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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갔다가 오타루 살았죠
김민희 지음 / 달 / 2023년 10월
평점 :
삿포로 갔다가 오타루 살았죠, 김민희
불시에 찾아오는 인연이 소중하고 귀한 도시
살아가듯 머무르는 ‘게으른 여행자’의 생활 여행
2014년 12월 31일.
삿포로행 비행기에 올랐다. 2014년 마무리는 홋카이도에서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미니언니, 미니짱이 있었다.
미니언니를 알게 된 건 시인과 함께하는 태백여행에서였다. 시인을 좋아하는 우리가 모였고 그곳에서 우리는 인연이 되었다. 시인의 사인이었던 인연이네요가 이루어졌던 역사적인 순간. 그렇게 언니는 진짜 여행자가 되었다. 언니를 보러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언니를 부추겼던 사람들 안에 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감사하게도 나의 이야기가 한 챕터 실렸다.(나 책에 나온 사람이야!!! 꺄~~)
오타루는 그런 곳이었다. 눈으로 뒤덮힌 하얀 세상. 러브레터의 바로 그 곳. 그리고 언니가 있는 곳. 언니가 핼퍼로 있던 모리노키에서 2014년의 마지막과 2015년의 시작을 보냈다. 언니가 특별하다고 했던 그 새해의 오치세를 나도 맛볼 수 있었다. 그 후로 하지 않았다고 하니 단 한번뿐인 그 새해가 나에게 두번다시 없을 특별한 새해였던 것이다. 물론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지만 그래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타루비루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카운트다운을 했던 일, 새해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고 일본의 새해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일, 사람이 아무도 없던 테미야공원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걸었던 일, 나홀로 걷던 러브레터의 장소들, 지브리 오르골과 버터샌드, 덴구야마에서 보던 야경, 바다가 보이는 전철, 일본인뿐이던 징기즈칸 가게. 어느 하나 설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에겐 그저 3박 4일의 시간이었지만 그후로도 언니는 홋카이도사랑에 헤어나오지 못했다. 언니가 계속 여행자의 길을, 사랑하는 오타루를 더더 사랑하는 사이, 이렇게 멋진 책을 내게 되었다. 나는 언니가 부러워죽겠다. 언니는 2014년부터 느리지만 천천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 저 멀리에 있다. 나는 그때의 추억만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 샘난다. 오타루에 다녀온 후 <윤희에게>를 보고 다시 오타루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책에도 나오듯이 <윤희에게>는 오타루를 사랑하게 되는 영화니까. 이 책을 읽고나면 <러브레터>와 <윤희에게>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도 <윤희에게>에서 고모가 편지를 부치던 그 우체국에서 사랑하는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결국엔 무언가를 이루게 된다. 여행하듯 살고, 살아가듯 여행하던 언니가, 게으른 여행자로 꾸준히 살아온 언니의 삶이 이 책에 있다. 혼자여도 좋은 여행, 그 곳 오타루에, 홋카이도에. 그렇게 사랑에 빠진 언니를 응원한다. 그리고 또다시 그 옆에 내가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언니에게도 2024년 10년 후이겠지만 나에게 2024년이 10년 후다. 우리가 모리노키에서 다시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있도록 나도 부지런히 준비해야겠다.
그러니,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
응, 10년 후에!
p.81
일단 눈물부터 닦고 돈벌러 가야지.
그해 겨울, 눈이 미친 듯이 내리던 설국에서 만났음을 모두 기억하길. 또 언젠가 다시 그곳에 우리 파묻힐 수 있기를. p.50
'여행하듯 살아가고, 살아가듯 여행하자'라는 생각을 늘 해요. 꼭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우리 동네를 걷더라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살고, 비행기를 타고 낯선 땅에 내리더라도, 동네 산책하듯 걸음걸음 여유롭게 내딛기를 바랍니다. p.100
사람은 이렇게 평생 배우는 것 같다. 책상에 앉아 배우는 것도 값지지만 살면서 누군가에게 스미듯 배우는 것들이 있다. 그 사람의 생각에서, 행동에서, 마루에서 느껴지는 마음들이 좋아, 어느덧 나도 따라 하게 되는 그런 것들. p.227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을 거란 예감.
하지만 그 모두의 방향은 좋은 쪽일 거라는 것.
잘했고, 잘할 것이고, 그래서 또한 잘될, 내 인생. p.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