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책들 - 왕상한 교수, 내 인생의 책을 말하다
왕상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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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상한 교수를 처음 본 것은 'TV 책을 말하다' 에서 였다. 그는 멋있다기 보다는 착실한 사람처럼 보였다. 젊은데 넘침이 없었고 날카로웠지만 가시가 없었다. 개구진 눈빛을 단정한 말투로 순화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사람들 눈은 다 비슷한 건지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자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왕상한 교수는 이미 딸에게 쓰는 편지로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인세도 전액 유니세프에 기부한단다. 한 아이를 사랑하면 모든 아이를 사랑하게 된다. 덕분에 내 돈 주고 책을 사면서 공연히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의 독서기를 읽을 때 그 누군가가 내가 평소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더욱 반갑고 친근하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와 유시민의 <내 청춘의 독서>는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고 권할 만한 훌륭한 서평집이었다. 인생 선배들의 풍성한 독서기를 읽다 보면 가장 먼저 책이 보이고 이후에 그 사람이 보이고 마지막엔 내가 보인다. 겹치는 책에서는 공감의 미소로 가슴 한켠이 뜨뜻해오고 새로 발견한 책 중 사정없이 마음을 끄는 책이 있으면 메모해 둔다. 늘 혼자 책을 읽다가 이처럼 책 읽어주는 남자 또는 여자를 만나면 마음이 약간 느슨해지며 그들이 안내하는 책의 바다에서 기분 좋게 유영하곤 한다.   

  이 책도 권할 수 있는 서평집 중 하나다. 어느 한 장르에 쏠리지 않고 비교적 공평하게 소위 '좋은 책'들을 소개해 놓았다. 화려한 공부 경력을 가진 저자이지만 학자연하거나 젠체하는 거품을 빼고 시종일관 투명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인생의 결정적인 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부터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까지 '천하의 개고기'라고 불렸던 구제불능 꼬마가 치열한 사회 속에 섞이기까지의 제법 파란만장한 성장기를 다양한 책과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왕상한 교수의 인생을 좌르르 훑어 본 느낌이어서 '한눈에 읽는 왕상한'이라는 부제를 달아도 괜찮을 듯 싶다.     

  특히 이 책을 젊은 학생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여기 실린 책들은 누가 봐도 좋은 책들이어서 저자의 서평 또한 남달리 특징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그가 털어놓는 개인사였다. 선생님과 학우들로부터 상처 받고 동네 의원 의사선생님에게 속내를 고백하는 병약하고 외로운 아이, 건강을 잃어가며 기를 쓰고 서울대에 입학하지만 아집의 철옹성에 갇힌 채 허망해하는 청년, 지금은 아내가 된 변우영 아나운서와의 거리를 좁혀보기 위해 매일 직접 구운 빵과 새벽 기사를 자청했던 성실한 남자, 두 딸과 제자들 앞에서 소박하고 인정있게 늙어가기를 바라는 중년의 사내,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부재 중이면 아직도 불안해하는 소심한 아들, 개인적 신념과 집단의 공모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회인... 밖으로 알려진 교수나 MC로서의 모습 이면에 평범한 인간 왕상한의 면모가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과정마다 나침반이 되어주었던 책이 있었다. 갈지자로 방황 또는 반항 중인 청춘들이 이 책을 통해 왕상한 교수의 삶을 읽고 그가 소개하는 명저들을 하나씩 찾아보면 좋겠다.   

  아직도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니 유감이군요.  

  내가 죽는 것이 가슴 아픈 유일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P.192)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오는 말이란다. 이런 책은 반드시 읽어줘야 하므로 메모. 

  맥, 내 생각에도 비난의 소지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의 전부랍니다. 될 수 있는 한 전체를 바라보고 싶어요. '선'과 '악', 딱 둘로 나누는 색안경을 써서 시야를 제한하고 싶지는 않아요. 만일 어떤 한 가지 일에 '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우린 그 일을 검증해 볼 자유를 잃게 되는 거지요. 왜냐하면 그 속에 나쁜 것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P.233)   

  존 스타인벡의 <의심스러운 싸움>에서의 한 구절. 저자가 국회 파행 사태에 대해 조소 어린 질문을 해온 미국인 교수에게 답변을 하지 못한 채 다시 읽었다는 소설이다. 나는 왜 <분노의 포도> 밖에 모르고 있었던가. 다른 사람의 서평록에서 이처럼 괜찮은 책을 발견했을 땐 심봤다고 외치고픈 심정이 된다.     

  그밖에도 <홍당무>와 <삼총사>를 다시 읽고 싶어졌고 균형잡힌 시야를 위해 내게 좀 더 고른 분야의 독서가 필요하다는 반성을 했다. 이 책을 읽고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아직 못 읽었단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틈틈이 리스트를 짜고 폭넓은 책읽기를 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이 책이 많이많이 팔려 유니세프에 많이많이 기부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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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2010-11-18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깐따삐야님!^^ 알찬 서재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깐따삐야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리플 남기고가네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