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잘못 만난 죄로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요즘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책 속에서 <레 미제라블>과 한편의 시를 만났다. 독서 중에 간혹 이런 순간을 만나면 이 책이 왜 내게로 왔나, 를 생각하며 그 절묘한 타이밍에 놀라곤 한다. 뒤늦게 찾은 권정생 선생님의 산문들을 읽으며 달달한 것으로 찐득거리는 입안을 구수한 숭늉 한 대접으로 개운하게 헹궈낸 느낌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이미 십년 전에 발표했다는 아래의 시를 읽으며 오늘의 일들이 참 안타까웠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 <우리들의 하느님>, p.2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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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1-2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방의 의무 때문에 속이 상해요, 깐따삐야님.
울컥, 하는 마음으로 추천을 누를 수 밖에 없네요.

깐따삐야 2010-11-25 11:57   좋아요 0 | URL
그저 운 나쁘면 죽고 운 좋으면 살아남는 나라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지요. 고작 한살인 영달이를 보며 딸이라서 걱정, 아들이었다고 해도 걱정, 우산과 짚신 장수 자식을 둔 어미마냥 착잡합니다.

BRINY 2010-11-25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평도 해평대하니까, 졸업생들 몇몇의 얼굴이 바로 떠올라서 걱정많이 되었어요...

깐따삐야 2010-11-26 13:12   좋아요 0 | URL
제가 담임을 맡았던 첫 학생들이 올해 스무살이 되었고 군대 간다는 소식을 미니홈피 방명록에 이따금씩 남겨요. 그새 많이 자랐구나 감격스럽기도 하지만 BRINY님처럼 걱정이 많이 되고 그래요.

oren 2010-11-26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정생님은 詩人답게 참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과 애국자를 바라보셨군요.
그렇지만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그저 착하게만 살고 지내는 사람들'한테 오히려 더 강한 '지배욕'을 발동시키는 게 늘 문제더라구요.

먼 훗날,
우리의 아들의 아들代에서는 '비극적인 분단 국가'가 아닌 '어엿이 통일된 대한민국' 땅에서 시인의 바람대로 '아름답고 따사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깐따삐야 2010-11-29 09: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oren님 말씀처럼 그저 착하게만 살고 지내는 사람들이 늘 희생양이 되곤 하죠. 정치가에게 타인이란 도구 또는 적일 뿐이라고 니체가 그랬던가요.

오랜 시일과 갖가지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통일은 되어야 마땅해요. 배는 부를지언정 젊은 아들들을 앞세워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사는 꼴이라니. 저도 시인과 oren님의 바람처럼 희망을 품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