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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배경을 생각할때, 이 소설을 자전적인 소설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성장소설이라는 흔하디 흔한 꼬리표를 피해갈 방법이 없다.
문화혁명당시 폐쇄적인 중국 베이징의 외교관 자녀들 중 하나가 일곱살의 그 당시를 쓴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가장 큰 두 가지 맥은 "사랑과 전쟁"이다.
감옥이나 다름없이 활동 범위의 제한을 받는 외인지구의 어린아이들은 그들 사이의 전쟁을 그들의 무료함을 달래는 수단으로 삼는 다. 정당하지 않은 명분으로 적을 만들고 공격을 한다. 외세(어른)들에 의해서 휴전을 하고 다른 적을 만들어 또 싸운다.
일곱살의 여자아이는 성(sex)와 전혀 관계없는 사랑에 눈을 뜨고 사랑이 겪어야하는 굴곡을 다 겪어나간다.
밀폐된, 특수한, 그리고 아이들의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나 어느 사회에서나 볼수 있는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다.
작가의 글쓰기 방법은 신선하다. 무언가 모르게 친절하지 않다.
책의 중간에 "독서는 할일 없는 어른들이나 하는 일." 이라는 말에 순간 누가 내 욕을 하는 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코 내 경우에는 반박도 할수 없다.
그러나 일전의 "살인자의 건강법"이라 마찬가지로, "독서는 할일 없는 어른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 어린아이는 수 많은 작품과 작가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앙드레 em 보통을 생각나게 한다.
이 작가의 제목 짓는 방법도 참 생각해 볼 문제다. 일단 불어 그 자체만으로 바도 전편의 Hygiene d'assasin 이나 이번의 le sabotage amoureux는 무언가 평범치 않다.
그러니 이걸 어떻게 번역할까는 정말 골치가 아픈일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제목을 '사랑의 파괴'라는 것은 전편의 살인자의 건강법보다 훨씬 적절치 않다.
사랑의 파괴란, 사랑이 파괴되거나 또는 사랑을 파괴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 뜻은 사랑하기에 또는 사랑스러운 sabotage를 말함이다. 그러면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가 싶다.
마치, "슬픔이여 안녕" 이라는 소설 제목이 Good bye 로 들리지만 사실은 Hello 인 만큼의 차이이다. 그러니 "안녕! 슬픔아!" 쯤이 되어주어야한다는 거다.
그 부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인용을 하면 "너를 위해서 내가 나를 sabotage 하기를 바라는 거니? 좋아. .... 중략..... sabotage하는 행위는 내게 꼭 어울렸다. 그 어원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만 sabotage라는 말속에서 나는 말굽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말굽이란 내 애마의 두 다리이자, 바로 내 두다리였다. 엘레나는 자신을 위해서 내가 나 자신을 sabotage 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나 스스로 내 존재를 으스러뜨리기를 원하고 있었다."
작가가 sabotage라는 말의 어원을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일 수 밖에 없다. 일곱살 어린아이인 척을 해야하니까.
하지만 sabotage라는 말은 불어에서 나막신을 말하는 sabot에서 나왔다. 직역하면 '나막신 하기'정도 될까.
우리가 태업이라고 알고 있는 사보타주의 어원은 공장에서 작업을 방해하기 위해서 나막신을 달그닥 거리거나, 나막신을 기계에 집어 넣어서 으께지게 해서 기계를 멈추게하는 행위에서 나왔다고 하는 말이 있다. 거기서 파괴라는 말도 파생했다.
"책읽는 것이 할일 없는 어른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하는 아이는 아마도 그런 어른이 되었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