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은 남재일과의 인터뷰에서 언론사를 여러 군데 옮겨 다닌 연유에 대해 묻자, "개인적으로 직장을 떠나는 게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직장에서 불화가 생기면 구태여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그냥 내가 떠난다. 불화를 유지하고 불화인 상태로 있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라고 말했다.    

  이 명징한 대답을 놓고 한참을 생각했다. 김훈은 그가 쓰는 글처럼 군더더기나 부스러기 없이 정직한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일상에 만연되어 있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해법은 정녕 기만일까. 한 작가의 의견일 뿐인데 굳이 이 대목에 좌우되는 것을 보면 깊이있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 늘 하고 있던 고민이었는가 보다.    

  스스로를 휴머니스트라 일컫는 자가 가게 종업원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을 보고 실망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거대 관념의 추종자이거나 가치의 모사자일 뿐. 그가 말하는 그가 아니었다. 절연의 가장 큰 이유가 어쩌면 그것이었다는 것을 그 사람은 몰랐을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실망 앞에서 나는 돌아섰다.      

  어떤 어른이 무질서한 상황과 맞닥뜨려 우물쭈물하고 있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다, 살다보면 뭐가 옳은 건지 잘 모르게 된다, 고. 완벽히 수긍할 수는 없었지만 일리 있다고 생각했고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중에 당신이 했던 그 말로 당신의 뻔뻔함을 합리화하는 것을 보고 정수리 꼭대기까지 혈압 상승. 아무리 좋은 말도 저열한 사람한테 가면 똥막대기 수준으로 변질되는구나.  

  나는 김훈처럼은 될 수 없고 그처럼 살 까닭도 없다. 그는 젊고 곧은, 영원한 청년 같은 면이 있는데 그것은 고독한 작업을 택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일 터. 간혹 눈 감고 귀 닫은 채 은근슬쩍 넘어가야 하는 일이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나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엄청난 기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연중에 내 속엔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는가 보다. 본래 은근슬쩍, 두루뭉술이 잘 안 되는 사람인데 시키는 대로 하려다 보니 포즈도 엉성할 뿐더러 마음의 다크서클이 심장에 빙글빙글 동심원을 그리고 있었나 보다.  

  나는 괴로울 때마다 송곳처럼 삐죽이 튀어나오는 왜, 라는 질문을 묵살하고 또 묵살해왔다. 종업원을 홀대한다고 절연했던 사례는 벌써 수년 전이다. 당시의 나는 죽었다 깨나도 아닌 놈은 아니고 아닌 년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새 죽었다 깨나도 반듯한 직조물처럼 정리되지 않는 것이 사람관계며 죽었다 깨나도 이 복잡다단한 관계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에 고개를 숙였다.  

  결국 약간 화가 나 있는 상태를 항상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 엄격하면서 타인에게 관대하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둘 다 엄격해서 때로 턱까지 숨이 차오를 지경이고 스스로에게 관대하면서 타인에게 엄격하려 드는 사람을 보면 어린 시절 그 분노의 기개가 움찔움찔 부활한다. 이쯤 되면 불화와 불 화(火)를 항상 안고 다니는 셈이다. 김훈은 불화인 상태로 관계를 떠나 자전거 타면서 건강관리를 하는 모양인데 매번 겉으론 해결된 양 불화를 품고 있는 나는 명만 재촉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면, 이라는 가정에 많은 기대를 싣곤 한다. 분명 전후가 나뉘는 대대적인 변화임에 틀림없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더욱 너그러워지는 면도 있지만 더더욱 가차없어지는 면도 있다. 일례로 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공연히 가엾고 예쁜데 세상의 많은 어른들에 대해 무심해지거나 적의를 품게 되었다. 나는 무려 영달이의 엄마인데도 가끔 의도치 않게 그 소녀에게 고통을 준다. 나 역시 아이의 마음을 잊어버린 어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런 일은 더 많아질 것이고 그 사실이 미리 아프다.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나 자신과 불화할 수 밖에 없는 이 서글픈 적의는 필연적이다.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다고 말하던 장금이는 얼마나 용감하고 현명했던가. 불화를 덮어두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불화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가 중요한 것일까. 나는 지금보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고 더욱이 한 아이의 거울이 되었다. 불가피한 불화의 연속인 삶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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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2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3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정도 색깔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매우 힘든 독서였다. 저자의 가쁜 호흡과 들끓는 문체를 따라가기에 내 마음과 내 삶은 너무 건조했다. 나 자신 타고난 성품도, 생활도 그다지 드라이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작가이자 창녀이자 예술가인 뜨거운 여인 앞에서 입은 다물고 무릎은 꿇어야 했다.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패전 독일의 연합군, 도시의 야수, 집 잃은 고양이 같은 남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몸을 판다. 아이들이 잠든 후 사람들 몰래 집을 빠져나와 밤길을 거닐다 보면 신호를 보내는 남자들이 있다. 그녀는 섹스 이외에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에 자신을 기꺼이 노출시킨다. 어느 날은 한푼도 못 쥐어본 채 길가에 버려지고 어느 날은 배부른 식사를 대접받고 두둑한 지폐를 챙겨오기도 한다. 처음엔 흑인 애인과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시작한 매춘이었으나 어느새 그녀는 사랑과 성을 파는 노동자로 스스로를 규정해 나간다.      

  떠오르는 일화 하나.  

  고향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삼십분 가량 나가면 시내가 나오는데 터미널 근처의 골목에 엄마의 단골 미용실이 있었다. 긴 머리에 연예인처럼 생긴 미용사 아줌마와 허여멀끔한 날건달처럼 보이던 아줌마의 남편을 기억한다. 어른들이 풀어놓는 뒷담화의 세계에 일찍이 맛을 들인 나는 그날도 미용실에 모인 아줌마들의 수다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미용사 아줌마는 그 여자가 여관 청소만 한 게 아니고, 로 시작하여 장황하게 썰을 풀었고 결론은 이랬다. 청소 다니며 몸도 팔았던 젊은 아낙이 근방 사내들의 돈을 싹 긁어모아 아이들을 데리고 타향으로 떠버렸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대개의 반응이 비난이 아닌 칭송이다시피 했던 것. 철없는 남편과 고단한 생에 찌들어 있던 아줌마들에게 이 짜릿한 일화는 이보다 더 신날 수 없는 감정이입과 대리만족 감이었다.

  그러니까 질서정연해 뵈는 낮의 세계에 길들어버린 내 이해의 범위는 생계로서의 매춘을 용납하는 것 정도였나 보다. 몸을 파는 여인의 뒷방에는 굶주린 아이들, 병약한 노모나 모두들 수재라고 일컫는 동생, 혹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기둥서방이 있지는 않을까. TV문학관이나 수사반장을 즐겨본 탓인지 무언가 사연이 있겠지, 사연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은연중에 소망하거나 상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몇 차례 주어졌던 다른 노동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그녀에게 매춘은 단순한 생계 수단 이상의 자발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건물 청소를 한 뒤 앓아눕고 인디언 아내로서의 부유하지만 지루한 생활을 박차고 나온다. 각종 성병과 포악한 사내들에게 시달려야 하면서도 밤이면 또 다시 거리로 나서고 흑인 병사와 기약없는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방으로 익명의 남자들을 불러들인다.  

  끊임없이 격렬하게 이어지는 그녀의 매춘기를 읽으면서 '배운 게 도둑질'이란 옛말과 함께 사람마다 적성이 따로 있긴 있나 보다, 라는 생각. 나는 왜 생계형 매춘 밖에 생각하지 못했을까. 각자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있는 것이다. 공장에는 노동자가 있고, 가정에는 주부가 있으며, 길거리에는 창녀가 있다. 보석처럼 밤을 반짝반짝 빛내는 그녀들이 있다. 우리는 사랑을 다루는 위대한 예술가일 뿐이다. 결코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p.434). 결혼이라는 제도가 온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매춘은 악으로 규정되어야 하고, 규정될 필요가 있고, 그러나 수요가 있는 한 더 음습한 곳으로 피해갈 뿐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필요악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데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우리에게 그 이상을 호소해온다. 이쯤 되면 로맨틱한 자유의 나라, 프랑스에서조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 수긍이 간다.   

  평생토록 백인을 조롱하고 흑인을 사랑했듯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안착보다는 자유, 적응보다는 일탈을 지향하는 타고난 창녀였던 셈이다. 구슬픈 재즈 같기도 하고 서정적인 서사시, 화려한 회화 같기도 한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뜨겁고 자유로운 혼이 일찍이 매춘 아닌 다른 것에 눈뜨고 인도받았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마를린 먼로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얻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 강력한 성적에너지와 사랑에의 갈망을 정열적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다면! 그러나 레알 그녀의 주장처럼 그 또한 창녀를 당당한 성 노동자로 인정하기는 커녕 동정의 포즈로 바라보는 것에 지나지 않을 터. 이미 결혼이라는 굳건한 제도에 안착한 내 고루한 의식은 그녀의 혁명적 구호를 따라가기엔 내내 숨이 차다.   

  An original writer is not one who imitates nobody, but one whom nobody can imitate. 샤토브리앙의 말이다. 누구도 모방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사람.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그런 면에서 내가 만난 매우 독창적인 작가들 중 하나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었겠는가. 이 낯설고 이색적인 책에서 나는 다른 세상을 만났고 관심 밖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겁고 굼뜬 내 느리적거리는 의식은 차치하고라도 분명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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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원에 가자고 했더니 좋단다. 산책로도 있고 괜찮긴 한데 냄새가 좀 심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자기는 동물원이라는 데는 태어나서 가본 적이 없단다. 저질 기억력을 탓했더니 대체 누구랑 같이 갔었길래 지금 와서 헷갈리고 있냐고 도리어 되묻는다. 철렁, 했지만 같이 가놓고는 기억도 못한다고 시치미를 뗐다. 그러면서도 입장료를 내던 남자는 분명 남편이었다고, 그때 보라색 카디건을 입고 있지 않았느냐고, 내 기억은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결국 안좋은 끝을 본 동물원은 접고 근처 속리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가까워 보이지만 결코 가깝지 않은 산이다 보니 장거리 여정에 익숙치 않은 영달이가 까무룩 잠이 들었고 카시트에 앉혀라, 울 영달이는 내 팔뚝을 더 좋아한다, 실랑이를 하다가 여차저차 도착. 단풍은 저물어 가는데 울긋불긋 관광객이 어찌나 많은지 무리에 쓸려 다니다가 한적한 길로 빠지다가를 반복하며 엉성하고 두서없는 끝물 단풍을 즐겼다.  

  남편은 아마도 세번째 만남 즈음 내게 산에 가자 했었다. 정상까진 좀 무리일 것 같고 세심정까지만 산책하자길래 따라나섰다. 평평한 길과 가파른 언덕이 이어져 있었고 맑은 개울 근처나 희한한 나무 앞에서 잠깐씩 발길을 멈춘 채 느릿느릿 걸었다. 둘 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고 별다른 짐 없이 가벼웠기에 무리없는 산행이었다. 정오 무렵, 세심정에 도착해서 내가 준비해온 떡과 한라봉을 먹고는 다시 내려왔다. 그때 그가 처음으로 내 손을 잡았을 것이다. 잡은 손을 내치면 그가 무안해 할까봐, 하지만 손을 잡고 싶을만큼 그가 좋았던 것도 아니기에, 몹시 어정쩡한 기류가 흘렀던 것 같다.     

  나중에 이 산행을 회상하며 남편 왈. 무슨 여자가 그렇게 씩씩하게 잘 걷는지 손잡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그럼 산에 가자는건 다분히 계획적인 거였냐고 물으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힘들어하면 손도 잡아주고 끌어주고 하려고 했단다. 나는 중국에 갔을 때 999 계단도 아무 도움 없이, 교감 선생님과 체육 선생님 다음으로 오른 녀자다, 정말 쩔지 않냐고 잘난 척을 했더니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과연 그게 녀자로서 자랑할 만한 추억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산을 영달이와 함께 오니 감회가 남다른 것 까지는 아니지만 전혀 생각이 안 난다고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남편이 된 이 남자가 그때 내 손을 잡지 않았다면 우리 영달이와 만날 수 있었을까. 굵직한 운명은 어떤 식으로든 쳐들어오기 마련이니 부질없는 질문이렸다. 길이 깊어질수록 쌀쌀해져 영달이에게 머플러를 씌워주었고 예쁜 길이 나오면 사진도 몇 방 찍었다. 세번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아빠의 물수제비에 영달이는 실컷 코웃음을 날려주었고 나는 두 사람을 앞서거나 뒤따르며 저물어가는 가을을 타박타박 느꼈다.  

  길을 벗어나 혼잡한 입구로 나왔을 때 영달이 손과 볼이 차가워진 것을 알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마련한 김밥은 집에 가서 먹기로 하고 조금 아쉬운 대로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만큼 무탈하게 자라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가도 더 큰 아이들을 보면 언제쯤 저렇게 뛰어놀 수 있을까, 흘깃대고 부러워하며 산을 빠져나왔다. 피곤했던 영달이는 어김없이 내 팔뚝에서 잠이 들었고 또 다시 카시트에 앉혀라, 괜찮다, 를 실랑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세 사람의 안녕하게 성장한 모습이 담길 다음 가을을 기약하며-      

  

올 가을 영달이 핫 아이템인 머플러. 오른쪽은 영달 미륵?

  관광객 할머니들이 동질감 때문인지 무척 좋아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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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 2010-11-0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카시트에 앉히는게 옳습니다^^
저희도 돌 되기 전 첫 가을에 속리산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유모차에 앉혀서. 이불 덮어주고 말이죠- ^^
영달양의 볼이 아주 찬란합니다!

깐따삐야 2010-11-09 13:25   좋아요 0 | URL
앉혀야 하는데 영달이가 앉기를 싫어해요. 손을 너무 탔나봐요.ㅠ
더 일찍 다녀올걸 싶더라구요. 단풍도 저물어가고 산바람도 차고 좀 아쉬웠어요. 속리산은 봄에 가도 좋죠? ^^
머플러만 하면 영달 미륵으로 변신하네요.ㅋ

레와 2010-11-0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영달씨? ^^;;

은행잎 카펫을 깔고 앉은 아이, 아이고 이뽀라..+_+

깐따삐야 2010-11-09 13:27   좋아요 0 | URL
머리가 많이 안 자라서 사내 아이로 봤다가 얼굴을 유심히 살피곤 딸이네, 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언제쯤 앉을까 했는데 그새 혼자 앉을 수 있게 됐어요.

무스탕 2010-11-08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똘망한 눈으로 빤~히 바라보면 웃어주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지요?
아이고 이뽀라.. +_+

(태그의 답을 기억해 내시거든 한 번 더 페이퍼를 써 주심이... ㅎㅎ)

깐따삐야 2010-11-09 13:2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전 아기 낳은 후로 바보, 거짓말쟁이, 푼수, 몸종... 그런 사람이 되버렸습니다.ㅠ

(기억나는데 아마도 기억해주고 싶지 않은 남자였던가 봐요.ㅋ)

다락방 2010-11-0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의 답을 기억해 내시거든 한 번 더 페이퍼를 써 주심이... ㅎㅎ) 2

근데요, 깐따삐야님,
굵직한 운명은 어떤 식으로든 쳐들어오기 마련이라는 거, 정말인가요? 정말 그래요?


깐따삐야 2010-11-09 13:34   좋아요 0 | URL
(동물원에 같이 가고팠던 남자, 하지만 함께 못 갔던 남자에 대해 써드리면 안될까요.ㅋ)

살면서 계속 느껴요. 인생의 잔가지는 내 의지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굵직한 기둥 뿌리는 어느만치 결정되어 있다는 예감 같은 거요. 엄마는 스무살 적에 눈 먼 점쟁이로부터 서쪽에서 온 남자랑 결혼하겠단 말을 들었다는데 아빠 고향이 서산입니다.^^ 다락방님한테도 옵니다. 그 남자 또는 그 운명이!

L.SHIN 2010-11-08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나무는 푸르다."
깐따님의 이미지 소개글, 갑자기 와 닿네요.
그런데 아기 볼살, 어쩜 저렇게 보송보송해보일까.
역시 아기들의 유수분 밸런스는 완벽한 3:7..? 나도 한 때는...( -_-)ㅋ

깐따삐야 2010-11-09 13:38   좋아요 0 | URL
괴테는 참 좋은 말 많이 했죠.^^

잡티 하나 없이 맨들맨들한 살결을 만지다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죠. 정신이고 피부고 때가 껴야만 어른이 되나 싶어서 벌써부터 안타깝기도 해요. 영달이의 미모로운 피부를 위해 잠 많이 재우고 과일 많이 먹이려구요!

세실 2010-11-09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뻐라. 이목구비가 뚜렷해요. 특히 입술이 예뻐요.
저도 씩씩하게 잘 걸어요. 저흰 첫날 만나 헤어질때 손 잡았습니다. ㅎㅎ

다락방 2010-11-09 11:25   좋아요 0 | URL
오와- 세실님 이야기 더 듣고 싶어요!

깐따삐야 2010-11-09 13:41   좋아요 0 | URL
영달이는 전형적으로 예쁜 아기는 아닌 것 같아요. 티비 광고에 나오는 아기들 보면 눈도 크고 머리도 새카맣고 그렇잖아요. 얘는 그냥 좀 옴팡지게 생겼다는.ㅋ
남편 분이 세실님이 너무 마음에 드셨었나 봐요. 놓칠까봐 꼬옥- ^^

저도 더 듣고 싶어요! 2

세실 2010-11-16 16:10   좋아요 0 | URL
호호호 언젠가 들려드릴께요^*^

프레이야 2010-11-09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금빛 은행잎 카펫 위에 앉은 영달이
더없이 편안해 보이네요. 스카프 두르고 멋쟁이에요.
귀여워요, 오동통한 볼이라니~~ 꽉 깨물어주고 싶어라~

깐따삐야 2010-11-10 11:11   좋아요 0 | URL
저희 엄마가 사주신 건데 터번 연출도 가능합니다.^^
출근이 가까워올수록 이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요.
 

  어젯밤 아사다 지로의 <저녁놀 천사>를 읽던 중. 예순이 되어 은퇴하는 날, 회사 배지를 달고 귀가해야 하나, 빼고 귀가해야 하나, 고민하는 남자를 보고는 퍼뜩 동아리 배지가 떠올랐다. 그게 어디 갔지?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짜증스러워하는 말 중 하나가 내 입에서 나오는 그게 어디 갔지, 이다. 무얼 찾겠다고 마음 먹으면 자정이든 새벽 네시든 가리지 않고 온 집안을 후벼대니 당연한 반응이다.  

  거의 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리벽 때문이다. 있어야 할 것은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혹시라도 안 보이면 열일 제치고 찾기에 올인한다. 십수년 전에 책 살 때 끼워받은 책갈피부터 커피믹스 박스에 매달려 온 머그컵에 반찬통까지, 어디 있냐고 묻거든 내 낱낱이 대답해 주리라.   

  하지만 영달이가 일찍 잠들어 저녁 일곱시에 소등한 상태. 상전이 따로 없어 그분이 잠드시면 모든 불은 끄고 발소리는 죽이고 입은 다물어야 한다. 상황이 이러니 배지는 찾고 싶고 어디 두었는지 생각은 안 나고 왔다갔다 하다보면 분명히 깰 테고. 손은 근질거리고 정신은 또렷해지며 금단 현상에 시달리는 피폐한 사람마냥 안절부절. 이미 책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얼른 잠들어야지, -왜냐하면 일찍 일어나 배지를 찾아야 하니까- 싶어 우유도 한잔 마셨다. 하지만 그럴수록 동아리 명칭이 또렷하게 새겨진 금배지가 어른어른. 모닥불 앞에서 선배들이 반짝이는 배지를 가슴에 달아주던 추억이 상기되며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일념에 불탔다.    

  그게 반돈이었나. 한돈이었나. 혹시 언젠가 S양한테 준 건 아닐까. 배지를 들고 금은방으로 가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 상상까지 하면서 눈만 꿈벅꿈벅. 이건 병이다. 몇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아주 사소한 계기로 인해 퍼뜩 떠오르는 사물의 이미지. 그럼 기필코 찾아야 한다.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어지럽혀진 뭔가가 눈에 띄면 반드시 정리하고 원래 그 자리에 놓고 자야 한다. 이건 정말 병이랄 수 밖에.

  엄마는 말씀하신다. 느이 집은 그림 같이 해놓구 왜 여기 와서 난리통이냐고. 아이가 있는 집은 치워도 치워도 빛이 안 나기 마련인데 이사한 우리집은 아이 안 키우는 집 같단 말을 많이 들었다. 병적인 내가 손발이 안 보일 정도로 재빠르게 쓸고 닦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로 친정집에서 뭉개고 어지럽히며 난장판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친정집도 부지런히 치운다. 엄마가 영달이를 잠깐 업고 나가면 그 사이 먼지를 털고 장난감을 치우고 바닥을 빤질빤질 닦아대며 로봇처럼 움직인다.   

  그런데 말 그대로 좀 병적인데다 정리하고 치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슬슬 깨닫고 있다. 나의 이런 점을 특히 영달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다. 정리한 옷가지들을 바구니에 차곡차곡 넣으면 영달이는 도로 빼고 내가 다시 바구니에 넣으면 그때는 손을 마구 좌우로 내두르며 짜증을 부린다. 튀밥을 그릇에 담아놓으면 영달이는 꼭 그릇을 엎어놓고 흐트러뜨리며 먹는다. 내가 다시 담으면 메롱하듯 금방 도로 뒤집는다. 그리고는 어디 봐란 식으로 손을 마구 상하좌우로 휘두르며 튀밥 알갱이를 온 방안에 퍼뜨려놓는다. 그뿐인가. 화장대에 쪽나란히 세워놓은 화장품들도 손으로 스윽 한번 밀어서 쓰러뜨리곤 아랫니 두개를 내보이며 능청맞게 웃는다. 내 고집도 어지간해서 다시 세워놓으면 무슨 여자애가 힘이 그렇게 센지 이번엔 아예 방바닥에 던져버린다. 하루에 수차례씩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정리벽을 너머 정리병인 나는 순간순간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영달이가 상전이니 몸종인 내가 변해야지 어쩌겠는가. 일체의 장식을 삼가고 단순깔끔하게 배치하자, 는 주의인 우리집을 영달이는 참 심심해 하더라는. 결국 남편이 뽀로로 포인트 벽지로 아기자기 장식을 하고 영달이 아니면 결코 사지 않았을 알록달록 매트도 깔고 거실 바닥에는 요즘 영달이가 관심있어 하는 세간살이들을 좌르르 늘어놓는다. 열쇠고리, 휴대폰, 리모컨, 숟가락, 맛집전화번호부책 등. 서랍장 속이나 위에 있어야 할 것들이 주섬주섬 나와 있다.   

  사태가 이러니 아예 마음을 좀 풀어놓고 살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머릿속은 허구언날 싱숭생숭, 뒤죽박죽이면서 뭐 그렇게 깔끔떠는 척 하남. 스스로 자아비판도 해보지만 그 와중에도 어김없이 걸레질을 하고 있다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어이 동아리 배지도 찾았다. 엄마가 꺼내서 확인시켜 주셨다. 손톱만한 것이라도 금은 금이라 그런지 또 쓸데없는 것 갖고 집착한다고 구박하지는 않았다. 예전에 책 찾을 때와 정말 비교되더라는. 엄마의 실용적 기억력과 탄력적 지청구는 참 감탄스럽다.

  우야됐든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 하나. 출산 후 여태 정리 안 된 것이 마음속부터 몸둥이까지 말로 다할 수 없지만 끝내 정리를 마칠 수 없는 것이 일상이고 삶이라는 것. 마치 이북의 매스게임 같은 일상을 추구한다는 것은 나란 인간이 그만큼 주변 사람들한테 얄짤없고 폭력적이라는 것 아닐까. 오감 발달과 정서적 충만감을 위한 나의 놀이가 중요하지 어차피 꺼내입을 옷 나와 있음 어떻고 들어가 있음 어떠냐는 듯, 그깟 화장품 얼굴에 바를 수만 있으면 되지 서 있으면 어떻고 누워 있으면 어떠냐는 듯 매일매일 온몸으로 솔선수범하는 영달이 덕분에 깨달은 바이다. 얼마 전 엄마는 지나간 일을 회상하며 한탄하는 내게 잊어, 라고 충고하셨다. 가제손수건을 박박 비벼빠는 내게 버려, 라고 명령하셨다. 그때는 더 얘기하면 혼날까봐 그렇게 했는데 때로는 그런 과감함도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은 게으른 안이함이 아니라 편리한 용기였다.   

  어느새 지병으로 자리잡았던 나의 질긴 정리벽도 슬슬 정리가 되어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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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1-04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깐따삐야님. 정말이지 영달이 덕에 깐따삐야님의 정리병(?)도 조금 나아지겠는데요. 영달이가 세상에 온 수천수만가지의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엄마의 정리병 좀 덜어주기가 아니었을까요.

깐따삐야 2010-11-05 11:58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가 봐요. 영달이 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저 때문에 받던 스트레스도 조금은 해소되겠죠. 애가 상전이니 도리가 없네요.^^

2010-11-04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5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10-11-0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 사무실에 일나가면 정리정리정리정리... 하도 정리를 해 놔서 모차장님은 '너네 집은 얼마나 깔끔할까..', 모여직원은 '언니는 정리를 너무 잘해서 언니랑 일하는게 제일 좋아요' 라고 말을 하지만..
실은 우리집은 거들떠도 안봐요 -_-;;; 절대 집으로 사람들을 델꼬올수 없는 경지지요;;
이렇게 이중인격(일까나.. --a)으로 사는 사람도 있는데 뭘 걱정하세요.

울 엄마가 말씀하시길, 저랑 언니랑 어려서 그릇에 강냉이나 튀밥을 주면 다 엎어놓고 먹기 시작했대요. 뭐든 조금만 주면 그냥 먹는데 많이 주면 엎기부터 시작했다나요?
영달이가 왜 저를 닮았을까요? ㅎㅎㅎ

깐따삐야 2010-11-05 12:04   좋아요 0 | URL
에효, 무스탕님. 그 정도를 갖고 이중인격씩이나.^^ 저는 집에서건 나가서건 뭔가 정리가 덜 되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그런 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싶어요. 그렇다고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유난을 떨었다니. 반성합니다.

맞아요. 조금 주면 그냥 먹는데 많이 주면 엎더라구요. 영달이 안에 무스탕님 있었군요. ㅋㅋ

2010-11-05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5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설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가브리엘 루아의 <내 생애의 아이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지금도 차디찬 개울물의 은빛 송어가 미끈하게 손등을 지나칠 것만 같다.  

  페미나상 수상작인 <싸구려 행복>은 가브리엘 루아의 데뷔작이다. 겉멋이나 허영 없는 러브스토리를 읽고 싶었고 그래서 선택한 소설이다. 그나저나 표지가 쫌... 설마 제목이랑 어울리게 하려고... 별 하나 미리 뺀다. 

 

 

 

 

  매년 가을, 이맘 때가 되면 동아리 행사에 초대하는 후배가 있다. 그 후배가 이번에 졸업을 한다. 등록금에 보탠다고 붕어빵 장사를 하는데 주변 여고생들이 무섭다고 했던 기억.   

  나는 벌써 지나왔다고 말하면 오만일까. 노망일까. 청춘이란 지나보면 참 좋은 건데 지나가기 전엔 참 힘든 거라서 충고도 위로도 말을 안 듣고 그냥 술 한잔이 더 좋을 때가 많다. 

  그날들이 그리웠고 다시금 궁금해졌다. 이 책이 그런 책인지는 읽어봐야 알겠지만.   

 

 

      

  나는 2월, 6월, 11월을 수월하게 넘기지 못하는데 올해는 영달이가 있으니까, 하고 의기양양하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거나 발길에 채이는 낙엽만 조심하면 그런대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윤성희는 재담꾼이라고 들었는데 지금껏 읽어보지 못했다. 사방팔방 우수수한 계절, 우수 보단 웃음에 기대보려고 고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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