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를 써보겠다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 헤집고 다니다가 예전에 사용했던 블로그를 떠올렸다. 지금의 알라딘 서재처럼 소통이 활발했던 곳은 아니고 일주일에 두어번씩 생각날 때마다 일기 쓰듯 끄적이던 조용한 공간이었다. 자물쇠로 굳게 잠궈놓은 오래된 글들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거기 그대로였다. 온라인 상에서는 당연한 것인데도 해묵은 기억들이 활자화되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단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결국 오늘도 쓰라는 시는 못 쓰고 잡념과 상념이 꼬리잡기를 하며 머릿속을 희롱, 목적지는 삼천포. 어쩐지 작년에 남해 갔을 때 삼천포대교가 낯설지 않더라는.-_-
지금처럼 한가하지 않을 때라서 그런지 짧지만 촘촘한 글들이 많았다. 처음 사회에 나와 현실과 이상의 갭으로 힘들어하고, 평화로운 척 하지만 잘 풀리지 않는 연애 때문에 고민하고, 짬짬이 본 책과 영화에 대한 리뷰, 촘스키와 김규항의 글들을 인용해가며 혼자서 흥분하는 모습 등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 라고 묻는다면 아니오, 라고 단 1초도 기다리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늘어가는 건 주름이요. 줄어드는 건 체력이다. 이제는 누가 날 건드리거나 자극시키기 보다는 맵지 않은 손길로 다독여줬음 좋겠고 만약 여력이 안 되어서 내비두어만 주신다면 그것도 썩 나쁘진 않다. 예전엔 누군가 나를 뒤흔들어 놓는다 싶으면 나도 상대를 엎질러 놓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모토(?)는 일상에 소리소문없이 스며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나를 치열하게 조종했다. 그런데 지금은 '부질없다'라는 한 마디로 백팔번뇌가 하나의 물고를 타고 유유히 사그라진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아마도 사람은 자기가 살려는 방향으로 선택하게 되어있나 보다. 그 선택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지구력이 부족한 나는 뭐든지 일사천리로 휘몰아치듯 해치우고는 마른 나무 쓰러지듯 폭삭, 주저앉곤 한다. 결국 영감님이 왕림해주시지 않는 한 포즈만 그럴싸하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또 영감님이 언제 오신다는 기약 자체가 없으므로 포즈라도 잡고 있어야지 퍼뜩 떠올랐을 때 날쌔게 캐취해서 뭔가를 해낼 수 있다. 효과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비경제적이면서도 테트리스 쏟아지는 요런 행태는 예전 블로그를 봐도 그대로더라는. 어른들 말씀대로 사람은 타고난 본성대로 살게 되어있지, 쉽게 잘 안 바뀌나 보다.
블로그를 보며 그 많던 갈등과 고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의문. 모두 해결되었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그렇다, 는 아니었다. 결국엔 신경선은 무뎌지고 감정선은 희미해져 어딘가 묻어둔 채로 아둔하게 살고 있는 걸까. 과거의 글 속엔 지금처럼 여유로운 모습은 아니었지만 마치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고등어처럼 푸르고 싱싱해 뵈는 내가 있었다. 누군가의 이니셜을 거명해가며 홀로 피투성이가 된 채 악을 써대는 모습을 보니 푸핫, 하고 웃음이 나는 동시에 왠지 그리운 감정이 모락모락 샘솟기도. 아무 때고 흥분을 잘하는 건 여전하지만 그전처럼 질기지가 못하다. 요즘은 그냥 웬만하면 하다 말지. 해봤자 부질없으니까. 부질없다는 걸 아니까 시작하려는 찰나 그만둔 적도 많고. 재미없게 들리지만 재미있어 뵈는 그 시간을 거쳤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일테고. 아무튼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흥미로웠다. 고작 저 정도 포스의 축시를 써놓고 낯간지럽다 하다니.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는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