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 - 1994 제1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민음사 / 1994년 6월
평점 :
절판


  임영태 작가의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을 읽고 예전에 읽었던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세월이 흘렀지만 역시 재미있고 좋은 소설이다. 요즘 이만큼 쓰는 작가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검색해보니 작가의 책 대부분이 절판된 상태. 안 팔렸고, 안 팔린단 얘기다. 많이 아쉽다.   

  이 소설엔 세 친구가 등장한다. '우리'라고 명명되는 두 사람, 그리고 '두호'. 요즘 청년들은 아니고 음악다방, DJ의 마지막 세대쯤 될까. 공고를 나와 생계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전전하며 하릴없이 노닥거리는 우리는 서울 생활에 진력이 나거나 훌쩍 뜨고 싶을 때 춘천에 있는 두호에게 찾아간다. 두호는 노동현장에서 총무 일을 하면서 집안의 맏아들로, 빈손으로 찾아드는 우리의 물주로, 약한 내색 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친구다. 소설은 우리의 이야기와 두호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와 두호의 이야기를, 그 또래 청년의 시점과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러고보니 공고생, 상고생들을 잊고 살았다. 언제는 기억하고 살았냐만은 요즘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청춘들도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치는 마당이니 실업계 고교를 나온 청춘들에게까지 눈을 돌리지 못했다. 음악다방이라니, 무슨 고릿적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여상을 나온 친구 하나는 이번에 출산을 하면서 십년을 다닌 회사에서 잘렸다. 출산율을 걱정하는 나라에서 오늘 이 순간에도 벌어지는 일이다. 십년간 청춘을 바쳤던 직장이 그녀에게 준 것은 상당 분량의 분유였다. 모유수유를 하는 그녀는 분유가 필요하면 자기에게 말하라 했다. 아직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남았다고.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3교대로 일했고 그 와중에 편찮으신 어머니와 마땅한 직업 없이 전전하는 남동생을 돌봤다. 중학교 때까지의 내 기억으로 그녀는 영어 성적이 좋았고, 글씨를 예쁘게 썼으며, 특히 피아노를 잘 쳤다. 그리고 서태지를 좋아했다. 꿈이 뭐냐고 물은 적은 없다. 하지만 언제고 결혼하고 임신하면 내쫓는 회사에서 십년간 뼈빠지게 일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아주 당연히 그만두는 걸로 알던데?" 그녀의 말에 문득 서글퍼졌다.   

  소설 속 우리와 두호도 무엇을 하기도 전에, 꿈도 꾸어보기 전에 벽에 부딪힌다. 책을 읽어도 처지에 맞지 않는 인문적 기질은(p.34) 상처로만 돌아오고 이십세기에 살면서도 잡지 속 아름다운 여성과의 연애는 언감생심일 뿐. 그러나 누구를 향하여 무엇에 대하여 분노하랴. 그 대상을 알 만큼 우리는 깨어 있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황폐한 유적이 되어 가라앉으며 오래도록 벌레라는 말만 신음처럼 주저리고 있었다. 벌레(p.217).     

  그때와 지금은 달라졌을까? 계급이 좀더 미시화, 세분화 되었다는 것 정도? 그러나 영악해진 젊음들은 황폐한 유적이 되기를 거부한다. 할 일이 없다고 왜 황폐해야 하는가. 그들은 열심히 놀거리를 찾아다니며 무정형의 삶을 즐긴다. 우리는 벌레였어, 라고 절망할만큼 순진한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술이 떡진 우리와 두호보다 해사한 그들이 더 낯설고, 무섭다.    

  나는 이 보잘것 없는 젊음들의 찌질한 신파, 케케묵은 정서가 썩 마음에 든다. 특히 두호의 삶은 HD 이전 드라마게임을 보는 것처럼 축축하고 촌스럽다. 요즘 소설에서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케릭터들이다. 담배도 못 피우면서 길에서 만나면 담배 한갑 사주고 싶다. 선선한 저녁 무렵, 파라솔 밑에서 소주 한잔 해도 좋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렇게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싶었다. 나는 벌써 기성화된 것일까. 어느새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니.  

  임영태 작가의 건필을 빈다. 내가 갖고 있는 두 책 모두 잘 읽히고 오래 곱씹게 된다. 무엇보다도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진솔함이 있다. 최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스탕 2010-06-1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아홉번째집두번째대문을 다 읽지도 못하고 도서관에 반납을 했지 뭡니까? 다시 한번 더 빌려 읽으려구요.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찾아보거나 그러지 않고 있어요. 내가 읽어야지!
저도 여상을 나왔어요. 졸업도 전에 취직을 했지요. 다행히 좋은곳(?)에 취직이 돼서 결혼을 해도 애를 낳아도 나가라는 말 한마디 안하는 직장이었지만 제가 여건이 안맞아 그만두게 되었네요.
아마 그래서 더 공무원을 선호하겠죠? 사기업과 달리 공무원은 결혼했다고, 출산한다고 그만두라는 소리 안하니까요. 얼른 기업 풍토가 바뀌어야 할텐데 말이에요..

깐따삐야 2010-06-18 10:54   좋아요 0 | URL
되게 좋게 읽은 소설이에요.^^
졸업하기도 전에 그런 좋은 직장을 구하셨다니 공부 열심히 하셨나 보다. 그 친구네 회사는 여직원이 결혼하고 임신하면 너무도 당연히 그만두는 분위기래요. 여전히 그런 곳이 많죠. 그러면서 출산율이 어쩌고 하는 거 보면.-_-
저는 교사이다보니 그만두란 소리는 안 듣지만 눈치도 보이고 아이도 안 낳은 남자 선생님들이 업무 효율 어쩌고 하는거 보면 완전 짜증나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한참 멀었어요.

비로그인 2010-06-17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한 걸 부러워하는 몹쓸 짓을 권하는 사회.
저도 이 작가를 좋아합니다. 밑바닥에서 담담한 목소리를 끌어낼 줄 아는 필력의 작가.

깐따삐야 2010-06-18 10:56   좋아요 0 | URL
우울해요.ㅠ
Jude님도 좋아하신다니 반갑네요. 많이들 모르더라구요. 대부분 절판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고. 다음 소설을 기대하고 있어요.^^
 
진심의 탐닉 -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 김혜리가 만난 사람 2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영화야 미안해>에서 김혜리 기자의 필력은 확인한 바가 있다. 그 책을 읽고 거의 상찬에 가까운 리뷰를 썼다. 영화에 관심이 있고, 맛있고 성실한 영화평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즐거운 독서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샀다.

  이 책은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김제동, 유시민, 신형철 등의 인터뷰에 관심을 갖고 읽었다. 그외 김명민이나 고현정과의 인터뷰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리더인가, 더욱이 크리에이티브 리더인가? 어쩌면 당시 이슈가 되고 있거나 접근이 용이한 사람들을 김혜리 기자의 기준으로 선택, 취재한 것은 아닌가?

  "오늘날 인터뷰에 대한 수요는 군중 속의 고독을 강요하는 삶의 양식이 낳은 슬픈 허기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가짜처럼 보이는 시대에 진짜배기의 벌거벗은 진실에 가닿고 싶다는 간절한 발돋움이다." 인터뷰의 동기에 관해 김혜리 기자가 인용한 조지 가렛의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에서 보리라 기대했던 것도 진짜배기의 벌거벗은 진실 같은 것일텐데 어쩐지 나는 보던 것을 다시 본 느낌이다.     

  물론 이 책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유머와 감동이 살아있는 버라이어티쇼 같은 글모음이다. 김제동이 야구 포지션을 가족 구성원에 비유할 때는 무릎을 치며 폭소가 터져나오고 고현정이 촬영 구경 나온 아이를 안아주는 모습에서는 마음이 짠해진다. 그런데 새롭지 않다. 보아왔던 것들이고 있음직한 장면이다. '진짜배기'의 '벌거벗은' '진실'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못 보았다. 그래서 재미있는데도, 읽고 나면 심심하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내게 "너는 사람 속내를 털어놓게 하는 재주가 있어."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를 향한 부담스런 각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나는 귀는 당나귀처럼 컸고 입은 봉제인형처럼 지퍼를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집중력이 있었다. 이 책의 멋진 제목처럼 사람에서든, 책에서든, 그 무엇에서든 진심을 탐닉하고픈 때였다. 사람을 만나고 오면 행복했고, 또 피곤했다. 그리고 지금은? 피곤할 것 같은 사람은 아예 안 만난다. 

  인터뷰는, 경청은, 그 과정을 한편의 글로 완성, 새로운 진실로 주조한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방 앞에서 마음을 연다, 귀를 기울인다,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사람 속내를 털어놓게 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성정일 가능성이 크다. 김혜리 기자는 그 성정과 에너지를 두루 갖추었다. 그러나 기왕 공식적인 인터뷰어로 나섰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주면 좋겠다. 어깨 힘을 느슨히 빼고 하지만 발걸음은 과감하게. 기대를 갖고 읽은 책에서 벌거벗은 진실이 아니라 고만고만한 진실만 보았기에 이렇듯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엮지만 말고 <영화야 미안해 2>를 썼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 엄마가 반찬 만드시는 것을 곁에서 눈여겨 보고 있다. 날름날름 얻어다 먹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오늘은 갈비찜을 배웠다. 고기를 한번 삶아내서 기름을 떼어내고 간장, 매실즙 등을 넣고 조물조물. 나중에 성질 급한 우리 영달이가 "엄마, 그냥 음식하지 말고 할머니한테 해달라고 하면 안돼?" 이러기 전에 하나씩 배워두어야지. 

  어제는 엄마가 올갱이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 푸른 빛을 보자 떠오르는 일화. 

  "엄마, 그 xx가 말야. 어느 날, 올갱이 해장국을 보더니 왜 올갱이가 파랗지? 이러는 거야."  

  "아니 그럼 올갱이가 파랗지." 

  "왜 갈색이 아니고 파랗냐고 그러는 거야. 욱끼지욱끼지?" 

  "껍질이 갈색이지 속까지 갈색이냐. 하여간 모자란..." 

  "그래서 내가 서빙하는 아줌마한테 물어봤잖아. 아줌마, 왜 올갱이가 파래요? 그러니까 아줌마도 엄마처럼 아니 그럼 올갱이가 파랗지, 이러는 거야."

  "하여간 하나가 모자라면 나머지 하나까지 같이 모자라진다니깐. 너 연애한 걸 각본으로 쓰면 칸영화제에 내보내도 될거다." 

  "칸영화제? 하하, 정말정말." 

  영달이가 두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데 엄마와 나는 영달이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 이야기를 했다. 우리 모녀는 이따금 나의 어리석은 연애사를 화제 삼아 나의 자학과 엄마의 구박이 오가는 이상한 SM을 즐긴다.  

  "엄마엄마, 그때 내가 끝까지 정신을 못 차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너랑 나랑 이 세상에 없다."    

  "하긴, 난 버얼써 엄마 손에 죽었겠지!"

  엄마는 참을성 있게, 그야말로 질긴 인내심을 갖고 무지몽매한 나를 지켜보았고, 지켜주었다. 요즘 무럭무럭 커가는 영달이를 보고 있으면 막막해질 때가 있다. 주변의 사례들을 보아하니 자식은 곱게 키워도 문제, 터프하게 막 키워도 문제, 그저 이래저래 속끓이게 되어 있던데 내가 과연 엄마처럼 도를 닦듯 묵묵히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집집마다 어느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대개 자식 교육은 엄마 몫이다. 특히 딸은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다. 그리고 두 여자는 필연적으로 부딪친다. 세상에 둘도 없는 한편이 되었다가도 어느 때는 서로의 가슴에 대못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영달이는 제 아빠를 쏙 빼닮았다. 영달이 아빠는 본래 유한 사람이고 나날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나와 충돌하지 않는 법까지 몸소 터득했다. 하지만 영달이는 그저 딸이라는 입장만으로도 나와 부딪칠 것을 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요즘 엄마는 내게 참을성을 강조하신다. 어쩌면 내게 있어 가장 취약한 부분, 즉, 구멍이라고도 볼 수 있는 심성 중 하나다.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고 어쩌고 하면서 투덜거리면 심성도 연습하면 되는 거라고, 더구나 자식 일에 있어서는 참을성 제로인 사람도 잘 참게 되어 있다는, 지금으로선 그저 아리송한 이야기를 하신다.  

  지난 학기 클럽활동 부서 중에 심성수련반이 있었다. 학교로 돌아가면 나도 그런 반을 운영해볼까 싶다. 사람들이 막 비웃겠지만 그 또한 참아야 하리. 계획 짜고 지도안 만들고 자료 준비하고 하다보면 참을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무엇이든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배송조회 클릭이 취미가 되어버린 내게 참을성이라니, 난제이자 화두다.    

                             그러고보니 요즘 영달이한테도 빨리 크라고 성화다.  

                        앞으로는 자장가를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로 바꿔야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와 2010-06-10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안녕안녕~ *^^*



깐따삐야 2010-06-11 08:14   좋아요 0 | URL
저러다가도 갑자기 으앙~ 합니다.^^

다락방 2010-07-02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똥말똥. 아이가 엄마를 보는걸까요? 사진 찍어주니까?
:)
 

  그러니까, 우리는 올해 영달이라는 딸내미를 얻었고 조만간 이사를 간다. 결혼하고 나서 맞는 큰 변화들이다.    

  결혼한 지 채 2년이 안 된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살았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  

  남편은 엊그제 저녁, 해물탕의 해물을 건져먹으며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당신이 이런 문자를 보냈었다, 고. 막 연애를 시작할 즈음 주고받은 메시지였다. 한 건을 읽고 나서 민망한 듯 손을 내두르자 또 다른 한 건을 보여준다. 얼굴이 훅훅 달아올랐다. 아니 왜 이런 걸 여태 보관하고 있어요? 내가 의아한 듯 불만스런 목소리로 묻자 그가 말했다. 가끔 꺼내보면 힘이 나니까. 요즘 나는 안 그래도 눈물이 많아졌다. 순간 눈물이 핑그르르 고였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해물탕에 더 바짝 다가앉아서 내 얼굴을 감췄다.  

  나는 매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서도 세상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을 읽다가 저 문장이 턱, 마음에 걸렸다. 나 역시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상은 나를 제외시키고도 그 자체로 완벽해 보였고 그 안의 나는 고독하고 무력한 정물 같았다. 그렇듯 어리석고 외로웠던 시절, 남편과 나는 같은 건물에서 공부를 했고 그가 자취를 했던 동네에 내가 자취를 하러 들어왔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한창 나이 먹어 연애하는 중에 알았다. 한번쯤 마주치지 않았을까. 어쩌면 여러 번 마주쳤을 테지만 그때는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시절, 많은 술을 마셨다 했고 나는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둘 생각을 했었고 나도 한 일년쯤 방황했다. 그는 우리 학번은 마냥 애기로 여겨졌다 했고 나는 당신 학번은 느끼한 아저씨 부대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는 독서클럽 회장을 역임했다고 하여 내게 큰 웃음을 주었고 내가 동아리 선배를 뻥, 찼다고 하자 그가 코웃음을 쳤다.  

  그 세계를 지나와 두 사람이 드디어 서로를 알아보았을 때, 우리는 각자의 어리숙함 때문에 사랑에 빠졌다. 그와 나, 둘 중 한 사람이라도 현명했다면 우리는 아마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 이후, 온 우주를 채우고도 남을 듯 했던 내 감정샘은 조금씩 말라가는 것 같다. 대화는 용건 중심, 일상은 계획 중심, 요즘은 영달이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감기에 걸린 그가 코를 훌쩍이며 케케묵은 영구메시지를 찾아보고 있을 때 나는 육아대백과를 찾아 읽거나 기저귀 쇼핑몰을 기웃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 풍경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대학 초년생 시절, 친구 E와 나란히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아기를 업고 시장가방을 든 채 길을 건너는, 지금 우리 또래의 여인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저렇게 될까봐 겁나. E는 아무 스스럼 없이 그렇게 말했다. 조금 실망했지만 솔직한 반응이기도 했다. 갓 스무살이었으니 말이다. 

  그처럼 고개 빳빳이 세우며 도도하게 뇌까리던 시절은 멀찌감치 흘러가 버리고 더 이상 삼인칭관찰자 시점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매일매일의 일상을 탈없이 꾸려가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좀더 어린 날의 나는 컨디션에 따라 주어진 하루를 그냥 방치한 적도 많았다. 후회도, 피해도, 내 몫이었고 그것은 차라리 향락이었다. 

  하지만 이후의 내 삶은 가만히 있지 않을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루하루가 날마다 똑같이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듯 똑고르게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것들과 싸워야 한다. 얽혀 있는 일, 사람 관계에서 오는 피로와 불쾌를 견뎌야 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우울도 극복해야 한다. 그 와중에 알 수 없는 내일을 위한 대비도 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사람을 구하려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 뿐만 아니라 그저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남편에게는 아쉽거나 갸우뚱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항상 결혼 전의 그 마인드라면, 아마 살기 힘든 건 남편 쪽일 것이다. 나도 손가락이나 놀려가며 문자나 예쁘게 보내면 되는 시절이 가끔 그립다.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면 속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런 행운은 아주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일텐데 우리가 그처럼 복받을만한 일을 한적이 있는가.  

  요즘 나는 영달이가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기쁘다. 당연한 세계에 길들어가는 일이 처음으로 싫지 않다. 아직 완전히는 아니지만 늘상 나를 괴롭혀대던 원인불명의 노이로제에서도 점점 해방되는 것 같다. 무능한 엄마에게 용기를 주는 아이, 아빠를 닮아 아빠를 잊지 않게 해주는 아이, 우리는 너에게 감사해야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10-06-0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는.나.는.오.죽.하.겠.수.^^

깐따삐야 2010-06-07 23:10   좋아요 0 | URL
이제는 모든 관심을 월드컵으로! ㅋㅋ

레와 2010-06-0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 2010-06-07 23:10   좋아요 0 | URL
^^;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 사는 모양새는 얼추 비슷비슷한데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태도가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다. 대개는 사람 나름, 그 사람 성격 나름이다.  

  삼칠일이 지났다고 친구들이 아기를 보러 왔었다. 친정에 와 있다고 했더니 다들 엄마 힘드시게 왜 거기 있느냐고 타박을 주었다. 내 심신이 고달파서 그냥 안면몰수한 채 뭉개고 있다고 했더니 얼른 너네 집으로 가란다. 그리고는 나랑은 별로 얘기도 안하고 엄마랑 실컷 수다를 떨다 갔다.     

  K는 원래 학교 다닐 때부터 언니 같기는 했지만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서는 그런 느낌이 더해졌다. 우리 영달이는 K의 품에 폭신 안겨서는 입을 쫑긋거리며 좋아라 했다. 세살 된 아들이 있는 K는 영달이의 이모저모를 이뻐라 하며 기필코 딸을 낳아야겠다며 둘째 계획을 밝혔다. 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두르자 본인이 형제 많은 집에서 자란데다 남편이 딸을 원하고, 또 첫째가 나중에 외로울 것을 생각해서 더 낳기로 했단다.  

  내가 몰랐으면 모르지만 K는 출산 후에 후유증으로 고생도 했었고 지금도 완전히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더욱이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아이를 돌봐줄 여력이 안되어서 휴직기간 내내 혼자 육아를 감당한데다 요즘도 다른 사람 손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중이다. 남편은 다정한 분이기는 한데 워낙 바깥으로 공사다망하신 탓에 육아에 적극적인 편은 못된다. 시댁에 돈이 많아서 그런지 너는 아무 걱정 말고 셋만 낳으라고 하셨다는데 나라면 신경질이 확 올라왔을 대목에서도 K는 허허실실이다.      

  K는 담대하고 어른스러우면서도 또 그만큼 좋고 싫고가 분명한 칼 같은 면도 있었다. 그런데 결혼한 후에는 그런 모서리를 찾아볼 수 없이 더 둥글둥글해진 것 같았다. 자꾸 좋은 면을 보려고 해야 한다, 는 그녀의 말에 가슴이 찡했다. 의젓한 그녀가 존경스러워서. 그리고 내가 그러지 못해서. 

  쇠꼬챙이처럼 일일이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습성은 친정엄마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인데 나와 엄마의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짚은 다음 해결까지 본다는 것이고, 나는 짚긴 짚되 해결할 능력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모들은 나만 보면 우리 아무개는 너무 순수해서 탈이라며 잔뜩 오해들을 하고 계시는데 나는 그저 머리가 합리적으로 회전하지 않을 뿐이다. 문제에 맞닥뜨리면 엄마처럼 단박에 전후좌우 체계가 서는 것이 아니라 따지듯 떼만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질만 버리며 헛수고 할 때가 많고 그 과도한 삽질 덕에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 피곤하게 만들기 일쑤다.

  참 보면 볼수록, 살면 살수록 나는 외모부터 시작해서 기질까지 아빠를 빼닮았다. 그런데 타고난 것과는 별도로 딸이라서 그런지 엄마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불과 얼음이 하나의 심신에 공존하는 것처럼 어딘가 부조화스럽고 언발란스한 상태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아빠는 매사 머리 굴리는 것을 극도로 귀찮아하는 단순한 분이고 가만 보면 내 본성 역시 그렇다. 그런데 엄마가 사는 모습을 학습해왔기 때문에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는 일이 없는 것이다. 내면의 갈등은 항상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K는 서슴없이 내게, 너는 딱 산후우울증 걸리기 쉬운 성격이야, 라고 말했다. 나도 엉, 맞아, 라고 인정했다. 학교 다니면서 공부만 할 때는 몰랐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상상 그 이상의 겁나먼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늘 '갈등' 중이었다. K는 어느 날 기숙사 내방에 놀러와 이런 말을 했다. 야, 너는 책은 뭐하러 읽니. 나는 그러게나 말이야, 라며 고개를 떨궜다. 시덥잖은 고민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갈등하던 무렵이었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면 다양한 입장이란 것이 생긴다. 한마디로 사는 게 피곤해진다. 그리고 사람마다 그 피곤함을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풀어낸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이 있다. 짜증스런 상황도 그 사람 눈을 통하면 알콩달콩 시트콤으로 변한다. K는 조리원에 매일매일 출근도장을 찍던 시어머니와, 그런 엄마가 올케한테 흠 잡힐까봐 감시하는 시누이의 통화 내용을 배꼽 빠지게 재현해냈다. 몇년이 지난 지금도 시누이는 어머니가 가만히 집에 계신 줄로 안다고. 나라면 어땠을까. K처럼 싫은 내색 없이 시어머니 말상대 해드리며 남편을 들볶지도 않고 시누이한테는 비밀엄수하면서 둥글둥글 넘어갔을까. 오, 상상할 수 없다.  

  각자의 삶이 있는 거겠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K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그녀의 노고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고 해서, 겉으로 활짝 웃고 있다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할만큼 먼 사이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입장에 놓이건 간에 긍정할 수 있는 여유와 아량이 참 부럽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데 있어 얼마나 주체적이고, 또 구체적인가. 그에 비해 소음만 무성하고 뒷수습은 안 되는 나의 이 민폐스러운 성격이란!  

  아마도 무릎에 있는 성장판이 닫힘과 동시에 내 정신적 성장판도 닫혀버린 걸까. 나는 엄마까지 되었는데도 아직 어른이 아니다. 아기는 원래 우는거야, 라고 담담히 말하는 K와는 달리 나는 여전히 영달이가 울면 명치 끝이 메스꺼워지면서 안절부절 쩔쩔 매기 일쑤다. 안아달라고 보채는 영달이를 세워놓고 네가 자꾸 그러면 되겠냐며 따박따박 훈계도 늘어놓는다. 그러면 영달이는 자장가인줄 아는지, 들으나마나한 소리라서 무시하는 건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졸고 있다.   

  이렇듯 부실한 나를 향해 지적질을 해대는 사람들이 참 많다.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남편, 친구들까지 다들 나를 향해 어찌나 객관적인지 시정해야 할 점을 한눈에 콕콕 찝어낸다. 종종 듣기 싫은 것도 사실이지만 멍때리고 있는 내 코를 베어가지 않고 뒤통수를 후려치니 당시에 찔끔, 눈물만 좀 참으면 마치 개안을 하듯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나를 향한 따끔한 지적질을 앞으로도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으니 네가 알아서 하려니 하는 사람들만 많아질 뿐, 수고스럽게 잔소리 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던 참이었다. 단, 컨디션이 안좋은날은 좀 자제해주었으면.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반항심 생기려고 한다. 

  공부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어쩌면 더 큰 변화를 겪는다해도 사람은 타고난 성격대로 살아가게 되어있다. 아마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용을 써봐도 K의 시트콤 같은 일상이 나의 일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떤 운명을 살든 귀는 열어두어야 한다. 돌아보건데, 내가 지금 이 성격에 주변 사람 말이라도 안 들었으면 말도 안되게 후진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나간 기억 중에 후지고 너절한 것들은 대개 주변 사람 말 안 듣고 나 혼자 저지른 것들이다. 팔랑귀가 되는 것만 조심한다면 귀를 기울이는 자, 복이 있으라. 그나저나 나의 이런 태도는 사는 데 자신 없는 얼치기의 변명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는 데 자신 없는 것도 사실이고 내가 얼치기인 것도 맞구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웽스북스 2010-05-2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달이 세워놓고 니가 그러면 되겠니, 라니. 깐따삐야님, 진짜 왜이렇게 귀여운 거에요. 아. 어쩐지 나도 그럴 것 같아요. 알고보면 남일이 아니야 이거. 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영달이는 다 알아듣고 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외면하는 거지.

깐따삐야 2010-05-28 15:26   좋아요 0 | URL
들은 척도 안하는데 저 혼자 그러고 있어요. 지금은 그렇다쳐도 나중에 말귀 알아듣는 나이가 되서도 그럴까봐 걱정이에요. 육아는 산넘어 산이에요.ㅠ

레와 2010-05-24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 K님을 닮고 싶어요. ^^;

깐따삐야 2010-05-28 15:27   좋아요 0 | URL
저런 천성은 노력해서도 아니고 정말 신의 은총인 것 같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