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지음 / 핀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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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창작노트




🔖최진영이 소설을 쓸 때

‘최진영이라는 소설’도 함께 휘몰아친다!


🔖사랑이 필요한 순간 꺼내 읽는

최진영의 날카로운 통찰, 눈부신 사랑


#내주머니는맑고강풍

#최진영

#핀드


최진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 책을 사야할 이유가 충분했다. 나에게 최진영은 그런 작가다.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알았다. 역시 나는 최진영을 사랑한다. 


#프롤로그 전문을 옮겨적어본다.


🔖매일 글을 쓴다.


앞의 문장은 나의 기도이며 다짐이다. 나의 상태이자 정의이다. 하루가 아무리 엉망이었더라도 글을 썼으면 됐다. 외로우면 외로운, 슬프면 슬픈, 우울하면 우울한, 화가 나면 화를 내는, 평온하면 평온한 글을 쓰고 싶다. 딱 그 정도만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생각을 문장에 담으면 어긋난다. 어떤 문장은 내가 신기에는 너무 큰 신발 같고 어떤 문장은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없는 좁은 방 같다. 그래도 나는 문장에 나를 구겨넣는다. 무거운 신발을 질질 끌며 걷는다. 왜냐하면 글은 나를 떠나지 않으니까. 글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비겁하고 치사한 나를, 옹졸한 겁쟁이인 나를, 괴팍하고 까다로운 나를 다 받아준다.


책과 노트와 펜만 있으면 나는 계속 살아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사람에게는 절반만 의지하고 책과 글에 절반을 의탁하면서, 의젓하고 담대한 존재를 꿈꾸며 조용히 살아갈 수 있다.


여기 노트와 펜이 있다.

오늘을 쓸 수 있다.

하루를 살 수 있다.

언젠가 내가 쓴 글이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먼저 손을 내밀지는 않겠지만, 이제 다시 걸어보자고 말을 걸진 않겠지만, 늘 거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만들 것이다.


거듭 넘어질 나를 위해 매일 글을 쓴다. p.9


소설을 쓰는 동안에 행복했다는 최진영. 스스로를 잘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최진영. 소설쓰기 이외에는 서툴기만 한 최진영. 사랑을 모르고도 사랑을 한다는 최진영.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모두 떠날 거라고 믿었던 최진영.


🔖비겁하고 치사한 나를, 옹졸한 겁쟁이인 나를, 괴팍하고 까다로운 나를 다 받아준다. p.8


자주 비틀거리고 종종 우울했으며 가끔 기뻤던 나는 나 자신을 예뻐할 수가 없었다. 최진영이 스스로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문장을 만날 때면 그렇게 위로가 됐다. 그래서 자꾸만 울컥하는 마음이 다잡으면 읽곤 했다. 최진영은 스스로 약하고 서툴고 부족한 부분들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도 전혀 약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썼고, 또 썼고 계속 썼으니까. 쓰는 일이 괴로운 시간일 때도 있었겠지만 결국 최진영은 쓰는 사람이었다. 매일 쓰는 일이 매일 기쁘기만 했을까. 소설을 여러 권 출간한 작가임에에도 소설이 써지지 않아 고군분투했던 시간, 홀로 견뎠을 그 시간, 그렇게 최진영의 창작노트는 뭉클하고 애틋하게 다가왔다. 


거듭 넘어질 나를 위해 매일 쓴다는 최진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맑고 강풍이 함께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마음 속은 언제나 맑음과 소용돌이가 공존했었다. 연약함과 강인함은 별개의 마음이 아니다. 주머니에 담아둔 마음을 꼬옥 안아본다. 그렇게 맑았다가 강풍이 풀었다가 비가 왔다가 다시 맑았지고, 그러다보면 넘어지고도 씩씩하게 일어서게 될 날이 올 것이다.


🔖P. 23 사랑하는 사람이 외로워하면 미안하다고 말하자. 미안해. 내가 너와 다른 사람이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와 내가 다르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있어.

사랑이 자취를 감추면 기다리자. 사랑도 지겨워져 바깥으로 나가고 싶을 때가 있겠지. 고치는 대신 새로운 에피소드를 쓰고 싶을 때가.


🔖P. 145 나에게는 그 세계가 있으니까 현실에서 쓸쓸해도,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현실의 인물과 상황에 상처받거나 외면당하더라도 소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만 알고 있는, 내가 쓰고있는 소설이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 돌아갈 곳이 있었다. 소설이 나의 집이었다. 그 감각이 그립다. 그런데 나의 집은 어디로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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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읽고 매일 필사하는 #하리의서재 📚

✒️ 읽고 필사한 후 늦은 리뷰를 써요.

📖 오늘 당신은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 책에 밑줄을 긋고 문장을 수집합니다.

✨️ 당신에게 책과 문장을 배달합니다.


#필사하리 #하리그라피 #하리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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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너머의 지식 - 9가지 질문으로 읽는 숨겨진 세계
윤수용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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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도서제공




당신이 보고 있는 세상은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세상을 둘러싼 껍질을 벗겨내라!

9가지 질문으로 읽는 숨겨진 세계

#시선너머의지식

#용수용

#용두사미

#북플레져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지식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모습은 일부분이다. 수없이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알고리즘에 따라 치우친 정보에 휘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시야를 더욱 넓혀 줄 책이 나타났다!

역사, 사회, 문화, 자본을 아우르는 다양하고 깊이있는 지식의 세계로 가보자!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고, 익숙한 시선이 아니라 시선 너머의 지식을 보게 하는 책을 만났다. 용두사미라는 유튜브채널은 모르지만 이 책을 일고나니 용두사미가 궁금해질 지경.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구나. 왜? 라는 질문이나 궁금증, 호기심이 사라진 것만 같은 요즘, 사소해보이지만 그 안에 엄청난 이야기가 담겨있는 9가지 질문을 들여다보았다.


싱가포르 뉴스에는 왜 이렇게 자주 무례한 행동이 보도되고 있을까? 아이슬란드에는 맥도날드가 없다고? 일본방송에는 어째서 서양인뿐일까? 존경받던 프랑스 흙수저 총리는 왜 권총으로 자살을 했을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어쩌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버린건지?


흥미진진한 질문들을 눈길을 끈다. 왜라는 물음표가 자꾸만 떠오른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국가들의 숨은 이면을 들여다 볼 기회다. 




이것이 바로 《시선 너머의 지식》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평가하고, 우리는 왜 그 평가를 내면화하는가?”, “선진국이라는 기준은 누구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그 시선을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시선을 낯설게 바라보게 합니다. 표면적인 평가와 이미지를 넘어, 그 이면의 역사적 맥락과 본질을 파악하려는 태도를 제안합니다. 이를 통해 나와 세계를 새롭게 연결하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돌아보는 깊은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동시에 지식이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틀이며, 기존의 인식 구조를 재구성하는 힘임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프롤로그

웡 전 부총리가 말한 이 대목은 왠지 키아수로 상징되는 싱가포르 사회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것 같이 들립니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마인드셋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내뱉은 허울 좋은 말들은, 이미 깊숙이 뿌리박힌 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싱가포르 국민들에게는 그저 허공을 맴도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웡 전 부총리가 속해 있는 인민행동당이야말로 그런 무한 경쟁의 마인드셋을 싱가포르에 이식한 장본인들이니 말이지요. - P80

맥도날드라는 프랜차이즈 하나가 없어졌다고 해서 이런 아이슬란드가 선진국에서 탈락되는 것도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는 오랜 시간 지배당하며 타자화 되어온 역사와 더 강한 국가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맞물린 나머지 ‘맥도날드가 없는 국가들’ 대열에 합류한 것에 불안과 상실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맥도날드 부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소 아이러니합니다. - P171

프로그램은 일본 문화에 감탄하는 미국인의 시선을 통해 일본인의 자긍심을 확인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 사회에 깊숙이 내재한 서구 중심적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단면일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일본적인 것’은, 사라진 정신적 정체성을 메우기 위해 외부로부터 차용되고 구성된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국체로 표상되던 과거의 일본 정신은 군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매장되었지만, 그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착한 국민’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강요받았습니다. - P219

오늘날 프랑스는 혁명 정신의 본산임에도 불구하고, ‘법 앞의 평등’을 내세우는 공화국이라는 이상과 실제 사회구조 간의 괴리 속에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는 여전히 국가의 상징으로 남아 있지만, 그 이상이 상류층의 문화와 제도에 의해 독점되는 현실은, 프랑스가 아직도 구 제제의 모순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엘리트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봉건제도를 떠안고 있는 한, 프랑스 사회는 과연 그 슬픈 반복의 운명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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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아이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8
김혜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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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도서제공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는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다

단, 고통 어린 기억을 망각의 숲에 가둬두고서


#돌아온아이들

#김혜정

#현대문학


폭염이 지속되는 한여름 어느날, 상백산에서 아이들이 발견됐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아이들과 관련된 정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 노인이 경찰서에 찾아와 말했다.


“60년 전 잃어버린 제 딸이 분명해요.”


이 아이들의 정체가 뭘까?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만 살아남은 후 말을 잃어버린 '담희' 

30년만에 나타나 담희의 고모라고 말하지만 어린이의 모습인 '민진' 

담희의 미술심리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보경'


이야기는 담희와 민진의 만남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대체 30년 동안 민진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상처입고 외로웠던 담희는 있는 그대로 봐주는 민진과 함께하면서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런데 다시 사라져버린 민진, 민진이 꿈에서 봤다던 숲의 모습이 미술치료 선생님 ‘보경’의 교실에서 보았던 그림과 비슷하다?


흥미진진하지만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성장 멈춘 아이들이 다녀왔던 또 다른 세계 역시 신비롭고 아름답다. 도망친 아이들, 스스로 선택했지만 갇혀버린 아이들, 자라지 않는 아이들.


그러나 민진을 구하려는 담희의 용기와 의지는 분명했다. 그 열쇠를 쥐고 있던 보경과 민진과 보경의 아미, 모모와 진설까지. 다정하고 따뜻한 아미(친구)가 있기에 결국 우리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힘, 더 이상 머물러 있고 싶지 않은 마음, 우리는 함께, 더불어, 같이 나아가야 함을 깨닫는다. 손 내밀고 손 잡아주며 그렇게.





“나는 이제 자라고 싶어요. 나의 시간은 흐를 거예요.” p.142


#책속한문장





30년 전 사라진 고모가 돌아오다니. 그것도 사라졌던 그 모습 그대로. 어쩌면 그래서 담희는 말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삶에서 자꾸만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니까. 담희는 옆자리에 있는 돌아온 고모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p.26-27




“영랑, 너는 나의 아미야.”

“아미가 뭐야?”

영랑은 아미라는 말이 뭔지 몰랐다. 아미는 마인계 말로 ‘옆에 서 있는 사람’, 친구를 뜻한다. 진설이 설명해주자 영랑도 “너도 나의 아미야”라고 말해주었다. p.71-72


‘슬픔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p.82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뿐이다. 진설과 손을 잡은 순간 보경의 흐릿했던 기억들에 색이 입혀지며 총천연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p.122


모모는 민진이 마력 없이도 나무를 잘 타고, 민진이 노래를 부를 때면 음색이 무척이나 맑아 풀과 꽃마저도 조용히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민진이 가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있을 때가 있고 그때 민진의 눈동자 안이 텅 비어 있어 그걸 보는 모모마저 슬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해줄 때 담희는 마음이 꼬집히는 것 같았다.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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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슬픔 안에서
소운 지음 / 여름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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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에세이 #독립출판

작고 여린 동물들에 대한 사랑
나를 눈감게 하는 조용한 위로
만질 수 있는 행복과 맡을 수 있는 마음

#싱그러운슬픔안에서
#소운
#여름섬

작은 일상 속의 따뜻한 순간들을 다정하게 그려낸 『다정한 건 오래 머무르고』의 소운 작가의 새로운 에세이!

<다정한 건 오래 머무르고>를 읽고 소운 작가님을 알게 되었어요. 아프고 슬픈 마음, 상처입고 괴로운 시간, 사람이 싫고 사람이 미운 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정함이 남는다고. 그렇게 다정한 마음으로 뭉클하게 만들었던 에세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어요. 작년 가을, 작가님이 대전북페어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따로 구매하지 않고 북페어만을 기다렸지요. 작가님께 직접 사인을 받고 구매한 이 책은 지난 겨울을 함께했습니다. 오래 읽었고 오래 필사했어요.

싱그러운 것은 슬픔이 될 수 있을까요? 싱그러운 계절은 여름인데 커버는 왜 크리스마스 트리일까요? 여름과 겨울, 기쁨과 슬픔. 슬픔도 싱그러울 수 있고 계절이 흐르듯 겨울을 건너 여름으로 가고,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크리스마스같은 따뜻한 순간이 있으니까요.

작가가 작고 여린 존재로 위로받고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크고 대단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내 곁에 있는 존재의 작은 온기가 있다면 분명 우리는 괜찮아질 거라고 믿게 되었어요. 슬픔이 슬픔이라서 힘든 게 아니라 이 슬픈 시간도 지나가잖아요. 지금은 아플지라도. 슬픔을 품에 안고서도 우리는 마음이 벅판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지금 살고 있고, 살아 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특별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작가님의 문장이 있어 지난 겨울을 버티고 이겨내고 살아 낼 수 있었습니다. 문장으로 분명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아무리 비워 내도 차오르는 슬픔을 가득 안고도 마음이 벅찬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된다. 어쩔 수 없이 내일을 마주하는 게 아닌 것만으로도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살고 싶다. 살아 내고 싶다. 29

필사한 문장이 무척 많았습니다. 겨울이 되면 또 생각이 나겠지요.

주머니가 좋아졌다. 갈 곳 없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으면 한동안 안정감을 느꼈다. 사람이 쏟아지는 거리에서는 주머니에 머리를 박고 숨고 싶을 때도 있었다. 오늘이 그랬다. 헝클어진 마음은 얽힐 대로 얽혀 있고 입안이 자꾸 말랐다. 온갖 기분을 안고 집에 오니 강아지가 나를 반겨 주었다. 고작 두 시간 집을 비웠을 뿐인데도 나를 향해 달려온다. 그래, 너는 내가 만질 수 있는 행복이었지.

고마워.
나 반겨 줘서 고마워.
내가 뭐라고.

꽉 채운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어 감기 걸린 마음을 하나씩 꺼낸다. 베개만 한 몸으로 이런 간절한 사랑 줄 거면, 너 무지 오래 살아야 해. 냄새로 내 발자국을 세어 보는 작은 몸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구멍 난 마음은 이렇게 또 채워진다. 11

집으로 오는 길에 앞서 걸어가는 솜이의 뒷머리에 대고 말했다.
누나도 내심 네가 낯선 사람들을 좋아하길 바랐던 적 있어. 그게 얼마나 너에게 미안한 욕심인지 이제는 알게 되었지…. 네가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았더라면 여기저기 꼬리 흔들면서 산책했을 거야. 네가 귀여움받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괜찮아. 성격 바꾸지 않아도 돼. 사람이 이렇게 만들었는데 네가 왜 변해야 해? 내가 조금 더 조심하면 되지. 그러니까 새로운 사람 손길 싫어해도 되고, 우리만 좋아해도 돼. 네가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살아도 괜찮아. 우리 그렇게 오래도록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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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가못 샤워 STORAGE BOOK & FILM 11
이아로 지음 / 저스트스토리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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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에세이
작가 소개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울음을 머금은 손으로 세 번의 겨울을 적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테니 나와 함께 울어요.

울음을 머금은 손으로 세 번의 겨울을 적었다고 했다. <이렇게 새벽을 표류하다 아침을 맞이하겠지>와 <사랑이 창백할 수도 있지>에 이어 <베르가못 샤워>까지 이아로 작가의 이별 3종세트다.

#베르가못샤워
#이아로
#저스트스토리지

스토리지 프레스 에세이 시리즈 #11
첫 연인이었던 ‘언니‘에게 부치지 못한 마음

한때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하고 난 후 토해내듯 풀어낸 그녀의 문장은 처절하다. ‘그저 마음껏 울음을 토해내고 싶다(10)‘고 했지만 제대로 울지도 못하던 그녀의 슬픔은, 적막하다.(13) 사랑했던 시간보다 이별을 마주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별하는 내내 아프고 아파서 오롯이 슬픔을 껴안아 기어코 작별을 맞이했다. 오랜 시간 무력감과 우울, 슬픔과 그리움을 품에 안고서. 그렇게 보낸 시간은 문장으로 세상에 나왔고 그렇게 우리는 그녀의 글을 만날 수 있었다.

˝미워하려고 해도 도저히 미워지지가 않아.˝

사람을 미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를 애정하는 일에 비해 미움은 이렇게나 힘들고 버거운 일이구나. 미움이든 애정이든, 모든 것이 언니에게 향하는 것이 애석할 뿐이었다.(29)

미워하지 못해서, 여전히 그리워서 그렇게 오래 아팠나보다. ‘목구멍에 걸린 눈물이 도저히 삼켜지지 않았다.(32) 흐르지 못한 눈물은 가슴에 멍처럼 남아 두고두고 가슴 저리게 만들었던 거겠지. ‘그리움뿐인 언니의 기억은 전부 소화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려나.(41)‘ 소화되지 못하고 명치에 걸려 잊혀지지 않고 몸을 둥그렇게 말고 그리움을 움겨쥘수밖에.

˝네가 나의 폐허를 보고 도망가버리면 어떡하지?˝(58)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믿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볼품없는 동굴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그럴리가 없지. 좋았던 것들이 너무 많아서 분명 슬프고 괴로웠던 시간이 있었다 할지라도 후회할리 없다. 그러니 그리움에 허우적대는 것일테다.

이 결핍을 어떻게 다시 메울 수 있을까.
완전히 상실되어버린 이것을.(70)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지고 짓밟힌 마음들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세 번의 겨울, 세 권의 책에 풀어내도 모자랄 그 마음들이 이제는 겨울이 건너 봄으로 가고 있을까? ‘낭만이 뛸 때마다 멍으로 물드는 가슴‘(120)이 더는 멍들지 않고 멍들었던 가슴을 쓰다듬어 줄 사람 만났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누군가의 행복을 빌면 나에게도 행복이 올 것만 같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그녀가 더 이상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다음 책에서 만나는 그녀의 이야기는 조금은 따뜻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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