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100자평에 역자님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주셨기에 답변을 드리는게 예의인거 같아서 적어봤습니다. 글이 길어져서 페이퍼로 올려봅니다.
이 책의 번역자입니다. 이해하기 힘든 비문이 너무 많다니 유감입니다. 저 역시 일부 지젝 번역에 불만이 있는 터라 정성껏 번역하고 여러 차례 교정도 보았습니다. 그래도 번역에 오류가 없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 비문이라면 원서와 대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출간된 책을 검토하면서 서너 개의 오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서평에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비문이 너무 많다˝ 는 말씀은 무책임해 보입니다. 지젝은 그 인기만큼 가벼운 철학자가 아닙니다.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는 비문이 아니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이 책의 서문은 지젝의 다른 어떤 텍스트보다도 난해합니다.
나쁜 번역에 악평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오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악평은 악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악평의 근거를 제대로 제시해 주십시오.
일단 반갑습니다. 역자님.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서 좀 겸연쩍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하셔서 몇자 적습니다.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 악의라 생각치는 말아 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원서내용이 궁금하던차에 구입하여 대조해 보았습니다. 대조해본 결과 제 의구심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느정도 풀리더군요. 제가 님처럼 번역등의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전체적으로 대조할 시간을 낼수 없기에 서문일부만 살펴봤습니다. 읽어본 결과 가령 이런 문장들이 눈에 띄더군요.
"이 책은 어떤 존재의 질서에도 구성적인 다양한 수준의 적대에 관한 몇가지 가정들과 함께 결론에 이른다." (본서16쪽)
이 문장은 보면 "비문"이라고까진 아니지만 한번 읽어서는 얼핏 무슨 뜻인지 금방 의미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독해력 좋으신 분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저같은 평범한 독해력을 가진 사람들은 저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이 문장의 원문을 찾아보니까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더군요.
"The book concludes with some hypotheses about the different levels of antagonism that are constitutive of any order of being,"
이 문장인데요. 제가 번역해보겠습니다.
이 책은 어떤 존재의 질서에도 구성요소로 존재하는 다양한 수준의 적대에 대한 몇몇 가정들로 끝을 맺는다.
차이점은 constitutive of 와 conclude with 의 번역차이에서 오는걸로 보이는데요. 님은 그냥 "구성적인"으로만 번역을 했죠. 그런데 이렇게 번역하면 "구성적인"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성요소인, 구성성분인" 이렇게 번역하면 이 표현이 "존재의 질서"와 갖는 관계가 보다 쉽게 드러나죠. conclude with같은 경우도 님은 "결론에 이른다"라고 하셨지만 지젝은 이 문장을 쓰면서 그 내용으로 책을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conclude with라는 표현을 한거죠. 그래서 그 의미를 살릴려면 저처럼 끝을 맺는다. 마무리한다로 풀어서 이야기하는게 지젝이 전달하려는 의미가 더 잘 살지 않았을까요? 그 다음에 나온 오자 "detology"(dentology의 오자)는 교정자의 실수로 이해하겠습니다.
역어선택에도 좀 미스가 아닌가 하는 부분들이 보이는데요. "self-identical"은 "자기 정체적"(14쪽)보다는 자기 동일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임석진씨도 같은 구절을 그렇게 번역했고요. "positedness"를 "정립됨"이라고 번역하셨는데 이러면 그 '수동적'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임석진씨처럼 "피정립성"이라고 번역하는게 더 나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반성된 결정"에서 결정도 bestimmung의 역어라면 '반성된 규정'(임석진씨는 "반성규정")으로 번역하는게 더 나아보이고요. 기타등등 이정도만 하겠습니다.
대략 이런 식입니다. 원서와 대조해본 결과 많이 체크해보진 않았지만 오역이나 비문까진 아니더라도 이처럼 금방 이해하기 힘든 지나친 직역투, 번역투의 문장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겁니다. 물론 전혀 이해할수 없는 건 아닙니다. 저야 몇 문장만 풀어서 번역하면 그만이지만 책한권을 통채로 그것도 지젝의 책처럼 난해한 책을 통채로 번역한다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죠. 그런점에서 역자님이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짐작은 됩니다만 책을 통해 독서의 기쁨을 누리길 기대하는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위와같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을 만나면 또 원서를 사서 비교해봐야하는 수고스러운 일을 반복해야만 하게되니 난처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책을 보니 그래도 오역이 넘쳐나는 다른 많은 번역서들 보다는 훨씬 신경을 많이 쓰신 흔적들이 보이긴 합니다. 다만 님이 번역하실때 이정도 직역이면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하고 무심코 해석한 문장들이 간혹 지나친 직역투, 번역투 문장이 되어서 원서를 접하지 않고 번역서로만 보는 독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될수있다는걸 간과한것 같다는 부분입니다. 이런 점만 조금 더 보완해 주신다면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더 나은 역서를 내주실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p.s. 하나만 더 추가해 봅니다.
empiricist skepticism, which doubts that we can ever form a consistent structure of what reality is out of the only thing we have access to, our dispersed and inconsistent experience, with its multiplicity of data.
역자님의 해석:이는(경험론적 회의주의) 우리가 언젠가는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우리가 접근했던 유일한 것 외부에 있으며, 우리의 분산되고 혼돈된 경험인 현실이라는 것에 대한 일관성 있는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한다. (본서 33쪽)
저의 해석: 경험론적 회의주의는 우리가 다양한 데이타를 통해서만 유일하게 접근가능한, 분산되고 비일관적인 경험의 외부에서 무엇이 현실인지에 대한 일관된 구조를 늘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한다.
차이점은 역자님의 문장은 we have access to를 과거로 보고 "접근했던"으로 번역했는데 과거로 해석할 이유가 전혀 없고 더 큰 차이점은 님은 out of를 only thing과 dispersed and inconsistent experience를 대등이나 병렬의 관계로 저처럼 보지 않고 only thing에만 걸리는 것으로 보고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지 않게 되니 "분산되고 혼돈된 경험인 현실이라는 것에 대한 일관된 구조" 처럼 "현실이라는 것에 대한 일관된 구조"를 수식하는 것으로 dispersed and inconsistent experience를 보는 어색한 해석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기보다 저처럼 only thing과 dipersed and inconsistent experience가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병렬이나 나열의 관계로 보고(콤마가 그래서 있는 것이죠) 이것들의 전체에 걸리는 것으로 out of를 해석해야 좀더 정확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p.s. 2 쓴 김에 몇 자 더 추가합니다.
"트로츠키주의의 영구혁명으로부터 서구 마르크스주의(아도르노)를 거쳐 오늘날의 "저항"의 형식들에 이르기까지.." (본서 35쪽)
"negative dialectics" from Trotskyist permanent revolution through Western Marxism(Adorno) up to today's form of "resistence"
재번역:트로츠키주의식 영구혁명으로부터 서구마르크스주의(아도르노)를거쳐 오늘날의 "저항"의 형식에 이르는 부정변증법....
이 문장은 negative dialectics를 빠뜨리고 해석하셨군요. 이게 없어서 원서없이 볼때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는데 원서를 보니 궁금증 해결..
"이처럼 기 꺾인 헤겔의 정치적 한계에 더하여 존재론적 한계를 보는 것이 결정적이다." (본서 35쪽)
It is crucial to see the political as well as the ontological limits of this deflated liberal Hegel.
재번역:기죽은 헤겔의 존재론적한계 뿐만아니라 정치적 한계를 보는 것이 결정적이다.
보통 as well as는 뒤에서부터 해석하는게 정확한걸로 배웠습니다. 가령 not only A but also B =
B as well as A 이렇게요. 그러니까 crucial로 강조하고픈건 존재론적 한계라기보다 정치적 한계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확정 상태가 결정적이다!" (35쪽)
this indeterminacy is crucial!
재번역: 이 불확정성이 결정적이다!
in을 놓치셨군요!
"헤겔이 제안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자연의 유기체들이 단순히 복잡성과 조직의 일정한 수준에서 자신들에게 전념하여 더 이상 자연의 경계들 안에서 적절하게 해명할 수 없는 방식 혹은 어떤 식이든 경험적 관찰의 결과로 마침내 자신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서 35~6쪽)
The suggestion Hegel seems to be making is simply that at a certain level of complexity and organization, natural organisms come to be occupied with themselves and eventually to understand themselves in ways no longer appropriately explicable within the boundaries of nature or in any way the result of empirical observation.
재번역: 헤겔의 제안처럼 보이는 것은 단순하다. 자연의 유기체들이 복잡성과 조직의 특정한 수준에서는 자기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마침내 자신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고 어느 면에서는 더이상 자연의 경계 내에서 적절하게 설명가능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경험적 관찰의 결과이길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역자님은 no longer를 appropriately explicable에만 걸리는 것으로 해석을 했는데 or 뒤의 result of empirical observation에는 해당하지 않는것으로 보았네요. 그러나 구문상으로도 그렇게 해석할 이유가 없고 문맥상으로 봣을때도 헤겔의 "좀더 자기 결정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을 의식하는" 내용을 강조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경험적 관찰의 결과"를 긍정하는 의미로 해석할 이유가 없습니다.
번역을 비평하는 논거가 좀 부족한거 같아 번역문을 조금씩 계속 보고있는데 보시는 바와같이 눈에 띄는 구절들이 계속 나오는군요.. 계속 추가할지 말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