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의 내용과는 달리,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는 선지자 요카낭의 육체적 매력에 반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녀가 요카낭에게 키스를 요구하며 그의 입술을 찬양하는 대목은 파격적이기까지 합니다. 대개 문학작품 속에서 표현되기를, 남성이 여성의 미모에 반해 구애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요. 게다가 그녀는 구애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의붓아버지인 헤롯에게 요카낭의 수급을 요구합니다. 오로지 God의 존재만을 바라보고 사랑하느라 살로메의 정열을 무시했던 요카낭을 조롱하듯, 환상적인 춤으로 헤롯의 판단력을 마비시킨 후, 결국 요카낭의 목까지 베어버렸던 셈이지요. 이렇듯 살로메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할 줄 알고, 남성적 공격성과 파괴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여성적이기도 하고, 남성적이기도 한, 양성성을 두루 지닌 독특한 인물입니다. (니체, 릴케 등 세기의 천재들을 뒤흔들었던 대담한 여인, 루 살로메도 살로메란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요?)

 살로메는 또한 그리스도의 아가페적 사랑에 에로스적 사랑 방식으로 도전장을 내밉니다. 그녀는 요카낭의 지당하신 ‘말씀’이 아니라 아름다운 ‘입술’에 매혹됩니다. 원하는 입술을 주지 않고 말씀만 주니, 그의 목을 베어버리구요. 자애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지극히 자기본위적인 이러한 방식은 God의 무조건적 인류애를 비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개 여성은 청각에 민감하여 달콤한 말에 유혹당하기 쉽고, 남성은 시각에 약한 동물이라 상대방의 미모에 현혹당한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통설을 뒤집는 일면이기도 하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요카낭은 그녀에게 달콤한 말은 커녕 독설만을 해댔고, 결국 살로메는 요카낭이 더 이상 한 마디도 못하게끔 그를 죽여 버렸지요. 대개 부도덕한 일을 행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하늘이 노할 일이라고 하는데요. 살로메는 하늘이 노하든 말든, God의 룰에는 무심합니다. 요카낭을 죽여서라도 그의 입술을 얻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정열은 도덕보다 앞선다’는 테마는 요즘의 영화, 드라마, 문학작품들이 거듭 이야기하고 있고,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다가올 시대의 분위기를 미리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Salome"는 관념적 거대 담론을 거부하고 개인의 구체적 욕망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modern을 넘어 post-modern한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헤롯의 명령처럼, 시대를 앞서간 살로메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도요. 의붓 딸의 육감적 매력에 현혹되어 덜컥 약속을 해버리고 요카낭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헤롯은, 신성과 인간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존재로 비춰졌습니다. 살로메는 헤롯을 갖고 놀 듯, 자신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헤롯을 통해 요카낭의 수급을 얻습니다. 그러나 정말 헤롯은 요카낭을 죽일 의도가 없었던 것일까요? 헤로디아를 취한 자신에게 비판의 화살을 겨누었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의붓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질투심에서, 헤롯은 은연중에 요카낭을 죽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죽여라, 고 명령하는 헤롯에 비해 비난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살로메가 훨씬 더 자주적이고도 정직한 인물로 보였습니다.

 신성모독죄란 것에 돌멩이를 던지듯, 아름다움에 대한 정열로 가득한 이 작품은 솔직 대담해서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정념이나 소유욕과 마찬가지로, 신에 대한 동경과 아가페적 사랑 또한 인간이 지닌 본성일 것입니다. 그처럼 대비되는 본성이 서로를 길항하면서 시대의 분위기를 조율해나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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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17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탐나는 입술을 얻는 방법중엔 최고인가요, 최악인가요? 흐미야~ 떨려라!
살로메...루 살로메!

깐따삐야 2008-01-17 13:16   좋아요 0 | URL
그림 속 살로메의 미소가 므흣해서 더욱 섬뜩하죠.
희곡을 읽고 희대의 팜므파탈, 루 살로메가 떠오르더라구요.
살로메란 여자들은 아름답긴 한데 무셔무셔. -_-

웽스북스 2008-01-17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곤 조곤
깐따삐야님이 책을 읽어주면 50배는 재밌을 것 같아요 (연기는 좀 돼요? 흐흐)

깐따삐야 2008-01-17 13:34   좋아요 0 | URL
노홍철이 책 읽어준다고 상상하면 딱 맞을 거에요.
책 내용은 기억 안 나구 그 사람 표정만 생각나는. 흐흐.

Mephistopheles 2008-01-18 00:26   좋아요 0 | URL
분명 책 첫장에는 "쪼아..읽는거야~~"가 써있을 듯..=3=3=3

깐따삐야 2008-01-18 01:47   좋아요 0 | URL
한 줄 읽고나선 눈 똥그랗게 뜨고 안 그래요, 형님? 이러면서 동의 구하구.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