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설교도 아니고 대중적 호소도 아닌, 조금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의 통찰과 조언을 린저 특유의 부드러운 직설로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어떤 책을 알기 전과 후가 달라진다면 내게는 이 책이 그랬다.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듯한 편에 속하지만 그에 걸맞는 아량까지는 갖추지 못한 내게 이 책은 엄정한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올해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가까이 지내면 좋을 책.  

 

 

알라딘을 몰랐다면 그냥 지나쳤을 책. 그리고 한번 더 읽지 않았다면 그냥 갸웃거리고 말았을 소설. 처음의 낯설음 만큼 내가 참 멀리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던 작품이다.  

사람이 사람을 가식과 편견 없이 어떻게 만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가에 관하여, 이 험상궂은 세계 안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에 관하여, 시종일관 투명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묻고 일러준다. 

 

 

 

   

어려운 그와 눈을 마주치며 소근소근 이야기하고 난 느낌이다. 나는 그를 좋아해서 그가 어렵고 그는 쉬이 곁을 내어주지 않아 헤매곤 했는데 나 이런 사람이오, 빤히 응시하며 손을 내미는 그에게 약간의 실망을 동반하여 더욱 불어난 애정이 급쓰나미로 몰려오는 감정을 체험했다.  

윤대녕 그는 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느껴야 하는 사람이고 처음 만났던 그때부터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를 미련하게 사랑하는 독자로 남고 싶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권할 수 있는 서평집. 이 책을 권하고 이 책 속의 책들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책들과 어우러진 저자의 이력 또한 권할만 하다. 사람은 열 번 된다는 말. 하지만 거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 책이다.  

더불어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저열하지 않은 성실하고 균형잡힌 서평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지금껏 유례없는 완벽히 인간적인 히로인을 구현해냈으니 그녀의 이름은 올리브 키터리지. 일견 호오와 시비가 분명해 보이지만 타고난 인정 탓에 기어이 동요할 수 밖에 없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을 통해 세상의 어머니들과 엄마로서의 나. 그리고 본래 여자로서의 어머니들과 여자로서의 나. 그들의 겉과 속, 안과 밖을 세밀하게 들여다 본 느낌이다. 외롭고 강하고 슬프고 따듯한 거의 모든 마음에 관한 소설. 

  

 

로망 롤랑은 장 크리스토프라는 한 위대한 인간의 영혼의 역사를 장중한 교향곡으로 그려냈다. 휘몰아칠듯 가쁘고 눈부신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독창적인 예술혼과 조우하게 된다.  

사춘기 시절에 한 권짜리 단행본으로 만났던 장 크리스토프는 압축과 생략에도 불구하고 긴 여운을 남겼는데 다섯 권의 대하소설로 재회하니 묵직한 감격이 새롭다. 내 인생 열 권의 책을 꼽으라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작품이다.

다만 이 범우사판은 오역과 오타가 잦은 것이 흠. 말끔히 수정보완된 새로운 판본으로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올해 나는 영달이라는 귀한 선물을 얻었고 영달이는 뽀로로라는 귀여운 친구를 사귀었다. 이 책은 뽀로로 그림책 시리즈 중에서도 영달이가 매일매일 집중해서 보고 있는 책. 아기 공룡 크롱이 원숭이 인형과 함께 꿈 속 인형나라를 구경한다는 이야기. 실제로 아기들도 어른들처럼 꿈을 꾼단다.

뽀로로 그림책 시리즈는 화질이 선명해서 눈에 잘 들어오고 전하려는 메시지 또한 분명하고 유익하다. 책도 보고 노래도 따라부르다 보면 엄마인 나도 뽀로로와 친구들의 다양한 개성과 즐거운 우정에 저절로 미소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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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2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의 그림자 좋았어요!

올해 나는 영달이라는 귀한 선물을 얻었고, 에서 저는 저의 조카가 떠올라서 슬쩍 웃었어요.
그런 해였어요, 올해는.
:)

깐따삐야 2010-12-23 10:10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를 보고 고른 책인데 참 좋았어요. 얼마 전 다락방님 서재에서 <나의 미카엘>을 보았고 조만간 제대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올해 다락방님이 이모가 되셨죠. 아, 언니도 여동생도 없는 저는 결코 들을 수 없는 다정한 호칭이에요. 이모!

2010-12-25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5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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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대에는 보다 성숙한 이십대를 기대했고 이십대엔 날로 능란해지는 삼십대를 기다렸다. 삼십대엔 좀 더 안정된 사십대를 준비하고 사십대엔... 아직 모르겠지만 내 바람을 비껴간 세월을 상기하면서 더 이상 기대나 소망 같은 것은 싸그리 거두게 될까. 아마 그리 되지는 않고 또 무언가 바라거나 계획하다가는 곧 망연자실해지겠지. 올리브 아줌마는 슝슝 구멍난 치즈 같은 노년이지만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절로 외치게 되는 브라보.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엄마한테 끊임없는 지청구를 듣고 살지만 올리브 아줌마도 내게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넌 네가 아직도 사춘기 소녀인 줄 아나 보지. 정신 차리라구. 영달이 엄마.   

  이 책을 읽으면서 곧 죽어도 큰소리에,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올리브 아줌마는 어쩜 그리 우리 엄마랑 비슷한지 두 분을 만나게 하면 둘도 없는 절친이 되거나 서로의 발톱을 알아보곤 무애무덕하게 거리 두고 지내거나. 몹시도 신랄하고 얄짤없지만 인정도 철철 넘치는 두 여인을 약간의 두려움과 짜증스러움은 차치하고라도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삶을 마법으로 만들 줄 아는 분이자 최고의 이야기꾼인 어머니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했다. 나는 삶을 혁명으로 만들 줄 아는 분이자 역시 최고의 연사인 우리 엄마에게 딱히 바칠 것은 없고 잘 사는 모습이나 뵈드리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올리브 아줌마라면 아마 동의해 주실 거라고, 소심한 결론을 보았다.     

  조금 늦게 만난 책이지만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좋은 책이 맞다. 퓰리처상 수상작답게 미국적이지만 그 안에 뭉근하게 반짝이는 보편적 진실이 숨어 있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줄거리랄 것도 없고 올리브 키터리지와 남편 헨리, 아들 크리스토퍼, 그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마을 사람들에 관한 에피소드를 엮은 소설인데 그 소소한 일상 안에 그 동안 지나쳤거나, 앞으로도 지나치기 쉽상인, 삶의 아차하는 순간과 감정이 오롯하게, 하지만 딱히 도드라지지도 않게, 마치 꼭 찾아야 했던 퍼즐조각처럼 담겨 있다. 이렇듯 흥미로운 구성과 산뜻한 기지는 아주 오랜만에 맛보는 거라 작가의 다음 소설을 자연히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과연 더 나올 것이 있을까, 의구심을 동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독자도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지라 먼 나라 올리브 아줌마의 삶에 내 나중 삶을 중첩시키며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살다보면 남편이 새로운 사랑에 흔들릴 수도 있고 머리 굵어진 영달이가 웬 건방진 녀석을 남자친구라고 소개하거나 히스테릭하게 늙어가는 내게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할 수도 있겠지. 그러다 남편이 먼저 쓰러지거나 내가 혹 치매에 걸려 사랑하는 영달이에게 이 아가씨는 누구실까, 이런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슝슝 구멍난 치즈 같아진 내가 그때 가서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된다면 올리브 아줌마처럼 씩씩하게 남은 삶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영달이 엄마. 오늘이나 당장 잘 보내라구. 인생이 항상 착한 손님만 들여보내주는 건 아니라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 무섭지만 바른 말 잘하는 올리브 아줌마가 내게 충고하고 있다. 그렇죠. 맞아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들 뒤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올리브는 때로 이 모든 일 속에서도 깊은 외로움을 느끼던 때가 있었던 걸 기억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몇 해 전, 충치를 때우면서 치과 의사가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돌리는데, 외로움이 너무 깊어서인지 그것이 마치 죽도록 깊은 친절인 것처럼 느껴져 올리브는 샘솟는 눈물을 숨죽이며 삼킨 적이 있었다. ("키터리지 부인, 괜찮으세요?" 치과 의사는 물었다.) - p.403 

  어젯밤 이 부분을 읽다가 왈칵할 뻔 했다.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힘이 들 때, 힘 든 것이 지나가고 문득 삶이 무상할 때, 올리브 키터리지 아줌마를 생각할 것 같다. 엄마가 무섭거나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 엄마 안의 올리브 아줌마를 떠올리면 마음이 누그러질 것 같다. 엉켰다 풀렸다 하는 겨울날, 따숩고 한결같은 책을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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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16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이 인용해주신 부분을 읽는데, 저도 제 기억이 떠올랐어요. 턱이 아파서 치과를 갔었는데, 그때 치과 닥터가 신경성이라고 말하면서 '요즘 뭐 힘들어요?' 라고 묻는데 정말 왈칵, 하더라구요. 그때 되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전 그 닥터를 그날 처음보는데도 불구하고, 네, 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막 늘어놨어요. 누군가 들어줄 상대가 있다는게 갑자기 어떤 구원처럼 여겨져셔요. 올리브가 느낀것 처럼 닥터가 내게 그렇게 물어준게 '죽도록 깊은 친절' 혹은 죽도록 깊은 관심 같았어요.

추천하기에 망설임 없는 책이요, 올리브 키터리지는.

깐따삐야 2010-12-17 14:0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덕분에 좋은 책을 알게 됐어요. 추천해주시는 대개의 책들이 다 재미있어요. 내 커피 취향을 아는 던킨도너츠 점원에 대한 부분 역시.^^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그가 특별히 친절했다기 보다는 그간의 모진 외로움 탓에 사소한 한 마디가 죽도록 깊은 친절로 다가와 와르르 무장해제 되어버리는 느낌. 나중에 누군가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제 앞에서 털어놓았을 때 내가 엄청 믿을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무척 외로웠다는 것도 알 수 있었죠. 서로 그러면서 사는가 봐요. 어딘가엔 환자를 앉혀놓고 신세 한탄하는 의사도 있을 것 같아요.
 

  주말에 근처 도시의 별천지스러운 백화점에 다녀왔고 상품권으로 사온 초밥이 맛없다고 툴툴거리며 약간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만 했다. 자꾸 가면 홀라당 홀리지 싶어 발길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점원이 말했던 거액의 장난감이 인터넷몰에서 거의 반값이라는 것을 발견하곤 바가지 안 쓴 것에 대해 깊은 안도. 좀더 머물렀으면 백화점의 휘황찬란한 위력에 나도 모르게 소비괴물로 둔갑했을 것 같다.   

  나의 첫 발령지이자 손바닥만한 동네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에서는 싸이코 패스 운운했고 인정 어린 추억이 많았던 나는 놀라움과 안타까움에 말을 잃었다. 간만에 메신저에 접속해 그때 그 아이들이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나 둘러보았다. 사랑에 눈멀어 여자친구 사진으로 온통 도배를 해놓은 아이들의 미니홈피를 보며 그 또래 너희에게 그녀와의 이별이 아닌 다음에야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슴 한켠이 서늘해왔다. 

  그리고 알라딘에서 물만두님의 소식을 들었다. 언젠가 물만두님의 백문백답을 읽고 마음 짠했던 기억이 있고 활발히 올라오는 추리소설 리뷰에 감탄한 적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소통하거나 교류할 기회는 없었다. 그저 만두님이 꼬박꼬박 건네시는 새해인사만 반갑게 받아챙겼던 것 같다. 건강이 안 좋으시지만 언젠간 괜찮아지실 것이고 더 나중엔 한번쯤 직접 뵐 날도 오지 않을까. 알라딘이 알라디너들에게 그런 좋은 날 한번 안 만들어주겠어. 그처럼 막연하기 짝이 없고 할랑하기 그지없는 공상 속에 물만두님이 있었다. 그 점이 지금에 와서야 아쉽고 죄송하다. 오늘 접속해 보니 알라딘에서 반가운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 캄캄했던 마음에 반짝, 등이 켜진 느낌이다.   

  뽀로로 블록으로 알록달록 담을 쌓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과 첫 발령지와 물만두님이 계신 이곳.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은 나. 그 사이에도 알록달록 담이 있었나 보다. 나는 상이한 모든 곳에 머물렀지만 전혀 머무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의 보이지 않는 담을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오늘은 그 점이 무척이나 유감스럽다. 중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잃어선 안 되고 잃고 싶지도 않았던 것을 나는 이제 바늘 같은 계기를 통해 되새겨야만 그나마 잠시잠깐 사람의 얼굴을 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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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12-15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이가 속되다고...투덜투덜..

깐따삐야 2010-12-16 09:45   좋아요 0 | URL
제가 저 자신과 지인들에게 건넸던 '안녕'이라는 인사 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나를 생각하고 부끄러웠어요.
메피님, 건강하셔요. 여기서 오래오래 뵈어요.

비로그인 2010-12-15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가 더할 나위 없이 형이하학적이며 소비지향적이고 황금만능주의에 물질만능주의로 무장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한두달 전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자신의 그림자가 너무 아슬해 보이더이다.
전 안녕히, 라는 인사도 못하겠어요. 그저 아무 말 없이 생각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아무런 조의를 표하지 않았습니다.

깐따삐야 2010-12-16 10:00   좋아요 0 | URL
여력이 안 되어서 항상 그렇지 못할 뿐 돈 쓰는 재미가 참 쏠쏠하죠. 그런데 백화점에 가면 백화점을 아주 그냥 통째로 갖고 싶다가도 주차장의 지하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탈출'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계속 머물다간 지갑은 물론 혼까지 털릴 것 같아 서둘러 빠져나오곤 한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Jude님의 마음도 알 것 같아요. 건강하세요. Jude님. 우리는 아마도 동갑인데 여기서 오래오래 만나요.
 

  이맘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지난 일년을 돌아보게 되는데 세상에... 일년 내내 영화관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싶어 어딘가 영화 보고 온 흔적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페이퍼를 뒤져보려다가 이 정도면 안 간 거나 다름없단 생각에 힘이 빠져버렸다. 가려면 갈 수도 있었을 테고 보고 싶은 영화도 있었는데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영달이를 낳기 전에는 우리 부부가 별 충돌 없이 안이하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 취미가 영화 뿐이라서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자주 영화를 보러 다녔다. 다른 경우에는 갈등이나 마찰이 분분한 반면 영화에 대한 식견은 그럭저럭 조화로워 우리는 마치 단합대회라도 하듯 영화를 고르고, 예매하거나 표를 끊고, 카페라떼를 마시면서 공동의 유희를 즐겼다. 팝콘도 별로라 하고 영화관에 퍼져 있는 팝콘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 것조차 아주 짝짜꿍이 잘 맞았더랬다. 하지만 이제 그런 호시절은 디 엔드.

  그다지 바지런하고 적극적인 육아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영달이에게 매달려 있는 내가 딱했던지 얼마 전 남편은 이벤트에서 받은 PMP에 최신 영화와 고전 영화 몇 편을 담아 주었다. 영달이 재우고 나서 심심하면 이어폰 끼고 보라고. 그러나 현실은 어찌나 야멸찬지 영달이가 잠들고 나서 두 시간을 넘기기 어려운 탓에 아직 한편도 제대로 못 보고야 말았다. 피곤이 엄습하여 두 눈이 막 감길라치면 내가 이 자유로운 황금 시간대에 쪼매난 화면이나 들여다보고 있느니 책을 몇 장 더 읽지 싶어 그냥 꺼버리고 자거나 책을 집어든다. 그리고는 비몽사몽한 의식으로 깨달음에 다다른다. 그래, 나는 영화를 안 보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고 생각보다 영화라는 취미에 별 애정도 없을 뿐더러 역시 책을 더 좋아하는 거였어. 영화는 끊어도 책은 못 끊잖아?   

  그러나 <시네포트>나 <영화가 좋다> 같은 프로그램에 시선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터. 흥미진진해 보이는 신작영화나 좋아하는 배우들의 근황에 관심이 가지 않는다면 그것도 거짓말. 결국 프로그램 속 영상을 짤끔짤끔 간보며 몇 차례 멍때리거나 감탄하곤 하지만 분주한 일상 저편으로 휘리릭 증발하는 일이 다반사. 한때는 '영화읽기' 카테고리에 영화 리뷰를 올리는 것이 큰 낙의 하나이기도 했다. 활자로 이루어진 책보다 생생한 비주얼로 감상한 후 채 감흥이 식지 않은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더욱 즐겁게, 잘 써지기도 했다. 영화 평을 쓰며 한번 더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어느 때는 쓰면서 깨닫기도 한다. 이 영화에 이런 면이 있었네, 하고.     

  남편은 조만간 고3 아이들과 '투어리스트'를 보러 간다는데 내게는 영화는 커녕 현실적인 고민을 잔뜩 싸안은 친구와의 약속만 예정되어 있다. 영상의 강력함 이면의 허무한 휘발성에 대해 종종 냉소를 보내면서도 기회가 왔을 때 넘기지 않았고 무료함과 무의미를 위안하기 위해 부러 기회를 만들며 영화 보기를 즐겨왔던 나는 영화를 안 보고도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약간은 시큼털털한 기분으로 받아들인다.  

  어제 오후 잠든 영달이를 안고 드라이브를 하며 남편과 나는 동의했다. 영달이라는 고깟 영화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한 공동의 낙이자 희망을 얻은 대신, 우리의 호기로웠던 시네필 다이어리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노라고. 그 순간 수많은 영화 포스터와 카페라떼와 CGV 가는 길이 엔딩 크레딧으로 펼쳐지는 아쉬운 회상이 모락모락. 하지만 언젠가 아장아장 영달이와 손잡고 라따뚜이스러운 귀여운 애니를 보러 가는 상상이 플러스 되어 나는 다시 미소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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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교향악 ㅣ 펭귄클래식 39
앙드레 지드 지음, 김중현 옮김 / 펭귄클래식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우리 동네에서 무심천을 건너면 바로 이웃 동네로 이어진다. 그곳엔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있고 도로 오른편으로 즐비한 노점상과 비교적 작지 않은 규모의 서점이 있다. 생각보다 바람이 너무 차서 영달이에게 미안해 하면서도 호떡과 도넛 등을 파는 노점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결국 책 두권에 호떡을 보태어서 귀가했다.   

  요즘 동시에 읽고 있는 책이 세 권이다. <올리브 키터리지>, <장 크리스토프 1>, <커피하우스 가십, 뉴욕>. 그런데 지금은 그날 서점에서 들고 나온 <전원 교향악>의 리뷰를 쓰고 있다. 내 일과는 너무나, 정말 너무나 규칙적이지만 수중에 들어온 책들로 나는 방황과 일탈과 행패를 즐긴다. 그러니까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사랑하기도 하고, 조금 맛보곤 집어던지거나 처박아 놓기도 하고, 종종 사야 할 책이 아닌 다른 책을 집어들고 나오며 약간의 가책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도 호떡과 함께 예정없이 집어든 책인데 알라딘 보관함에 넣어두곤 언제든 내키면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다. 중학교 시절 과학 선생님을 좋아해서 나는 과학에 소질이 있는 모양이라고 착각하며 지낸 적이 있는데 그맘 때 처음 읽었던 책이다. 앙드레 지드는 <좁은 문>의 작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좁은 문>에 감흥하기에는 내 마음의 문이 너무 좁아 큰 기대가 없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이 작품만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십대 시절은 물론 이번에 다시 읽고도 그랬고 아마 마흔, 쉰, 예순에 또 읽는다 해도 그럴 것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 가난한 노파가 죽자 마을의 목사는 노파가 기르던 눈 먼 소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장님인데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소녀를 목사는 길 잃은 양이라 여기고 정성을 다해 성장을 돕는다. 마침내 소녀는 놀랄만한 발전을 보이며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하지만 그녀가 시력을 회복했을 때 암흑 속의 진실이 빛과 함께 드러나며 비극에 이른다.   

  사람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이성은 끊임없이 마음과 맞붙어 싸워서 자주 그 마음을 제압하곤 한다(p.17). 목사의 처음 마음은 길 잃은 자를 인도하는 목사이자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스스로 공을 들인 창조물에 애착을 갖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목사 아내의 불길한 예감에서 엿보이듯 그 애착은 마냥 순수하기 어렵다. 오로지 나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아름다운 소녀가 나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해보자. 목사는 끝없는 기만으로 소녀를 향한 욕망을 제압하고 합리화 하지만 그는 목사이기 이전에 한 남자고, 인간이다.  

  소설의 백미는 목사가 미처 알아차리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자기기만에 대응하여 벌어지는 갖가지 관계와 대화들이다. 그의 아내는 수수께끼 같은 말로 사랑에 빠진 목사를 비판하고 아들 자크는 제르트뤼드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목사는 아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아들 자크를 비난하고 만류한다. 목사는 스스로를 솔직한 사람이라 규정하고 있지만 본인의 감정에 대해서는 눈 감고 있는데다 더욱이 진실을 얘기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앞세워 교조적인 포즈로 일관한다.  

  만일 너희가 눈이 먼 사람이라면 죄가 없으리라(p.79). 그렇듯 온통 행복과 소망의 빛으로 찬란했던 제르트뤼드가 시력을 찾았을 때 그녀는 목사가 읽어주지 않았던 성경 구절을 알게 된다.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p.106). 눈을 뜸과 동시에 그녀는 스스로의 사랑에서 '죄'를 보게 되고 더욱이 사랑했던 대상이 목사가 아니라 자크였음을 깨닫는다. 모든 것을 보게 된 제르트뤼드에게 남은 선택은 한 가지 뿐. 만일 그들이 그들의 불행을 모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p.29). 친구 마르탱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역자 해설 부분에는 앙드레 지드가 비평가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그(목사)를 통해 나는 내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 하기보다는, 그 윤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너그럽든 너그럽지 않든 언제나 깨어 있는 비판 정신에 의해 엄격하게 감시받지 않을 경우, 내 자신의 견해가 봉착할 수 있는 위험을 묘사했습니다. 필수적인 그 비판 정신이 목사에게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습니다(p.121). 독자로서, 인간으로서 나는 목사의 사랑을 이해하지만 지드의 말처럼 성경에 대한 자의적 해석으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합리화하는 태도는 눈살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동정과 비웃음만 자아낸다. 그러나 항상 깨어 있는 비판 정신으로 스스로를 엄격하게 감시하며 사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더욱이 신앙이나 핏줄보다 앞선 사랑의 불가사의한 위력 앞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과학 선생님을 좋아하는 소녀였던 시절엔 이 책을 순수하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쯤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때는 <독일인의 사랑>이라든가 <봄의 폭풍우> 같은 작품에 홀딱 반하던 촉촉한 감성녀였으니 그랬겠지만 지금 다시 읽은 <전원 교향악>은 백 페이지 남짓한 할랑한 분량임에도 짙고 거세고 묵직한 그림자를 내 가슴 속에 드리우는 것 같다. 아무리 먼 나라, 먼 시절의 이야기여도 고전의 힘과 멋이란 이런 데에 있고 내가 끌리는 책에서 가면을 벗은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은 추하고 괴로운 일이지만 그 과정이 없다면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할 터. 원래 사려던 것은 호떡도 아니고 이 책도 아니었지만 호떡과 함께 이 책을 산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합리화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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