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달이도 잠들고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졌는데 잠을 깨우는 벨소리. 070을 확인하고 성질을 확 부린 다음 다시 자려 하는데 얼마 후 또 울린다. 너 누군지 두거써... 열이 뻗쳐서 받았더니 익숙한 목소리. Y였다. 얼마 전 상을 당한 Y가 아니고 내게는 Y라는 또 다른 십년지기 친구가 있다. 070이 인터넷 전화라며 웃는다. 나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게슴츠레 반가워하며 안부를 물었다.
Y는 2월의 신부가 된다 했다. 그 선배와 만난 지 일년이 넘었고 지난번 다른 동기로부터 들은 얘기도 있어서 짐작은 하고 있었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자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단다. 웨딩촬영부터 예단, 신혼여행 등 이런저런 결혼 준비에 관한 것들이었다. 나는 얘가 이걸 왜 나한테 묻고 있나 잠시 의아했지만 참으로 간소했던, 그래도 귀찮았던, 나의 지난 결혼 준비기를 찬찬히 읊어주었다. Y는 한숨을 푹 쉬더니 이 시기에 불거져나오기 마련인 갈등과 마찰을 털어놓았다.
Y한테는 얘기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좋을 것도 없지만 어느만치 예상을 하고 있었다. 먼저 결혼한 입장이기 때문에 으레 예측할 수 있는 것 외에도 Y가 더 많이 사랑하는 자이기에 짐작되는 것들. 그 선배와 사귀게 되었을 때 기쁨을 넘어 감사의 빛까지 띠는 Y를 나는 걱정스럽게 바라봤었다. 선배는 Y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의 상대였다. 세월을 돌고 돌아 십년 후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을 때 질긴 인연이라는 감탄 이면에는 위태위태한 우려가 좀 더 컸다. 선배는 Y의 연애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때로는 비난도 서슴지 않던 사람이었다. 철없는 계집애들마냥 끼리끼리 모여 후배들 뒷담화를 늘어놓는 후진 장면. 그리고 주접의 중앙에 선 한 남자. 나는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선배는 Y가 무려 십년 넘게 마음에 품어온 남자였고 미리 색안경을 써버린 나보다는 Y가 그의 장점을 많이 알겠지 싶었다. 실은 그렇게라도 해서 두 사람을 축복하고 싶었다. 일찍이 양수경 언니도 노래했듯 사랑은 차가운 유혹이지만 그래도 피할 수 없으니 일단 빠지면 상황 종료. 지켜보는 사람들은 장애가 많을수록 불타는 사랑, 공연히 기름 붓지 말고 잘되라고 노래만 불러주면 되는 것이다.
그랬는데 막상 결혼 소식을 듣고 그 과정에서 Y가 혼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고, 지려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화를 내자 Y는 꼭 우리 아버지처럼 반응한다며 웃었다. 말 나온 김에 이번에는 너희 아버지하고 내 말만 들으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알았다며 선배와 잘 상의해 보겠단다. Y는 아버지가 어느 밤 술이 잔뜩 취해 전화했던 일을 들려줬다. 너는 니가 잘해서 잘 큰 거지, 나하고 니 엄마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미안하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내내 우셨단다. 밤 10시가 넘어가는데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이 대목에서 찌걱찌걱 울어야만 했다. 그러니 더 이상 부모님 마음 아프게 하지 말고 선배랑 잘 의논해 보라고, 남자도 결혼 준비하면서 좀 더 크는 거라고, 내 안에 그런 말이 있었나 싶은, 너는 잘도 그렇게 했냐 싶은, 조언으로 통화를 맺었다.
그리고는 잠이 달아나버려 뒤척이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다행히 선배와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었다. 내 마음까지 개운했지만 개운함도 잠깐. 급작스럽게 지난 기억들이 찢어진 신문처럼 조각조각 상기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얼마간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비유의 다양함일 뿐. 사람 사는 모양새는 다 비슷하고 커튼 열고 베일 걷어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법. 나 역시 Y의 지금 심경을 거쳤고 이렇게까지 해서 결혼이란 걸 꼭 해야 되냐고 묻는 그녀에게 안 해도 돼, 지금도 안 늦었어,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그래, 두번은 못하겠더라고 순화(?)해서 말했다.
시절은 가도 친구는 남는다는데 남들은 가장 오래 간다는 고교 시절의 친구가 내게는 없다. 물론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대충 멀쩡해 보이긴 해도 자폐와 우울과 강박이 뒤섞인, 심리적으로 매우 문제있는 아이였던 것 같다. 공부도 좀 하고 성질도 좀 있어서 왕따를 안 당했지 슬쩍 비리비리하기라도 했다면 딱 왕따감이었는데. Y는 대학에 와서 그런 이상한 나에게 먼저 마음을 열어주었던 중요한 친구들 중 하나다. 사소한 오해와 자잘한 애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차저차 세월을 지나오니 지구본 위의 개미 한 마리로 보이더라는.
스무살의 우리는 막막하기 그지없었으나 추레하거나 너절하지는 않았다. 오백원짜리 팔뚝핫도그와 광활한 잔디밭만 있으면 입이 찢어지도록 수다를 떨며 의기양양 행복해했다. 그런데 어째 그때보다 주렁주렁 가진 것이 많아졌는데도 딱히 더 행복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당시엔 젊음의 무게에 숨이 막힐 것 같았는데 어깨 빠지고 다리 후들거리고 골머리 썩을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 지금에 비하면 그처럼 나풀나풀 할랑한 시절도 없다. Y가 어느 가을 밤, 합동강의실의 공연무대에서 흰 장갑을 끼고 수화로 춤을 추던 모습을 기억한다. 날아갈 듯 나비 같은 Y를 보며 쟤는 연예인이 됐어야 하는데, 아쉬워하며 감동의 눈물을 질질 짰다. 그런데 그 어여쁜 아해가 지금 수화로 얘기하냐? 싶은 갑갑한 상황에 놓여있고 앞으로 그런 일들은 도대체 이 터널의 끝은 어디인고, 싶을 정도로 많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Y와 선배의 앞날을 축복한다. 아주 징하게 축복해서 열화와 같은 축복의 무게 때문에라도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랑을 꾸려가기를 바란다. 뜨겁던 사랑이 차디찬 적의로 변질되는 기이한 감정도 체험하고 온 세상이 나에게 화살을 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아이를 얻는 순간 화살촉에 장미가 달려 있는 듯한 환각에 빠지는, 기묘한 반전의 순간도 맛보기를. 그뿐인가. 십원짜리 농담 같은 하루부터 억만금을 갖다줘도 못 바꿀 하루까지 하늘로 솟았다 바닥에 꽂혔다 하는 무궁무진한 나날 속에서 누군가 변하거나, 변한 척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달콤떨떠름한 동거의 묘미를 꼭 느껴보기를 바란다. 돌아가신 법정 스님은 내 식대로 살기 위해 출가했다 하셨는데 우리 같은 중생은 내 식대로 살지 않을 각오로 결혼한다. 어느 삶이 더 낫다고 부등호로 표시할 수 없는 각자의 운명과 궤도가 있으니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아, 나는 또 보나마나 친구 결혼식에 가서 신부 어머니 다음으로 많이 우는 주책을 떨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