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최현우

시인이 이십대를 지나는 동안 써왔던 시들을 모았다. 밝고 빛나는 미래가 기다리는 이십대의 청춘은 아닐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을 꽤 싫어하지만 시인의 이십대는 슬픔과 아픔에 젖어있었던 것 같다. 어두운 방구석에서 홀로 있거나, 통증이 동반되는 불행의 시간들, 깨진 컵 같과 같은 아픔이 있다. 가장 밝은 것은 두들겨맞아 부서지고 피멍 든 채 절뚝거렸으므로(p.87 와디 럼)
한밤중에 이불 속에서 튀어나오는 후회(p.108 추억과 추악), 아끼던 빛깔을 쏟아버렸으며(p.79 회색이 될까), 불행한 말들만 가득했던 나날들이었겠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견디고 버티다보면 지금에 와 있겠다. 두들겨 맞아 부서지고 피멍 든 채 절뚝거려도 당신에게 빛을 주려고 담았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망가지지 않은 것들을 주고 싶었다는 시인의 말이 생각한다. 망가져도 괜찮다고. 망가지지 않은 것들을 주고 싶으 그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고.
“반짝거리는 모든 세상에는 좋은 슬픔”이 있으므로
“날씨는 태어난 곳의 기억을 버리지 않”으므로
“아름다운 마음들이 여기 있겠습니다”
#출판사리뷰
불을 끈다
방구석에 앉아 무릎을 당겨 얼굴을 묻는다
혼자서,
p.17 #젓가락질가운데
통증을 빻아 만든 가루
시간에 불행을 섞어
한 웅큼 집어 바르고
모르는 거리에서 몸을 말리면
p.24 #회벽
모두 집어던졌지
그때 깨진 컵은 내 살을 기다리며
서랍 속에서 뿔이 되었던가
접은 신발 벗고
피 묻은 유리를 꺼내는 일
아픔은 꺼낼 수 없는 일
p.42 #컵
어디로도 가지 않았는데 돌아가고 싶은
돌아갈 수 없는 사람처럼
물기 없이 말라붙은 얼굴에는
영혼 대신 페인트를 바른
하나의 표정
하나의 표면
p.48 #목각인형
그러나 아직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둥글게 따라 눕
는다. 사람이 내 쪽으로 돌아누워 아무말 없이 손으로 귀
를 막아준다.
p.77 #kissingagrave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가장 아끼던 빛깔을 쏟아버렸다
p.79 #회색이될까
빛을 담았어
당신에게 주려고 했어
내게 가장 밝은 것은
두들겨맞아 부서지고
피멍 든 채 절뚝거렸으므로
그걸 담아 팔려고 했어
p.87 #와디럼
후회는
지키지 않은 약속의 잘려나간 부분들로 만들어지므로
한밤중의 이불 속에서 섬뜩하게 튀어나오고
p.108 #추억과추악
우리도 그럴 거야
돌려 말한다고 해서 돌려지지 않는 대화가 있다
내가 나에게 속삭이는 마음은 왜
불행한 말들만 있을까
p.114 #선한종말
슬프지 않다
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잠깐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날 밤은 그림자가 그림자를
발밑에 두고 갔다
어떤 마지막보다 그 처음을 생각한다
생각이 난다는 건
자꾸 반송되는 주소 하나가 있다는 건
보낸 적이 없는데 돌아오는
이름과 글씨와 창백한 종이들
p.116 #아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