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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추억하며 ㅣ 그르니에 선집 2
장 그르니에 지음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이 알베르 카뮈의 기일이란다. 비교적 짧은 인생을 살다갔지만 그가 이십대 초엽의 젊은이들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다.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가끔 카뮈의 책을 다시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곤 한다. 강요하는 것이 없는데도 조용히 복종하고 싶어지는 느낌. 카뮈는 깊고 진실하여 말수가 없어뵈는 얼굴을 하고 있다.
한때 이 핸섬한 작가에게 끌려 학부 시절, 도서관에서 카뮈의 기름하고도 잘생긴 얼굴을 들여다보다 사진이 실린 그 페이지를 살그머니 찢어서 도망온 적이 있다. 다시 구할 수 있는 책이었지만 그 날은 문득 그러고 싶었다. 오래된 책 속의 흑백 사진을 찢어 내 소유로 하고 싶었다. 스무살엔 그런 아무것도 아닌 도발들이 재미있었나 보다. 담배를 입에 문 채 코트깃을 올린 그의 옆얼굴은 반항아 제임스 딘 보다도 훨씬 더 근사했다. 지중해의 이방인이자, 알제리의 반항인. 나는 지상에 없는 카뮈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붙이며 그를 좋아했다.
내가 갖고 있는 '카뮈를 추억하며'는 위에 걸어놓은 민음사판이 아니라 87년에 발행, 96년에 9쇄 발간, 청하에서 나오고 서정기가 번역한 조금 오래된 책이다. 아마 지금은 절판이 됐는지 검색 자체가 안 되더라. 번역자인 서정기가 책 첫머리에 쓴 옮긴이의 글이 참 좋다.
반항, 혁명가적 기질의 힘, 그러나 내향성의, 내부의 긴장으로 다스려질, 인류에 대한 사랑이라는 덕으로 길러져 이상화될 에너지. 한, 자신에 대한 확신과, 그것을 전혀 길러주지 못하는 환경. 더구나 병으로 인한 좌절 사이에 찢겨 있는, 그것을 선생 앞에서 냉담함으로밖에 표현할 줄 몰랐던 어린 고등학생의 짐짓 꾸민 듯한 오만함. 그것을 선생은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고결한 혼들은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라고.
이렇듯 집약적으로 어린시절의 카뮈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카뮈의 스승이자 이 책의 저자인 장 그르니에는, 어색한 첫만남에서 카뮈에 대한 인상을 놓치지 않는다. 수줍음 속에 가려진 도도한 자존심, 선생으로 대표되는 사회에 대한 적의 앞에서 쉽사리 속내를 내비치지 않으려는 과묵함에 대해 너그럽게 공감한다. 위대한 영혼끼리는 아마도 필연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게 되어있으므로.
저 너머의 세계를 갈망했던 스승과는 달리, 카뮈는 지상 너머의 세상과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 독자적인 휴머니스트로서의 길을 걸어가게 되지만, 그렇듯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이들의 인연은 카뮈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동안 지속된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그 이해가 사랑과 신의로 확장되는 순간,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초월한 인생의 친구가 된다.
카뮈는 예상컨대 그 성품 상,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작가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르니에가 살려놓은 카뮈를 읽으며 더 감동에 젖는 것도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수줍어할 이 작가를, 그의 가장 신실한 친구가 대신하여 드러내고 있다는, 그 간접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르니에는 이 책 속에서 작가이자 철학자로서, 레지스탕스로서, 연극인으로서, 동료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카뮈의 행로를 되새기며 때론 감회에 젖고 때론 경의를 표하며 그의 제자를 오롯히 부활시켜 놓았다.
<최초의 인간>은 아마도 원시인이며, 미개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이 준 원초적 힘을 소유한 순수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가장 최고의 선과 어쩌면 가장 커다란 악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인간이다. 어쨌든 평범한 데라곤 전혀 없는 인간이다.
카뮈 최후의 작품이었던 최초의 인간에 대한 그르니에의 평. 최초의 인간은 이방인 뫼르소의 선조이자 후예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선악의 관습과 동떨어진, 순수한 인간으로서 미완성 원고 속에 영원히 모호한 상태로 남게 된다. 알제리의 정열과 프랑스의 지성이라는 간극 사이에서 모호한 균형을 견지하고 있는 카뮈의 자화상처럼 보이기도.
그는 적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가 무엇인가를 좋아했다면, 그것은 그에게 <반대되는> 것을 상정하지 않은 채로였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돋보이게 하는 그 반대의 것과, 그가 좋아하는 사물을 대조시켜 볼 필요 없이 그저 좋아할 줄 알았다.
최초의 인간은, 곧 행복한 인간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부분. 가난과 폐결핵이라는 지병으로 일생을 불안정하게 살아갔던 카뮈이지만 그는 지중해의 태양, 바다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고 그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알았다. 지중해의 대척점을 空으로 남겨두고,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은 채, 그러므로 실망 없이, 오직 내면의 목소리에 의지하여 순수한 열망과 신념으로 가득찬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처럼 성실하고 정직한 인간을 좋아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는 없다.
보다 많은 글을 발췌하여 옮겨놓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한편으론, 이미 오래전 내면 안으로 녹아들었던 카뮈에 대한 특별한 이미지와 사상들을 몇편의 파편적인 글들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미흡하단 생각이 든다. 침묵하고 읽을 것. 카뮈라면 그렇게 말하리라. 알고 싶다면 읽을 것. 그리고 행동할 것.
아이고, 아니지요, 만일 카뮈가 천당에 가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을 판이지요.
나도 그러겠사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