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사는 이유로 개봉관을 찾기 어려웠기에 아쉽게 스쳤던 영화였다. 주워들은 풍문만으로도 분명히 좋아할거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글렌 한사드 분)'에게 말을 거는 '그녀(마르게타 이글로바 분)'의 연기가 영 어색해서 잠시 비포선라이즈의 줄리 델피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 우유처럼 뽀얀 미소의 셀린느는 얼마나 싱그러웠던가.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묘한 분위기의 아가씨에게 점점 집중하게 되더라는. For what? 하며 되묻던 눈빛과는 달리 피아노 선율에 녹아드는 그녀의 목소리는 깊은 바다처럼 짙푸르고 아련했다. 낙천적이고 다정다감한 아일랜드 청년. 속을 잘 내비치지 않는 당찬 체코 아가씨.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우연히 조우하게 된 두 사람은 생에 단 한번, 바로 그 사람과 반짝이는 합일을 경험한다.

 밀루유 떼베(Miluiu teve). 별거 중인 남편을 사랑하느냐는 그의 질문에 그녀는 체코어로 대답한다. 밀루유 떼베. 무슨 뜻인지 말해달라고 보채지만 그녀는 끝내 그를 향해서도, 관객을 향해서도 입을 다문다. 막연히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궁금했기에 뜻을 찾아봤고 그 결과는? I love you. 살짜쿵 찬바람은 이는데 아쉽거나 슬프지는 않더라. 거기까지만. 그것으로 족하다는 느낌. 비포선라이즈의 대학생들은 언어로, 장 자끄 아노의 연인들은 몸으로, 그리고 원스의 청춘들은 음악으로 대화한다. 사랑을 말하기 전. 두 사람은 이미 사랑을 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는 말, 보이는 소리인 음악이라는 신비로운 매개를 통해.

 홍상수 감독이 그의 영화들 속에서 누누히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언어란 사람과 사람의 간극 사이에서 번번히 미끄러질 뿐.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속일 때도 많다. 알면서 속아주는 경우까지 보태자면 더더욱 부질없고. 그러나 음악 앞에선 누구나 정직해진다. 눈으로는 악보를 읽고, 손으로는 악기를 만지고, 혀로는 노래를 부르고, 귀로 그 소리를 들으며, 음악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는다. 이처럼 오감의 이탈을 허락하지 않는 음악은 순식간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시에 때론 사람의 틈과 틈 사이를 느슨하게 유영하며 눈치채지 못한 사이, 우리를 고요히 매혹시킬 때도 있다. 악보를 읽지 못하는 나로선 악보란 그저 새카만 콩나물의 나열일 뿐이지만 음악피스에 그려진 음표들의 움직임을 보며 아름답다, 고 느껴본 적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소리로 화할 때 그 신비로운 매력은 배가 되었다.

 원스에서 음악과 영화는 서로의 기운을 온건하게 조화시키며 담백한 뮤지컬 한편으로 승화했다. 예상 외의 많은 관객들이 이 구태의연한 음악 영화 한편에 열광했던 건, 아마 영화라는 취미가 제공하는 수수한 담백함이 그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 장미꽃을 파는 처녀와 우연히 사랑에 빠진다면? 꽃 파는 오후, 어젯밤 그 기타리스트가 다가와 반갑게 말을 걸어준다면? 이러한 소박한 상상에서 출발해 사람들은 각자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음악처럼 그저 흘러가는대로. 마음이 이끄는대로. 단, 방종이 아닌 자유를 위해.

 진하고 뜨거운 에스프레소 커피 같은 일상. 누군가 끼어든다. 오늘은 요로코롬 허브차 한번 드셔보시와요. 옥수수수염차는 없나요? 텁텁한 일상의 당신, 원스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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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1-0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았어요. 안 그래도 아까 청소하면서 원스의 노래들을 다시 들었답니다.
깐따삐아님의 리뷰를 보면서도 '언어의 힘'을 느꼈어요. 원래도 아름다웠지만 그 영화를 더 아름답게 추억하게 만들어 주셨거든요^^

깐따삐야 2008-01-03 15:51   좋아요 0 | URL
우앙~ 원스 OST를 갖고 계신가 보죠?
저도 오늘 다시 듣고싶어서 남들 블로그 돌아다니며 찾아듣곤 했어요.
제 리뷰가 영화에 누가 되지만 않아도 다행이죠. 감사합니다.^^

치니 2008-01-0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원스>만큼 담담하고도 수려한 리뷰입니다. ^-^

깐따삐야 2008-01-03 15:5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당. 치니언니도 옥수수수염차를 좋아하시는 게 틀림없군요! 흐흐.

마늘빵 2008-01-0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원스 좋아해요. 바로 오에스티 사고, 영화두 극장서 두 번이나 보고. :)

깐따삐야 2008-01-04 01:07   좋아요 0 | URL
두 번이나 보셨다니! 정말로 좋으셨나부다.
저는 dvd로 구입했으니 텁텁한 날마다 꺼내봐야죠. :)

웽스북스 2008-01-0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의 리뷰는 정말 영화를 읽어주고 있다는 느낌~ 원스를 보시라~

깐따삐야 2008-01-04 01:10   좋아요 0 | URL
우리 웬디양님 식기 전에 드시라구 영화 보자마자 후다다다닥 써재꼈다는.^^

미미달 2008-01-04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파욥

깐따삐야 2008-01-04 01:24   좋아요 0 | URL
미미달님은 이 영화 보구나서 이럴 것 같아요. "내용도 퐝당하구 결말도 넘흐 욱껴요. 대체 왜들 이러는 거죠? ㅋㅋㅋㅋ"
농담(?)이구요. 한번 보세요. 원스지만 두 번 봐도 좋은가봐요.^^

2008-01-04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4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애 2009-01-06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원스의 그녀를 보면서...선라이즈의 셀린을 생각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