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친구 커플과 저녁을 먹었다. 저수지 옆에 있는 특이한 외양의 건물이었는데 갈매기살과 곱창 맛은 아주 끝내주더라는. 보충수업을 마치고 퇴근한 친구는 살짝 초췌해 보였는데 그녀를 배려하는 남자분의 마음씀이 참 따듯해 보였다. 지난 가을. 처음에 두 사람을 나란히 앉혀놓고 보았을 때는 연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서먹해 보여서 내가 있어서 쑥스러운가, 아니면 아직 많이 친해지진 않은 건가, 갸웃거렸는데 결혼날짜를 잡아놓고 다시 본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삼가고 예의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더라. 남자분은 우리보다 다섯 살 위임에도 불구하고 친구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쓰고 있었고 서로 존대를 해서 그런가. 날 받아놨다고 격의 없어지는 그런 기색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사람 좋은 것처럼 두루두루 친절하긴 해도 속으로는 곁을 잘 내주지 않던 그녀가 결혼하겠다고 통보했을 때 남자분이 확실히 달라보이긴 했다. 분명 뭔가 엄청난 매력을 보았기에 일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머뭇머뭇하다가 요로코롬 결정을 했으리라는.

 우리 친오라버니와 동갑이라 더욱 그런가. 남자분은 내내 푸근한 오빠 같았다. 내가 듣기에도 참 세상 물정 모른다 싶은 우리들의 수다에도 별 반응 없이 씨익 웃음만 보일 뿐.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여유있고 좋아보이더라. 사실 살다보면 뭐 그렇게 심하게 열 올리고 핏대 세우며 언쟁할 일. 별로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결이 날 문제면 세상 사람 모두가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겠지. 고기가 알맞게 익으면 우리 앞으로 얼른 놓아주고 그때그때 필요한 게 있으면 눈치껏 알아서 챙겨주는데, 그 동작 하나하나가 각고의 훈련으로 익힌 매너라기 보다는 그저 원래 유순한 사람처럼 보였다. 남자 보는 눈이 낮아서 곧잘 땅굴 파는 두더지라고 불리우는 나지만 퍼뜩 나꿔채는 직관은 남다른 적중률을 과시한다. 참 좋은 애라고, 잘 부탁드린다고, 마치 엄마 같은 당부를 하면서도 내가 그처럼 진심어린 상투어를 남발하지 않더라도 어련히 알아서 잘 챙겨줄까 싶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한 세상에 신경쓸 일이란 별로 없다고 믿는 친구와 이런저런 일정을 챙기고 꼼꼼하게 추진하는 남자분은 서로 많이 다른 사람이다. 물론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던가, 알뜰한 경제관념 같은 큰 테두리의 가치관은 유사하지만 성향 자체는 그 누가 보기에도 많이 달라 보였다. 친구 자신도 만나면 만날수록, 알면 알수록 다른 점을 자꾸 발견한다는데 그녀를 익히 아는 나로선 반가운 이야기였다. 알라딘의 ㄴㅂ님네 부부처럼 널브러진 사물들에 대해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널브러진 사물들만 보면 제자리를 찾아주고픈 욕구가 모락모락 샘솟는 사람을 만나는 게 바람직한 바. 인생의 향방을 결정지우는 가치관은 비슷하면서도 성품이나 습관은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는 관계가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처음에 남자분을 보았을 땐 작은 키에 실망하지 말라는 친구의 귀띔에 머 키가 중요해, 라고 말은 했으면서도 작긴 작구나, 했더랬다. 친구도 같이 작으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 얘가 뼈대 굵은 핏줄이다보이 남자분이 조금 왜소해 보였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역시 외모는 순간이라고, 친구한테 한결같이 잘해주고 가족들에게까지 신경써주는 그 어른스러운 배려심이 고깟 키 따위는 눈에 들오지도 않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하더라. 수줍어하고 삼가하는 가운데에서도 여유있게 배어나오는 자신감 덕분인지 예전엔 분명히 내 친구가 훨씬 더 멋져 보였는데, 이제는 친구가 이 분 말씀을 잘 듣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실제 나누는 대화를 들어봐도 머 흘러가는대로 어떻게든 되겄지, 하는 친구를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자분자분 설득해가는 그 모습이 든든한 오빠 같고 참 보기 좋았다. 피부 좋단 말 듣고 얼굴 빨개지며 좋아할 때는 참 귀여우시더라는. 아마 그녀는 지난 일년 동안 이 모든 모습들을 찬찬히 살펴왔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결론을 얻었던 거겠지.

 어른들 말씀으론 사람은 살아봐야 안다, 고 하시지만 어차피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야기가 될테고. 여기가 미국도 아닌 바. 그리고 살아보고 헤어지는 커플들도 수두룩하신 바. 같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예감 또는 확신에서 출발하는 선택이 여전히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남자분은 친구를 세번째 만난 날.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내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단다. 그 뒤에는 딴생각 안 하고 하염없이 올인하셨다는. 이 부분에서 애들마냥 멋찌다~ 멋찌시다~ 해가며 박수를 쳐대는 내 모습이란. 아이구! 아마 못 해도 60회 이상은 소개팅도 하고 선도 본 것 같다며 쑥스러운 고백을 하시더니만 하지만 인연은 이렇게 따로 있더라구요, 쌈빡하게 마무리 해주시더라는. 몰입의 대가인 나는 눈물 콧물 쏙 빼는 멜로 영화를 한편 보듯, 사뭇 상기된 상태로 속이 꽉 찬 뜨거운 곱창을 야금야금 씹으며 그들의 로맨스에 마구마구 감동의 제스처를 보냈다. 친구가 그러더라. 네가 이러니깐 우리 이분께서 널 자꾸 만나자고 하는거야. 크크큭- 그렇구나. 그런 것이었구나. 난 또 낚인 거로구나. 괜찮냐요? 머 괜찮다. 누군가 나를 만나서 기분이 완전 나빠지는 것보단 낫다고 위안한다.

 머리 쥐어싸매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허접한 축시를 저렴한 액자에 끼워 오늘 건네주었다. 시간 관계상, 낭송은 부디 삼가해 주십사하는 진심을 담아. 사실 축시를 써달라고 졸라댄 친구는 따로 있는데 그 친구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 친구들 살짜쿵 차별하는 거 맞다. 졸라댄 친구의 결혼식이 다음주인데 걔한텐 어쩌면 이 시를 재활용 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내가 손수 창작한 자작시인데 머. 사실 난 내 정성과 마음이 담긴 첫 축시를 이 친구한테 가장 먼저 주고 싶었다. 시는 잘 모르지만 마음에 쏘옥 든다고 해주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뭔가 남에게 부탁하는 걸 항상 힘들어하는 친구여서 자꾸만 더 뭔가를 해주고 싶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듯 반듯하고 양심적인 친구이니 아마도 주변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고 보탬이 되면서 잘 살겠지 싶다. 나도 그녀를 본받아 완전 키 작고, 완전 소심한 남자라 할지라도, 완전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진정한 완소남을 만나야겠다. 화이팅이 나오려고 하지만 왠지 쑥스러워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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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이 남자분을 마음에들어해주셔서 친구분도 정말 좋았을 거에요- 친구의 남자친구가 성에 차지 않는 것도 참 서로 속상한 일이잖아요- 그나저나 전 쫄깃쫄깃 양곱창과 느끼만발 대창을 좋아해요- 근데 너무 비싸

깐따삐야 2008-01-02 23:39   좋아요 0 | URL
근데 곱창에 대한 칭찬멘트가 남자분에 대한 호감멘트를 과하게 초과해서 돌아오는 내내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었어요. ㅋㅋ
웬디양님이 고런 것들을 좋아한다니 되-게 반갑네요! 못 먹는 츠자들도 봤거든요. 곱창이 그런 츠자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쯧쯧.

웽스북스 2008-01-03 00:28   좋아요 0 | URL
괜찮아요 원래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니까 ^^

깐따삐야 2008-01-03 00:29   좋아요 0 | URL
아! 맛있는 거 사주는 사람이 세상에서 젤루 멋있어 보인다고 말했어요.
결국 섞어서 칭찬한 거니깐 흡족하셨을 거여요. ㅋㅋ

웽스북스 2008-01-03 00:32   좋아요 0 | URL
어 나두 그말 디게 자주하는데, 난 먹을 거 사주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이렇게 ㅋㅋㅋㅋ (이말 하면 디게 단순해보임)

깐따삐야 2008-01-03 00:38   좋아요 0 | URL
우리가 이러는데도 메피님이 게장을 안 사주고 계신 이유를 모르겠어요.
우리 메피님 서재에 댓글 끊을까? ㅋㅋㅋㅋ

웽스북스 2008-01-03 00:39   좋아요 0 | URL
우리가 세상에서 메피님을 제일 좋아하게 되는 게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막 스치고 지나갔어요 ㅋㅋ

깐따삐야 2008-01-03 00:42   좋아요 0 | URL
나 같으면 그래도 게장은 사주겠다에 한표. ㅋㅋ

Mephistopheles 2008-01-03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곱창이 맛은 있었겠지만...왠지...쓴맛이 나지 않던가요 깐.따.삐.야.님.
(으흐흐 곱창 사줘요 곱창~~~)

웽스북스 2008-01-03 00:27   좋아요 0 | URL
저 간장게장보다 훨씬 비싸고 대빵 맛있는 곱창집 알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깐따삐야 2008-01-03 00:30   좋아요 0 | URL
그럼 웬디양님이 칼국수 사주고 메피님이 게장 사주시면 제가 곱창 사지요.
제가 마지막 순서라는 사실만 기억하세요? 흐흐흐.

웽스북스 2008-01-03 00:31   좋아요 0 | URL
음...가나다순 어때요? ㅋㅋㅋ

깐따삐야 2008-01-03 00:34   좋아요 0 | URL
그럼 난 통닭, 파전, 호두과자로 메뉴 바꿀래요. ㅋㅋㅋ

Mephistopheles 2008-01-03 00:36   좋아요 0 | URL
이 양반 둘은 댓글 하나만 달면 아주 만담을 해요 만담을....

웽스북스 2008-01-03 00:37   좋아요 0 | URL
에에에 메피님 얼른 조편성해주세요
그리고 전 '닉네임'의 가나다순을 말한 거였는데 ㅋㅋㅋ
예상 덧글 : 그럼 닉네임을 호이호이로 바꿀래요 막이러고 ㅋㅋㅋㅋ

깐따삐야 2008-01-03 00:40   좋아요 0 | URL
그럼 나두 요참에 살청님이 주신 닉넴 혜성 써먹어야징. ㅋㅋㅋㅋ

깐따삐야 2008-01-03 01:03   좋아요 0 | URL
작명소에만 앉아계시긴 몸매가 넘흐 고마우신 거 아녜요? ㅋㅋ

마늘빵 2008-01-0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글 읽다가 멋찌구나 멋찌구나 손뼉치며 막 감동받은 깐따삐야님 상상하니 막 큭큭큭큭.

깐따삐야 2008-01-03 12:06   좋아요 0 | URL
맛난 곱창과 그녀에의 올인 앞에서 감동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요. 난 방청알바 같은 거 하면 무지 잘나갈 것도 같아요. 흐흐.

웽스북스 2008-01-03 12:57   좋아요 0 | URL
이봐이봐 도플갱어 또나왔어요
우리 친구랑 나랑 맨날 우리는 방청객 모드라고 하는데 ㅋㅋㅋ

오오오오~ 아아아아~ 이런 반응 짱! ㅋㅋㅋ

깐따삐야 2008-01-03 13:2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관광버스 안내원이나 방청알바 중에 골라서 투잡도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봐야겠어요.

2008-01-03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3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1-0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보다 댓글놀이가 더 잼 있나벼~~~~~~ㅎㅎㅎ 잘 나가는 자매! ^^

깐따삐야 2008-01-03 21:1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도 고백하시죠? 본문은 안 읽고 댓글만 읽고 가시는 거죠? 그쵸? 훙훙!!

순오기 2008-01-03 23:29   좋아요 0 | URL
천만의 만만의 말씀을~~ 전 착실하게 읽은 것만 댓글 달아욧! ㅎㅎㅎ
퀴즈 내 보세욧~~~~~~^^
너무 길으면 읽지도 않고 댓글도 안 달아요~~~~ㅎㅎㅎ

깐따삐야 2008-01-04 01:13   좋아요 0 | URL
아이구! 순오기님을 위해서 요고요고 너무 길게 쓰면 안 되겠군요.
댓글은 길어도 읽으시면서 너무하시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