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자고 했더니 좋단다. 산책로도 있고 괜찮긴 한데 냄새가 좀 심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자기는 동물원이라는 데는 태어나서 가본 적이 없단다. 저질 기억력을 탓했더니 대체 누구랑 같이 갔었길래 지금 와서 헷갈리고 있냐고 도리어 되묻는다. 철렁, 했지만 같이 가놓고는 기억도 못한다고 시치미를 뗐다. 그러면서도 입장료를 내던 남자는 분명 남편이었다고, 그때 보라색 카디건을 입고 있지 않았느냐고, 내 기억은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결국 안좋은 끝을 본 동물원은 접고 근처 속리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가까워 보이지만 결코 가깝지 않은 산이다 보니 장거리 여정에 익숙치 않은 영달이가 까무룩 잠이 들었고 카시트에 앉혀라, 울 영달이는 내 팔뚝을 더 좋아한다, 실랑이를 하다가 여차저차 도착. 단풍은 저물어 가는데 울긋불긋 관광객이 어찌나 많은지 무리에 쓸려 다니다가 한적한 길로 빠지다가를 반복하며 엉성하고 두서없는 끝물 단풍을 즐겼다.
남편은 아마도 세번째 만남 즈음 내게 산에 가자 했었다. 정상까진 좀 무리일 것 같고 세심정까지만 산책하자길래 따라나섰다. 평평한 길과 가파른 언덕이 이어져 있었고 맑은 개울 근처나 희한한 나무 앞에서 잠깐씩 발길을 멈춘 채 느릿느릿 걸었다. 둘 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고 별다른 짐 없이 가벼웠기에 무리없는 산행이었다. 정오 무렵, 세심정에 도착해서 내가 준비해온 떡과 한라봉을 먹고는 다시 내려왔다. 그때 그가 처음으로 내 손을 잡았을 것이다. 잡은 손을 내치면 그가 무안해 할까봐, 하지만 손을 잡고 싶을만큼 그가 좋았던 것도 아니기에, 몹시 어정쩡한 기류가 흘렀던 것 같다.
나중에 이 산행을 회상하며 남편 왈. 무슨 여자가 그렇게 씩씩하게 잘 걷는지 손잡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그럼 산에 가자는건 다분히 계획적인 거였냐고 물으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힘들어하면 손도 잡아주고 끌어주고 하려고 했단다. 나는 중국에 갔을 때 999 계단도 아무 도움 없이, 교감 선생님과 체육 선생님 다음으로 오른 녀자다, 정말 쩔지 않냐고 잘난 척을 했더니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과연 그게 녀자로서 자랑할 만한 추억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산을 영달이와 함께 오니 감회가 남다른 것 까지는 아니지만 전혀 생각이 안 난다고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남편이 된 이 남자가 그때 내 손을 잡지 않았다면 우리 영달이와 만날 수 있었을까. 굵직한 운명은 어떤 식으로든 쳐들어오기 마련이니 부질없는 질문이렸다. 길이 깊어질수록 쌀쌀해져 영달이에게 머플러를 씌워주었고 예쁜 길이 나오면 사진도 몇 방 찍었다. 세번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아빠의 물수제비에 영달이는 실컷 코웃음을 날려주었고 나는 두 사람을 앞서거나 뒤따르며 저물어가는 가을을 타박타박 느꼈다.
길을 벗어나 혼잡한 입구로 나왔을 때 영달이 손과 볼이 차가워진 것을 알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마련한 김밥은 집에 가서 먹기로 하고 조금 아쉬운 대로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만큼 무탈하게 자라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가도 더 큰 아이들을 보면 언제쯤 저렇게 뛰어놀 수 있을까, 흘깃대고 부러워하며 산을 빠져나왔다. 피곤했던 영달이는 어김없이 내 팔뚝에서 잠이 들었고 또 다시 카시트에 앉혀라, 괜찮다, 를 실랑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세 사람의 안녕하게 성장한 모습이 담길 다음 가을을 기약하며-
올 가을 영달이 핫 아이템인 머플러. 오른쪽은 영달 미륵?
관광객 할머니들이 동질감 때문인지 무척 좋아라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