.." (본서 35쪽)


"negative dialectics" from Trotskyist permanent revolution through Western  Marxism(Adorno) up to today's form of "resistence"


재번역:트로츠키주의식 영구혁명으로부터 서구마르크스주의(아도르노)를거쳐 오늘날의 "저항"의 형식에 이르는 부정변증법....


이 문장은 negative dialectics를 빠뜨리고 해석하셨군요. 이게 없어서 원서없이 볼때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는데 원서를 보니 궁금증 해결..


"이처럼 기 꺾인 헤겔의 정치적 한계에 더하여 존재론적 한계를 보는 것이 결정적이다." (본서 35쪽)


It is crucial to see the political as well as the ontological limits of this  deflated liberal Hegel.


재번역:기죽은 헤겔의 존재론적한계 뿐만아니라 정치적 한계를 보는 것이 결정적이다.


보통 as well as는 뒤에서부터 해석하는게 정확한걸로 배웠습니다. 가령 not only A but also B = 

B as well as A 이렇게요. 그러니까 crucial로 강조하고픈건 존재론적 한계라기보다 정치적 한계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확정 상태가 결정적이다!" (35쪽)


this indeterminacy is crucial!


재번역: 이 불확정성이 결정적이다! 


in을 놓치셨군요!


"헤겔이 제안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자연의 유기체들이 단순히 복잡성과 조직의 일정한 수준에서 자신들에게 전념하여 더 이상 자연의 경계들 안에서 적절하게 해명할 수 없는 방식 혹은 어떤 식이든 경험적 관찰의 결과로 마침내 자신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서 35~6쪽)


The suggestion Hegel seems to be making is simply that at a certain level of complexity and organization, natural organisms come to be occupied with  themselves and eventually  to understand themselves in ways no longer appropriately explicable within the boundaries of nature or in any way the result of empirical observation. 


재번역: 헤겔의 제안처럼 보이는 것은 단순하다.  자연의 유기체들이 복잡성과 조직의 특정한 수준에서는 자기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마침내 자신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고 어느 면에서는 더이상 자연의 경계 내에서 적절하게 설명가능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경험적 관찰의 결과이길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역자님은 no longer를 appropriately explicable에만 걸리는 것으로 해석을 했는데 or 뒤의 result of empirical observation에는 해당하지 않는것으로 보았네요. 그러나 구문상으로도 그렇게 해석할 이유가 없고  문맥상으로 봣을때도 헤겔의 "좀더 자기 결정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을 의식하는" 내용을 강조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경험적 관찰의 결과"를 긍정하는 의미로 해석할 이유가 없습니다. 


번역을 비평하는 논거가 좀 부족한거 같아 번역문을 조금씩 계속 보고있는데 보시는 바와같이 눈에 띄는 구절들이 계속 나오는군요.. 계속 추가할지 말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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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현 2017-03-0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번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습니다. 주관적인 지적도 있다는 느낌이 있지만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번역에 의구심이 든다˝거나 ˝비문이 너무 많다˝는 평가가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원문과 대조해 보지 않은 채 많른 사람들이 책을 구매하는 사이트에서 그런 식의 말을 쓰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평가문을 수정하시거나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쓰신 평문을 내려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합니다.

yoonta 2017-03-04 17:44   좋아요 0 | URL
글쎄요. 지금도 번역문을 조금씩 계속 보고 있는 중입니다. 본문에도 내용을 약간 추가했고 계속 할수도 있습니다. 제 평가가 님 기준에서는 너무 가혹하거나 편협하거나 악의적으로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여전히 미흡해 보인다는 것이죠. 당연히 제기준이므로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제 평을 보는 다른 분들도 그점 감안해서 판단하리라 봅니다. 님은 억울해 하실수 있다고 봅니다만 그것때문에 제 의견을 내려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yoonta 2017-03-04 18:18   좋아요 0 | URL
원문비교를 통한 비평이 아니고 인상비평이었다는 점에서 삭제했습니다. 대신 이 페이퍼는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소녀N 2018-08-24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안하지만 지젝 책 중에서 가장 읽기 쉬운 번역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악의적이고 멍청한 평가에 번역자님이 흔들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새벽에 너무 화가 나서 댓글 남깁니다.

yoonta 2018-09-16 16:58   좋아요 0 | URL
악의적이고 멍청한지 안한지는 원서랑 대조해서 읽는 분들이라면 알겠지요. 괜찮으면 한두페이지정도는 눈감고 넘어갈수잇고 아니면 페이지마다 잘못된 번역이 계속 튀어나오는 수준입니다. 잘못된 구절을 계속 업데이트할수있지만 무의미한것 같아 쓰다 말았는데 이게 ˝악의적이고 멍청한 평가˝로 보이시나보군요. ㅋ 웃고 지나가겠습니다.

소녀N 2018-09-1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알겠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정말 그렇네요. 악의적이고 멍청하다는 말은 죄송합니다.
 

『물질과 기억:반복과 차이의 운동』(김재희, 살림)을 읽다가 제논의 역설과 관련한 베르그손의 언급이 있어서 이와 관련하여 떠오른 생각들을 한 번 정리해 본다.

제논의 역설에 의하면 활 시위를 떠난 화살은 과녁에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과녁을 향하는 화살은 과녁까지의 거리의 절반을 지나야 하고 또 그 위치의 반이 되는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그것의 반에 도달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무한히 반복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는 결과 화살은 결코 목표물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제논의 역설이다.




한편, 베르그손은 이러한 제논의 역설에 대해 평가하면서 그것이 “과학적 시간의 본질을 논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이러한 역설이 가능한 이유는 과학이 “운동 그 자체를 운동체가 지나간 공간으로 환원”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과학이 대상이 되는 운동과정 전체를 완전히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였고 또 그것을 다시 공간적으로 분할함에 의해 ‘시간’을 유도해 내었다는 점을 베르그손은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으로 환원된” 시간은 실재의 시간이 가진 ‘예측불가능성’을 보지 못한다고 베르그손은 비판한다. 이 때의 시간은 모든 과정을 한꺼번에 펼쳐 놓고 부분으로 무한히 분할 가능한 공간으로 시간을 대체하는 공간화된 시간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모든 운동의 과정이 분할가능한 만큼 예측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런 결정론적 구조의 운동에서는 화살은 활시위를 떠나면 반드시 목표물에 도달하게 된다. 아니 목표물에 도달하는 것을 전제로 운동이라는 것이 성립한다. 그럼으로써 운동의 결과는 항상 예측가능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베르그손은 이러한 운동 그리고 공간으로 환원된 시간은 실재의 시간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한다. 시간의 가장 중요한 본성은 ‘예측불가능성’과 ‘연속성’이다. 때문에 그는 “시간은 발명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베르그손의 철학개념으로 표현하자면, ‘지속’은 “한마디로 과학적 시간과 달리 불가분한 질적 변화의 연속으로서 예측 불가능한 미래로 열려 있는 창조적이고 발명적인 실재 시간”인 것이다.

이처럼 제논의 역설은 기존 과학에서의 공간화된 시간이 가진 모순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학적 시간의 본성을 논증”하는 것으로 베르그손은 평가하였다. 나아가 그는 엘레아 학파가 제논의 역설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과학의 한계를 철학 혹은 형이상학으로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창조적인 예측불가능성’을 가진 실재적 ‘지속’에 대한 인식은 과학만으로는 파악 할 수 없고 오직 형이상학이라는 우회로를 통해야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베르그손의 과학에 대한 비판은 고전역학의 결정론적인 공간과 시간 개념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유효하지만 20세기 이후에 등장한 양자역학이나 최신의 물리학의 경향에까지 유효하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양자역학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가 이론화한 것처럼 “불확정성”을 자신의 가장 주요한 특징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사실 시간은 공간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공간 그 자체는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에서 보여준 4차원개념도 비록 공간이 가진 3차원에 시간차원을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긴 하지만 시간을 공간화한 것이라기보다는 공간의 3차원 +시간차원인 것이지 공간 자체가 4차원으로 확장된 것은 아니다. (최근 ‘여분의 공간차원’과 관련된 물리학 예컨대 초끈이론등과 같은 물리학은 이와는 달리 공간 자체를 여분의 차원이 숨어있는 3차원 이상의 공간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을 기존의 공간차원과 결합시켜 생각하면서 베르그손이 파악한 시간차원의 예측불가능성을 간과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뉴턴의 고전역학적 시공간 개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성이론은 고전역학을 보다 일반적인 차원으로 확장시킨 것이지 그것에 대한 폐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베르그손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http://www.ottobw.dds.nl/filosofie/consciousness.htm  )

그런데 이러한 과학에 대한 그의 비판은 양자역학에 이르게 되면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의 이러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운동의 결정론적 시각을 문제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이유는 양자역학이 본질적으로 기존의 물리학과는 달리 예측불가능성을 전제로 한 확률론에 기반하는 물리학이기 때문이다. 통계 혹은 확률론이 물리학에 본격적으로 도입될 수 있었던 계기는 루드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에 의해서였다. 그는 기체의 열역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가 발견한 열역학 제 2법칙 즉, 엔트로피법칙(열은 항상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고 고립된 계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고 열평형상태에서 최대에 이른다는 법칙.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Entropy  )을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역학에서 통계학과 확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에 의하면 엔트로피 법칙은 다음 식으로 표현된다.

S = k log W

여기에서 S는 엔트로피, k는 볼츠만 상수(k = (1.380622±0.000043)×10-23 J·K-1)이고 W(Wahrscheinlichkeit)는 원자들의 특정 배열이 나타나는 빈도 혹은 확률이다. 이 공식에 의해 그는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의 창시자가 되었으나 이러한 그의 통계역학은 생전에 철저히 무시당하였고 결국 이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볼츠만의 통계역학의 중요성은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전자기복사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뒤늦게 다시 조명받게 되었는데 결국 그는 물질이 양자(quantum)라고 불리우는 에너지단위로만 전자기복사를 흡수할수 있고 그 양자는 복사의 진동수에 비례함을 발견하여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의 탄생을 알리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열역학과 양자역학에 의해 정교화된 엔트로피법칙에 의하면 시간의 비가역적 성격과 관련한 하나의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쏜 화살이 과녁에 도달하는 이유는 시간이 원래부터 한 방향(과녁에 도착하는 방향)으로만 진행하도록 처음부터 규정되어 있어서라기보다는 과녁에 도착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확률적으로 가장 근사치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시간이 거꾸로 흘러서 과녁을 향해 날아가던 화살이 다시 활시위로 돌아오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살이 과녁을 향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이유는 단지 그렇게 진행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더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서이지 원래부터 그렇게 진행되게끔 미리 결정되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거시세계에서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과 같은 사건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양자와 같은 미시세계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과 같은 일은 기이한 현상이 실제로 관측된다. 대표적인 예가 “양자적 얽힘”현상이다. 아인슈타인이 포돌스키(Podolsky) 와 로젠(Rosen)과 함께 통해 양자역학의 허구성을 밝히기 위해 고안한 사고실험인 소위 EPR실험(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EPR_paradox )에 의해 예견된 이 양자적 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에 의하면 서로 연관된(correlated) 한 쌍의 양자를 서로 멀리 떨어뜨려 놓은 뒤(이론적으로는 무한히 먼 거리도 가능하다) 두 양자 중 한 쪽의 스핀을 ‘관측’하게 되면 관측된 양자의 파동함수가 붕괴되면서 우리에게 특정한 스핀(예컨대 업스핀 혹은 다운스핀)으로 관측된다. 그런데 이러한 한 쪽 양자의 운동에 대한 관측(정확히 이 “관측”이 양자적 얽힘 현상의 원인인지 아닌지는 아직 논란 중이라고 봐야 한다)이 반대편 양자에 (빛보다 빠른 속도로) 거의 동시에 전달되면서 관측된 양자의 스핀과 동일한 스핀이 반대쪽 양자에도 관측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적인 정보의 전달이 가능하려면 빛의 속도를 능가해야 하는데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이러한 속도의 정보의 전달은 불가능하므로 양자역학은 잘못된 이론이라고 아인슈타인은 EPR실험을 통해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믿기 힘든 현상이 실제로 양자세계에서는 가능함을 벨(John Stewart Bell)이 그의 유명한 벨부등식(Bell's inequality) 그리고 아스펙Aspect의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이다. 물론 벨부등식이 양자역학의 최종적 승리를 보증하고 상대성이론의 오류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빛의 속도는 “모든 속도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상관없이 모든 관측자들의 눈에 ‘동일한 속도로 보이는’ 기준의 역할”(브라이언 그린. 우주의 구조. 승산. 186쪽)을 한다는 것. 이로서 상대성이론과 아스펙의 실험은 공존가능하다는 것이 물리학자들의 해석이다.(EPR실험과 벨부등식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우주의 구조』(브라이언 그린. 승산) 4장 혹은 http://en.wikipedia.org/wiki/Bell_inequality 를 참조)





이러한 “양자적 얽힘 현상”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양자적 세계에서의 공간은 거시세계에서는 찾아볼 수없는 비국소성(nonlocality)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비국소성은 즉, 서로 멀리 떨어진 한 쌍의 두 양자가 빛의 속도를 초월하여 서로 즉각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두 양자 사이에 놓인 공간이 유클리드기하학이나 고전물리학에서 당연한 전제로 생각하는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공간의 국소적인 독립적 분할가능성에 위배되는 공간이 가능함을, 공간이 양자적으로 서로 긴밀히 결합되어(얽혀)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비국소성 현상은 앞에서 살펴본 베르그손의 제논의 역설과 관련된 과학 비판과 관련이 있다. 그가 제논의 역설을 통해 비판했던 공간으로 환원된 기존 과학의 시간개념 그리고 분할가능한 독립적 공간만으로는 이 비국소적 공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오히려 시간과 공간은 베르그손이 이야기한 바와 같이 분할 될 수 없는 (질적) 연속체 혹은 전체로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이러한 비국소적 공간에서의 시간은 그것이 환원되어질 수 있는 기초로서의 공간을 마련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가령,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시간은 다음 공식으로 유도될 수 있다.

t = s / v

(t는 시간, s는 이동거리, v는 속도)

이 공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여기에서 시간(t)은 분할가능한 거리(s)와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있는)속도(v)가 주어짐으로써 유도해 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서의 운동량(v)은 양자역학에서는 하이젠크의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에 따르게 되므로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게 되어 더 이상 결정론적으로 유도되지 않는다. 결국 양자역학에서의 시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유도되어야만 한다. 앞에서 언급한 엔트로피가 양자역학에서의 시간에 대한 대안적 설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시간도 이제는 더 이상 절대적 조건으로 주어지는 변수가 아니라 엔트로피에 의하면 확률론적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 된다. 이러한 시간개념은 결국 베르그손이 이야기한 예측불가능성 그리고 이러한 예측불가능성에 의해 창조적이며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성격을 부여받은 시간 혹은 지속(duration)개념과 공명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베르그손의 철학은 양자역학이 태동하기 이전에 이미 그것을 예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행히도? 과학은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발전함으로해서 베르그손이 주장했던 것처럼 철학(형이상학)의 도움없이도 베르그손의 철학을 수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현재적 사건으로부터 과거와 미래의 운동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예측가능한 것으로 보는 고전역학의 결정론적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음으로써 양자역학은 결정론적이며 공간환원적인 시간을 베르그손적인 예측불가능성의 시간으로 뒤바꿔 놓았던 것이다.

물론 아직 논란은 남아있다. 양자역학이 결정적으로 상대성이론을 극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아직까지 이 두 물리학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에 각각 독립적으로 유효한 이론으로 존재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두 이론의 불충분함을 양자를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통일장이론을 발견하려고 시도함으로써 해소하려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최근의 초끈이론이랄지 양자중력이론 등은 이러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통일을 시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아직까지 무엇이 시간과 공간을 설명하는 ‘진리’인지 이야기할 수 없다. 두 이론을 통일하는 통일장이론조차도 그것이 완결된 이론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철학으로서도 베르그손이 이야기하는 예측불가능성으로서의 시간만으로는 플라톤적 세계로 대표되는 실재론을 결정적으로 반박했다고 볼 수는 없다.(이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인데 다른 기회에 자세히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베르그손의 칸트와 플라톤에 대한 비판(예컨대 『사유와 운동』(이광래. 문예출판사) 234~235쪽을 볼 것)은 재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뛰어난 선견지명으로 양자역학을 예견하였지만 수학에 대해서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예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그손의 철학은 여러 측면에서 오늘날의 세계를 해명하는데 유효해 보인다. 양자역학과 같은 물리학이 펼쳐 보이는 불확실성으로서의 세계를 논증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들뢰즈가 밝힌 것과 같이 그의 다수성 개념은 오늘날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설명하는 훌륭한 개념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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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대 2008-05-01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박홍규 전집 중 창조적 진화 강독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다 읽고 나면 본격적으로 베르그송 저작들을 읽어보고 싶은데 거기에 인용된 원전의 문장들만 봐선 읽기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다행히 형이상학 강의부터 읽어서 희랍철학에 대해서는 약간의 워밍업이 되어 강독은 어떻게 따라가고 있지만 형이상학이란 게 잠깐만 발을 헛디디면 곧장 나락으로 빠져들어가서 참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도 막 책을 덮고 난감하던 와중에 반가운 페이퍼가 올라왔길래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플라톤과 관련해서도 페이퍼를 쓰실 예정이라니 기대가 됩니다. yoonta님 글은 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혹시 수학 전공하시나요?

yoonta 2008-05-02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삼각대님^^
박홍규씨의 창조적 진화 강독을 읽고 계시는군요. 그 책은 먼저 베르그손의 원전을 읽고나서 읽어보시는게 순서일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창조적 진화강독은 박홍규씨의 다른 전집중에서도 어려운 편에 속하는 책인것 같았습니다. 베르그손의 원전역시 쉽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긴 하지만요. 저로서도 그의 사상 전체를 조망해본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난망한 일이고 단지 그의 사상의 단편만을 들여다보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위 페이퍼를 쓰다가 플라톤과 관련한 베르그손의 견해가 흥미롭게 느껴져서 생각이 정리되면 관련글을 올려볼까 생각중입니다.
내용도 별로 없는 졸문을 재미있게 봐주신다니 저로서는 황송할 따름입니다.. 전공은 수학은 아니고요 수학을 많이 쓰는 과를 전공하긴 했었네요.^^

Ritournelle 2008-09-27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논의 역설'은 베르그손의 텍스트에서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대한 시론>에서 처음 나와요. 베르그손 텍스트에서 유일하게 읽은건데...yoonta님 잘 지내시죠?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어요. 건강 조심하세요.

yoonta 2008-09-28 15:09   좋아요 0 | URL
잘지내시죠? 무화과나무님?^^
베르그손은 말씀하신대로 초기부터 제논의 역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죠. 파르메니데스로 대표되는 엘레아학파(에 대한 비판)를 그의 철학을 기초세우기 위한 발판으로 삼은것 같더군요. 헤라클레이토스철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유라고 볼수있을텐데 그런점에서는 니체와 화이트헤드의 사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플라톤은 그 중간에 위치한 좀 독특한 철학을 한 것 같더군요. 플라톤의 철학을 파르메니데스적인 일의성 철학이 아닌 오히려 순수다수성의 철학으로 보는 바디우를 그런 점에서 관심있게 보고 있답니다. 생각이 정리되는데로 페이퍼를 한번 써보려고 하는 중이랍니다..^^

[해이] 2009-02-0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재밌게 읽었어요ㅋ 물질과 기억은 살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사보는게 좋을거 같네요. 베르그송은 전혀 안느게 없으니... ㅠ

yoonta 2009-02-05 23: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ey]님^^ 재미있게 봐주셔서 다행이네요. 좀 억지스러운 대목이 있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저도 페이퍼로 다루고 있긴 합니다만 베르그송(손)에 대해서 안다고 말 할 처지는 못되는군요.^^;;

펠릭스 2009-09-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그송'으로 알고 있었는데,'베르그손'이군요.
'물질은 단지 반복할 뿐이지만 정신은 반복하면서 차이를 산출한다',
물질과 정신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에 기분이 좋습니다.
'왜,기분이 좋을까' 를 생각해 봅니다.

yoonta 2009-09-21 15: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펠렉스님.
저는 펠렉스와의 우연한 '만남'이 기분을 좋게 하는 것 같군요^^

베르그송보다는 베르그손이 현지발음에 가까운 발음이라더군요. 베르그송/손이 원래 폴란드출신이라 그렇답니다.고유명사표기를 자주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필요에 따라서는 바꿀 필요도 있겠지요.


 

앞의 글에서 브라우어(L.E.J. Brouwer)가 "직관주의(intuitionism)"으로 자신의 수학기초론을 명명한 배경에는 칸트철학에 대한 오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다루어보려고 한다.


브라우어는 수학의 기초에 대한 스스로의 입장을 세우면서 칸트 철학에서 그 유사함을 본 것으로 보인다. 칸트는 그의 저서인 『순수이성비판』에서 수학을 "직관intuition"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정의하면서 그것이 "선험적 종합판단"임을 논하였다. 이러한 칸트철학을 참조하여 브라우어는  스스로를 직관주의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세희, 수학의 세계, 서울대학교출판부,312쪽. 참조) 이는 브라우어가 칸트철학을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수학을 인식주관으로부터 독립적인 실재로 가정하지 않고 인식주관에 의해서 구성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는 종래의 견해에  기초한 결과이다. 그런데 사실 이는 칸트철학에 대한 오독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수학은 "선험적 종합판단"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1, 아카넷, 225쪽 참조) 그러면서 그것이 순수논리에 의한 개념적 구성물이 아니라 왜 "직관을 보조로"한 학문인지 설명한다. 칸트의 설명을 다소 길지만 인용해 보자.

"처음에 사람들은 '7+5 =12'라는 명제는 '칠'과 '오'의 합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모순율에 따라 귀결되는 분석적인 명제라고 생각함직하기는 하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고찰해 보면 '7'과 '5'의 합이라는 개념은 두 수를 하나의 수로 통일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이로부터 그 두 수를 포괄하는 이 하나의 수가 무엇인가는 전혀 생각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십이'라는 개념은 내가 순전히 칠과 오의 저 통일을 생각하는 것으로써만 이미 생각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그러한 가능한 합이라는 나의 개념을 한동안 분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해서 거기서 '십이'와 마주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두 수 중 하나에 대응하는 직관을 보조로 취해 예컨대 다섯 손가락이나 또는 (세그너가 그의 산술학에서 했던 것처럼) 다섯 개의 점을 그렇게 해서 하나씩 직관에 주어지는 다섯의 단위들을 일곱의 개념에 덧붙임으로써 사람들은 이 개념들을 넘어갈 수밖에 없다.왜냐하면 나는 먼저 수 7을 취하고, 5라는 개념 대신에 직관으로서 내 손의 손가락들을 보조로 취함으로써, 나는 수 5를 형성하기 위해 앞으로 함께 취했던 단위들을 이제 저 나의 그림에서 하나씩 수 7에 더하고, 그렇게 해서 수 12가 생겨나는 것을 보게 되니 말이다. 5에 7이 더해져야(이 부분의 강조는 칸트가 직접 했다. 그는 5에 7을 더한다는 것이 분석적으로 유도되는 것이 아니고 직관적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한다는 것을 나는 7 + 5의 합의 개념에서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합이 수 12와 같다는 것은 거기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산술의 명제는 항상 종합적이다. " (강조는 필자)

 (칸트, 순수이성비판 1, 아카넷, 225-226쪽)

 

브라우어는 칸트의 이러한 설명으로부터 즉 "산술의 명제는 항상 종합적이다"라는 것의 설명으로부터 자신의 구성주의적 수학을 직관주의로 호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칸트가 비록 산술의 명제를 '분석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자연수의 합과 같은 산술이 "직관을 보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러므로 칸트의 수학에 대한 입장을 객관적인 수학적 개념(concept)나 대상으로부터 독립적인 실재를 가정하지 않은 순수하게 구성적(constructive)이며 주관적인 학문이라고 규정했다고 볼수는 없다는 점이다.

 칸트철학의 본체를 보여주는 『순수이성비판』은 수학이나 물리학과 같은 개별학문들 처럼 "선험적 종합판단"을 자체 내에서 수행하기 위한 작업이라기보다는 이 "선험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 즉, 그것의 토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때문에 그의 철학은 기존 형이상학과 개별 학문들의 토대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칸트는 "초월적 감성학"으로 『순수이성비판』을 시작한다. 다름아닌 바로 "직관"의 개념규정으로부터 책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수단에 의해 언제나 인식이 대상들과 관계를 맺든지 간에 그로써 인식이 직접적으로 대상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그리고 모든 사고가 수단으로 목표하는 것은 직관이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1, 아카넷, 239쪽)

그리고 "직관은 오로지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졌을 때에만 생기며" 대상은 "감성을 매개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이 "감성만이 우리에게 직관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성에 의해 사고되며 지성으로부터 개념들이 생겨난다." (같은 책, 239쪽)

 

그런데 칸트는 시간과 공간과 같은 표상들은 "순수한 직관"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선험적(a priori)"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선험적인 것은 경험에 선행한다는 의미이므로 인식의 "주관"안에서 찾아져야 한다. 특히 시공간과 같은 직관은 "신에게서나 가능함 직한 "근원적 직관"이 아니라 일종의 "파생적 직관"이라는 점에서 말이다.(칸트, 순수이성비판 1, 아카넷, 36-37쪽 참조) 그러나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비록 이 "파생적 직관"이 주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객관의 현존에 의존적이고, 그러니까 주관의 표상력이 그것에 의해 촉발됨으로써만 가능한” 직관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다시말해 시간과 공간과 같은 직관은 단순히 주관적인 파생적 직관이 아니라 객관적 실재성을 내포한 “근원적-파생적 직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 공간(에 대한 직관)은 대상의 현존이 없이도 가능한 “상상력”이다. 그것은 “주관을 벋어나면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순수 감성적 직관이기 때문이다. (같은 책 225쪽)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무질서하고 잡다한 현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용을 한다. 칸트는 그것을 “감각기능(감관)에 의한 선험적인 잡다의 일람(一覽)작용”, “상상력에 의한 이 잡다의 종합” 또는 “근원적 통각에 의한 이 종합의 통일”(같은 책 317)과 같은 말로 시공간에 대한 직관을 표현한다. 그런데 이 시공간에 대한 순수직관은 지성처럼 순수한 형태로 분석적 사고의 양식을 만들어 내는 능동성에 기반한다기보다 대상의 감관에 주어질 때에 비로소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것이다.

시공간에의 직관은 이처럼 대상적 인식이 가능했을 때에만 주어지는 수동적 성격을 가지면서 그와 동시에 무질서하고 잡다한 현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능동성을 가진다. 그러면서 그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할수 있는 “상상력”에도 기초로서 작용한다. “양”이나 “다수성” “전체성”과 같은 범주들의 적용에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대상들을 단일한 하나의 시간 혹은 공간으로 표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소위 “대상일반”의 인식도 그래서 가능해 진다. 


그런데 대상들을 통일시키고 그것의 지각을 가능하게 하는 시공간(에의 직관)은 대상들의 현존을 가능하게 하는 실재적 본질이다. 다음 설명을 들어보자. 

 “다시말해 공간, 시간은 그 자체로는 주관적이고 그런 의미에서 ”관념적“인 것이지만, 현상하는 객관들과 관련해서는 실재적, 곧 객관적으로-실재적이다. 공간,시간은 그 자체만으로 볼 때나 경험적 직관 너머에 있는 어떤 대상, 가령 초험적인 사물과 관련해서 볼 때는 순전히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경험적인 직관, 곧 경험적으로 직관함과 경험적으로 직관되는 것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백종현, 같은 책, 42쪽. 강조는 필자) 


이러한 특성을 칸트는 “경험적 실재성” 혹은 “초월적 관념성”이라고 규정한다. 현상들과 관련해 그것에 객관적 실재성을 부여하는 면에서는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지만 동시에 인간의 주관을 벗어나서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현존하는 대상 없이도 인간의 인식 내에 “상상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주관이라는 측면에서는 “초월적 관념성”을 가진다는 이야기이다. 완전히 객관적 대상에 귀속되는 실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수한 인식주관으로만 환원할 수도 없는 수동성을 가진다는 이러한 양면성. 그것이 시간, 공간에 대한 직관이다. 

칸트가 앞서서 7+5 =12 라는 수학적 결과는 두 수의 합이라는 “개념”에 의해서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하나 세어보는 행위를 통해어 깨닫는 “직관”의 보조에 힘입은 바 유도되는 “선험적 종합판단”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정수론에 심취하여 칸토어의 혁명적 업적을 부인했던 크로네커, 그리고 수학적 귀납법의 유용함을 근거로 환원공리를 비판한 푸앵카레(모리스 클라인, 수학의 확실성, 사이언스북스 참조) 그리고 자연수 내에 존재하는 “직관적”성격을 내세워 자신의 입장을 직관주의라고 명명한 브라우어 등은 모두 칸트의 수학에 대한 입장을 단순히 구성적이고 주관적인 것으로만 간주했고 이는 칸트 철학에 대한 오독임이 분명하다. 다시말해 그들은 위에서 이야기한 직관의 초월적 성격, 객관적 실재로서의 측면은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그것의 한 측면 즉, 주관으로서의 성격만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칸트의 수학론을 이처럼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비단 직관주의자들 뿐만이 아니다. 러셀과 프레게와 같은 논리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칸트가 수학을 “선험적 종합판단”으로 규정한 것을 두고 잘못이라고 말하면서 수학의 수학의 경험적이고 직관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면만을 강조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가 이처럼 수학을 “선험적 종합판단”이라고 규정한 것을 두고 철학 내에 “타자”를 도입한 “철학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평가한다.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한길사, 87쪽) 다시 말하면 칸트가 수학을 “선험적 종합판단”으로 규정한 것은 바로 철학에 대한 자기반성이요 비판이라는 것이다. 고진을 인용해 보자.

“내 생각에 형식적인 공리계에 의해 수학을 기초짓는다는 몽상은 수학 고유의 것이 아니다. 그 몽상은 분석판단을 유일하게 확실한 것으로 간주하는 형이상학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칸트가 부정하려고 한 것은 그러한 사고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러한 형이상학이 스스로 밀어붙인 수학에 의거하는 이상, 수학에서 행해져야 한다. 반대로 수학에서 행해진 것은 수학을 모범으로 삼아온 철학으로 되던져질 것이다. 괴델의 ‘초수학’적 비판은 그러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그것은 칸트의 초월론적 비판과 연결되어 있다. 지금 돌이켜 볼 때 칸트가 수학을 ‘종합판단’이라고 간주한 것은 옳았다고 해야 한다.”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한길사, 116쪽)

이처럼 고진은 칸트철학이 수학에 대해서 가지는 입장을 인식주관에 의해서만도 아니요, 혹은 객관적 실재로서만도 아닌 이율배반적인 초월성을 가진 것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한 것이다. 아카넷판 『순수이성비판』의 역자인 백종현씨도 고진의 입장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칸트에 대한 오독은 국내학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라는 책을 쓴 진은영씨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가 선천적 종합판단의 대표적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7+5 =12와 같은 수학적 판단이다. 칸트에 따르면 7+5=12는 우리가 사과나 돌멩이를 가지고 경험적으로 세어보았기 때문에 타당한 것이 아니다. 일일이 세어보지 않아도 우리는 이 판단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그것을 세어보아야만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수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손가락, 발가락으로 세면서 수학적 판단을 배우게 된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수학적 판단의 보편성과 필연성은 경험과 무관하다. 누군가 1234+1001=2235가 맞는지 묻는데 예전에 세어보았던 경험을 돌이켜야 한다든가 세어본 경험이 없어서 1234개의 사과와 1001개의 오렌지를 창고에 넣으며 수를 센 후에만 대답할 수 있다면 수학적 판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 우리는 손가락이나 돌멩이로 세는 일 없이도 수학적 판단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확신한다. 도대체 이와 같은 보편성과 필연성이 어디에서 유래하느냐라는 물음에 대해 칸트는 우리의 주관적 형식에서 온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진은영,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그린비, 66쪽. 강조는 필자)


이 구절의 앞에서 그는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위에서처럼 칸트가 설명한 산술명제의 예를 들고 있다. 하지만 위와같은 진은영의 설명은 선험적 종합판단의 예라기보다는 오히려 분석판단에 대한 설명으로 보아야 한다. 그는 7+5=12라는 수학적 결과는 “경험적인 것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판단”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앞서서 문제의 칸트의 구절을 직접 인용해 본 것처럼 칸트는 분명 7+5=12라는 결과는 단순히 개념적 수들의 합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7을 취하고 5라는 개념 대신에 직관으로서 내 손의 손가락을 보조로 취함으로써, 나는 수 5를 형성하기 위해 앞으로 함께 취했던 단위들을 이제 저 나의 그림에서 하나씩 수 7에 더하고, 그렇게 해서 수 12가 생겨나는 것을 보게 되니 말이다.(....)7+5의 합의 개념에서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합이 수 12와 같다는 것은 거기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산술의 명제는 항상 종합적이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진은영은 칸트가 7+5=12의 예를 들면서 수학은 “선험적 종합판단”이다라고 설명한 것을 분명 오독하였고 때문에 무엇인가 어색함을 느낀 것 같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물리적 판단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의 "선험적 종합판단"의 경험과의 연관성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칸트가 수학과 물리학의 경우를 “나누어 설명하려고 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마치 선험적 종합판단이 경험적이지 않은 것과 경험적인 것 두 개로 구분된다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수학과 같은 “선험적 종합판단”도 마찬가지로 경험적 직관을 포함한다는 것이고 또 직관자체가 비록 경험을 포함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가능근거로서 직관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선험적a priori”이라는 표현을 칸트는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경험은 달리말하면 선험적이기 때문에 직관적인 것이고 직관적이기 때문에 선험적인 동시에 경험적인 것이므로. 이러한 양면성 혹은 이율배반을 이해하는 것이 칸트 철학에서 주요한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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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2007-12-0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제가 도움이 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yoonta 2007-12-0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도움을 드린건진 모르겠지만 쓸모는 있으셨다니 다행이네요..^^;;

노을 2010-01-09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칸트를 잘못 읽은 것 같군요. 직관주의자들이 참조하는 칸트를 이해하려면 "순수이성비판" 서론의 "선천-후천", "분석-종합" 구분에만 의지해서는 곤란합니다. 수학 자체의 본성을 다루는 "감성론", 특히 시공간적 직관의 본성을 다루는 부분을 참조해야지요. 그래야 왜 직관주의자들(구성주의자들)이 칸트를 조상으로 여기는지 이해할 수 있읍니다.

yoonta 2010-01-11 01:42   좋아요 0 | URL
"직관주의자들이 참조하는 칸트"에 대해서 제가 오해하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접한 텍스트가 한정적이라서요. 기왕 댓글주신 김에 직관주의자들이 위의 저의 해석과는 다르게 칸트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리고 저의 칸트 해석에는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디오티마여신 2012-03-18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치 선험적 종합판단이 경험적이지 않은 것과 경험적인 것 두 개로 구분된다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수학과 같은 “선험적 종합판단”도 마찬가지로 경험적 직관을 포함한다는 것이고

가 아니라 수학과 같은 선험적 종합판단은 순수직관이 필요하며 범주에서 양질 항목인 수학적 원칙과 관계양상 항목인 역학적 원칙은 구분되는 것은 맞으며 둘다 순수직관의 선험적 구상력의 형상적 종합이 필요합니다. 수학에서는 경험적 직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경험적 직관이란 지각이라는 말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소리나 색깔 맛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칸트가 수학과 철학이 다른점에 대한 선험적 방법론 1장인 순수이성의 훈련 부분의 4항목중 첫번째 부분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칸트가 이야기한 수학적 판단의 엄밀성과 보편성은 수학적 개념이 순수직관에 의해 주어짐 즉 '구성'됨에 의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돈케빈 2015-03-22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ct.수학자 브라우어.. 부동점 정리를 만든 사람이군요.
 

지난번 페이퍼에 이어서 『데카르트의 비밀노트』에 나오는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이번에 다룰 내용은 데카르트가 생전에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작성한 노트에 과연 어떤 내용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1650년, 데카르트가 스웨덴에 크리스티나 여왕의 개인교사로 건너갔다가 급작스런 독감증상으로(독살설도 존재한다. 그를 치료했던 의사가 위트레흐트논쟁으로 인해 데카르트를 극도로 혐오했던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한다)사망하자, 생전에 그가 기록했던 문서들은 당시 스웨덴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샤뉘를 통해 프랑스의 지인이었던 클로드 클레슬리에에게로 전해진다. 그 과정에서 배가 난파하여 데카르트의 노트를 소실할 뻔한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다. 어쨋든 운좋게도 문서를 손에 넣은 클레르슬리에는 데카르트의 노트들을 살펴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온갖 알 수 없는 기호와 암호로 가득 차 있어서 도저히 해독할수없는 노트가 있었다. 그것이 문제의 비밀노트였다.



한편 당시 미적분문제로 씨름하고 있던 라이프니츠는 때마침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었고 동시대의 유명한 수학자였던 크리스티앙 호이겐스의 도움을 받아 데카르트의 유고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라이프니츠가 데카르트의 이 미발표 문서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그가 연구하고 있었던 미적분이론과 큰 관련이 있다. 라이프니츠는 1673년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 수학계 인사들과 교류를 하였고 왕립학회의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일부의 영국학자들은 그의 수학의 업적은 "데카르트로부터의 연역에 불과하다"고 폄하였다고 한다. 또한 "데카르트가 새로운 수학적 방법의 진정한 창시자였고 그의 후계자들의 공헌은 오직 데카르트의 연장이며 상세화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편지를 받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에 미적분이론과 같은 새로운 수학이론을 고안하고 있던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가 남겼다고 하는 미발표 유고들 속에 혹시라도 자신이 발표하려고하는 수학이론과 비슷한 것이 있지 않았나하는 확인 작업이 꼭 필요하였다. 혹시라도 자신이 미적분 이론을 발표한 이후 데카르트의 유고가 출판되어 자신의 독창적 이론이 의심받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영국수학자들로부터 데카르트의 후계자에 불과하다라는 평가를 듣고 있던 마당에.때 마침 데카르트의 비공개 노트에 대해서 듣게 된 그는 부랴부랴 호이헨스의 소개를 통해서 클레르슬리에가 보관하고 있었던 데카르트의 유고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 때가 1676년 7월이었다.

라이프니츠가 보았던 데카르트의 사라진 "비밀노트"의 제목은 <입체의 요소에 관하여>였다. 노트는 모두 16쪽이었다고 한다. 노트는 도형그림이 한쪽에 빽빽하게 그려져 있었고 온갖 상징들과 암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암호해독의 전문가였다. 또한 장미십자회 회원이었으므로 장미십자회 회원들이 사용하는 상징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라이프니츠야 말로 데카르트의 비밀노트를 가장 잘 해독할 수 있는 적임자 였던 것이다. 필사를 하다가 그는 중간에서 멈추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시간도 촉박했을 뿐더러 그 노트의 핵심내용을 이미 간파 했으므로. 대신 그는 짤막한 주석을 남겼다. 그런데 그 주석이 완벽하게 이해되기 까지는 또다시 300년이 걸렸다. 그 주석의 해독은 1987년 프랑스 출신 수학자인 피에르 코스타벨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왜 정다면체에 그렇게 관심이 있었을까? 비밀노트를 작성하면서까지 숨기려고 했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은 총 1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마지막 13권째는 정다면체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플라톤이 중요하게 다루어서 플라톤입체라고도 불리우는데 그 5개의 플라톤 입체는 1. 정사면체, 2. 정육면체, 3.정팔면체, 4, 정십이면체, 5. 정이십면체이다.





정다면체는 각 면이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오각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면들이 모두 합동인 입체도형이다. 그런데 이 정다면체의 중요한 특징이 "정다면체가 구에 내접한다"는 사실이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에서는 이것을  여러가지 정리로 증명한다. 정다면체가 구에 내접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정육면체를 구에 넣으면 구에 쏙 들어가고 그 여덟개의 모서리가 모두 구에 내접한다는 것인데 이 성질은 앞서 말한 5개의 정다면체 모두에 해당한다. 이러한 정다면체의 성질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알려져 있었고 고대그리스에서도 매우 중요한 성질로 "그리스기하학의 결정판이며 그리스 기하학의 3차원적 확장"이고 "우주의 비밀"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정다면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원리가 무엇인지 연구하였다. 그가 이처럼 정다면체 속에 숨어있는 성질을 연구하였던 것은 앞에서 이야기 한것처럼 정다면체속에 우주의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정다면체 기하학에 관심을 기울인데에는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존재하였던 신비주의사상과  케플러와 같은 천문학자의 영향이 컷던 것으로 보인다.





데카르트보다 먼저 우주의 구조를 연구했던 케플러는 1596년에 발표한『우주구조의 신비 Prodromus Dissertationum Mathematicarum Continens Mysterium Cosmographicum』 라는 책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서술된 지동설을 지지하는 이유를 기하학적 모델을 동원하여 밝힌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태양계의 행성들은 태양주위를 원의 궤도로 공전하는데 그 공전의 모델을 바로 이 정다면체의 성질을 이용하여 설명하였다. 당시까지 발견되었던 6개의 행성 즉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을 정다면체를 내접, 외접하는 6개의 구와 연관시켜 설명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그가 정다면체의 성질을 이용해 우주의 구조를 밝히려 했던 것은 분명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 이래로 그리스기하학에 이어져 내려온 기하학을 통해 우주의 비밀을 밝히려고한 시도의 결과였다. 비록 그는 후에 티코 브라헤의 조수로 있으면서  좀더 정밀한 관측을 통해 후대에 케플러의 법칙으로 명명된 3개의 법칙을 발표하면서 태양계 행성의 궤도는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것을 밝혀내기는 했지만 타원 역시 기하학의 원리에 의해서 유도되는 도형이 아닌가.

 



그런데 사실 이러한 케플러의 우주관은 그만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다. 그는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헤르메스주의와 같은 신비주의사상에 깊은 관심이 있었는데 특히 니콜라우스 쿠사누스Nicolaus Cusanus와 같은 학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쿠사누스는 에른스트 카시러에 의하면 "르네상스 철학을 하나의 체계적인 통일로 파악하려는 모든 고찰은 그 출발점을 쿠사누스에게 두어야 한다."와 같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의 글을  인용해 보자.





"그것이 땅이든 공기든 불이든 다른 무엇이든 간에, 그것들이 우주의 고정된, 움직이지 않는 중심에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따라서 중심일 수 없는 지구가 어떤 운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지구가 세계의 중심이 아닌 것처럼, 모든 항성 천구는 세계를 감싸는 둘레가 아니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지구가 운동하는 것은 자명해진다." (과학의 탄생. 동아시아, 303쪽에서 재인용)

이러한 부동의 고정점으로서의 지구를 부정하는 것은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우주관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관을 부정하는 것이었다.한편 그는 신의 창조물인 우주 속에는 수에 의해서 표현되는 비례의 법칙이 숨어있다고 이야기한다. 

"수가 없으면 존재하는 것끼리의 다(수)성은 존재할수 없다. 왜냐하면 수가 없어지면 사물의 구별, 질서, 비율, 조화, 나아가 존재하는 것끼리의 다성 자체가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다.(과학의 탄생. 동아시아, 307쪽에서 재인용)    

"신은 세계를 창조할 때 산술학, 기하학, 음악 및 천문학을 동시에 사용했다. 그래서 우리도 모든 사물이나 모든 원소, 모든 운동의 비율적인 관계를 탐구할 때 이들 학술을 사용한다." (지혜로운 무지 De Docta Ignorantia. 과학의 탄생, 동아시아, 308에서 재인용)





이처럼 쿠사누스는 우주의 구조를 해명하기 위해서 지구의 운동가능성과 그속에 숨어있는 비례와 조화의 법칙을 이해하기 위한 수학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후대에 코페르니쿠스나 케플러 그리고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와 같은 근대적 학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사실 이러한 쿠사누스의 우주관자체도  플로티누스Plotinus의 일자의 철학와 같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글에서는 그와 관련된 논의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와같은 당시 유럽에 존재하였던 신비주의적 전통은 케플러와 데카르트에게도 강하게 작용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케플러와 동시대 인물이면서 그를 생전에 만났음이 틀림없고 신비주의 비밀결사였던 장미십자회 소속 학자인 요한 파울바허와 같은 학자와 교류하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은 데카르트는 그리스 기하학 중에서도 우주의 비밀스러운 구조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이는 정다면체 기하학의 신비로운 성질에 더욱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라이프니츠가 데카르트의 비밀노트에서 밝혀낸 것은 과연 무엇일까?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의 비밀노트를 필사하는 도중 수수께끼같은 수열을 보게 된다.

4  6  8  12  20 그리고 4  8  6  20  12     

그는 첫번째 수열의 의미를 금방 파악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정다면체의 면의 수였던 것이다. 즉 4(정사면체), 6(정육면체), 8(정팔면체), 12(정십이면체), 20(정이십면체)를 의미하였던 것. 그리고 두 번째 수열은 각각의 꼭지점의 수와 일치한다. 여기에 모서리의 수를 추가하면 다음과 같은 수열을 얻을 수 있다.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면       4              6               8               12                   20

꼭지점     4               8              6               20                   12

모서리     6               12            12               30                  30

그런데 여기에서 면과 꼭지점의 수를 더한다음 모서리의 개수를 빼면 2가 나온다. 면을 F라 하고 꼭지점을 V 모서리를 E라고 하면

F + V - E = 2

이 공식은 위의 5가지 다면체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예컨대 정사면체의 경우 4+4-6=2, 정육면체도 6+8-12=2이고 나머지도 모두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성질은 후에 위상불변량(topological invariant)라고 불리게 되는 성질을 보여주는 공식이 되는데 데카르트가 발견한 이 공식은 후에 위상수학(topology)라고 불리우는 수학의 분야에서 발견한 최초의 정리로 알려지게 된다.

위상수학은 라이브니츠에 의해서 최초로 그 가능성이 예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679년 호이겐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수학이 양을 다루는데 비해 직접 위치의 기하학(geometra situs)을 다루는 해석의 또 다른 분과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1732년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는 그 유명한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문제"를 다루면서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문제같은 것 들이) 아마도 라이프니츠의 위치의 기하학의 문제일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또 그는 위에서 언급한 데카르트의 공식을 발견하여 "다면체 공식"를 발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 정리는 오일러보다 데카르트가 먼저 발견하였던 것이다. 최근에는 그 공식을 피에르코스타벨의 재발견 이후에는 "데카르트-오일러 공식"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데카르트-오일러 공식"이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것과는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그것은 위상수학에서의 위상불변량(topological invariant)을 나타내는 공식이다. 그런데 이 위상불변량은 위상적 속성topological property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위상수학에서의 위상동형사상(homeomorphism)과 관련이 있다. 위상동형이란 무엇인가? 다음 글을 확인해 보자.

"오일러의 공식(F+V-E=2)에서 유의할 점은 이것이 꼭지점 모서리 면의 개수에 관한 것일 뿐, 모서리의 길이나 면의 꼴과 면적에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주어진 모서리가 곡선을 이루고 주어진 면이 곡면이어도 마찬가지 결과를 얻는다. 프왕카레의 관찰에 따르면, 볼록다면체의 표면을 연속적으로 변형하여 구의 표면으로 보아도 역시 공식이 성립한다.(...)두 점집합 A, B에 대하여 1대 1대응 f : A → B가 있어 f 도 연속이고,역으로 역대응도 연속이라 하자. 여기에서 f 와 그것의 역대응(함수)가 연속이라 함은 A에서 서로 가까이 있는 점들은 f 에 의하여 B의 서로 가까운 점들로 변환되고 역으로 B의 서로 가까운 점들은 f 의 역함수에 의하여 A의 가까운 점들로 변환된다는 뜻이다.(...)이와 같은 성질을 만족하는 변환(함수) f 를 위상동형(homeomorphism)이라고 말하며 이 같은 f 에 의해서 불변인 성질을 위상적 성질(topological property)라고 부르는 것이다."(수학의 세계. 박세희. 서울대학교출판부, 171∼2쪽)

다시말하면 함수 f 가 일대일 대응이고 그것의 역함수도 성립하며 또 연속continuity라면 그것에 의해 표현되는 기하학적 속성들은 같은 위상적 성질을 가진다는 이야기이다. 위상수학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흔히들 이런 농담을 한다고 한다. "수학자들은 도우넛과 머그잔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위상수학으로 보았을 때 도우넛의 표면 (토러스 torus)와 머그잔의 표면은 위상동형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구의 표면과 (정)다면체는 위상동형인데 데카르트가 비밀노트에 적었던 내용이 바로 이 구와 다면체의 동형성에 관한 위상불변량공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있는 우주는 어떤 모양일까? 우주의 크기는 유한할까? 무한할까? 다시말해서 우주에는 경계boundary가 있을까? 대부분의 수학자들 특히 위상수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은 우주는 유한하다고 말한다. 우주를 예를 들어 3차원으로 된 정육면체 지도로 우주의 부분들을 표현한다면 유한한 갯수의 지도의 합으로 모두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을 수학용어로는 컴팩트(compact)하다고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우주의 크기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하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우주의 크기가 유한하다고 해서 우주의 경계boundary가 있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크기는 유한한데 경계가 없다는 말은 무엇일까?

2차원 표면에 그릴 수 있는 둥그런 원반을 생각해 보자. 그것의 경계는 원이다. 원반의 내부는 2차원이지만 경계는 그것보다 한 차원 낮은 1차원의 원인 셈. 우리가 만약 이 원반 내부의 한 지점에서 바깥쪽으로 계속 걸어나가면 결국에는 1차원으로된 원 즉 경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구면sphere의 경우는 어떨까? 구면은 크기는 유한하지만 경계는 없다. 예를들어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출발하여 일직선으로 똑바로 계속 나아간다면 어떻게 되는가? 과거에 지구는 둥그렇지 않고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 시절에는 지구의 끝 즉 경계에 다다르게 되면 거대한 낭떠러지나 절벽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사실 지구의 표면은 오늘날 알다시피 구면sphere이다.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은 자기가 출발한 자리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게 된다. 만약 지구에 경계가 있다면 우리는 원이나 직선과 같은 한 차원 낮은 경계와 만나야 하는데 그런 경계는 나오지 않고 자기가 출발한 자리로 되돌아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지구와 같은 구면은 경계가 없다는 것이 된다. 다시 정리해서 말하자면 원반과 같은 도형은 유한하고(compact하고) 경계boundary가 있지만, 지구의 표면과 같은 구면은 유한하지만 경계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학자들은 우주의 모양도 이처럼 유한하지만 경계는 없는 즉 구면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지구의 밖을 볼수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는 지구밖에 나가서 지구를 볼 수 있기 때문. 우리는 그것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지구 밖에서 우주선이 지구의 모습을 촬영해 오면서 확인 할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우주의 밖으로 나갈수 없다. 아니 우주의 크기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주의 밖으로 나가서 우주의 모양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주의 모양을 가늠해 볼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우주의 모양에 관해서 위상학적 성질topological property을 확인해 보는 것이다.

 



 

수학의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의 추측(Poincaré conjecture )은 바로 이 위상수학 그리고 우주의 모양과 관련된 수학문제이다. 푸앵카레의 추측은 위상수학이 이룬 최고의 성과인 동시에 수학의 밀레니엄 문제로서 수많은 수학자들이 이의 증명을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밀폐된 3차원 공간에서 모든 밀폐된 곡선이 수축되어 하나의 점이 될 수 있다면, 이 공간은 반드시 원구로 변형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설명 하나를 인용해 보자.

"만약 사과표면의 둘레에 고무줄을 감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천천히 이동시킴으로써 찟거나 표면으로부터 떨어뜨리거나 할 필요없이  한 점으로 수축시킬 수 있다. 반면 같은 고무줄을 도넛의 주위에 적절한 방향으로 늘어뜨린다면 고무줄이나 도넛을 자르지 않고서는 한 점으로 수축시킬 수 없다. 우리는 사과의 표면은 “단순히 연결되어 있다 simply connected”라고 말한다. 그러나 도넛의 표면은 그렇지 않다. 푸앵카레는 거의 한세기전 2차원 구면은 이러한 단순연결성simple connectivity의 성질을 기본적인 특징으로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3차원 구면(최초의 지점origin으로부터 단위거리unit distance에 있는 4차원 공간에서의 점들의 집합)에 대응하는 질문을 제기했다. 이 질문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고 수학자들은 그 이후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

If we stretch a rubber band around the surface of an apple, then we can shrink it down to a point by moving it slowly, without tearing it and without allowing it to leave the surface. On the other hand, if we imagine that the same rubber band has somehow been stretched in the appropriate direction around  a doughnut, then there is no way of shrinking it to a point without breaking either the rubber band or the doughnut. We say the surface of the apple is "simply connected," but that the surface of the doughnut is not. Poincare almost a hundred years ago, knew that a two dimensional sphere is essentially characterized by this property of simple connectivity, and asked the corresponding question for the three dimensional sphere (the set of points in four dimensional space at unit distance from the origin). This question turned out to be extraordinarily difficult, and mathematicians have been struggling with it ever since.

 이를 다시 쉽게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만약 구면에 고무줄과 같은 닫힌 고리loop를 건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그 고리를 구면의 어떠한 위치에 걸더라도 고무줄이나 구면을 자를 필요없이 한 점으로 수축시킬 수 있다. 얼핏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 이 사실은 위상수학적으로 하나의 위상적 성질topological property을 표현하는 성질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도형이 있다. 바로 도넛의 표면 즉 토러스 torus이다.



 

위의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저 토러스의 원환면에 고무줄을 건다면 우리는 그것을 한 점으로 수축시킬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러스를 자르거나 고무줄을 잘라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이다. 따라서 위상수학에서는 구면처럼 고리와 같은 폐곡선을 절단하지 않고 한 점으로 수축시킬수 있는 것을 단순히 연결되어 있다 simply connected고 규정하고 토러스와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쉽게 도식화할 수 있는 2차원 다양체인 구면과 토러스와는 달리 우주는 3차원 다양체 3-dimensional manifold라는 사실이다. 3차원 다양체는 2차원 다양체의 특정한 점(집합)을 일대일 대응시키면서  연결한 것이다. 때문에 이것은 도식화시키기도 어렵고 계산하기도 매우 까다롭다. 그런데 푸앵카레는 이 3차원 다양체의 모양을 가진 우주도 2차원 다양체인 구면과 같은 단순연결성을 가진다고 추측했던 것이다. 그것이 푸앵카레의 추측Poincaré conjecture 이다.

그런데 그것의 수학적 증명은 푸앵카레가 최초로 추측을 제기한 이후 약 100년이 걸렸다. 그 증명을 최초로 해낸 사람이 바로 그리고리 페렐만 Grigori Perelman이다. 페렐만은 푸앵카레 추측과 관련된 논문을 2002년 최초로 인터넷(www.arXiv.org)에 올렸다. 그리고 그 뒤 두 편의 논문을 더 추가한다. 페렐만이 주로 사용한 수학공식은  리처드 해밀턴 Richard Hamilton이 리만 메트릭을 가진 다양체를 해석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사용한 리치 흐름 방정식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이곳을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Grigori_Perelman )

\partial_t g_{ij}=-2 R_{ij} +\frac{2}{n} R_\mathrm{avg} g_{ij}

이를 이용해 그는 푸앵카레 사후 100년동안 증명되지 못한, 그리고 클레이 수학연구소(www.claymath.org)  가 수학의 7대 난제로 선정하고 이것을 증명한 사람에게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던 그 문제를 증명하였던 것이다. (페렐만의 증명을 직접 보려면 이곳을 참조: http://arxiv.org/abs/math.DG/0211159 ) 이 증명의 발표이후 여러 검토작업이 있었지만 2006년 사실상 최종적으로 증명이 완료된 것으로 공인된다. 이 업적으로 페렐만은 2006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 fields medal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그는 수상을 거부하였다.(필드상 위원회에서는 페렐만이 수상을 거부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한다.) 많은 수학자들은 페렐만의 이 푸앵카레 추측의 증명은 수학의 역사에서 기념비적 사건이며 앤드류 와일즈 Andrew Wiles 가 증명에 성공했던 페르마의 정리에 상응하는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증명일지 모른다고 평가한다. 이런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 푸앵카레의 추측은 단순히 특정 수학의 정리를 증명하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주의 구조와 비밀의 해명이라는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에서 수많은 철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혹은 성직자들이 해명하려고 노력해 왔던 그런 주제이다. 더불어 데카르트도 그의 비밀노트에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작성해 왔던 바로 그 주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데카르트의 비밀노트로부터 시작된 우주의 모양에 대한 수학적 해명이 페렐만을 통해서 하나의 큰 도약을 완성하게 된다.



그런데 페렐만은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상금으로 걸었던 100만달러와 필드상을 모두 거부하였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에 은둔하면서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살고있다고 한다. 타고난 성격때문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혹시 그도 데카르트처럼 비밀리에 작성하고 있는 노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앞서서 그가 발표한 푸앵카레 추측의 증명보다 훨씬 더 놀랍고 충격적인 어떤 우주의 비밀을 밝혀줄 그런 비밀노트를. 그래서 그것을 아직까지는 세상에 공개하기 싫어서 은둔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P.S. 푸앵카레의 추측과 관련해서는 『데카르트의 비밀노트』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출판된 『푸앵카레의 추측 - 우주의 모양을 찾아서 』를 참고하면 도움이 되겠다. 수학적 설명은 최소화한 책이긴 하지만 설명이 그다지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긴 이미지로 도식화시키기도 쉽지 않은 3-다면체를 말로서 설명하려니 그게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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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07-23 04: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yoonta님. 쓰신 문장 중에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우주의 크기가 유한하다고 해서 우주의 경계boundary가 없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크기는 유한한데 경계가 없다는 말은 무엇일까?"라는 부분이 있는데, '우주의 경계가 있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를 쓰시려 하셨던 거겠죠?

람혼 2007-07-23 05: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용이 흥미진진해서 몇 번을 계속 다시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데카르트의 '송과선'에 관한 이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yoonta님의 글을 읽으면서 역시나 다시금 드는 생각은, 데카르트는 정말이지, 여전히, 아직도, 너무나 많은 생각의 끈들을 제공해준다는...^^

yoonta 2007-07-23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 표현은 "우주의 크기는 유한하지만 경계는 없다"라는 이야기입니다. 흔히들 경계가 없다라는 것을 크기가 무한하다라는 것과 등치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수학에서는 경계가 없다는 것이 곳 크기가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뫼비우스의 띠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뫼비우스의 띠는 분명 크기가 유한합니다. 하지만 그것의 표면은 안과 밖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끊임없이(경계없이) 순환하게 되어있죠. 그런점에서 뫼비우스의 띠는 크기는 유한하지만 경계는 없다고 말할수 있는 것의 예가 됩니다. 지표면이나 구의 표면도 이런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만 끊임없이 그 차원 내를 순환할 뿐이지 결코 경계를 만날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순환 혹은 반복을 흔히 크기의 무한성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우주의 모양이나 크기에 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죠. 푸앵카레가 추측하고 페렐만이 증명한것이 바로 이러한 생각이 오류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대단한 업적인데 내용이 어려워서 그런지 잘 소개가 안되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람혼 2007-07-23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제가 드린 말씀이 바로 그것인데, '우주의 크기는 유한하지만 경계는 없다'는 것이 이야기의 요지이므로, yoonta님이 쓰신 문장은 "우주의 크기가 유한하다고 해서 우주의 경계가 '없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가 아니라 "우주의 크기가 유한하다고 해서 우주의 경계가 '있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앤드류 와일즈의 페르마 정리 증명, 페렐만의 푸앵카레 추측 증명 소식 등등에 흥분했던 기억들이 새롭군요. 언제 기회 되실 때 리만 가설에 대한 yoonta님의 글을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합니다. 건필!^^

yoonta 2007-07-23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제가 원래 이렇게 덤벙댄답니다..^^;; 지적감사하구요. 수정들어가야겠네요..

2007-07-28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ta 2007-07-30 00:19   좋아요 1 | URL
아..네 그걸 물어보신 거였군요. <홀로그램 우주>라는 책에서 인용했습니다. 우주와 인식(정신)을 물질의 파동성으로 설명하는 내용의 책입니다. 흥미로운 내용의 책이니 관심있으시면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마늘빵 2007-07-30 22:22   좋아요 1 | URL
아 제목도 설명도 어렵습니다. 저 문구만 간직해야겠습니다. :)

쿠자누스 2007-07-31 0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재밌네요...
 



지난 주말 서점에 갔다가 재미있는 제목의 책을 한 권 발견했다. 바로 『데카르트의 비밀노트』라는 책이다. 데카르트는 생전에 공개한적이 없는 비밀리에 작성한 노트가 있었는데 그것은 고대그리스로부터 내려오는 기하학과 관련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대신 라이프니츠가 이것을 필사해 놓았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는 것이다.그런데 그 비밀노트의 내용은 대단히 파격적이어서 오늘날의 물리학에도 영감을 불어넣어 줄 만한 신비스런 내용을 포함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데카르트와 관련된 여러 신비주의적 면모에 대해서 소상히 고찰해 놓은 책인데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보자마자 집어들었다. 읽어보니 마치 소설 『다빈치코드』를 읽는 것 같은 흥미진진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거기다가 책에서 다루는 사건이 대부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니 더욱 흥미로울 수밖에. 그 비밀노트의 내용에 대해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고  지금은 그에 관한 음모론적 이야기보다는 그가 『방법서설』에서 논증했던 기하학에 대해서 간략히 적어 보겠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은  『데카르트의 비밀노트』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기원전 427년 아테네에서 전염병이 돌자 당시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는 델로스섬으로 사절단을 파견하였다고 한다. 목적은 아폴론 신의 신탁을 받기 위해서 였다고. 결국 신탁이 내려졌는데, 내용인 즉 델로스 섬의 아폴론 신전을 두 배 늘리라는 것이었다. 이 신탁을 받은 아테네 사람들은 신전의 길이와 폭 그리고 넓이를 두 배로 확장하였다고 한다. 공사를 완성한 사절단은 결과에 만족하여 아테네로 돌아왔다. 그런데 병마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에 사절단은 다시금 신탁을 받았는데 그 결과를 듣고 깜짝 놀랐다. 신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당신네는 아폴론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소. 신이 요구한 대로 신전의 크기를 정확히 두 배로 늘리지 않았단 말이오. 돌아가서 아폴론이 지시한 대로 따르시오.!"

그제서야 아테네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들은 신전의 길이, 폭, 높이를 각각 두배로 늘렸기 때문에 실제로는 신전의 부피를 8배 (2×2×2 = 8)를 늘렸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그리스 건축가들은 직선자와 컴파스만으로 크기를 작도를 하였는데 아무리 크기를 계산해봐도 그 크기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신전의 크기를 2배로 키우지 못했을까? 신전과 같은 입체도형의 부피, 예컨대 정육면체의 부피를 2배 늘리려면 가로, 세로,높이 각각에 2의 세제곱근을 곱해야 한다. 세제곱근을 곱해야 필요한 수인 2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선자와 컴파스 만으로는 세제곱근만큼 늘어난 값을 계산할 수가 없었다. 이는 피타고라스나 유클리드와 같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오늘날과 같은 대수학 이론 그리고 데카르트에 의해 발견된 해석기하학을 몰랐고 단지 직선자와 컴파스 만으로 작도를 했기 때문이다.이런 문제점에 때문에 다음과 같은 고대 그리스시대 기하학의 3대 난제가 탄생하게 된다: ①정육면체의 부피를 두배 늘리기 ②원과 면적이 같은 정사각형을 작도하기 ③각을 3등분하기.





데카르트는 이와 같은 그리스 기하학의 난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인 해석기하학을 창시함으로써 그리스기하학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제공했다. 또한 그는 그리스 기하학이 가진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했는데, 가령 위에서 이야기한 난제 중 2번의 경우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직선자와 컴파스 만으로는 세제곱근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한편 그는 직선자와 컴파스로 제곱근은 작도 할수 있음을 대수적으로 "증명"하였다. 다음의 내용은 그의 최초의 문제적 저서인 『방법서설』 속에 있는 기하학편에 나오는 증명이다. (아쉽게도 옆에 나와있는 해석본에 기하학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나머지 편들인 굴절광학 및 기상학도 하루빨리 번역되어 나오길 바란다.)




위 그림는 직선자(직각자)와 컴파스만으로도 작도 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이로부터 제곱근을 직선자와 컴파스만으로 작도 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위 그림 속 세 직각삼각형으로부터 피타고라스 정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세 방정식이 나온다.

c^2 = a^2 + b^2 -------ⓐ

d^2 = 1^2 + b^2 -------ⓑ

(a+1)^2 = c^2 + d^2 ---ⓒ

우변을 전개하고 ⓑ를 ⓒ의 우변에 대입하면

a^2 + 2a + 1 = c^2 + 1^2 + b^2

그런데 ⓐ에서 c^2= a^2 + b^2 였으므로 이를 대입하면

a^2 + 2a + 1 = a^2 + b^2 + 1^2 + b^2

이를 다시 정리하면

2a = 2b^2

∴ b = √a

이처럼 데카르트는 직선자와 컴파스 만으로 √a 라는 제곱근을 작도할 수 있음을 대수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런데 직선자와 컴파스만으로는 3차원공간상에서의 크기를 잴수 없기 때문에 정육면체를 2배만들기와 같은 계산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같은 논증기하로는 불가능함을 데카르트는 깨달았던 것이다. 그것의 수학적 "증명"은 그로부터 약 200년 뒤 어이없는 결투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비운의 천재 갈루아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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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육면체 부풀리기
    from to be immortal 2007-06-28 16:29 
    아키타스와 라이프니츠 사이에 데카르트?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귀가 솔깃해진다  
 
 
로쟈 2007-06-2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라고 해서 제쳐놓았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나 보군요.^^

yoonta 2007-06-2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아닙니다. 비밀노트라는 제목때문에 소설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데 사실은 그의 전기더군요. 그리고 실제로 비밀노트도 존재했었고요. 당시 신비주의단체로 유명했던 장미십자회와도 직간접적인 교류가 있었더군요. 데카르트의 전기로는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

쿠자누스 2007-06-2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육면체를 두배로 만드는 방법은 아키타스(http://de.wikipedia.org/wiki/Archytas)
가 증명한 걸로 아는데요,(http://mathforum.org/dr.math/faq/davies/cubedbl.htm)
라이프니츠가 <데카르트 비밀 노트>를 필사할 때 그걸 모르고 있었을까 궁금하네요, 라이프니치가 장미십자회에 있었던 건 아는데 데카르트도 그랬다는 건 처음 듣네요

yoonta 2007-06-29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스의 증명은 논증기하의 방식이죠. 즉 해석기하학에 의한 대수적 증명이 아닌 직관적인 유클리드기하학을 사용한 논증입니다. 그러나 보다 완전한 증명을 하기위해서는 데카르트가 발명한 해석기하학적 방식으로 다시말해 대수적으로 정육면체를 두 배늘리는 방식을 "증명"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리수계수를 가진 3차방정식이 유리수근을 가질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갈루아의 군론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각을 3등분하기 문제도 동일한 이유로 유클리드기하학으로는 완전히 증명될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원과 면적과 같은 정사각형을 작도하기 문제도 19세기 린데만에 의해서 파이가 초월함수임을 보임으로써 그것이 작도불가능임을 증명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데카르트조차도 그것의 작도 불가능성을 완전히 증명하지는 못했다고 보는 것이죠.

yoonta 2007-06-29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위 책에 의하면 데카르트가 장미십자회원이었다는 확증은 없는 것으로 기술되어있습니다. 자신은 장미십자회원임을 강하게 부정했죠.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정통 카톨릭교인으로 행동했습니다.그러나 그가 교류했던 학자들중 요한 파울바허와 같은 장미십자회원이 있었던 것, 그리고 그의 수사법중 장미십자회원이 사용하는 특유의 수사법이 자주 동원 된다는 점, 그리고 그의 비밀노트에 적힌 G.F.R.C.라는 이니셜은 Fratenitas Roseae Crucis 즉 장미십자회를 의미한다는 등등의 단서들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가 장미십자회원이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들과 밀접한 교류를 했을 가능성을 부인하기는 힘들다고 보는 입장이더군요.

쿠자누스 2007-06-30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들은 바로는 아키타스 기하학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불모성을 입증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사위 두배 만드는 작법이 중요하다는 건데 이걸 이해하는 게 좀체 쉽지 않네요. 비밀노트는 라이프니츠가 필사한 게 사실인가요 ? 그렇다면 그의 저작 목록에 들어있음직한데요...

yoonta 2007-07-01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스 기하학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바가 없네요. 시간나는데로 한번 그 인물에 대해서 조사해봐야겠네요. 아키타스기하학이 유클리드기하학의 불모성을 입증했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업적인것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네요. 그리고 라이프니츠가 필사한 것이 맞습니다. 책을 보시면 필사본 사진이 나옵니다. 저작목록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라이프니츠가 데카르트의 비밀노트를 필사한 것이 발견된 것도 비교적 최근이라고 하네요.

쿠자누스 2007-07-02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scienceagogo.com/news/books-24-11-05.shtml 여기 보니까 비밀 노트는 16 쪽인데 데카르트 친구가 보관하고 있던 것을 라이프니츠가 일부 필사했다는 군요. 원본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말이 없네요. 필사본이 최근 발견되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되겠져. 라이프니츠 저작 가운데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게 많다고 하니까요.

yoonta 2007-07-02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전체를 필사할 필요가 없었다는 군요. 비밀노트의 핵심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라이프니츠의 필사본을 통해 데카르트가 발견한 것을 이해하는데 또 오랜시간이 걸렸다고..원본은 현재 행방불명이랍니다.

람혼 2007-07-23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루아의 최후는 정말이지 생각하면 할수록 마치 저의 일인 것처럼 안타깝습니다...ㅡㅡ;

쿠자누스 2007-08-25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루아가 "21세가 채 안 된 1832년에 [감옥에서 나오자 마자] 애정문제로 인한 권총결투에 유인되어 살해되었다." 는 건 그의 죽음에 얽힌 흑막을 숨기려고 꾸며낸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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