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속 동물들은 그럴듯한 의인화로 귀여운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풍자 및 비판을 빠뜨리지 않는다. 유재석의 더빙으로 눈길을 끌었던 꿀벌대소동도 마찬가지. 거의 집집마다 한 병 정도는 놓여있을 꿀. 게다가 우리는 꿀단지 껴안은 푸우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화학조미료 하나 첨가하지 않고 순수한 단맛을 제공하는 꿀벌들에게 아무런 감사의 말도 없이, 위기 상황에서 한방의 침으로 장렬히 전사하는 벌 앞에서 벌에 쏘였다고 징징거리면서. 이런 하찮은 인간들이란! 그뿐인가. 꽃가루특공대가 꿀 채집 이후 꽃가루를 여기저기 뿌려주지 않는 한 생태계가 파괴되는 건 시간 문제다. 인간과 말할 수 있지만 단지 말을 걸지 않았을 뿐인 놀라운 꿀벌들은, 자연의 섭리에 불응한 채 고마움에 대한 불감증을 겪고 있는 인간들을 비판하며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주인공 배리로 활약한 유재석은 평소 메뚜기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는 덕분에 줄무늬 스웨터와 더듬이도 무척 잘 어울렸다. 그러나 딱 이렇다 할만큼 어색한 부분은 없었음에도, 꿀벌 세계의 유머는 때로 너무 지루해서 인간세계의 유재석의 입담과는 비교가 안 되더라는. 두 마디 대사에는 까르르 박장대소하고 그에 이어지는 한두 마디에는 아까 웃었던 그 입모양을 유지만 하고 있는 상태랄까. 날개만 달렸지 까칠한 성격은 그대로인 래리 킹의 모습을 꿀벌 티비에서도 보는 건 흥미로웠지만 상대적으로는 작년에 보았던 라따뚜이가 좀더 구성지고 재미있는 듯.

 모든 꿀벌들이 대학 졸업 후 아무런 불평 없이 평생 한 가지 일만 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회의를 품은 배리. 그는 2억만년 넘게 한치의 의심도 없이 반복되어 오던 꿀벌의 삶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프로메테우스적 꿀벌이랄까.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특공대를 따라 인간세계에 오게 된 배리. 그는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살려준 이상형의 플로리스트, 바네사와 친구가 되고 그녀와 합심하여 인간이 공짜로 가져간 벌꿀과 꿀 관련 용어에 대한 로얄티를 요구하는 소송을 건다. "우리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허니~ 라는 말도 함부로 쓸 수 없었다구!" 팔짱을 끼고 당당히 외치는 배리는 배우 레이 리오타와 가수 스팅(Sting)까지 법정에 세우는 등, 무자비한 양봉으로 막대한 꿀을 얻고 있는 인간 전반을 비판한다. 마침내 소송에 승리한 꿀벌들. 그들은 인간 소유의 모든 꿀들을 수합해 꿀벌나라로 가져오고 더 이상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시간에 맞춰 다함께 돌아눕는 일 뿐.

 한편 꿀벌들이 활동을 멈추자 바네사의 꽃가게는 문을 닫아야 하고 아름다웠던 자연은 꽃 한 송이 피지 않은 채 잿빛으로 변해간다. 결국 마지막 남은 장미꽃들로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배리. 이 즈음에서 영화의 명장면이 연출된다. 말하는 꿀벌에 놀라 소동을 피우다 기절하고 만 기장과 부기장을 대신해서 배리와 바네사가 비행기를 조종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우리의 꿀벌들은 일사천리로 그들을 향해 날아가 비행기를 대신 조종한다. 노랑과 검정이 번갈이 피어나는 꿀벌들의 매스게임 덕분에 활주로를 찾은 비행기는 무사히 안착하고, 칙칙했던 인간 세상은 꽃가루특공대의 활약으로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는다는 애니다운 해피엔딩.

 감탄하고 소리 지르며 영화를 보는 어른은 나 이외엔 그다지 없는듯 했지만 아이들은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고, 영화가 주려는 교훈도 적절했다. 물론 아이들이 군데군데 양념처럼 등장하는 헐리웃 스타들을 알아보는 것 같진 않았다. 그것은 아무래도 미국의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재미를 위한 장치겠지. 하지만 친근한 유재석의 더빙과 더불어 마치 어느어느 어린이집의 원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랑과 검정이라는 꿀벌 색상도 귀와 눈을 따듯하게 만족시키더라는. 봄이 조금 일찍 온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요즘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매우 즐거워할 것 같다. 어차피 원래대로 돌아갈 건데 재판은 왜 한거지? 요로코롬 매사에 시니컬한 타입의 아이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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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7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그 영악한 조카였나? 친척 동생이었나? 암튼 그 아이랑 본 거에요?

깐따삐야 2008-01-07 00:35   좋아요 0 | URL
네.^^ 애니는 아이들 틈에 섞여서 같이 소리지르며 봐야 제맛이라는. ㅋㅋ

웽스북스 2008-01-07 00:39   좋아요 0 | URL
교회 아그들 데리고 볼 영화 고민중이었는데 이거 볼까봐요 흐흐흐
근데 다 컸다고 싫어하면 어쩌지? 흠흠
내가 애들보다 더 수준이 유아틱한가봐

깐따삐야 2008-01-07 00:46   좋아요 0 | URL
왠만큼 성격 까칠한 애 아니라면 좋아할 거여요.^^
근데 나는 지금까지 괜히 봤다 싶은 애니메이션은 하나도 없었어요.
모든 애니는 나름 다 재밌달까. ㅋㅋ

2008-01-07 0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7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8-01-07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이 너무 보고싶은 영화인데 더빙되어서 안본다지요~.ㅜ
배리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남편이 넘 좋아하는 배우라서
그의 목소리로 꼭 봐야 한데나 뭐라나,,,쩝
그래서 저흰 DVD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어요.
근데 저두 애니보면서 살짝 울다 웃다 잘한답니당~.ㅎㅎ

깐따삐야 2008-01-07 11:55   좋아요 0 | URL
남편분이 제리 세인펠드인가 하는 그 배우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저는 유재석이 더 좋은뎅.^^
나비님도 애니를 아주 지대루 즐기실 것 같아요!


마늘빵 2008-01-0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첨 보는 애니인데...?

깐따삐야 2008-01-07 11:57   좋아요 0 | URL
요즘 한창 개봉 중인 애니인데 모르셨구나.
하긴 아프님은 애니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아요. 왠지.

네꼬 2008-01-0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보고 싶어요. (실은 유재석 더빙 때문에요.) -_-;;

"꿀벌 세계의 유머는 때로 너무 지루해서 인간세계의 유재석의 입담과는 비교가 안 되더라는."

한 줄에서, 깐따삐야님과 저의 공통분모를 (멋대로) 짐작합니다. 반가워요.
: )

깐따삐야 2008-01-07 17:01   좋아요 0 | URL
저도 반가워요!
유재석 더빙 때문에 보고싶으시단 말씀이 확 와닿네요. 그냥.^^
 

 알라딘의 홍보 문구를 보고 내용 면에서나 의도 면에서도 꽤 유익할 것 같아 구입한 책이다. 작가 나딘 고디머가 추진, 유명 작가들이 스스로 선정한 단편소설들을 엮은 책인데 판매수익금 모두가 에이즈예방협회에 기부된다고. 

 아서 밀러와 마르케스의 첫 두 작품부터 읽은 상태다. 산뜻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단편들. 읽다보면 엉성한 번역 때문에 짜증날 때가 있는데 오, 번역도 훌륭하다. 재미있게 읽고 있다. 작품들이 많아서 리뷰를 쓸 수 있을까는 모르겠다.

 

 장정일이 희곡집을 냈다길래 벼르고 있다가 새해맞이 도서 쇼핑 리스트에 올렸다. 세 작품 중에 처음 실린 '일월'부터 차례로 읽어나가고 있는데 작품작품마다 작가의 해설이 달려 있다는 게 사뭇 의아하다. 한편으론 과잉친절로 보여지기도 하고.

 나의 못 말리는 직관에 의하자면 장정일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의 글에 실망했을 때가 있을지라도. 천재라기 보다는 자신의 역사에 스스로 획을 그어나가는 주체적인 사람이랄까. 모든 작가가 그런 건 아니니깐. 더 읽어봐야겠다.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웬모양님의 이벤트 덕분에 수중에 들어왔고 일단 작가의 외모에서 남다른 고집이 느껴지더라는. 누군가랑 분명히 닮았는데 그게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는구나.

 한동안 최근 등장하고 있는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을 잘 읽지 않았었다. 읽는 중에는 독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술술 빠져나가 듯 내 기억 속에서도 술술 사라지더라구. 이 작품집을 시작으로 다시 관심을 가져봐야지.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는가' 라는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리는 희대의 미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거침없는 욕설을 퍼부으며 열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

 사실은 원서를 사놓곤 고로코롬 깨알 같은 글씨에 막막해서 dvd부터 보고나서, 독서를 시작해야겠다는 얍삽한 마음에서 구입한 결과물이다. 얼른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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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3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인생 단 한번뿐인 이야기, 너무 작가들 리스트가 대단해서 또 선뜻 안사지더라구요- 깐따삐야님의 글을 보니 어쩐지 안심이 된달까. 사육장 이야기는 읽고 싶었다니 다행이에요 흐흐

깐따삐야 2008-01-04 01:02   좋아요 0 | URL
책 재밌어요. 그리고 읽다가 지치더라도 판매수익금이 좋은 일에 쓰인다니 질러댄 것을 후회하진 않을 것 같아요.
웬디양님의 이벤트 선물을 시작으로 젊은 소설들에 다시 재미를 붙여볼까 생각 중이에요.^^

Mephistopheles 2008-01-04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젊은 작가의 부류를 놓고 봤을 때.(많이 읽은 책은 아니지만 작년에 읽었나 제작년에 읽었던 "고래"라는 소설은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어요.^^)

깐따삐야 2008-01-04 01:21   좋아요 0 | URL
천명관의 고래 말씀인가요? 저 그것도 제목만 기억하고 못 읽어봤는데.
레폿질 한답시고 소설과 넘흐 멀어졌어요. 흑흑.

웽스북스 2008-01-04 01:23   좋아요 0 | URL
고래는 참 순식간에 읽어내려가게 되는 소설이죠- 일단 이야기가 참 재밌어요 ㅎㅎ 근데 천명관의 신작에는 또 손이 안가더라는 ㅋㅋ

깐따삐야 2008-01-04 01:34   좋아요 0 | URL
메피님 뇌리에 박혀있구 웬디양님도 재밌었다면 제가 안 볼 수가 없군요.
태그도 아니면서 꼭 따라해. ㅋㅋ

순오기 2008-01-04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젊은 사람들 소설은 별로 안 본 거 같아요~~~ 작년엔 '아내가 결혼했다'뿐?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도 리즈 테일러만 생각나고욧!

깐따삐야 2008-01-04 02:0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이야 훌륭한 동화책들을 비롯해서 다른 분야의 책들 읽기에도 넘흐 바쁘시잖아요.^^
방금 dvd 봤는데 부부가 으찌나 서로 으르렁대는지 결혼하고픈 마음이 싸악 가시는 거 있죠. 단순한 저에게 크나큰 위안을 주는 영화였어요. ㅋㅋㅋㅋ

순오기 2008-01-05 09:2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결혼하고픈 마음이 싸악 가시는 영화 많아요~ 추천할까요?^^
이런 이런~ 깐따님 신랑감, 전국수배령 내린 사람이 이러면 안 되잖아~~

깐따삐야 2008-01-05 09:28   좋아요 0 | URL
신랑감 잡히는대로 연락주세요. 오바. ㅋㅋ
 

 읽은 책들의 리스트를 따로 작성하지 않는 대신 갈피접기란 카테고리를 통해서 독서 과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대개 리뷰를 쓰지 않고 지나친 책들은 눈에 띄지 않거나 다시 읽게 되지 않는 한 기억에서 사라져 갈 때도 많다.

 날이 갈수록 퇴화되는 기억력을 감안하여 서재에 새겨놓는 방법을 쓴 것. 제대로 기록해 갈 수 있을까 벌써부터 자신은 없지만 연말에는 이 카테고리를 통해 몇 권을 읽었는지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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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나두나두 가능한한 어떻게든 좀 기록을 남겨보려 생각중이에요 ^^

깐따삐야 2008-01-04 01:05   좋아요 0 | URL
근데 기록을 안 하면 머 올해도 많이 읽었으려니, 하는데 요로코롬 기록으로 남기면 진짜 안 읽었다는 게 더 눈에 확 들어올까봐 걱정이에요. 흐흐.^^
 


  지방에 사는 이유로 개봉관을 찾기 어려웠기에 아쉽게 스쳤던 영화였다. 주워들은 풍문만으로도 분명히 좋아할거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글렌 한사드 분)'에게 말을 거는 '그녀(마르게타 이글로바 분)'의 연기가 영 어색해서 잠시 비포선라이즈의 줄리 델피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 우유처럼 뽀얀 미소의 셀린느는 얼마나 싱그러웠던가.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묘한 분위기의 아가씨에게 점점 집중하게 되더라는. For what? 하며 되묻던 눈빛과는 달리 피아노 선율에 녹아드는 그녀의 목소리는 깊은 바다처럼 짙푸르고 아련했다. 낙천적이고 다정다감한 아일랜드 청년. 속을 잘 내비치지 않는 당찬 체코 아가씨.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우연히 조우하게 된 두 사람은 생에 단 한번, 바로 그 사람과 반짝이는 합일을 경험한다.

 밀루유 떼베(Miluiu teve). 별거 중인 남편을 사랑하느냐는 그의 질문에 그녀는 체코어로 대답한다. 밀루유 떼베. 무슨 뜻인지 말해달라고 보채지만 그녀는 끝내 그를 향해서도, 관객을 향해서도 입을 다문다. 막연히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궁금했기에 뜻을 찾아봤고 그 결과는? I love you. 살짜쿵 찬바람은 이는데 아쉽거나 슬프지는 않더라. 거기까지만. 그것으로 족하다는 느낌. 비포선라이즈의 대학생들은 언어로, 장 자끄 아노의 연인들은 몸으로, 그리고 원스의 청춘들은 음악으로 대화한다. 사랑을 말하기 전. 두 사람은 이미 사랑을 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는 말, 보이는 소리인 음악이라는 신비로운 매개를 통해.

 홍상수 감독이 그의 영화들 속에서 누누히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언어란 사람과 사람의 간극 사이에서 번번히 미끄러질 뿐.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속일 때도 많다. 알면서 속아주는 경우까지 보태자면 더더욱 부질없고. 그러나 음악 앞에선 누구나 정직해진다. 눈으로는 악보를 읽고, 손으로는 악기를 만지고, 혀로는 노래를 부르고, 귀로 그 소리를 들으며, 음악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는다. 이처럼 오감의 이탈을 허락하지 않는 음악은 순식간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시에 때론 사람의 틈과 틈 사이를 느슨하게 유영하며 눈치채지 못한 사이, 우리를 고요히 매혹시킬 때도 있다. 악보를 읽지 못하는 나로선 악보란 그저 새카만 콩나물의 나열일 뿐이지만 음악피스에 그려진 음표들의 움직임을 보며 아름답다, 고 느껴본 적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소리로 화할 때 그 신비로운 매력은 배가 되었다.

 원스에서 음악과 영화는 서로의 기운을 온건하게 조화시키며 담백한 뮤지컬 한편으로 승화했다. 예상 외의 많은 관객들이 이 구태의연한 음악 영화 한편에 열광했던 건, 아마 영화라는 취미가 제공하는 수수한 담백함이 그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 장미꽃을 파는 처녀와 우연히 사랑에 빠진다면? 꽃 파는 오후, 어젯밤 그 기타리스트가 다가와 반갑게 말을 걸어준다면? 이러한 소박한 상상에서 출발해 사람들은 각자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음악처럼 그저 흘러가는대로. 마음이 이끄는대로. 단, 방종이 아닌 자유를 위해.

 진하고 뜨거운 에스프레소 커피 같은 일상. 누군가 끼어든다. 오늘은 요로코롬 허브차 한번 드셔보시와요. 옥수수수염차는 없나요? 텁텁한 일상의 당신, 원스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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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1-0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았어요. 안 그래도 아까 청소하면서 원스의 노래들을 다시 들었답니다.
깐따삐아님의 리뷰를 보면서도 '언어의 힘'을 느꼈어요. 원래도 아름다웠지만 그 영화를 더 아름답게 추억하게 만들어 주셨거든요^^

깐따삐야 2008-01-03 15:51   좋아요 0 | URL
우앙~ 원스 OST를 갖고 계신가 보죠?
저도 오늘 다시 듣고싶어서 남들 블로그 돌아다니며 찾아듣곤 했어요.
제 리뷰가 영화에 누가 되지만 않아도 다행이죠. 감사합니다.^^

치니 2008-01-0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원스>만큼 담담하고도 수려한 리뷰입니다. ^-^

깐따삐야 2008-01-03 15:5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당. 치니언니도 옥수수수염차를 좋아하시는 게 틀림없군요! 흐흐.

마늘빵 2008-01-0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원스 좋아해요. 바로 오에스티 사고, 영화두 극장서 두 번이나 보고. :)

깐따삐야 2008-01-04 01:07   좋아요 0 | URL
두 번이나 보셨다니! 정말로 좋으셨나부다.
저는 dvd로 구입했으니 텁텁한 날마다 꺼내봐야죠. :)

웽스북스 2008-01-0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의 리뷰는 정말 영화를 읽어주고 있다는 느낌~ 원스를 보시라~

깐따삐야 2008-01-04 01:10   좋아요 0 | URL
우리 웬디양님 식기 전에 드시라구 영화 보자마자 후다다다닥 써재꼈다는.^^

미미달 2008-01-04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파욥

깐따삐야 2008-01-04 01:24   좋아요 0 | URL
미미달님은 이 영화 보구나서 이럴 것 같아요. "내용도 퐝당하구 결말도 넘흐 욱껴요. 대체 왜들 이러는 거죠? ㅋㅋㅋㅋ"
농담(?)이구요. 한번 보세요. 원스지만 두 번 봐도 좋은가봐요.^^

2008-01-04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4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애 2009-01-06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원스의 그녀를 보면서...선라이즈의 셀린을 생각했었는데..^^
 

  2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친구 커플과 저녁을 먹었다. 저수지 옆에 있는 특이한 외양의 건물이었는데 갈매기살과 곱창 맛은 아주 끝내주더라는. 보충수업을 마치고 퇴근한 친구는 살짝 초췌해 보였는데 그녀를 배려하는 남자분의 마음씀이 참 따듯해 보였다. 지난 가을. 처음에 두 사람을 나란히 앉혀놓고 보았을 때는 연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서먹해 보여서 내가 있어서 쑥스러운가, 아니면 아직 많이 친해지진 않은 건가, 갸웃거렸는데 결혼날짜를 잡아놓고 다시 본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삼가고 예의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더라. 남자분은 우리보다 다섯 살 위임에도 불구하고 친구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쓰고 있었고 서로 존대를 해서 그런가. 날 받아놨다고 격의 없어지는 그런 기색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사람 좋은 것처럼 두루두루 친절하긴 해도 속으로는 곁을 잘 내주지 않던 그녀가 결혼하겠다고 통보했을 때 남자분이 확실히 달라보이긴 했다. 분명 뭔가 엄청난 매력을 보았기에 일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머뭇머뭇하다가 요로코롬 결정을 했으리라는.

 우리 친오라버니와 동갑이라 더욱 그런가. 남자분은 내내 푸근한 오빠 같았다. 내가 듣기에도 참 세상 물정 모른다 싶은 우리들의 수다에도 별 반응 없이 씨익 웃음만 보일 뿐.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여유있고 좋아보이더라. 사실 살다보면 뭐 그렇게 심하게 열 올리고 핏대 세우며 언쟁할 일. 별로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결이 날 문제면 세상 사람 모두가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겠지. 고기가 알맞게 익으면 우리 앞으로 얼른 놓아주고 그때그때 필요한 게 있으면 눈치껏 알아서 챙겨주는데, 그 동작 하나하나가 각고의 훈련으로 익힌 매너라기 보다는 그저 원래 유순한 사람처럼 보였다. 남자 보는 눈이 낮아서 곧잘 땅굴 파는 두더지라고 불리우는 나지만 퍼뜩 나꿔채는 직관은 남다른 적중률을 과시한다. 참 좋은 애라고, 잘 부탁드린다고, 마치 엄마 같은 당부를 하면서도 내가 그처럼 진심어린 상투어를 남발하지 않더라도 어련히 알아서 잘 챙겨줄까 싶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한 세상에 신경쓸 일이란 별로 없다고 믿는 친구와 이런저런 일정을 챙기고 꼼꼼하게 추진하는 남자분은 서로 많이 다른 사람이다. 물론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던가, 알뜰한 경제관념 같은 큰 테두리의 가치관은 유사하지만 성향 자체는 그 누가 보기에도 많이 달라 보였다. 친구 자신도 만나면 만날수록, 알면 알수록 다른 점을 자꾸 발견한다는데 그녀를 익히 아는 나로선 반가운 이야기였다. 알라딘의 ㄴㅂ님네 부부처럼 널브러진 사물들에 대해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널브러진 사물들만 보면 제자리를 찾아주고픈 욕구가 모락모락 샘솟는 사람을 만나는 게 바람직한 바. 인생의 향방을 결정지우는 가치관은 비슷하면서도 성품이나 습관은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는 관계가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처음에 남자분을 보았을 땐 작은 키에 실망하지 말라는 친구의 귀띔에 머 키가 중요해, 라고 말은 했으면서도 작긴 작구나, 했더랬다. 친구도 같이 작으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 얘가 뼈대 굵은 핏줄이다보이 남자분이 조금 왜소해 보였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역시 외모는 순간이라고, 친구한테 한결같이 잘해주고 가족들에게까지 신경써주는 그 어른스러운 배려심이 고깟 키 따위는 눈에 들오지도 않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하더라. 수줍어하고 삼가하는 가운데에서도 여유있게 배어나오는 자신감 덕분인지 예전엔 분명히 내 친구가 훨씬 더 멋져 보였는데, 이제는 친구가 이 분 말씀을 잘 듣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실제 나누는 대화를 들어봐도 머 흘러가는대로 어떻게든 되겄지, 하는 친구를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자분자분 설득해가는 그 모습이 든든한 오빠 같고 참 보기 좋았다. 피부 좋단 말 듣고 얼굴 빨개지며 좋아할 때는 참 귀여우시더라는. 아마 그녀는 지난 일년 동안 이 모든 모습들을 찬찬히 살펴왔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결론을 얻었던 거겠지.

 어른들 말씀으론 사람은 살아봐야 안다, 고 하시지만 어차피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야기가 될테고. 여기가 미국도 아닌 바. 그리고 살아보고 헤어지는 커플들도 수두룩하신 바. 같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예감 또는 확신에서 출발하는 선택이 여전히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남자분은 친구를 세번째 만난 날.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내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단다. 그 뒤에는 딴생각 안 하고 하염없이 올인하셨다는. 이 부분에서 애들마냥 멋찌다~ 멋찌시다~ 해가며 박수를 쳐대는 내 모습이란. 아이구! 아마 못 해도 60회 이상은 소개팅도 하고 선도 본 것 같다며 쑥스러운 고백을 하시더니만 하지만 인연은 이렇게 따로 있더라구요, 쌈빡하게 마무리 해주시더라는. 몰입의 대가인 나는 눈물 콧물 쏙 빼는 멜로 영화를 한편 보듯, 사뭇 상기된 상태로 속이 꽉 찬 뜨거운 곱창을 야금야금 씹으며 그들의 로맨스에 마구마구 감동의 제스처를 보냈다. 친구가 그러더라. 네가 이러니깐 우리 이분께서 널 자꾸 만나자고 하는거야. 크크큭- 그렇구나. 그런 것이었구나. 난 또 낚인 거로구나. 괜찮냐요? 머 괜찮다. 누군가 나를 만나서 기분이 완전 나빠지는 것보단 낫다고 위안한다.

 머리 쥐어싸매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허접한 축시를 저렴한 액자에 끼워 오늘 건네주었다. 시간 관계상, 낭송은 부디 삼가해 주십사하는 진심을 담아. 사실 축시를 써달라고 졸라댄 친구는 따로 있는데 그 친구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 친구들 살짜쿵 차별하는 거 맞다. 졸라댄 친구의 결혼식이 다음주인데 걔한텐 어쩌면 이 시를 재활용 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내가 손수 창작한 자작시인데 머. 사실 난 내 정성과 마음이 담긴 첫 축시를 이 친구한테 가장 먼저 주고 싶었다. 시는 잘 모르지만 마음에 쏘옥 든다고 해주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뭔가 남에게 부탁하는 걸 항상 힘들어하는 친구여서 자꾸만 더 뭔가를 해주고 싶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듯 반듯하고 양심적인 친구이니 아마도 주변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고 보탬이 되면서 잘 살겠지 싶다. 나도 그녀를 본받아 완전 키 작고, 완전 소심한 남자라 할지라도, 완전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진정한 완소남을 만나야겠다. 화이팅이 나오려고 하지만 왠지 쑥스러워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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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이 남자분을 마음에들어해주셔서 친구분도 정말 좋았을 거에요- 친구의 남자친구가 성에 차지 않는 것도 참 서로 속상한 일이잖아요- 그나저나 전 쫄깃쫄깃 양곱창과 느끼만발 대창을 좋아해요- 근데 너무 비싸

깐따삐야 2008-01-02 23:39   좋아요 0 | URL
근데 곱창에 대한 칭찬멘트가 남자분에 대한 호감멘트를 과하게 초과해서 돌아오는 내내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었어요. ㅋㅋ
웬디양님이 고런 것들을 좋아한다니 되-게 반갑네요! 못 먹는 츠자들도 봤거든요. 곱창이 그런 츠자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쯧쯧.

웽스북스 2008-01-03 00:28   좋아요 0 | URL
괜찮아요 원래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니까 ^^

깐따삐야 2008-01-03 00:29   좋아요 0 | URL
아! 맛있는 거 사주는 사람이 세상에서 젤루 멋있어 보인다고 말했어요.
결국 섞어서 칭찬한 거니깐 흡족하셨을 거여요. ㅋㅋ

웽스북스 2008-01-03 00:32   좋아요 0 | URL
어 나두 그말 디게 자주하는데, 난 먹을 거 사주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이렇게 ㅋㅋㅋㅋ (이말 하면 디게 단순해보임)

깐따삐야 2008-01-03 00:38   좋아요 0 | URL
우리가 이러는데도 메피님이 게장을 안 사주고 계신 이유를 모르겠어요.
우리 메피님 서재에 댓글 끊을까? ㅋㅋㅋㅋ

웽스북스 2008-01-03 00:39   좋아요 0 | URL
우리가 세상에서 메피님을 제일 좋아하게 되는 게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막 스치고 지나갔어요 ㅋㅋ

깐따삐야 2008-01-03 00:42   좋아요 0 | URL
나 같으면 그래도 게장은 사주겠다에 한표. ㅋㅋ

Mephistopheles 2008-01-03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곱창이 맛은 있었겠지만...왠지...쓴맛이 나지 않던가요 깐.따.삐.야.님.
(으흐흐 곱창 사줘요 곱창~~~)

웽스북스 2008-01-03 00:27   좋아요 0 | URL
저 간장게장보다 훨씬 비싸고 대빵 맛있는 곱창집 알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깐따삐야 2008-01-03 00:30   좋아요 0 | URL
그럼 웬디양님이 칼국수 사주고 메피님이 게장 사주시면 제가 곱창 사지요.
제가 마지막 순서라는 사실만 기억하세요? 흐흐흐.

웽스북스 2008-01-03 00:31   좋아요 0 | URL
음...가나다순 어때요? ㅋㅋㅋ

깐따삐야 2008-01-03 00:34   좋아요 0 | URL
그럼 난 통닭, 파전, 호두과자로 메뉴 바꿀래요. ㅋㅋㅋ

Mephistopheles 2008-01-03 00:36   좋아요 0 | URL
이 양반 둘은 댓글 하나만 달면 아주 만담을 해요 만담을....

웽스북스 2008-01-03 00:37   좋아요 0 | URL
에에에 메피님 얼른 조편성해주세요
그리고 전 '닉네임'의 가나다순을 말한 거였는데 ㅋㅋㅋ
예상 덧글 : 그럼 닉네임을 호이호이로 바꿀래요 막이러고 ㅋㅋㅋㅋ

깐따삐야 2008-01-03 00:40   좋아요 0 | URL
그럼 나두 요참에 살청님이 주신 닉넴 혜성 써먹어야징. ㅋㅋㅋㅋ

깐따삐야 2008-01-03 01:03   좋아요 0 | URL
작명소에만 앉아계시긴 몸매가 넘흐 고마우신 거 아녜요? ㅋㅋ

마늘빵 2008-01-0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글 읽다가 멋찌구나 멋찌구나 손뼉치며 막 감동받은 깐따삐야님 상상하니 막 큭큭큭큭.

깐따삐야 2008-01-03 12:06   좋아요 0 | URL
맛난 곱창과 그녀에의 올인 앞에서 감동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요. 난 방청알바 같은 거 하면 무지 잘나갈 것도 같아요. 흐흐.

웽스북스 2008-01-03 12:57   좋아요 0 | URL
이봐이봐 도플갱어 또나왔어요
우리 친구랑 나랑 맨날 우리는 방청객 모드라고 하는데 ㅋㅋㅋ

오오오오~ 아아아아~ 이런 반응 짱! ㅋㅋㅋ

깐따삐야 2008-01-03 13:2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관광버스 안내원이나 방청알바 중에 골라서 투잡도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봐야겠어요.

2008-01-03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3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1-0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보다 댓글놀이가 더 잼 있나벼~~~~~~ㅎㅎㅎ 잘 나가는 자매! ^^

깐따삐야 2008-01-03 21:1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도 고백하시죠? 본문은 안 읽고 댓글만 읽고 가시는 거죠? 그쵸? 훙훙!!

순오기 2008-01-03 23:29   좋아요 0 | URL
천만의 만만의 말씀을~~ 전 착실하게 읽은 것만 댓글 달아욧! ㅎㅎㅎ
퀴즈 내 보세욧~~~~~~^^
너무 길으면 읽지도 않고 댓글도 안 달아요~~~~ㅎㅎㅎ

깐따삐야 2008-01-04 01:13   좋아요 0 | URL
아이구! 순오기님을 위해서 요고요고 너무 길게 쓰면 안 되겠군요.
댓글은 길어도 읽으시면서 너무하시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