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속 동물들은 그럴듯한 의인화로 귀여운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풍자 및 비판을 빠뜨리지 않는다. 유재석의 더빙으로 눈길을 끌었던 꿀벌대소동도 마찬가지. 거의 집집마다 한 병 정도는 놓여있을 꿀. 게다가 우리는 꿀단지 껴안은 푸우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화학조미료 하나 첨가하지 않고 순수한 단맛을 제공하는 꿀벌들에게 아무런 감사의 말도 없이, 위기 상황에서 한방의 침으로 장렬히 전사하는 벌 앞에서 벌에 쏘였다고 징징거리면서. 이런 하찮은 인간들이란! 그뿐인가. 꽃가루특공대가 꿀 채집 이후 꽃가루를 여기저기 뿌려주지 않는 한 생태계가 파괴되는 건 시간 문제다. 인간과 말할 수 있지만 단지 말을 걸지 않았을 뿐인 놀라운 꿀벌들은, 자연의 섭리에 불응한 채 고마움에 대한 불감증을 겪고 있는 인간들을 비판하며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주인공 배리로 활약한 유재석은 평소 메뚜기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는 덕분에 줄무늬 스웨터와 더듬이도 무척 잘 어울렸다. 그러나 딱 이렇다 할만큼 어색한 부분은 없었음에도, 꿀벌 세계의 유머는 때로 너무 지루해서 인간세계의 유재석의 입담과는 비교가 안 되더라는. 두 마디 대사에는 까르르 박장대소하고 그에 이어지는 한두 마디에는 아까 웃었던 그 입모양을 유지만 하고 있는 상태랄까. 날개만 달렸지 까칠한 성격은 그대로인 래리 킹의 모습을 꿀벌 티비에서도 보는 건 흥미로웠지만 상대적으로는 작년에 보았던 라따뚜이가 좀더 구성지고 재미있는 듯.

 모든 꿀벌들이 대학 졸업 후 아무런 불평 없이 평생 한 가지 일만 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회의를 품은 배리. 그는 2억만년 넘게 한치의 의심도 없이 반복되어 오던 꿀벌의 삶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프로메테우스적 꿀벌이랄까.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특공대를 따라 인간세계에 오게 된 배리. 그는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살려준 이상형의 플로리스트, 바네사와 친구가 되고 그녀와 합심하여 인간이 공짜로 가져간 벌꿀과 꿀 관련 용어에 대한 로얄티를 요구하는 소송을 건다. "우리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허니~ 라는 말도 함부로 쓸 수 없었다구!" 팔짱을 끼고 당당히 외치는 배리는 배우 레이 리오타와 가수 스팅(Sting)까지 법정에 세우는 등, 무자비한 양봉으로 막대한 꿀을 얻고 있는 인간 전반을 비판한다. 마침내 소송에 승리한 꿀벌들. 그들은 인간 소유의 모든 꿀들을 수합해 꿀벌나라로 가져오고 더 이상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시간에 맞춰 다함께 돌아눕는 일 뿐.

 한편 꿀벌들이 활동을 멈추자 바네사의 꽃가게는 문을 닫아야 하고 아름다웠던 자연은 꽃 한 송이 피지 않은 채 잿빛으로 변해간다. 결국 마지막 남은 장미꽃들로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배리. 이 즈음에서 영화의 명장면이 연출된다. 말하는 꿀벌에 놀라 소동을 피우다 기절하고 만 기장과 부기장을 대신해서 배리와 바네사가 비행기를 조종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우리의 꿀벌들은 일사천리로 그들을 향해 날아가 비행기를 대신 조종한다. 노랑과 검정이 번갈이 피어나는 꿀벌들의 매스게임 덕분에 활주로를 찾은 비행기는 무사히 안착하고, 칙칙했던 인간 세상은 꽃가루특공대의 활약으로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는다는 애니다운 해피엔딩.

 감탄하고 소리 지르며 영화를 보는 어른은 나 이외엔 그다지 없는듯 했지만 아이들은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고, 영화가 주려는 교훈도 적절했다. 물론 아이들이 군데군데 양념처럼 등장하는 헐리웃 스타들을 알아보는 것 같진 않았다. 그것은 아무래도 미국의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재미를 위한 장치겠지. 하지만 친근한 유재석의 더빙과 더불어 마치 어느어느 어린이집의 원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랑과 검정이라는 꿀벌 색상도 귀와 눈을 따듯하게 만족시키더라는. 봄이 조금 일찍 온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요즘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매우 즐거워할 것 같다. 어차피 원래대로 돌아갈 건데 재판은 왜 한거지? 요로코롬 매사에 시니컬한 타입의 아이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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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7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그 영악한 조카였나? 친척 동생이었나? 암튼 그 아이랑 본 거에요?

깐따삐야 2008-01-07 00:35   좋아요 0 | URL
네.^^ 애니는 아이들 틈에 섞여서 같이 소리지르며 봐야 제맛이라는. ㅋㅋ

웽스북스 2008-01-07 00:39   좋아요 0 | URL
교회 아그들 데리고 볼 영화 고민중이었는데 이거 볼까봐요 흐흐흐
근데 다 컸다고 싫어하면 어쩌지? 흠흠
내가 애들보다 더 수준이 유아틱한가봐

깐따삐야 2008-01-07 00:46   좋아요 0 | URL
왠만큼 성격 까칠한 애 아니라면 좋아할 거여요.^^
근데 나는 지금까지 괜히 봤다 싶은 애니메이션은 하나도 없었어요.
모든 애니는 나름 다 재밌달까. ㅋㅋ

2008-01-07 0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7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8-01-07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이 너무 보고싶은 영화인데 더빙되어서 안본다지요~.ㅜ
배리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남편이 넘 좋아하는 배우라서
그의 목소리로 꼭 봐야 한데나 뭐라나,,,쩝
그래서 저흰 DVD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어요.
근데 저두 애니보면서 살짝 울다 웃다 잘한답니당~.ㅎㅎ

깐따삐야 2008-01-07 11:55   좋아요 0 | URL
남편분이 제리 세인펠드인가 하는 그 배우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저는 유재석이 더 좋은뎅.^^
나비님도 애니를 아주 지대루 즐기실 것 같아요!


마늘빵 2008-01-0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첨 보는 애니인데...?

깐따삐야 2008-01-07 11:57   좋아요 0 | URL
요즘 한창 개봉 중인 애니인데 모르셨구나.
하긴 아프님은 애니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아요. 왠지.

네꼬 2008-01-0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보고 싶어요. (실은 유재석 더빙 때문에요.) -_-;;

"꿀벌 세계의 유머는 때로 너무 지루해서 인간세계의 유재석의 입담과는 비교가 안 되더라는."

한 줄에서, 깐따삐야님과 저의 공통분모를 (멋대로) 짐작합니다. 반가워요.
: )

깐따삐야 2008-01-07 17:01   좋아요 0 | URL
저도 반가워요!
유재석 더빙 때문에 보고싶으시단 말씀이 확 와닿네요.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