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을 고르게 잘 길들였는지 난 못 먹는 음식이 거의 없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마늘과 어리굴젓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대표 특산물이 말해주듯 우리 고향은 땅에서 나는 먹거리와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갖가지 먹을거리가 풍성한 곳이었다. 동네 잔치가 열리면 싱싱한 소고기 육회와 굴회가 골고루 상에 오르고, 생갈치나 생새우를 갈아넣고 담근 김장김치는 묵을수록 깊은 맛이 있었다. 늙은 호박과 게장을 섞어 담근 호박게국지는 땅과 바다의 합일을 상징하는 우리 고장의 대표 음식이기도 하다. 입맛이 형성되는 어릴적부터 아저씨들 윷놀이판에 끼어서, 숯에 구운 돼지껍데기나 생선국수의 맛을 보며 자랐던 나는 음식 앞에 주저없이 용감한 편이다.
그런데 이렇듯 가리는 것 없는 내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음식이 하나 있다면 미더덕. 뜨겁고 물컹하게 씹히는 느낌과 특이한 냄새가 싫어 해물탕을 먹을 때도 절대 거들떠 보지 않는다. 사실 미더덕은 그 자체로 엄청난 맛이 있다기 보다는, 국물의 시원한 맛을 살리기 위해 넣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고향에서는 굳이 국물 맛을 내려고 미더덕을 넣을 필요가 없었다. 시장에 가면 갓 건져올린 싱싱한 조개들이 넘쳐나는데 굳이 스피시즈의 번데기 같은 미더덕을 쓸 필요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미더덕이라는 요상한 먹거리가 있다는 것도 사실 새로운 고장에 이사를 와서 알게 되었다. 해물찜이고, 해물탕이고, 해물칼국수고, 미더덕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찌글찌글 징그럽게 생긴 미더덕을 하나씩 건져내며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더덕이 얼마나 맛있는데 네가 감히 미더덕이란 이름으로 고로코롬 형제 시늉하고 앉았느뇨! 아마 이 근방의 음식점들은 여기가 대한민국 한복판의 내륙지방이다 보니, 깔끔하고 싱싱한 조개가 드물기도 하고, 비싸기도 해서 대충 손쉽게 미더덕을 쓰는 모양이다. 어쨌든 이러한 연유로, 나는 회식 메뉴 중에 '해물 뭐시기'가 가장 별루다.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내 고장 먹거리나 미더덕 보다도 친구 Y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에 이야기를 듣자하니, 아무래도 식이장애가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데, 멀리 떨어져 사는데다 워낙에 칩거 및 은둔 생활을 즐기는 탓에 용이한 터치 및 참견이 불가능하다. 얼마전 서울에 갔을 때 버스를 기다리며 같이 밥을 먹는데 조금 놀랐다. 나는 굴국밥을 시키고 그녀는 낙지비빔밥을 시켰는데 도무지 밥을 제대로 비빌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국밥 뚝배기를 받자마자 공기밥 2/3를 푹 말아 후루룩대며 먹기 시작하는 나를 그녀는 연예인 발견한듯 신기하게 쳐다보더라는. 비빔밥 위의 김가루만 솔솔거리고 있던 그녀의 뚝배기를 빼앗아 오랜만에 장기자랑 좀 했다. 국밥 국물을 반 수저 정도 섞어서 팍팍 비벼주시니 발그스름하게 윤기 나는 먹음직스런 비빔밥이 완성되었고, 그녀는 감격에 찬 눈빛으로 수저를 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먹는 모양이 영 시원치가 않았다. 푹푹 좀 떠먹으란 말이닷! 엄마처럼 구박을 했고 그녀는 나의 다그침에 솔직히 고백했다. 아무래두 밥맛을 잃은 것 같아. 먹어도 무슨 맛인지를 모르겠어.
실상은 이랬다. Y의 입맛은 오랜 자취생활과 칩거형 군것질로 우리의 소중한 한식을 차별하고 있었다. 전에 놀러갔을 때, 그녀는 내가 간식으로 사온 칙촉과 드림카카오를 한 자리에서 다 먹어치우더니, 역에서 샀던 약과 한줄도 홀로 야금야금 다 먹어치웠다. 그뿐인가. 엄마가 기차 안에서 먹으라고 싸주셨던 김밥도 맛있다, 를 연발하며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던 그녀였다. 그렇듯 잘 먹는 그녀가 밥과 국과 반찬 앞에서는 우울한 얼굴이 되어버린다. 우리 동네는 별로 맛난 음식이 없는데. 뭐 먹고 싶어? 돌아오는 Y의 대답은 묻는 사람 허무하게도 피자... 난 피자 큰 거 한판 혼자 다 먹을 수 있어. 쵸코파이도 한 상자 다 먹어. 어련하겠냐만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간과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학부 때도 그녀의 자취방에 가보면 고향에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쌀과 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통 과자 부스러기 투성이였다. 그게 벌써 6, 7년 전이니 그때부터 그런 몹쓸 식성에 길들여져 왔다면 문제가 심각한 거다. 메신저에 들어오거나 통화할 때 내가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점심 잘 먹었어? 아침 먹고 출근했니? 등등인데 먹었어, 너무 배불러, 그런 말은 하는데 따듯한 밥과 된장찌개로 배를 채웠는지, 쵸코칩쿠키나 쵸코다이제스티브를 옆에 놓고 우적대고 있는지, 알게 뭐람. 그전처럼 가까운 데 살아서 찾아갈 수를 있나, 제대로 일일히 챙겨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허구언날 잔소리만 하는 것도 오버하는 것 같아서 그냥 식상하게 하루 한끼 정도는 그래도 밥으로 먹으라는 등의 얘기만 하는데, 아무래도 회사 나와서 직원들이랑 같이 먹는 한끼가 고작인 것 같다. 그 한끼가 햄버거나 짬뽕이라면 그나마 하루 왠종일 밥은 전혀 못 먹게 되는 것이고.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엄마의 좌우명 같은 말이기도 하다. 가끔 엄마가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놓고 코앞에 들이밀 땐, 이건 음식을 빙자한 엄연한 가정폭력이라며 발악발악 주장하다가는, 딸내미가 과체중이면 어머니로서 참말로 보람차시겠사와요? 요로코롬 억지스럽게 엎어씌우기까지 했는데 나이 먹을수록 엄마의 혜안을 높이 사게 된다. 몸이 으스스하고 감기 기운이 있을 땐 고춧가루를 풀어넣고 끓인 콩나물국, 테트리스가 쌓일 땐 매콤하고 칼칼한 해물떡볶이, 기운이 없고 속이 헛헛할 땐 맑고 따끈하게 끓여낸 생태찌개, 비 오는 날 춥춥할 땐 호박 숭숭 썰어넣고 끓인 칼국수나 수제비! 나의 신체 리듬에 따라 반응하는 입맛의 기억력이란 매우 재빠르고 적확하다. 그 타이밍에 맞춰 적절한 음식을 먹어주면 이 한몸 좌지우지했던 모호한 질병의 기운이 싹 달아나는 느낌이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길들여진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기분'일 수도 있지만 그 효능만큼은 무시할 수가 없다.
처음에 자도자도 피곤하고, 온몸에 기력이 없다는 Y의 말을 들었을 땐 주말에 하루 날 잡아서 암껏도 하지 말고 허리가 아파서 더 이상 못 잘 때까지 자라는 말을 했었다. 본래 좀 게으른 성품인데다가 바쁜 직장 일로 누적된 피로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내리 자도 계속 졸리고 또 졸려서 지각을 밥 먹듯 한다니 원인이 수면부족은 아닌 듯 싶었다. 그러던 차에 예전처럼 대충 군것질 나부랭이로 연명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장기적인 기력 쇠약의 원인은 부실한 먹거리라는 진단을 내 맘대로 내려버렸다. 꾸준히 갈궈대자 오늘은 아침밥 먹고 출근했다고 자랑하는 날이 한 사흘 가더니만, 그 버릇 못 고치고 또 다시 과자 부스러기나 우적대다가는 몸져 눕더라는. 몸 생각해서 잘 챙겨먹는 것도 부지런함과 상통하는 것 같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맛있게 잘 먹는 사람한테 인간적으루 후한 점수를 주는 까닭이기도 하고.
잘못 길들여진 입맛은 고치기 힘든 식이습관으로 자리잡고, 장기적으로 정신과 신체에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 요즘 혈액 속에 너무 많은 카페인이 흐르는 것 같아 나도 자제 중이다. 성격은 자꾸만 까칠해지고, 불안스런 몸짓으로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횟수가 잦아지며, 마시면 마실수록 더 진하고 독한 것을 찾게 된다. 사람까지 점점 푸르죽죽 독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습관이 하루 아침에 고쳐지는 게 아니라서 커피를 녹차로, 녹차 사이사이 대추차 등등도 넣어주며, 나름대로는 다양화를 시도해주고 계신 바. 부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없길 바란다.
아무튼 갈수록 비실거리는 Y와 날로 까칠해지는 나. 문제 있다. 이게 다 편협한 먹거리 때문이다. 엄마는 철은 없으면서 철심 박은 듯 독해지는 나를 위해 오늘도 당근과 감자를 채썰어 튀김을 해주시는구나. 고소한 향기와 바삭한 촉감 앞에서 나는 한없이 발랄하고 부드러워진다. 먹거리의 효능은 참으로 굉장한 것이다. 조만간 억지로라도 Y를 병원에 보내야겠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고 무시하는 것 같다. 의사샘한테 따끔한 말을 들어야 밥도 챙겨먹고 정신을 좀 차리려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