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을 했다 돌아와보니 낯선 얼굴들이 있었다. H 언니도 그들 중 하나였다. 처음 마주친 수업, 연베이지색 사파리에 단정한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투박한 영국식 악센트가 인상적이었다. 질문이 많았고 거침이 없었지만 새로운 얼굴 특유의 긴장이 엿보였다. 느슨한 매너리즘으로 생기라고는 없던 강의실의 맨 앞자리, 새뜩한 표정의 언니는 돋보였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집에 가려고 터미널에 갔는데 언니가 거기 있었다. 아는 척을 할까 하다가 무표정한 자태에 자못 소심해져 언니의 시야에서 벗어난 구석에서 조용히 버스를 기다렸다. 어깨에 맨 검정 가죽 가방이 무거워 보였다. 나는 아마도 그 안에 들어있을 사전, 파일 홀더, 휴대폰 등을 떠올리다가 공연히 내 가방 안을 뒤적이며 뭐 놓고 온 거 없나, 하며 싱거워했던 것 같다.
몇 컷의 띄엄띄엄한 기억 뿐. 우리가 언제 어떻게 말문을 트고 가까워졌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좀 더 나중에 사범대 근처 벤치에 앉아 언니가 나에게 입고 있는 점퍼가 예쁘다며 참 열심히 사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내가 도리질을 하며 얼굴을 붉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미 조금 친해진 다음이었다. 언니의 고향은 내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고 살아 생전에 가볼 기회가 있을까 싶었지만 언니 한 사람으로 인해 그곳이 가깝게 느껴졌다.
이후에 함께 하숙을 하며 한달 간의 연수를 받고는 서로 다른 도시로 발령이 났다. 출장 가서도 우연히 만나고 간간히 얼굴도 보며 지냈지만 언니가 고등학교로 옮기고 내가 결혼을 하면서 연락이 뜸해졌다. 그런데 연초에 파견자 명단에서 언니 이름을 보았고 언니도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언니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내게서 책을 몇 권 빌려갔었다. 앓는 소리 하더니 기어이 기회를 잡았네. 반가운 마음에 연락해봐야지, 했는데 한창 배가 불러오던 때라 닥쳐오는 출산의 공포와 설렘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H 언니를 엊그제 만났다. 차에서 내리는데 전보다 핼쑥해진 모습이었지만 다정한 눈웃음은 그대로였다. 곱슬거리던 머리칼을 어느새 차분하게 기르고 검정 코트에 여전히 큰 가방을 매고 있는 언니는 '학생' 같았다. 물론 요즘 학생들은 그렇지 않지만 내 눈에 비친 언니는 재회한 캠퍼스와 순조롭게 동화한 즐거운 학생이었다.
언니는 대학원 생활과 스케이트 수업, 미혼의 여선생으로서 겪는 안팎의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언제나처럼 수위 높지 않게 솔직하고 담담했다. 그에 비해 나는 언제나처럼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언니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고 내 이야기에 흥분하면서 지난 시간들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이 이십대 초반이었고 이제는 둘 다 서른을 넘겼는데 서로의 다른 기질을 동경하고 재밌어하는 것은 여전했다.
헤어질 무렵, 언니는 얼마 전 고향에 갔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하기가 무척 힘들었다며 너와는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반갑고 고마운 한편 나 역시 텀을 두고 누군가와 재회했을 때 어색하면 어쩌나, 염려했던 적이 있기에 마음 한켠이 짠했다. 지금 대학원에서도 그냥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선생님이 있다며 사람들이 친해지는 이유가 뭘까, 뭐가 서로를 은연중에 끌어당기는 걸까, 언니가 물었을 때 갑자기 머릿속이 복작거리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언니는 예전도 지금도 항상 열심히 살고 있고, 나는 그 모습이 좋고, 그게 자극이 되고, 그러니까 언니가 해외로 연수나 여행 갈 때 나도 좀 델고 가고, 혼자 가긴 영 두렵고, 그나저나 우리 영달이가 보고 싶지는 않을지, 횡설수설하고 말았다.
언니가 웃으며 너 씩씩하지 않았어? 라고 하는데 H 언니도 나를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한다는 게 당연하면서도 살짝 휘청하는 느낌이 든 것도 사실.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사이의 갭을 담백하게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렇듯 매순간 휘청대곤 한다. 오로지 나 자신에만 올인해 있을 때는 지나치는 그 한 마디를 갖고도 몇날을 곱씹고 고민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약간의 부담을 동반한 자극 정도로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이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일 터. H 언니에게 나는 야무지고 씩씩한 동생이었고 내가 아무리 죽는 시늉을 해도 그 이미지는 견고할 것이다. 또한 언니를 향한 나의 시선도 다르지 않다. 이제는 그것이 미흡한 통찰이 아닌 무언의 응원이 될 수도 있음을 알 것 같다.
그 날 저녁, 언니가 사온 달콤한 귤을 까먹으며 잠깐 회상에 젖었다. 시큼한 것을 싫어하는 영달이도 오물오물 잘 먹었고 나는 엄마가 된 내 모습을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상상을 했다. 슬며시 웃음이 났다. 만남 뒤의 이 여운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