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봄나무 사람책 1
김은식 지음, 이윤엽 그림 / 봄나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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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간 성자>를 읽기 전까지 내가 장기려라는 사람에 대하여 아는 것은 그가 아주 훌륭한 의사라는 것이 전부였다.

'훌륭한 의사?'

과연 어떤 것이 훌륭한 의사인가는 미쳐 따져 묻지를 않았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나 보다' 하는 정도.

책을 덮으면서 나는 '사람이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 장기려라는 사람을 만나 본적이 없지만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간 성자>를 읽고 나니 장기려라는 사람에게 '성자'라는 수식어를 붙일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위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많은 인물전을 보아왔다.

요즈음에 나오는 인물전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아직도 어린이 들이 볼 인물전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점보다 그 사람의 업적을 더 중시한 인물전이 많다.

"어떻게 살았는가?

그 분의 가치관이 무엇이었는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았는가? "를 생각하며 나와 다른 점을 깨닫고 닮아가려고 노력하여야 할 것인데 업적 중심의 인물전을 아이들에게 읽히면 자칫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르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됐었다.

그런 의미에서 봄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간 성자>는 반가웠다.


장기려는 평북 용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외과 의사로서 평양의과대학(김일성 대학 의대) 외과 의사로 일을 했었고 김일성의 맹장 수술을 집도하기도 했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자식 넷을 북에 두고 둘째 아들 가용만을 데리고 월남하여 부산에 정착을 했다.

한국전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장기려는 자신이 의사임을 잊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육군 병원을 찾아갔고 환자들을 돌보던 중 그가 북한 출신이고, 김일성대학 의대에 근무를 했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전쟁, 거리에도 환자는 넘쳐났다. 의사가 절실히 필요했다. 다행히도 장기려 자신은 의사였다. 필요한 자리에 있다는 것은 운명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가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부귀를 누릴 수 있었지만 장기려는 자신의 달란트가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쓰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 했다.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는 바로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사람이 일을 하다가 보면 처음엔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바르게 행동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만해지거나 유혹에 빠져 처음 맘먹은 대로 평생을 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장기려는 한결 같았다. 무소유의 철학과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의 벗으로 사는 장기려의 삶은 영악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보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잇속이 빠른 사람들의 눈에는 바보라고 손가락질을 할지라도 그것은 소수의 손가락이고 가난하고 헐벗은 더 많은 사람들의 벗으로 장기려는 기억된다.

장기려는 월남할 때 병원 버스를 타고 월남을 했다. 그때 자신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피난민의 눈길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정부에서 북쪽에 있는 가족들을 상봉할 기회를 주고자 했지만 특권은 싫다며 거절을 한다. 그 일을 두고 사람들은 모진 사람이라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가 45년을 독신으로 살아 온 것이나 만년에 동독에 들렀을 때 그가 한 행동을 보면 그가 모질어서는 아닌듯하다.

장기려가 언제나 훌륭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건강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건강 때문에 하던 일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돈이 넉넉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궁핍함을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안락보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인생의 최고 가치로 생각했다. 생각한 바를 평생 실천 할 수 있는 장기려는 진정 자신의 달란트를 가장 잘 이해하고 그 달란트를 가장 잘 쓴 사람이다.

그의 죽음이 안타깝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달란트를 쓰고 간 장기려는 행복한 사람이며 장기려라는 사람이 이 땅에 있었다는 자체만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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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지마, 절대로 내친구 작은거인 15
이오인 콜퍼 지음, 토니 로스 그림, 이윤선 옮김 / 국민서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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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장이 5형제. 웃음, 비명, 울음, 난장판...... 아이들에겐 즐거운 나의 집이다. 그러나 어른들에겐 정신 사나운 집이다. 제발 어떻게든 조용히, 말 그대로 평화로운 집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버지는 결단을 내린다. 거룩하게 교육이란 이름을 붙여 여름방학 동안 마틴과 윌을 도서관에보내기로.

도서관, 아이들은 질겁을 한다. 왜? 위험하단다.  도서관이 위험한 이유? 감자총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란다. 감자총 선생님은 아이들을 너무 싫어해서 군대있을 때는 아이들을 잡으러 다녔고 지금 도서관에서는 통감자를  총안에 집어 넣어 가스로 도서관에서 떠드는 아이들에게 쏘기 때문이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틴과 윌 의사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도서관으로 보내진다. 으, 불쌍한 마틴과 윌.

짐을 뚝 떨구듯 마틴과 윌만을 도서관에 두고 엄마는 다른 볼일을 보러간다. 사무적으로 마틴과 윌을 대하는 머피 사서. 아이들은 주눅이든다. 주늑이 든 것도 잠시. 마틴과 윌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감자총 선생님이 알아챌수 있을까 궁금하다. 몰래 살짝하면 절대로 모를듯하다. 마틴과 윌의 공범이 되어 살짝~ 이 긴장감, 이 스릴. 그러나, 딱 걸렸어. 감자총 선생은 한수위! 몸을 비비꼬다가 억지로 책을 몇줄보다가 그만 책속에 풍덩! 더 이상 어린이 열람실의책은 읽을 것이 없다. 벌써 두번이나 읽었는데...... 저쪽, 어른들은 무슨 책을 읽을까? 저기 있는 책은 어떤 내용일까?  몰래 살짝?

마틴은 윌을 살살 꾀어 어린이 열람실 건너편에 어른들 책을 가져 오게 한다.  살금살금, 몰래..... 성공! 그러나 딱걸렸어. 감자총 선생님은 역시 강했다. 윽 죽었다. 쿵닥쿵닥. 난 이제 감자총에 맞아 죽을거야. 그러나 감자총 선생님은 윌에게 어른 열람실 출입증을 만들어 주었다.

기본 스토리는 우리가 예상하는대로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심리를 따다가면 재미가 무궁무궁하다. 아이들은 이제 도서관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지루한 곳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동안 사서 선생님이 감자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도서관에 와 보지도 않은 아이들이 대체 왜  도서관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일까? 이 부분은 각 도서관에 있는 사서와 어른들이 잘못한 부분이다. 도서관의 사서는 책을 읽는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있는 것이지 그들에게 권위를 지키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의 도서고나의 사서들도 이용자들 편에서 생각을 해 주었으면 바래본다.

보탬말:

 "내겐 형제가 네명이나 있다. 상상 해 보라. 한집에 열한살도 안 된 남자 애가 다섯명이나 살고 있다는 걸." 글쎄, 텟스트에 충실하게 번역을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저학년들이 보기엔 좀 난해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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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슨 선생님 구하기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6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김지윤 그림, 강유하 옮김 / 내인생의책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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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클레멘츠는 <프린들 주세요>로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다. <프린들 주세요>는 언어의 생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랄슨 선생님 구하기>는  언론의 본질과 언론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랄슨 선생님은 

"학생은 자신에게서 배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학생들 또한 서로에게 배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는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랄슨 선생님의 교육철학은 많은 사람들들로 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랄슨 선생님의 교육 방법은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맡겨두는 것처럼 보여진다. 

"선생님은 존재하는데 선생님으로부터의 가르침은 없다. 가르치지도 않는데 급료는 받아간다."  고 카라는 자신이 발행하는 신문에서 말을 하고 있었다.

 '애들이 도대체 나에 대하여 뭘 알까? ' 랄슨 선생님은 당황했다.  

'랜드리에게 선생님을 평가 할 권리를 누가 준 것일까? ' 랄슨 선생님은 화가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15년 전엔 올해의 선생님으로  연속 3년이나 뽑혔었는데 좋은 선생님 되는 것을 포기 한 것은 언제일까?

'선생님들은 어느 날 갑자기 지치지 않고 차츰 지친다. 마치 가파른 길을 오르는 사람을 다라 잡는 피곤함처럼 시나브로 지쳐오는 것'이라고 생각한 랄슨 선생님은 자신이 교사로서 직무태만을 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들을 가르쳐 줄 선생님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회를 포착한 랄슨 선생님은 미국의 수정헌법을 가르쳤다. 카라의 엄마는 주변에 일어 나는 일을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말을한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진실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독설이 되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카라가 단독으로 발행했던 신문은 아이들의 협조와 랄슨 선생님의 독려 속에 규모가 커져가고 평소 랄슨 선생님의 교육 철학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던 반즈 교장 선생님은 신문에 실린 기가 내용을 빌미로 랄슨 선생님을 함정에 빠뜨린다.

자신들의 기사로 인하여 랄슨 선생님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아이들은 그동안 랄슨 선생님이 가르쳤던  헌법과 권리장전과 언론의 자유를 생각했다.

언론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배웠다.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배웠다. 자신들은 지금 언론의 자유를 침해 받고 있다는 생각을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싶었다. 아니, 법이 정하는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싶었다. 랄슨 선생님이 다칠수 있는 랜드리뉴스를 폐간하는 대신 가디언이란 이름으로 그들은 학교 밖에서 자신들의 신문을 만들어 냈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다른 언론과의 연계도 했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학급에서 발행한 신문의 내용이 빌미가 되어 위기에 처한 랄슨 선생님도 구해냈다.

 

이책을 보면서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왜 자유로워야 한다는지 알게 되었다. 또 진실로 위장한 독설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건을 대하고 보도하는 태도에 따라서 같은 사안을 희망의 메시지로 전할 것인지 절망의 메시지로 표현되는 것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사물을 보는 태도를 다시 보게 되었다

 

ps: 오타가 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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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반올림 9
임태희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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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옷이 나를 입고 있었다? 이것 또한 황당 시츄에이션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거지? 그래, 세상에는 별 이상한 일이 다 일어 날 수 있으니까 옷이 나를 입고 있다고 치고, 옷이 나를 입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안된다.

<보이지 않는 바비>를 읽을 때 생각이 난다. 분명 나는 존재하는 데 거울 속의 나는 보이지 않는다. 그 황당함.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의 '나'도 그렇게 황당했을 것이다.

황당함을 꼭꼭 눌러 두고 '녀석의 존재'를 나만 아는 존재로 치부하기로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기의 시야 밖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핸드폰을 사 들려주고, 학원에, 독서실에 감시카메라를 달고...... 그들에 관하여는 작은 것 하나라도 다 알아야 되겠다는 듯 행동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컴퓨터의 보안을 뚫듯 어른들의 감시망을 피하는 그들만의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에 제시된 방법은 어쩜 구태의연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까? 몰라서 속기도 하지만 믿고 싶은 마음에 알면서도 어른들이 모른 척 하는 일이 더 많음을 아이들은 알까?

어찌 되었든 연애인을 좋아하고, 아바타를 꾸미며 이것저것 예쁜 것을 좋아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고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나이인 청소년들은 쇼핑을 간다.

쇼핑을 가기 전에 변신은 필수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는 것은 안다. '청소년은 청소년다워야 한다.'는 것도 안다. '청소년답다'는 게 뭔지 모르지만 어른들이 원하는 것은 해 줄 수도 있다. 그럼 제대로 대접을 하란 말이야.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고 그대로의 청소년을 인정하란 말야. 어리다고 무시하고, 부당한 대접을 받으니까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하여 변신은 필수. 부모에게는 청소년기의 예쁜 딸로 있기 위하여 부모님들이 보기에 무난한 복장을 하고 나왔지만 쇼핑을 할 때는 우리도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은 포장을 해야 해. 몰래, 화장실에서 포장을 하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그게 어른들을 위한 나름대로의 작은 배려아닐까?

어찌 되었든 우리의 쇼핑멤버들은 동대문 시장을 간다. 그들의 톡톡 튀는 개성은 캐릭터를 살아있게 했다. 지나치게 강한캐릭터에 이들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지? '하는 의문이 든다. '그 녀석'의 끊임없는 속삭임은 자신과 친구들을 객관화한다. 나, 그리고 친구들......

우여곡절을 겪으며 쇼핑에서 돌아오는 나는 세일러문으로서의 역할은 끝이 났다. 보통의 학생으로 돌아가 나는 일상을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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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니라 학교가 문제다 - 현 교육 시스템에서 아들을 성공시킬 학습 전략 8가지
마이클 규리언.캐시 스티븐스 지음, 고정아 옮김 / 큰솔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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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아이들이 아니라 학교가 문제다'라고 읽었다. 아들을 아이들로 읽었다고 딸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니 딸아이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 아니더라고 해 그럴 소지가 있는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 도입 부분에서는 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는구나 싶지만 읽어가다가 보면 아이들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고등학교의 남녀 공학의 경우 여학생의 성적이 남학생보다 우수하다는 인터넷 신문 보도를 보았다. 심지어는 아들을 자녀로 둔 부모의 많은 수가 남녀 공학보다는 남자 중,고등학교를 선호하며 그 이유는 내신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문제다>라는 최근 매체를 통하여 보이고 있는 여자들의 성적이 남자들에 비하여 좋다는 것을 책 광고로 이용하고 있다.

책을 읽어 가면서 교육에 과연 생물학적 성별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 해 본다.


남자의 두뇌는 평균적으로 여자의 두뇌보다 공간-기계적 자극에 더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도표, 그래프 등의 체계적 제시를 잘 기억한다. 또 도파민 수치가 높고 소뇌의 혈류량이 많아 신체 움직임을 통해 배우는데 반해

여자 아이는 뇌량(두 반구를 연결하는 조직 다발)이 많아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 점수가 높고 여아는 덜 충동적이며, 브로카, 베르니케 영역(두뇌의 언어 중추)이 더 빨리 발달한다고 지은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실에서 남.녀 발달 단계와 생물학적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채 같은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현 교육 시스템은 얼마간은 여학생들이 적응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구조임도 인정을 한다. 때문에 남자 아이들의 성적이 여자 아이들에 비하여 뒤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것이 시스템만의 문제일까?

  

"남자 아이의 본성에 맞는 교육이 아들을 성공으로 이끈다." 고 지은이는 주장하면서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교육 시스템이 문제지 학교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교육 시스템이 문제라고 했지만 현재 진행되는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본성을 이해하는 공교육을 주장하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된다. 본성을 이용한 교육은 공교육에서 논의되기보다는 아이들을 육아하는 방식에서 논의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의 생물학적인 차이를 이야기하고, 교육적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한탄하기보다는 실제적으로 내 아이를 어떻게 도와 줄 것인가 고민하는 게 좀 더 현명하다.

우선은 내 아이의 특성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 맞는 양육 방법을 찾아주고 그 양육방법 속에서 교육을 논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먼저 안전한 ‘애착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한다.  내가 행복한 상황에서는 주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 것이다. 아이들도 애착관계가 올바르게 형성이 되어 있다면 주변의 것들을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틀 속에 아이들을 넣어 고 그 일반적인 잣대로 아이들을 측정하는데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평가에 연연하기보다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주고 잘하는 부분은 격려를 해 주어 그 아이의 개성대로 크게 하는 게 올바른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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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12-0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그렇게 책 표지를 봤어요..내신 때문에 정말 남녀공학 기피하는데 함께 어울려 지내는 편이 훨씬 좋다는 것을 알겠더라구요..한참 성장기에 떨어져 궁금해 하는 것보다 함께 어울려 서로 잘하는 것도 배우며 못하는것은 서로에게 배우기도 하구요..그런데 저는 무조건 입시 제도가 문제라고 늘 여김니다..이렇게 생각하나 저렇게 생각하나 아이들은 무럭 무럭 성장하고 잇지만 말이지요..안타까운 현실에 늘 아이들에게 미안해집니다..하지만 사랑을 듬뿍 주며 믿어주고 잘 키워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