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락여행 - 세계사의 주요 장면들과 함께 읽는 150가지 요리 이야기
한스 페터 폰 페슈케.베르너 펠트만 지음, 이기숙 옮김 / 이마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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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책이 내 책상위에 있는 것을 보고 우리어머니는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쉰다.
'음, 책이라고 본다는 것이... 순, 먹는 이야기 뿐이야.' 라는 듯한 그 소리.

아아아, 오해 마세요. 이책은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 아닙니다. 역사책이라고요. 음식을 통해본 역사, 역사를 통해본 음식 이랄까.

원제는 저자 머리말에 나와있는 제목 '클레오파트라와 로빈후드의 식탁으로의 초대'인것 같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클레오파트라와 로빈후드의 집의 손님되기'  정도 되는 것 같다.

각각의 역사적 사실 30 장면을 픽션으로 구성하고 각각의 장의 끝에는 그 장에 나온 요리의 조리법이 있다.

조리법은 지금의 유럽인들이 쉽게 구할수 있는 재료와 방법으로 되어 있다지만 우리의 실정에서는 어디 구하기 힘든것들이 많다.

그리고 몇몇개의 재료는 내가 그 실체를 아는 데. 역자가 요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 사전에 나온 용어들을 그냥쓰고 있는 데. 때로는 현재 우리가 부르는 더 친근한 이름들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다.

원작자가 과거의 것들을 현대에 맞게 각색했듯이 역자도 한국의 실정에 맞게 고쳐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결론적으로 해 볼만한 음식은 거의 없다.

그러나 역사적 장면을 재구성하고 거기에 음식을 등장시킨것은 무척이나 신선했다. 우리의 대장금 시리즈도 그렇다고 할까. 음식이 나오지만 음식이 주인공은 아닌 역사극.

조리법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역사의 장면 장면을 맛깔스러운 필치로 써서.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서양사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하다. 내가 유럽이나 미국에 살면 한번 해보고 싶은 것도 몇가지 있으나 한국에서는 너무 힘들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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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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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는 프랑스어 사전의 대표격이다. 로베르 사전의 인명사전부가 있는 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아니 아멜리 노통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 책들을 원서로 읽지 못하면 그녀가 하는 말의 1/3정도는 못 잡게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한가지는 프랑스어권의 일반 대중의 수준이 영어권의 그것보다는 높지만, 고어나, 어원, 신화등에 있어서 높은 수준을 가지지 않고는 제대로 그 행간을 읽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베르 인명사전"은 이제 까지 읽은 그녀의 소설중에 2위를 주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든다. 자전적이거나, 강의록 같은 대담류의 소설보다 소설이라는 창작물로서의 점수를  높이 주고 싶다.

'나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이라는 부제, 원서에 붙은 것인지 번역판에 붙은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에서 무엇을 읽을 까 기대했는 데.

소설자체로 잘나가다가 끝에 가서 갑자기 '그녀가 나를 죽였다.' 끝.
이라니. 이건 좀 그렇다. 그래서 일위의 자리는 줄수 없다.

이제 까지 읽은 책중 1위에 놓고 있는 '반박'에서도 끝에 다 가서 살인을 하지만 그건 맥락이 있는 살인이었고, 이건 좀 아니다.

아멜리 노통을 계속 읽고 있는 이유는 아주 재미있어서 라기 보다는, 아직은 흥미로와서 이다. 이 여자 도대체 아직 까지 알수 없다.

내가 아는 사람이 이 여자가 프랑스 TV 대담프로그램에 나왔는 데. 그의 프랑스 남자친구와 같이 보다가, "아니, 이건 완전 또라이 아니야." 하고는 다른 채널로 돌려버렸단다.

내가 그 프로그램을 보지는 못했어도. "이 여자 또라이 맞아." 라는 생각이 드네.
좋겠다. 또라이로 살면서 돈도 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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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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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벨기에 출신의 한 여자는 어린 시절 일본에서의 생활에 매료되어서 일본에서 일하기로 작정한다. 유명한 일본 종합상사에서 근무하면서 외국인으로써 일본의 직장생활의 생리를 처다보는 시각이 다루어져있다.

다소, 아니 많이 과장되어 있다.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할수는 없는 일본 또는 한국의 직장생활의 문화가 표현되고 있지만 마치 볼록렌즈로 왜곡된 점이 없지 않다. 소설이 허구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범위의 수준에서.

주인공이 서양인으로 그리고 여자로써 보고있는 일본 직장생활의 모습이 "아, 그렇게도 보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직장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특히 일본의 여성직장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한 외국인이 한국의 직장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다루는 소설을 냈다면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각색한듯한 이 이야기는 그녀의 다른 창작물에 비해서 좋은 평가를 주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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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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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물을 읽을 때 역자의 말을 꼭 읽는 다. 원전으로 책을 보지 못하므로, 번역한 사람은 그게 누구이고 그의 생각이 어떻던 나 보다는 원작에 한발자욱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편 "사랑의 파괴"에는 같은 역자, 김남주의 역자의 말이 없었다. 이 책에는 달여있는 데. 내가 말을 찾지 못하던 느낌을 잘 말해주어서 여기 옮긴다.

"그녀가 선택한 방식은 전통적인 소설의 치밀성이 아니라 단순한 구성과 우의적인 전개이다. 치밀한 구성의 묘미와 치열한 묘사의 혜택에서  제외된 그녀의 작품은 얼핏 단조롭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주제의 무게를 거뜬히 지탱하면서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앞의 말은 전적으로 동의 한다. 이제 까지 읽은 작품들에서 보면, 바로 이 말이 내가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느낌 그대로 이다. 단순하고 우의적인 전개, 치밀함과 묘미는 없다. 그런데 주제를 거뜬히 지탱하는 지는 모르겠다. 일단 주제가 무언지 모르겠으며 "거뜬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을 계속 읽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인정을 해 주어야 할 부분이다.

전편의 '사랑의 파괴'를 건너 뛰고 생각하면 이 작가의 두편의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과 "반박"에서 나는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 작가의 별명을 붙인다면 "죽여야 사는 여자"라고 할만하다. 두편 다 사람이 죽는 다. 살인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살인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그런 느낌이 전혀없다. 너무 쉽게 죽이고 죽는 다. 마치 살인이 새로운 종류의 자연사 같다.

꼭 이야기의 끝을 죽음으로 맺는 것은 내가 또한가지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이다.

Trivia:
제목  Les Catilinaires 는 키케로가 BC 63년 빈민의 불만을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키려던 카탈리나 일파의 음모를 사전에 적발하여 <조국의 아버지>란 칭호를 얻었는데 이때 한 《카탈리나 탄핵연설》을 말하며 여기서 파생되서 통렬한 비판이나 반박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여기서는 주인공인 아젤 선생님이 평생을 고등학교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친것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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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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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배경을 생각할때, 이 소설을 자전적인 소설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성장소설이라는 흔하디 흔한 꼬리표를 피해갈 방법이 없다.

문화혁명당시 폐쇄적인 중국 베이징의 외교관 자녀들 중 하나가 일곱살의 그 당시를 쓴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가장 큰 두 가지 맥은 "사랑과 전쟁"이다.

감옥이나 다름없이 활동 범위의 제한을 받는 외인지구의 어린아이들은 그들 사이의 전쟁을 그들의 무료함을 달래는 수단으로 삼는 다. 정당하지 않은 명분으로 적을 만들고 공격을 한다. 외세(어른)들에 의해서 휴전을 하고 다른 적을 만들어 또 싸운다.

일곱살의 여자아이는 성(sex)와 전혀 관계없는 사랑에 눈을 뜨고 사랑이 겪어야하는 굴곡을 다 겪어나간다.

밀폐된, 특수한, 그리고 아이들의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나 어느 사회에서나 볼수 있는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다.

작가의 글쓰기 방법은 신선하다. 무언가 모르게 친절하지 않다.

책의 중간에 "독서는 할일 없는 어른들이나 하는 일." 이라는 말에 순간 누가 내 욕을 하는 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코 내 경우에는 반박도 할수 없다.

그러나 일전의 "살인자의 건강법"이라 마찬가지로, "독서는 할일 없는 어른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 어린아이는 수 많은 작품과 작가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앙드레 em 보통을 생각나게 한다.

이 작가의 제목 짓는 방법도 참 생각해 볼 문제다. 일단 불어 그 자체만으로 바도 전편의 Hygiene d'assasin 이나 이번의 le sabotage amoureux는 무언가 평범치 않다.

그러니 이걸 어떻게 번역할까는 정말 골치가 아픈일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제목을 '사랑의 파괴'라는 것은 전편의 살인자의 건강법보다 훨씬 적절치 않다.

사랑의 파괴란, 사랑이 파괴되거나 또는 사랑을 파괴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 뜻은 사랑하기에 또는 사랑스러운 sabotage를 말함이다.  그러면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가 싶다.

마치, "슬픔이여 안녕" 이라는 소설 제목이 Good bye 로 들리지만 사실은 Hello  인 만큼의 차이이다. 그러니 "안녕! 슬픔아!" 쯤이 되어주어야한다는 거다.

그 부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인용을 하면
"너를 위해서 내가 나를 sabotage  하기를 바라는 거니? 좋아. .... 중략..... sabotage하는 행위는 내게 꼭 어울렸다. 그 어원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만 sabotage라는 말속에서 나는 말굽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말굽이란 내 애마의 두 다리이자, 바로 내 두다리였다. 엘레나는 자신을 위해서 내가 나 자신을 sabotage 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나 스스로 내 존재를 으스러뜨리기를 원하고 있었다."

작가가 sabotage라는 말의 어원을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일 수 밖에 없다. 일곱살 어린아이인 척을 해야하니까.

하지만  sabotage라는 말은 불어에서 나막신을 말하는 sabot에서 나왔다. 직역하면 '나막신 하기'정도 될까.

우리가 태업이라고 알고 있는 사보타주의 어원은 공장에서 작업을 방해하기 위해서 나막신을 달그닥 거리거나, 나막신을 기계에 집어 넣어서 으께지게 해서 기계를 멈추게하는 행위에서 나왔다고 하는 말이 있다. 거기서 파괴라는 말도 파생했다.

"책읽는 것이 할일 없는 어른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하는 아이는 아마도 그런 어른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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