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대학 동기 K가 집에 왔었다. 방학이라고 띵가띵가 쉬고 있는 나와는 달리 고등학교에 있는 그녀는 보충수업을 하느라 내내 바쁜 모양이었다. K는 엄마와 이야길 많이 했다. 요즘 연락하며 지내는 한 남자에 대해 엄마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다 괜찮고 어디 하나 흠잡을만한 데는 없는데 가슴이 뛰질 않노라고. 엄마 말씀, 같이 살 남자는 그저 편한 게 최고다. 그리고 넌 누굴 만나도 가슴이 뛰긴 어려운 사람 아니냐. 쉽게 수긍하며 이놈의 가슴이 당최 뜨뜻해져 본 적이 없고 뜨뜻해질 생각조차 안한다는 K. 왼쪽 가슴 속에 개구리라도 들어앉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두근거려대는 나와는 달리 K는 사실 그랬다. 언제나 차고 도도하고 담대했다.

  시내에 나와 엉터리같은 영화를 한 편 보고 커피를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 도중, 행사에 쓰라고 보내준 돈의 액수를 후배가 잘못 정산해 올려놓았는데 아직까지 정정을 안해서 좀 창피하다고 하자 K는 아무 말 하지 말고 입금시켰던 영수증 스캔 떠서 보내줘, 라고 말했다. 착오니 실수니 등등의 말을 했더니 돈의 액수가 그대로 제 통장에 찍혔을텐데 무슨 얼어죽을 놈의 착오고 실수냐면서 제발 상대방을 헤아리려고 들지 말고 개싸가지스러운 현상 그 자체에만 주목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돈 떼어먹고도 떼어먹었다고 말하는 놈 못 봤다면서 그것도 이미 졸업한 선배가 보내준 돈을 확인 절차도 없이 그 따위로 처리한다는 것은 문제성이 있다고 했다. 마치 엄마처럼 K는 나를 향해 화를 내고 있었다. 왜 넌 걔를 이해하려고 하니. 이해해주지 마. 사실 그 말은 대학 시절부터 K로부터 즐겨 듣던 말이었다.

  K는 나처럼 자잘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객관적일 수 있었고 그런 면에서 의지가 되는 친구였다. 물론 그녀는 나의 어리석었던 연애사를 보고 들으며 이런 말 해서 좀 너에겐 미안하지만 난 그래도 항상 정열적인 네가 부럽다, 라고 말한 적도 있었고 그 말이 어느만치 진심이라는 것도 이해했지만 나는 언제나 눈빛과 태도에서 감히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냉기와 카리스마가 묻어나는 그녀를 닮고 싶었다. 내가 어느 순간 활짝 피었다 시들었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런 야생화라면 그녀는 토파즈로 만든 차고 푸르고 단단한 돌꽃 같았다. K는 장난처럼 종종 내가 남자였으면 너를 기꺼이 거둘텐데, 라고 말하곤 했다. 난 진심으로 K처럼 야무지고 단단한 남자가 이렇듯 나약하고 변덕스럽고 다정도 병인 나를 좀 거두어줬으면 했다. 그렇다면 사랑보다 더 질긴 존경심으로 그를 위해 노력할텐데, 생각하곤 했다.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밤, 익숙하지 않은 도로로 접어들자 갑자기 헷갈려하며 불안해하는 날 보며 운전을 하던 K는 알아서 집으로 뫼실테니 걱정 말라며 널 어떡하면 좋으냐, 라고 했더랬다. 나는 어떤 사람이 너무 보고싶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걸 참고 있었노라고 고백해 놓은 참이었다. 핼쑥해진 내 모습에 K는 막연히 감을 잡고 있었고 나는 추스릴 새도 없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해버렸다. 바닥을 봐야만 정신이 드는 나이기에, 정신이 들어도 원망의 화살 하나 쏠 줄 모르고 도리어 화살촉을 더 뾰족하게 만들어 스스로의 가슴에 대고 겨냥하는 나란 사람을 알기 때문에, K는 차분한 충고 끝에는 늘 씁쓸한 한 마디를 남기곤 했다. 결국 넌 내가 하라는대로 하지 않으리란 걸 나는 알고 있어.

  사주를 봤는데 말이지. 내 사주에는 갈고리가 하나 있대. 결국 무엇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거지. 내게 상처낸 것은 사람이든 무엇이든 갈고리로 잡아당겨서 당한 만큼 갚아주고 넘어가야만 되는 사람 있잖아. 내가 그런 사람이래. 사주에 갈고리가 있다니, 사주로 그런 것까지 읽을 수 있다니 참 재밌어.

  그 말 끝에 K의 미소는 의미심장하고도 무서웠다. 가슴에 옹이지는 것이 두려워 결국엔 무엇이든 다 좋았노라, 하고 미화시키고 넘어가야만 편히 숨을 쉬는 나에 비해 갈고리를 지녔다는 K는 강하고 독한 사람이었다. K는 예의 없이 다가왔던 것들은 다시 예의 없이 떠나가기 마련이라며 그런 무례한 것들은 너도 무례하게 대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머리로는 그렇지, 하면서도 가슴으로는 그래도 난 그 사람이 보고싶다, 고 말하는 내 복잡한 눈빛을 K는 침착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넌 다른 사람들한테는 참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 자신한테도 좋은 사람이 되어봐. 대학 시절 무슨 일인가로 징징거리던 나를 토닥이며 K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도 갈고리를 하나 지녔으면 싶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라고 말하지 않고 네가 그랬단 말이지, 라고 옹이를 품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K는 하나의 경험을 통과하면 열을 배운다. 그녀는 결코 징징대지 않고 받은대로 돌려주거나 스스로를 훌쩍 키워버린다. 돌처럼 딱딱한 심장을 지녔을지 모르지만 오래오래 식지 않는 따듯한 돌이다. 나는 항상 붉은 피로 출렁이지만 곧바로 까맣게 죽어버린다. 그녀는 내 정열이 부럽다 했지만 나는 K가 나보다 훨씬 더 원대한 사랑을 할 것이라는 걸 안다. 아무 때나 심장을 내었다 들였다 하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딱 한 번 그녀의 갈고리로 뜨거운 심장을 끌어내어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날이 올 것 같다. 사랑보다 더 진한 존경심으로 나는 K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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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1-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고리라는게 한번 걸리면 잘 안빠지는데...^^
소울 메이트신가 봐요???

마늘빵 2007-01-19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은 차분하게 자기를 들여다보는 듯 해서 좋습니다.

치니 2007-01-19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나는 그럼 어떤 쪽일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비로그인 2007-01-1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장을 걸어내는 갈고리라..
음.. 가슴이 뜨끔합니다. 하하


깐따삐야 2007-01-19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갈고리란 말, 올가미 등등의 말처럼 무섭고 좀 그랬습니다. 소울메이트까진 아니고 그냥 오래 알며 지내다보니 서로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아프락사스님, 차분이라니 내숭일거에요. 전 절대 차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답니다. ㅋㅋ

치니님, 치니님은 K와 저를 반반 섞어놓은 것 같은 분이 아닐까, 싶어요. ^^

깐따삐야 2007-01-1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헛?! 님도 역쉬...

2007-01-19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재 21권 세트로 나와 있는 토지는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다. 그래서 소심하게 선택한 것이 청소년 토지 12권. 김현주가 최서희로 나왔던 드라마도 재미있게 봤었다. 극이 진행될수록 김현주 보다는 악한 김두수 역할을 실감나게 해냈던 유해진이라는 배우를 눈여겨보게 되었지만. 비록 작가가 아닌 다른 이들에 의해 재구성된 책이긴 하지만 새벽을 환히 밝히면서 읽을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토지를 모두 읽고나서 그 감동이 채 가시지 않았을 무렵 묵혀두었던 이상문학상 전집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지만 활자들은 핑그르르 두서없이 떠다녔고 급기야 신경질이 나려고까지 했다. 모든 책은 각자 가치가 있고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 한 장 속에 있는 짤막한 어구들조차 누군가의 고민이 녹아있다고 생각하며 지내다가도, 이렇듯 숨막힐 듯한 대작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그래도 똑같을 순 없지, 라는 확신이 생기기도 한다.

  평소에 시나 소설을 좋아하긴 했지만 하도 잡식성이다보니 원래 특별히 꼬집을만한 취향은 없었는데 근래 들어 역사소설이 좋아진다. <상도>를 찬찬히 다시 읽고 싶어졌고 최인호의 <유림>이 완간되었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나로부터 벗어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점점 더 아빠를 닮아가는 내 얼굴과 엄마의 말투와 생활습관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부모님과 부모님 위의 더더 오래된 조상들, 나 개인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된 민족의 역사, 그 민족의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 인류의 역사, 그러한 것들이 궁금해진다. 뭔가 근원적인 것, 변하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낸다면 내가 나를 이해하고 전망하는 일이 더 쉬워지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 같은 것에서 말이다. 토지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엄마는 차디차고 고고한 윤씨 부인의 모습에서 엄마의 할머니를 보았다 하고 나는 최서희의 강하고 질긴 모성애를 보며 엄마를 떠올렸다. 임명희와 양현이의 갈등과 고민 속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각자 땅을 향한 강한 집념을 보였지만 최서희에게서는 스칼렛 오하라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기품이 느껴졌고 그것은 한국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오롯한 자부심마저 들었다. 토지에 대해서는 감히 리뷰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손을 놓고 있지만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 어딘가에 한국 여성의 끈기와 기품이 서려있지는 않을까, 하는 허튼 희망을 걸어보는 경험은 매우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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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18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며 부모님을 닮아감을 실감합니다..
또한 그분들의 사랑과 애쓰심 역시.


깐따삐야 2007-01-1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그렇죠?
 

  방학을 했고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중국에 다녀왔다. 여행지는 상해, 장가계, 소주, 항주 일대였다. 현지식은 물론 한식을 시켜도 도통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 때문에 가져갔던 풋고추와 볶음 고추장 두 통을 탈탈 거덜내고, 평소엔 거들떠도 안보던 주전부리와 야밤의 컵라면으로 불만투성이인 혀를 달래곤 했던 허기진 여행이었지만 그 일정은 대체로 무탈하고 즐거웠다.


  상해는 항구도시인만큼 매우 부산하면서도 역동적인 인상으로 다가왔다. 중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똑같은 모습을 한 고층 건물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고 시내 중심가로 들어서면 유명 패스트푸드점이나 고급 백화점들이 종종 눈에 띄는 소비도시이기도 했다. 사진은 동방명주타워에서 바라 본 상해시의 모습.


  장가계의 천자산과 천문산 일대는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한 곳. 이어지는 절경에 케이블카 안에서 계속 탄성을 질러대야만 했다.


  중국 산수화를 그대로 옮겨다놓은 듯한 아름다운 풍광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우리나라의 아기자기하고 소담스런 산들에 비하면 중국의 산들은 육중하고도 과감한 멋을 자랑한다. 안개 때문에 보다 선명한 사진을 찍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해질 무렵, 관람을 하고 내려오던 중 어둑어둑해지는 케이블카 안에서 우리의 엉뚱마님 곽 따꺼, 곽 선생님과 함께.  


  계단 오르기 힘들다고 칭얼대던 일곱살배기 박군. 결국 가마꾼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 가마꾼들. 얼마냐고 물으니 처음엔 만원, 만원, 만원, 하더니 결국 그건 만원이 아니라 삼만원이었다고 우겨대기 시작하는데 가이드의 도움이 없었으면 된통 바가지 쓸 뻔 했다. 우리 박군이 다소 무겁긴 했지만서도. 쩝.


  동행했던 사서 선생님과 개구쟁이 박군. 우리는 밤마다 한 방에 모여 컵라면을 끓여먹고 다른 선생님들의 천태만상을 카메라로 고발하며 불면의 밤들을 보내야만 했다.


  항주에서 보았던 송성쇼. 평균신장 170 이상의 화려한 미녀들이 한 시간 내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중국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흥겨운 뻥들이 쇼의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갑자기 인공절벽에서 폭포수가 쏟아지고 촛대를 등에 얹고도 온몸을 자유자재로 말아대는 등, 연중 빈 좌석이 없다는 풍문만큼은 뻥이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송성쇼가 막을 내릴 무렵 배우들이 관객들을 향해 던져주었던 행운주머니. 어찌나 집중력과 완력 넘치는 점프였던지 함께 갔던 선생님들 중에 주머니를 받은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하지만 주머니를 받은 관객들은 앞으로 나와서 함께 춤을 추자고 말하는 배우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 엉덩이 밑으로 주머니를 밀어넣은 채 숨죽이고 앉아있었다는 뒷담화. 춤을 출 걸 그랬나. 핸섬하고 늘씬한 남자배우들도 많았는데.


  일정 내내 일행을 이끌며 사진을 남기며 수고하셨던 체육선생님과 서호유람 중 한 컷. 요리집에 갔을 때였다. 내가 장난을 치느라 중국인 종업원에게 우리는 모두 한국인이고 이 선생님만 동남아에서 왔다고 말하자 어려뵈는 청년 종업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이국적인 마스크에 썰렁한 농담을 좋아하고 직원체육날이면 직접 순대를 만들고 어묵국을 끓이기도 하는 적극적이고 재미있는 유부남이시다. 학창 시절 체육 선생님들에 대한 안좋은 추억을 싸그리까지는 아니어도 상당 부분 해소해 주셨던.


  백마사, 소림사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큰 사찰 중의 하나라는 영은사의 불상. 많은 중국인들이 불상 앞에서 향을 피워놓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비는 모습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도 마음 속으로 소원 하나를 빌었는데 국적차별인지 아니면 간절함이 부족했는지 내 소원은 물 건너갔다.


  올라가려면 올라가셔도 좋지만 시간 맞춰 내려올 자신이 없거나 다리 힘 없으신 분들은 그냥 아래에 계셔달라는 현지 가이드의 엄포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렸던 999계단. 그러나!


  남달리 튼실한 하체를 자랑하는 내가 올라가지 않는다면 내가 웃고, 남들이 웃고, 하늘이 웃을거란 자책감에 두 주먹 불끈, 두 다리 울끈하며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가파르고 촘촘하고 많긴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이제 웬만한 계단은 날아 오를지도 모른다. 올해 고3 수험생의 엄마가 되시는 선생님들 세 분도 이를 악물고 정상까지 오르셨단다. 대한민국 엄마들은 버스보다 빠르다고 하질 않던가.


  세자매 바위를 뒤로 한 채 홀로 한 컷. 현지인처럼 나왔다.

  중국은 듣던대로 크고 넓고 많은 나라였다. 저녁 한 끼 먹으러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는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로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넓었고 그만큼 아직은 도농간의 격차나 지역간의 격차가 상당히 컸다. 자유화의 물결이 곳곳에서 느껴지긴 했지만 여전히 공산국가 특유의 나태함이라든가 방만함이 느껴졌고 전반적으로 아직 자리잡히지 않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끝을 가늠하기 힘든 광대한 국토와 버스를 타든, 비행기에 오르든, 배에 오르든 여기저기에 바글바글 모여있는 수많은 중국인들과 시끌벅적한 그들의 언어. 10년 남짓이면 미국을 능가할 거라는 전망이 무색하게 들리진 않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작년의 일본여행에서도 그랬고 이번 중국여행에서도 그렇고 이웃나라의 좋은 점을 우리가 제대로 캐취해서 야무지게 활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불리한 지리적 요건에도 불구하고 그 불리함마저 관광산업과 문화사업으로 육성시킬만큼 꾀가 많고 재기발랄한 일본인의 기질과,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도 의뭉스럽게 제 이익을 꾀할 줄 아는 중국인의 대범함을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행의 끝엔 늘상 그래도 우리나라가 제일 좋아, 라는 수수한 깨달음과 함께 귀환하곤 하지만 오감으로 느꼈던 그들만의 장점은 쉽게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고 아쉬움으로 남곤 한다. 평소 내가 생각해오는 바, 해외 여행을 떠나는 데 있어 어르신들의 관광으로서도 물론 좋겠지만 어린 학생들의 견학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어쨌든 여러 선생님들의 수고로움에 기대어 다른 듯 닮아 있고 닮은 듯 서로 다른 한, 중, 일 세 나라를 부분적으로나마 비교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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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1-07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여행하셨군요. 예쁘게 잘 나왔는데요^^

Mephistopheles 2007-01-0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가 중국여행 다녀오신 후 " 걔들은 뭐든지 기름에 볶더라.." 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는군요..^^
미녀선생님의 중국탐방기..군요.^^
(3미터마다 계단참이 없는 계단은 무효에요 무효..)

레와 2007-01-0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앙!
흔적이 없어 궁금했었어요! 깐따삐야님~
중국다녀오셨군요!! (부럽~)

얼굴이.. 너무 깜찍하셔요~ (아..앙...*.*)
즐거운 여행은 우리 마음을 살찌우지요. 통통해 지셨나요? 헤헤..:)
얼굴뵈니 너무 반갑습니다.~!

마태우스 2007-01-0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단아한 미모가 돋보이는 사진이었습니다. 체육선생님 동남아사람...호호. 글구 그럴 땐 나가서 춤도 추는 것이 님의 모범생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주머니 받은 날) 잘 봤습니다.

깐따삐야 2007-01-08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적게 먹고 많이 걸었던 여행이었지만 즐거웠답니다. ^^

메피스토님, 맞아요. 뭐든지 기름에 볶습니다. 콩도 볶고 국수도 볶고 닭도 볶고...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참 맛있게 잘도 먹어요. (우리 동네에도 저런 계단이 있다면 따로 다이어트가 필요 없을 듯 해요.)

레와님, 처음엔 중국에 가면 빵빵하게 살이 오르진 않을까 싶었는데 돌아와서 보니 오히려 체중이 조금 줄었더라구요. 이것저것 먹을 건 많은데 그다지 먹고싶은 게 없었어요.

마태우스님, 아직 저의 파격적인 면모를 보지 못하셨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요. 송성쇼엔 미녀들이 대거 출연해서 마태우스님이 보시면 무척 좋아하실 것 같아요. ^^

비로그인 2007-03-2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깐따삐야님 ^^

여차저차 흘러흘러 여기까지 와서 중국 사진을 보고 가네요.
사진도 곱고 님도 고우십니다.
좋은 봄날 되세요 :)

깐따삐야 2007-03-2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2님, 댓글을 지금에서야 봤네요. 반갑습니다. 종종 뵙도록 해요.^^
 

  "우리 애는 왜 다른 애들보다 느리지. 다른 애들은 질문을 하면 또박또박 대답을 잘하는데 얘는 그냥 멍하니 있는거야. 아휴, 답답해 죽겠어. 아주."

  선배 선생님의 이야기다. 선생님은 한 달 전부터 일곱살 된 아들 S를 어느 특별한 장소에 보내고 있다. S는 일주일에 두 번씩 그 곳에 가서 미술도 배우고 영어도 배운다. 예전에 동네 미술학원을 다닐 때에는 그냥 곱고 예쁜 크레파스를 가지고 마구잡이로 그려댔다면 요즘은 테이블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빛의 방향과 밝기에 따라 사과의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부터 배우는 등, 미술의 기초부터 탄탄히 익히고 있는 듯 했다. 영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조잘대며 나대는 것이 아니라 알파벳 하나, 하나가 어떤 소리를 가지고 있는지부터 차근차근 배운다고 했다. S도 선생님을 좋아하고 수업을 무척 재미있어 한다고 한다.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는 이유로 나도 S를 몇 차례 만나서 함께 얘기하며 논 적이 있지만 낯가림이 심하고 싫증을 잘 내는 편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호기심이 일었다.

  S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은 캐나다에서 온 원어민이었다. 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했고 전에는 사설 영어학원에서 일하던 강사였는데 좋은 산을 찾아 그 곳에 왔다가 산의 근사함에 한 번 반하고, 산에 들어와 지내며 작품활동을 하던 조각가에게 두 번 반해 결국 아예 눌러앉게 되어버렸다고 한다. 남자는 물론 한국 남자고 여자보다 열 살도 넘게 나이가 많단다. 두 사람은 각자 작품을 만들면서 부업으로 S와 같은 아이들에게 미술과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었다. 자유롭게 사는 멋있는 사람들이었다. 선생님도 기초부터 꼼꼼하게 가르치는 성실한 태도도 마음에 들고, 분명 불편하고 힘든 점이 있을텐데도 항상 밝은 얼굴로 자연이 좋아 이 곳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참 좋아보였단다. 무엇보다도 아들 S가 수업이 있는 날이면 무척 즐거워하고 그림을 그리고 영어를 배우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단다.

  문제는 순수한 즐거움과는 별도로 엄마의 욕심이었다. 세상 엄마들이야 거의 다 그렇겠지만 모든 게 세상 엄마들의 욕심처럼만 된다면야 뭐가 문제겠는가. 사실 아직 미혼인 나조차도 비록 드러내놓고 내색하진 못하지만 같은 대회에 출전해서 옆반 아이가 우리반 아이보다 더 좋은 상을 받아오면 살짝 서운해지고, 정기고사나 체육대회때 우리반이 일등이라도 하면 기분이 활짝 펴지고 어깨가 으쓱해지는데 내가 낳은 내 자식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더할까 싶다. 아무리 초연하려고 해도 자식의 일 앞에서는 초연해지기 힘든 게 부모의 운명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선생님도 평소에는 참 차분하고 올곧은 분이다. 아이들에게 크게 화내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풀어가는 가운데 늘 아이들 먼저, 다른 사람부터 배려하는 등 참 바르고 듬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로 이 일을 어쩌면 좋겠냐는 듯한 표정으로 엄마의 욕심에 박자를 맞춰주지 못하는 아들 S를 걱정하고 있었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오빠는 아홉살 때까지 제 이름을 다 못 써서 매일 나머지 공부 했대요."

  "정말? 영어로?"

  "아뇨, 그 시절에 무슨. 우리말로요. 크크큭."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저건 사실이었다. 엄마 말씀에 따르면 오빠는 제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못 써서 늘 나머지 공부를 했다고 한다. 집에서 엄마와 같이 쓸 때는 잘 쓰는데 학교에만 가면 생각이 안 난다고 늘 스스로도 힘들어 했단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말에 갑자기 우등상을 받아오더니 겨울방학 때부터 공부에 재미를 붙여 4학년 때부터는 마치 새로 태어난 인간마냥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단다. 그 무렵의 나는 오빠의 교과서를 찢어 뜨거운 고구마를 싸먹고 네모낳게 딱지를 접어 놀고 통지표에 색깔별로 빨강, 파랑 동그라미를 그려놓고는 엄마한테 혼날까봐 사정없이 울어제끼는 말썽꾸러기였다는데 별로 기억나진 않는다.

  내가 어릴 때 일찍 한글을 깨쳐 어른 뺨치게 수다를 떨고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불러제끼며 마구 잘난 척을 하며 나대는 아이였다면 오빠는 알아도 안다고 말하지 않고 몰라도 모른다고도 말하지 않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있으나 없으나 한 아이였다.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아도, 오빠는 속을 잘 안 내비쳤고 말수가 무척 적었다. 엄마한테 똑같이 꾸중을 들어도 그렇게 잘해주지도 못할거면서 왜 낳았냐고 발악발악 대드는 쪽이 나였다면 오빠는 더 맞으려고 환장한 것처럼 대드는 나를 뜯어말리며 그저 묵묵히 엄마 화가 풀릴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쪽이었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오빠가 졸업했던 중학교에 내가 입학했을 때도, 선생님들이 하신 말씀은 너희 남매는 참 다르구나, 였다. 오빠는 성적이 떨어졌다고 초조해하지도 않았고 오른다고 크게 기뻐하는 것 같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거의 일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마음만 먹으면 성적은 얼마든지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차분한 자신감마저 묻어나왔다. 반면에 나는 이번엔 틀려먹었어, 라고 온 가족들에게 떠들고 다니며 진짜로 시험을 망쳐놓고는 결국 이 모든 게 엄마의 예민한 기질을 닮아서라고 악을 써댔으며 어쩐지 갑자기 공부하고픈 의지가 새록새록 생겨서 성적을 원상태로 복귀시켜 놓았을 땐 이게 다 나의 피눈물나는 노력의 성과라고 뿌듯해하는, 감정이 널을 뛰고 의지가 갈피를 못 잡는 들쑥날쑥한 아이였다. 사실 어릴 때만 놓고 보자면 오빠보다 내가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뛰어나 보이는 아이였고 뛰어나게 보이고 싶어 스스로를 드러내는 아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무참할 정도로 평범해져갔던 반면 오빠는 사람들에게 착하네, 의젓하네, 예의바르네, 등등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고상한 칭찬들을 들어가며 착실히 내실을 쌓았다. 비록 한 뱃속에서 나왔다지만 지금도 그러한 상반된 평가는 전혀 달라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우리집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도 내 이야기를 듣고는 공감을 표현하며 S가 느지막히라도 좀 깨이려나 믿고 있다고, 그런데 엄마 된 입장에서 그냥 무조건 참고만 기다리는 게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하긴 우리 엄마도 그러셨다. 자식을 키우다보면 참을 인자를 수도 없이 가슴에 새기게 된다고. 버르장머리 없이 딴지 걸기 좋아라 하는 내가 70만청년실업시대에 오빠랑 내가 이만큼 커줬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고 하면, 많이 배운 자식보다 못 배운 자식이 효도는 하는거라며 가르쳐놨더니 말만 청산유수로 한다고 구박하신다. 물론 다시 시간을 되돌려도 엄마는 똑같이 반복하실 것을 안다. 저만치 앞서서 열심히 달리시면서 엄마가 달리니까 너희들도 어서 달려~ 라고 하시겠지. 공부하기 싫으면 뙤약볕에 나와서 밭이나 매라고, 엄마는 너희들이 여름엔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고 겨울엔 히터가 뜨끈뜨끈하게 나오는 데서 일했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공부하는 수 밖에 없지 않냐고 냉정하고 무섭게 나오시겠지. 지금 와서 돌아보면 때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때로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우리 남매를 얼렀다 혼냈다 하시던 피 끓던 엄마가 참 그립기도 하다. 시험기간엔 꼬박 밤을 새우며 새벽에 깨워주시기도 하던 꼬장꼬장한 분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9시 50분만 되면 맞춰놓은 자명종처럼 안방으로 들어가시는 엄마, 안쓰럽다.

  언젠가 엄마에게 왜 어릴적에 나 잘나가던 시절에 칭찬을 한 마디도 안해줬느냐고 따지자, 내가 하도 오만방자하고 안하무인격이라 엄마까지 덩달아 같이 춤을 추면 남들한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까봐 더 자제하셨단다. 그래서 나는 누르고, 오빠는 살리고, 하는 식으로 나름 기준을 갖고 키우셨던 모양이다. 나는 겸손해져야 하니 간간히 차디찬 말로 눌러줘야 되고 오빠는 의뭉스럽게 처신을 잘하니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셨단다. 물론 나 자신은 성장해오는 동안 마음 속으로 "나를 몰라주는 냉정한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감수성 예민한 천재의 운명을 타고났네" 운운하며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지만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 앞에 선 지금은 엄마의 뜻을 이해할 것도 같다. 빠르다고 미리 기뻐할 것도 없고, 늦어진다고 안달할 것도 없다. 오히려 빠르면 이른 좌절을 맛보지나 않을까 불안해 하는 게 맞고 조금 늦어진다면 대기만성을 기대해 보는 여유를 가져도 좋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나와 오빠가 전형적인 케이스였으니까. 그런데 이런 말은 나같은 제삼자한테나 가능한 말일지도 모른다. 막상 엄마가 되면 달라지는 것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다. 우리 엄마만 해도 아주 냉정하고 현명하신 분이었다. 자식 머리 꼭대기에 있었으니까. 지금도 솔직히 느슨해진 척만 하실 뿐 내 머리 꼭대기에 여유만만 앉아계신 것 같아서 기분이 영 찜찜하지만. S이야기를 했더니 엄마가 하시는 말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야, 너를 봐봐. 네가 빨라서 오빠보다 나은 게 뭐가 있었냐. S도 제 엄마 닮았으면 늦게라도 잘할거야. 두고봐."

  "그리고 남의 자식 가지고 어쩌니 저쩌니 말하지 말아라. 제 자식 어떻게 될지 모르고 자식은 다 커봐야 알고 인생은 끝까지 살아서 죽을 때 가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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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12-13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엔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고 겨울엔 히터가 뜨끈뜨끈하게 나오는 직장을 집어치우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직장으로 옮겼는뎁쇼?

깐따삐야 2006-12-14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저는 이만한 조건이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름에 뙤약볕 아래서 풀 뽑던 거 떠올리면서. ㅋㅋ

Mephistopheles 2006-12-14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이 철학자십니다..말만 늘어 놓는 철학자가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레와 2006-12-1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말씀, 틀린게 없지요.. 네에..
허나,
그 말씀이 맞는지는 어른이 되야 알 수 있으니.. 이휴..


깐따삐야 2006-12-14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엄마가 쓰시는 권법은 가히 이소룡의 절권도에 비할만 하다는.. 저는 늘 깨갱~ 하고 나가떨어지기 일쑤지요.

레와님,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에휴..

Mephistopheles 2006-12-14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어렸을 땐...제법 X기셨던 것 같은걸요..키득키득...^^

깐따삐야 2006-12-1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뭐... 제법 X겼었었드랬죠. 쿡쿡. ^^
 

  할머니는 늘 라디오를 들으셨어요. 그래? 나도 라디오를 들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 그게 아니라, 할머니는 시간을 아실려고 라디오를 들으셨어요.

  기억에 남는 대사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저랬을 것이다. 주말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보았다. 박찬욱 감독의 의도는 알 것 같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하는 방식은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했다. 솔직히 이번에는 다소 유치하기까지 했다. 극적이고 만화적인 상황 설정과 빨강, 파랑, 하양의 선명한 이미지들. 그의 영화는 한 번 보고나면 잊을 수 없는 장면이나 대사들이 몇 가지 뇌리에 남는다. 배우들은 몰라보게 연기를 잘하고 이 감독 천재가 아닐까, 싶은 느낌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그의 영화를 이해했다고, 반드시 챙겨보아야만 직성이 풀린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냥 유명한 박찬욱이고 그의 영화는 매번 나를 긴장시키거나 불편하게 하고 광고를 보면 호기심이 생긴다. 쏘우 시리즈처럼, 보기 전에도 보고난 후에도 썩 느낌이 좋지는 않은데 왠지 한 번 보고싶기는 한 그런 정도.

  영화를 보면서 요양원 안의 환자들은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트라우마를 그대로 실현하며 그들만의 천국 속에서 자유를 구가하고 있으니까. 아픈 사람들, 정말로 불행한 사람들은 의식을 하든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든 내상을 억누른 채 피곤하게 생활하고 있는 나를 비롯한 내 주변 다수의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김형경의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으며 정신분석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정신분석을 받고 나서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는 게 새로운 문제거리였다. 그래서? 그런 다음엔? 내가 소설가도 아닌데. 분석과 치료를 통해 내 시야와 시선에 변화가 찾아와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고 해서 내 스스로가 더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냥 나이고 싶은, 그런 질긴 욕구에서일지도 모르겠다. 무를 먹는 쥐면 어떻고 밥으로 충전하는 싸이보그면 어때. 그들의 상상력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다른 것은 나쁘지 않다. 유해한 것만이 나쁘다.

  예전부터 갑작스레 예민해지거나 충동적이 될 때는 내가 미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나는 완전히 미치지는 못했다, 는 증거이며 달리 생각하면 사람은 정도의 차이일 뿐 대개는 몇 퍼센트 정도 미쳐있는 게 맞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더욱이 남들이 고개를 내두를 정도로 뭔가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얼마나 근사한가, 라는 시샘까지 느꼈다. 여러가지 변수에 의해 어떤 사람들은 예술을 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운 나쁜 사람들은 범법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들의 집념은 그 원천이 무엇이었든 참 놀라운 것이다. 스스로 행복하고 사회적으로 무해한 미치광이들이 많은 사회가 어쩌면 유토피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인간적인 애정에서 나온 관심이 아니라 스스로와 저울질 해보기 위한 통속적 관심. 비판하고 내치고 가두기 위한 관심. 그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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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1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12-1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그냥 순전히 취향 탓일지도 몰라요.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말이죠. ^^

레와 2006-12-1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은 나쁘지 않다. 유해한 것만이 나쁘다.]란 님의 말에 200% 공금합니다.!

아..
지금 현재까지 보고 싶은 영화가 6개인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그중하나가 바로 이 영화..

하고 싶고, 읽고 싶고, 보고싶고, 듣고 싶고, 찍고 싶고..
요즘 저는 '싶고'에 중독되어 있답니다. 원츄홀릭..;;

지금 날씨는 쬐끔 포근해졌습니다.
건강한 한주 되세요! ^^*

마태우스 2006-12-1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이 엇갈리는 영화더군요. 정보를 미리 알고 영화를 봐야겠어요. 끝나고 이게 뭐야, 이러지 않도록요. 무해한 미치광이와 유토피아의 관계에 대해 동감합니다.

깐따삐야 2006-12-11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와님, 영화도 못 보시고... 요즘 왜 그렇게 바쁘신 거에요? 궁금. ^^

마태우스님, 이 영화 끝나고 뭐야, 끝난거야? 이런 웅성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렸더랬습니다. 결국 임수정과 정지훈이 찾아 헤맸던 존재의 목적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