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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혼자
김현경 지음 / 웜그레이앤블루 / 2021년 12월
평점 :
오롯이, 혼자 _ 김현경
최근에 독립서적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나의 좁은 시야와 편견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가벼운 글, 조잡하거나 촌스러운 디자인, 일기와 다를바 없는 졸문들, 이라며 후려치기를 해왔고 쓴다는 행위 자체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쓰는 노력을 해온 작가들의 노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차없는 비판을 했었다.(마음속으로, 건방지게) 김현경 작가의 글은 그런 내가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글을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의미없는 짓이었는지 생각하게 했다. 반성합니다.
그저 쓰는 행위 그 자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 거북하지 않고 편안하게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것, 짧지만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글이 있다는 것, 글을 읽으면 언젠가 과거의 나를 만나게 하는 것. <오롯이, 혼자>를 읽으면서 마음 여러 번 내려앉았다. 문장과 문장이 머릿 속에 맴돌아 필사를 멈출 수가 없었다.
글을 읽으면서 지난 날의 나를 많이도 떠올렸다. 오롯이 혼자 버텨내야 했던 순간들과 공허한 마음들로 괴로운 날들이 많았다. 외롭지만 외로운 게 좋은 날도 있었다. 혼자여서 외롭기보다 함께여서 외로운 날들도 있었다. 다정하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무던히 애쓰던 날들도 있었다. 애쓰는 건 한계가 있고 애쓰는 내가 피곤해져 다시 무너지곤 하는 날들도 있었다. 이해하지 못해 두렵고 속상한 날들도 있었다. 삶이 바닥인 것 같아 무서웠지만 그 바닥에 머물며 우울 속에 갇힌 날들도 있었다. 완벽하지 못하면서 좋은 사람이고 싶고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나를 포장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도 있었다.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위로 같은 것을 느낄 때 오히려 너는 이런 사람이었어, 하며 흉터같은 것을 마주하게 만드는 말(p.73)이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의 글로 위로받았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지난 날들이 나에겐 상처이고 낙인처럼 찍혀 나를 평가하고 미워하고 싫어하게 될까봐 오히려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감싸고 나를 숨기고 뾰족한 말들도 누군가를 상처주고 밀어내던 내가 있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거란 생각을 버리지 못했고 네가 뭘 알아, 라며 단단하게 나를 보호하고 방어막을 만들었었다. “나는 이런 점에서 괜찮은 사람이에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두어 가지쯤이라도 있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p.160) 라던 작가처럼 괜찮지 않은 나를 보며 후회하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위로하고 당신을 위로하는 일은 늘 쉽지 않았다. 어찌할바를 모르고 머뭇거렸던 내 모습이 책 속에도 있었다. 내 마음이 모두 작가의 마음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가장 좋은 위로는 그저 함께 가만히 앉아있고, 지금 함께 울어주는 일 아닐까(p.184)라는 생각.
저의 기록을 통해, 작은 것들을 함께 볼 수 있다면, 고마운 줄 몰랐지만 고마웠던 사람들을 헤아린다면, 그리고 늦은 새벽을 함께 두려워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도 누군가와, 누군가도 저와 함께,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럴 수 있다면 고맙겠습니다.(p.184)
지난 날의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늘 제자리인 것만 같고 나약한 인간이 기본값인 인간이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괜찮다. 작은 순간순간 내 옆에서 힘을 주었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은 나를 잊었을 수 있지만 내 마음 안에 남아있는 소중한 위로들이 있다. 오롯이 혼자여도 씩씩하게 걷고 내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 사람과도 함께 걷고 고마워하고 두려워하면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럴 수 있기를. 그럴 수 있다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