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 사는 모양새는 얼추 비슷비슷한데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태도가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다. 대개는 사람 나름, 그 사람 성격 나름이다.  

  삼칠일이 지났다고 친구들이 아기를 보러 왔었다. 친정에 와 있다고 했더니 다들 엄마 힘드시게 왜 거기 있느냐고 타박을 주었다. 내 심신이 고달파서 그냥 안면몰수한 채 뭉개고 있다고 했더니 얼른 너네 집으로 가란다. 그리고는 나랑은 별로 얘기도 안하고 엄마랑 실컷 수다를 떨다 갔다.     

  K는 원래 학교 다닐 때부터 언니 같기는 했지만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서는 그런 느낌이 더해졌다. 우리 영달이는 K의 품에 폭신 안겨서는 입을 쫑긋거리며 좋아라 했다. 세살 된 아들이 있는 K는 영달이의 이모저모를 이뻐라 하며 기필코 딸을 낳아야겠다며 둘째 계획을 밝혔다. 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두르자 본인이 형제 많은 집에서 자란데다 남편이 딸을 원하고, 또 첫째가 나중에 외로울 것을 생각해서 더 낳기로 했단다.  

  내가 몰랐으면 모르지만 K는 출산 후에 후유증으로 고생도 했었고 지금도 완전히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더욱이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아이를 돌봐줄 여력이 안되어서 휴직기간 내내 혼자 육아를 감당한데다 요즘도 다른 사람 손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중이다. 남편은 다정한 분이기는 한데 워낙 바깥으로 공사다망하신 탓에 육아에 적극적인 편은 못된다. 시댁에 돈이 많아서 그런지 너는 아무 걱정 말고 셋만 낳으라고 하셨다는데 나라면 신경질이 확 올라왔을 대목에서도 K는 허허실실이다.      

  K는 담대하고 어른스러우면서도 또 그만큼 좋고 싫고가 분명한 칼 같은 면도 있었다. 그런데 결혼한 후에는 그런 모서리를 찾아볼 수 없이 더 둥글둥글해진 것 같았다. 자꾸 좋은 면을 보려고 해야 한다, 는 그녀의 말에 가슴이 찡했다. 의젓한 그녀가 존경스러워서. 그리고 내가 그러지 못해서. 

  쇠꼬챙이처럼 일일이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습성은 친정엄마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인데 나와 엄마의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짚은 다음 해결까지 본다는 것이고, 나는 짚긴 짚되 해결할 능력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모들은 나만 보면 우리 아무개는 너무 순수해서 탈이라며 잔뜩 오해들을 하고 계시는데 나는 그저 머리가 합리적으로 회전하지 않을 뿐이다. 문제에 맞닥뜨리면 엄마처럼 단박에 전후좌우 체계가 서는 것이 아니라 따지듯 떼만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질만 버리며 헛수고 할 때가 많고 그 과도한 삽질 덕에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 피곤하게 만들기 일쑤다.

  참 보면 볼수록, 살면 살수록 나는 외모부터 시작해서 기질까지 아빠를 빼닮았다. 그런데 타고난 것과는 별도로 딸이라서 그런지 엄마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불과 얼음이 하나의 심신에 공존하는 것처럼 어딘가 부조화스럽고 언발란스한 상태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아빠는 매사 머리 굴리는 것을 극도로 귀찮아하는 단순한 분이고 가만 보면 내 본성 역시 그렇다. 그런데 엄마가 사는 모습을 학습해왔기 때문에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는 일이 없는 것이다. 내면의 갈등은 항상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K는 서슴없이 내게, 너는 딱 산후우울증 걸리기 쉬운 성격이야, 라고 말했다. 나도 엉, 맞아, 라고 인정했다. 학교 다니면서 공부만 할 때는 몰랐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상상 그 이상의 겁나먼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늘 '갈등' 중이었다. K는 어느 날 기숙사 내방에 놀러와 이런 말을 했다. 야, 너는 책은 뭐하러 읽니. 나는 그러게나 말이야, 라며 고개를 떨궜다. 시덥잖은 고민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갈등하던 무렵이었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면 다양한 입장이란 것이 생긴다. 한마디로 사는 게 피곤해진다. 그리고 사람마다 그 피곤함을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풀어낸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이 있다. 짜증스런 상황도 그 사람 눈을 통하면 알콩달콩 시트콤으로 변한다. K는 조리원에 매일매일 출근도장을 찍던 시어머니와, 그런 엄마가 올케한테 흠 잡힐까봐 감시하는 시누이의 통화 내용을 배꼽 빠지게 재현해냈다. 몇년이 지난 지금도 시누이는 어머니가 가만히 집에 계신 줄로 안다고. 나라면 어땠을까. K처럼 싫은 내색 없이 시어머니 말상대 해드리며 남편을 들볶지도 않고 시누이한테는 비밀엄수하면서 둥글둥글 넘어갔을까. 오, 상상할 수 없다.  

  각자의 삶이 있는 거겠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K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그녀의 노고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고 해서, 겉으로 활짝 웃고 있다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할만큼 먼 사이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입장에 놓이건 간에 긍정할 수 있는 여유와 아량이 참 부럽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데 있어 얼마나 주체적이고, 또 구체적인가. 그에 비해 소음만 무성하고 뒷수습은 안 되는 나의 이 민폐스러운 성격이란!  

  아마도 무릎에 있는 성장판이 닫힘과 동시에 내 정신적 성장판도 닫혀버린 걸까. 나는 엄마까지 되었는데도 아직 어른이 아니다. 아기는 원래 우는거야, 라고 담담히 말하는 K와는 달리 나는 여전히 영달이가 울면 명치 끝이 메스꺼워지면서 안절부절 쩔쩔 매기 일쑤다. 안아달라고 보채는 영달이를 세워놓고 네가 자꾸 그러면 되겠냐며 따박따박 훈계도 늘어놓는다. 그러면 영달이는 자장가인줄 아는지, 들으나마나한 소리라서 무시하는 건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졸고 있다.   

  이렇듯 부실한 나를 향해 지적질을 해대는 사람들이 참 많다.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남편, 친구들까지 다들 나를 향해 어찌나 객관적인지 시정해야 할 점을 한눈에 콕콕 찝어낸다. 종종 듣기 싫은 것도 사실이지만 멍때리고 있는 내 코를 베어가지 않고 뒤통수를 후려치니 당시에 찔끔, 눈물만 좀 참으면 마치 개안을 하듯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나를 향한 따끔한 지적질을 앞으로도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으니 네가 알아서 하려니 하는 사람들만 많아질 뿐, 수고스럽게 잔소리 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던 참이었다. 단, 컨디션이 안좋은날은 좀 자제해주었으면.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반항심 생기려고 한다. 

  공부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어쩌면 더 큰 변화를 겪는다해도 사람은 타고난 성격대로 살아가게 되어있다. 아마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용을 써봐도 K의 시트콤 같은 일상이 나의 일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떤 운명을 살든 귀는 열어두어야 한다. 돌아보건데, 내가 지금 이 성격에 주변 사람 말이라도 안 들었으면 말도 안되게 후진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나간 기억 중에 후지고 너절한 것들은 대개 주변 사람 말 안 듣고 나 혼자 저지른 것들이다. 팔랑귀가 되는 것만 조심한다면 귀를 기울이는 자, 복이 있으라. 그나저나 나의 이런 태도는 사는 데 자신 없는 얼치기의 변명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는 데 자신 없는 것도 사실이고 내가 얼치기인 것도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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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5-2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달이 세워놓고 니가 그러면 되겠니, 라니. 깐따삐야님, 진짜 왜이렇게 귀여운 거에요. 아. 어쩐지 나도 그럴 것 같아요. 알고보면 남일이 아니야 이거. 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영달이는 다 알아듣고 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외면하는 거지.

깐따삐야 2010-05-28 15:26   좋아요 0 | URL
들은 척도 안하는데 저 혼자 그러고 있어요. 지금은 그렇다쳐도 나중에 말귀 알아듣는 나이가 되서도 그럴까봐 걱정이에요. 육아는 산넘어 산이에요.ㅠ

레와 2010-05-24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 K님을 닮고 싶어요. ^^;

깐따삐야 2010-05-28 15:27   좋아요 0 | URL
저런 천성은 노력해서도 아니고 정말 신의 은총인 것 같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