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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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이해가 잘 안가고 많은 부분 수긍이 가지 않지만 그의 수필 “슬픈 외국어”를 읽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굉장히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가 일상에서 느끼고 내뱉는 말들 중에서 내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공감을 못하는 데 인간으로서 그의 말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기도 하다.

“슬픈 외국어”는 미국 프린스턴에서의 생활동안 느낀점을 잡지에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었기 때문에 각 장마다 서로의 연관성도 찾아보기 힘들고 때로는 각 장의 제목과 내용도 일부는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어보이는 곳도 있다. 외국생활에서 오는 일상을 기술한 것도 있고, 이사나 이발, 자신의 취미와 연관된 것도 있고, 째즈와 마라톤, 미국 사회를 엿본 것들도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한 사회를 꿰뚤어 보는 심미안을 가진 그런 인간 같지는 않다. 그는 그냥 그의 경험에 기초하여 일기 쓰듯이 그냥 담담히 쓰고 있다. 일본사회에 대해서도 그가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저 한 사람의 작가이며 작가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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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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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작품은 나에게는 아직도 많은 의문점을 남겨놓고 있다. 나는 아직도 왜 그가 인기 작가이고 왜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는 다.

그러던중 '먼북소리'라는 그의 수필집에 대해서 쓴 글을 보고는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일단 그의 작품을 소설로만 대해왔던 터라. 그의 수필을 통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수 있을 까하는 기대가 있었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지역이 이탈리아, 그리스등 내가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처럼 장기 체류자가 될 계획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끼는 1986년 부터 1989년 까지 로마와 그리스의 섬들에서 3년을 보냈고 그 기간중에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 할수 있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과 '댄스 댄스 댄스'를 완성하였고 몇편의 번역작품을 마쳤다.

작가에게 있어서 이 기간은 일본이라는 환경에서 부터의 탈출이기는 했으나 일상으로 부터의 탈출은 아니었다. 이 경우에서도 보다 시피 자신이 가장 익숙한 환경으로 부터의 탈출은 익숙한 관계로 부터의 단절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끼의 여행은 새로운 것을 찾아나선것이 아니며 새로운 만남을 위한것도 아니었고 그 자신이 너무나 익숙한 관계들로 부터의 의도적 단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는 작가로서 그러한 인위적인 단절이 이시기에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37살에 나가서 40에 돌아왔다. 그에게는 40세에 대한 막여한 기대와 두려움이 있었던것 같다. 그는 그래서 이 시기를 일본에서 보내지 않기로 정한것 같다. 어쩌면 자신을 더 뚤어지게 쳐다볼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었을 까. 철저한 혼자의 몸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 동반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내와 이 시간을 거의 같이 했다. 그의 아내의 관한 언급은 아주 극소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면 그 또한 아주 평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아내를 상상해 볼수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공기나 물과 같이 항상 같이 하되 그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자신이 말하는 이 삼년의 의미는 이렇다.

'이 삼년간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저런일이 많았지만 결국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을 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다. 나는 말하자면 상실된 상태에서 이 나라를 떠났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어 돌아온 지금에도 역시 그때나 다름 없이 상실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나는 그저 나이를 먹었을 뿐 무엇하나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생각한다. 다시 한번 출발점으로 되돌아 갈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은 가, 더욱 혹독한 지경에 빠질 가능성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고.

그렇다. 나는 낙관적인 인간인 편이다.'

나는 그의 이 말에서 내가 아마도 이 책에서 얻고자 했던 해답을 다 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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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타운 - 양쯔 강에서 보낸 2년
피터 헤슬러 지음, 강수정 옮김 / 눌와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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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미국사람을 하나 만났다. 피터 헤슬러.
나는 그와 사랑에 빠질 것 같다.

그가 여자에게 얼마나 좋은 파트너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인간으로써 많은 장점을 가졌다. 물론 그는 완벽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수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자존심도 있고, 오해도 하며, 때로는 참을성도 없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며, 겸손할 줄도 알고, 스스로를 돌아볼 줄도 알며, 마음 깊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행해 나아갈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보기 드물게 순수 문학을 전공했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미국의 대학에서 순수 과학이나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외국 학생들이다. 미국인들은 이렇게 비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그래서 미국인으로 순수학문을 전공하는 이들은 누군가 말했듯이 정말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그가 얼마나 휼륭한 글쟁이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는 일들과 주변의 환경들을 그냥 지나쳐 보지만은 않는 눈을 가졌다. 그의 시각은 냉철하지도 냉소적이지도 분석적이지도 않다. 그는 그 모든 것을 그의 눈으로 보고자 한다. 그것들을 가능한 받아들이고 포용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그의 것으로 나름대로 소화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그의 시선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 되었다. 우리는 다만, 내가 보지 못한 것을 그의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그는 백인이며 미국인이라는 장애(?)을 극복한 얼마 안되는 사람중 하나이다. 이 말은 결코 미국인을 비난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위대한 나라이며 미국인들은 존경 받을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인이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역사를, 그 체계를 그 만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다른 어느 민족보다 힘들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 장애를 극복하였기에 그는 단일민족이면 한 언어를 쓰고 불과 20년전에 우리의 모습이 지금 중국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슴을 기억하는 나보다 조금 더 훌륭하다.

나는 그의 조심성 조차 높이 사고 싶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중국 읽기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많이 아는 듯 떠버리고 있는 요즘, 그는 서두에서부터 자신이 겪은 극히 일부지역에서의, 인구 20만의 소도시, 극히 제한된 시간의 경험임을 밝히고 있고 글을 읽는 내내 그 어느 한곳에서 “내가 그곳을 잘 안다”는 식의 느낌을 주지않는 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나의 생각은 번역자의 그것과 같았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땐 솔직히 미심쩍었다. 중국에 대한 글들은 이미 차고 넘쳤다. 구태여 미국인의 입을 통해서까지 들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더욱이 늘 거대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독점하려 드는 미국식 태도를 접할까 봐 미리부터 손사래가 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이자, 경계했어야 할 선입견이었다. 미국과 중국,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풍요와 빈곤, 개발과 자연, 이런 것들의 대립항은 존재했으나 다행히 지은이는 그것을 애써 외면하지도, 그렇다고 그 속에 함몰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 그는 (미국인 답지 않게? 나이에 비해선? 남자 치고는?) 꽤 눈이 밝고 속이 깊었다. 다행이다.”

글을 읽고 나서의 느낌도 역자의 생각과 같다. 그는 미국인답지않게, 나이에 비해선, 남자치고는 눈이 밝고 속이 깊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랑한다.

이 책은 결코 중국에 대한 책이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은 부산물로 중국에 대한 조금의 지식을 얻었을 뿐이다. 이 책은 오히려 다른 문화와 삶을 보는 이방인의 삶에 대한 좋은 본보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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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로 역사를 읽는다 1
타케미쓰 마코토 지음, 이정환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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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지정학적 위치라는 말을 들어왔다. 지리적 조건이라는 것이 문화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이렇게 형성된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이 민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왔고 그것에 따라 국경이라는 개념도 생겼을 것이며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안에서 전쟁이라는 것도 발생했을 것이다. 지리적 조건이 자원의 부존에도 영향을 미치니 이는 또한 무시할수 없는 요소가 된다.

이러한 모든점에서 볼때 지도를 처다 보지 않고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쩌면 무의미 할지도 모른다. 혹은 지도를 처다보면서 역사를 이야기하면 이해가 훨씬 쉬워질수도 있다. 그래서 지리부도나 역사부도를 보조 교제로 삼는 지도 모른다.

타케미츠 마코토의 <세계 지도로 역사를 읽는다>는 책은 그래서 의의가 있다. 이책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어 있지도 대륙에 따라 나뉘어 있지도 않다. 현대 사회(20세기를 전후하여)에서 관심이 되고 있는 민족 집단 또는 분쟁 별로 각각의 개요를 지도와 함께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각 주제별로 할애된 페이지는 지도를 포함하여 5장을 넘지않고 각 주제의 연관성도 없다. 여기에 보여지는 지도는 또다른 일본책에서 발취한것이 대부분이면 지도에 대략적인 선만 표시되어있을 뿐 그곳이 현재의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나타 내는 지도 알아보기 힘들게 되어있다. 물론 해박한 지리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면 한눈에 알아볼수 있겠으나 이책은 결코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은 아닌듯하다. 각 장의 내용도 일반인을 위한 백과사전의 그것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아마도 어린이용 백과사전 쯤에서 다루는 정도만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깊이 있다기 보다는 얕고 엷게 겉할기식의 지식을 단시간에 습득하고자 한다면 적절한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요약과 입시 위주의 지식 주입에 익숙한 한국이나 일본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닐까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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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플란의 타타르로 가는 길
로버트 카플란 지음, 이순호 옮김 / 르네상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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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러 민족과 문화가 몇세기를 두고 교차하면서 만들어낸 독특한 그들 만의 문화와 정체성 또는 민족간의 증오를 만들어낸 발칸과 중동, 중앙아시아를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고 단일민족 국가로 이땅에 반만년 이상 살아온 우리들로써는 이해하기 쉽지만은 않으리라. 그 이유 만으로도 이 책은 생각의 지평을 늘리는 데 큰 몫을 한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각 지역의 특수성과 역사적 배경이 우리와 무척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도 많았다.

구 소련의 체계가 무너지면서 민주적인 절차의 정부 이양없이 들어닥친 자본주의와 독재는 상황을 그 이전 보다 더 못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은로 하여금 차라리 소비에트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행정력을 가진 독재자가 정권을 잡은 나라는 차라리 다수 정당에 의한 혼란을 격는 나라들 보다는 상황이 좋은 편이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듯하다.

이 책이 이스라엘에 이르러 저자가 자신이 유태인임을 밝히기 훨씬 이전에도 그가 친 유대적이라는 것은 충분히 감지할수 있었다. 유대민족에 대한 동감, 그들의 우수성에 대한 자만, 서구 자본주의의 우월성에 기초한 사관들이 그 많은 서적을 읽고 연구한 지식인이며 동시에 저널리스트인 그에게 조차 탈피할수 없는 굴레가 된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느끼는 것이 많게 해준다.

이 책을 읽을 당시 우연한 기회에 만난 루마니아의 여성 사업가는 내가 이 책을 소개하면서. 이 책의 저자가 유럽에서 시작해서 발칸, 소아시아, 중동을 거쳐 중앙아시아에서 일정을 마친다고 소개하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들은 그 반대의 방향에서 왔지요.' 그렇다. 카플란이 일정을 마친 중앙아시아, 카르카스(코카서스)지역은 백인의 일컷는 코케이젼(Caucasian)이란 말의 어원이 되는 곳이다.

이제는 유럽의 변방 또는 아시아의 시작(유럽인의 관점에서)이 되는 이 곳이 사실은 그들 인종과 문명의 시작이었슴을 그는(또는 다수의 유럽인들은) 간과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카플란 자신이 여행의 여정을 유럽에서 시작해서 이 쪽으로 잡은 것 부터가 그가 어디에 자신의 정신적 뿌리를 두고 있는 지 알수 있는 일이다. 동시에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얼마나 큰 착오인지도 이 책을 통해서 알수 있다.

만약, 카스피해 근방에서 석유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이 지역은 아마 아직도 그 어느 서구 국가의 관심도 끌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1, 2차 대전을 통해서도 버림받고(이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박탈감 그대로), 소비에트의 붕괴 이후에도 구제받지 못해 사상적이나 물질적으로 해택을 받지 못한(카플란의 유럽 우위의 사고에서 본다면) 이 지역이 석유로 인한 자본주의 물결을 맞게 될경우 발생될 혼란은 가히 감당하기 힘들것이라는 두려움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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