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점에 갔다가 재미있는 제목의 책을 한 권 발견했다. 바로 『데카르트의 비밀노트』라는 책이다. 데카르트는 생전에 공개한적이 없는 비밀리에 작성한 노트가 있었는데 그것은 고대그리스로부터 내려오는 기하학과 관련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대신 라이프니츠가 이것을 필사해 놓았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는 것이다.그런데 그 비밀노트의 내용은 대단히 파격적이어서 오늘날의 물리학에도 영감을 불어넣어 줄 만한 신비스런 내용을 포함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데카르트와 관련된 여러 신비주의적 면모에 대해서 소상히 고찰해 놓은 책인데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보자마자 집어들었다. 읽어보니 마치 소설 『다빈치코드』를 읽는 것 같은 흥미진진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거기다가 책에서 다루는 사건이 대부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니 더욱 흥미로울 수밖에. 그 비밀노트의 내용에 대해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고  지금은 그에 관한 음모론적 이야기보다는 그가 『방법서설』에서 논증했던 기하학에 대해서 간략히 적어 보겠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은  『데카르트의 비밀노트』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기원전 427년 아테네에서 전염병이 돌자 당시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는 델로스섬으로 사절단을 파견하였다고 한다. 목적은 아폴론 신의 신탁을 받기 위해서 였다고. 결국 신탁이 내려졌는데, 내용인 즉 델로스 섬의 아폴론 신전을 두 배 늘리라는 것이었다. 이 신탁을 받은 아테네 사람들은 신전의 길이와 폭 그리고 넓이를 두 배로 확장하였다고 한다. 공사를 완성한 사절단은 결과에 만족하여 아테네로 돌아왔다. 그런데 병마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에 사절단은 다시금 신탁을 받았는데 그 결과를 듣고 깜짝 놀랐다. 신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당신네는 아폴론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소. 신이 요구한 대로 신전의 크기를 정확히 두 배로 늘리지 않았단 말이오. 돌아가서 아폴론이 지시한 대로 따르시오.!"

그제서야 아테네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들은 신전의 길이, 폭, 높이를 각각 두배로 늘렸기 때문에 실제로는 신전의 부피를 8배 (2×2×2 = 8)를 늘렸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그리스 건축가들은 직선자와 컴파스만으로 크기를 작도를 하였는데 아무리 크기를 계산해봐도 그 크기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신전의 크기를 2배로 키우지 못했을까? 신전과 같은 입체도형의 부피, 예컨대 정육면체의 부피를 2배 늘리려면 가로, 세로,높이 각각에 2의 세제곱근을 곱해야 한다. 세제곱근을 곱해야 필요한 수인 2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선자와 컴파스 만으로는 세제곱근만큼 늘어난 값을 계산할 수가 없었다. 이는 피타고라스나 유클리드와 같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오늘날과 같은 대수학 이론 그리고 데카르트에 의해 발견된 해석기하학을 몰랐고 단지 직선자와 컴파스 만으로 작도를 했기 때문이다.이런 문제점에 때문에 다음과 같은 고대 그리스시대 기하학의 3대 난제가 탄생하게 된다: ①정육면체의 부피를 두배 늘리기 ②원과 면적이 같은 정사각형을 작도하기 ③각을 3등분하기.





데카르트는 이와 같은 그리스 기하학의 난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인 해석기하학을 창시함으로써 그리스기하학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제공했다. 또한 그는 그리스 기하학이 가진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했는데, 가령 위에서 이야기한 난제 중 2번의 경우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직선자와 컴파스 만으로는 세제곱근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한편 그는 직선자와 컴파스로 제곱근은 작도 할수 있음을 대수적으로 "증명"하였다. 다음의 내용은 그의 최초의 문제적 저서인 『방법서설』 속에 있는 기하학편에 나오는 증명이다. (아쉽게도 옆에 나와있는 해석본에 기하학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나머지 편들인 굴절광학 및 기상학도 하루빨리 번역되어 나오길 바란다.)




위 그림는 직선자(직각자)와 컴파스만으로도 작도 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이로부터 제곱근을 직선자와 컴파스만으로 작도 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위 그림 속 세 직각삼각형으로부터 피타고라스 정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세 방정식이 나온다.

c^2 = a^2 + b^2 -------ⓐ

d^2 = 1^2 + b^2 -------ⓑ

(a+1)^2 = c^2 + d^2 ---ⓒ

우변을 전개하고 ⓑ를 ⓒ의 우변에 대입하면

a^2 + 2a + 1 = c^2 + 1^2 + b^2

그런데 ⓐ에서 c^2= a^2 + b^2 였으므로 이를 대입하면

a^2 + 2a + 1 = a^2 + b^2 + 1^2 + b^2

이를 다시 정리하면

2a = 2b^2

∴ b = √a

이처럼 데카르트는 직선자와 컴파스 만으로 √a 라는 제곱근을 작도할 수 있음을 대수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런데 직선자와 컴파스만으로는 3차원공간상에서의 크기를 잴수 없기 때문에 정육면체를 2배만들기와 같은 계산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같은 논증기하로는 불가능함을 데카르트는 깨달았던 것이다. 그것의 수학적 "증명"은 그로부터 약 200년 뒤 어이없는 결투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비운의 천재 갈루아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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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육면체 부풀리기
    from to be immortal 2007-06-28 16:29 
    아키타스와 라이프니츠 사이에 데카르트?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귀가 솔깃해진다  
 
 
로쟈 2007-06-2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라고 해서 제쳐놓았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나 보군요.^^

yoonta 2007-06-2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아닙니다. 비밀노트라는 제목때문에 소설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데 사실은 그의 전기더군요. 그리고 실제로 비밀노트도 존재했었고요. 당시 신비주의단체로 유명했던 장미십자회와도 직간접적인 교류가 있었더군요. 데카르트의 전기로는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

쿠자누스 2007-06-2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육면체를 두배로 만드는 방법은 아키타스(http://de.wikipedia.org/wiki/Archytas)
가 증명한 걸로 아는데요,(http://mathforum.org/dr.math/faq/davies/cubedbl.htm)
라이프니츠가 <데카르트 비밀 노트>를 필사할 때 그걸 모르고 있었을까 궁금하네요, 라이프니치가 장미십자회에 있었던 건 아는데 데카르트도 그랬다는 건 처음 듣네요

yoonta 2007-06-29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스의 증명은 논증기하의 방식이죠. 즉 해석기하학에 의한 대수적 증명이 아닌 직관적인 유클리드기하학을 사용한 논증입니다. 그러나 보다 완전한 증명을 하기위해서는 데카르트가 발명한 해석기하학적 방식으로 다시말해 대수적으로 정육면체를 두 배늘리는 방식을 "증명"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리수계수를 가진 3차방정식이 유리수근을 가질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갈루아의 군론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각을 3등분하기 문제도 동일한 이유로 유클리드기하학으로는 완전히 증명될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원과 면적과 같은 정사각형을 작도하기 문제도 19세기 린데만에 의해서 파이가 초월함수임을 보임으로써 그것이 작도불가능임을 증명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데카르트조차도 그것의 작도 불가능성을 완전히 증명하지는 못했다고 보는 것이죠.

yoonta 2007-06-29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위 책에 의하면 데카르트가 장미십자회원이었다는 확증은 없는 것으로 기술되어있습니다. 자신은 장미십자회원임을 강하게 부정했죠.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정통 카톨릭교인으로 행동했습니다.그러나 그가 교류했던 학자들중 요한 파울바허와 같은 장미십자회원이 있었던 것, 그리고 그의 수사법중 장미십자회원이 사용하는 특유의 수사법이 자주 동원 된다는 점, 그리고 그의 비밀노트에 적힌 G.F.R.C.라는 이니셜은 Fratenitas Roseae Crucis 즉 장미십자회를 의미한다는 등등의 단서들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가 장미십자회원이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들과 밀접한 교류를 했을 가능성을 부인하기는 힘들다고 보는 입장이더군요.

쿠자누스 2007-06-30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들은 바로는 아키타스 기하학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불모성을 입증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사위 두배 만드는 작법이 중요하다는 건데 이걸 이해하는 게 좀체 쉽지 않네요. 비밀노트는 라이프니츠가 필사한 게 사실인가요 ? 그렇다면 그의 저작 목록에 들어있음직한데요...

yoonta 2007-07-01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스 기하학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바가 없네요. 시간나는데로 한번 그 인물에 대해서 조사해봐야겠네요. 아키타스기하학이 유클리드기하학의 불모성을 입증했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업적인것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네요. 그리고 라이프니츠가 필사한 것이 맞습니다. 책을 보시면 필사본 사진이 나옵니다. 저작목록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라이프니츠가 데카르트의 비밀노트를 필사한 것이 발견된 것도 비교적 최근이라고 하네요.

쿠자누스 2007-07-02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scienceagogo.com/news/books-24-11-05.shtml 여기 보니까 비밀 노트는 16 쪽인데 데카르트 친구가 보관하고 있던 것을 라이프니츠가 일부 필사했다는 군요. 원본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말이 없네요. 필사본이 최근 발견되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되겠져. 라이프니츠 저작 가운데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게 많다고 하니까요.

yoonta 2007-07-02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전체를 필사할 필요가 없었다는 군요. 비밀노트의 핵심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라이프니츠의 필사본을 통해 데카르트가 발견한 것을 이해하는데 또 오랜시간이 걸렸다고..원본은 현재 행방불명이랍니다.

람혼 2007-07-23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루아의 최후는 정말이지 생각하면 할수록 마치 저의 일인 것처럼 안타깝습니다...ㅡㅡ;

쿠자누스 2007-08-25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루아가 "21세가 채 안 된 1832년에 [감옥에서 나오자 마자] 애정문제로 인한 권총결투에 유인되어 살해되었다." 는 건 그의 죽음에 얽힌 흑막을 숨기려고 꾸며낸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