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된다는 것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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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읽어 놓고 제법 읽었을 걸? 하고 그저 무심하게 넘어가는 작가들 가운데 니콜 크라우스가 있다. 작년 초에 이이가 쓴 <위대한 집> 또는 <그레이트 하우스>를 읽고 쓴 독후감에도 “니콜 크라우스라는 이름은 귀에 못이 박이게 익숙하다.”라고 썼으면서 사실은 그게 첫번째 읽은 크라우스였던 것. 그리고 같은 문단 마지막에는 “이제 정신차리고 크라우스도 계속 읽어봐야겠다.” 해 놓고 이제야 소설집 한 권을 보탠다. 열 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소설집으로, 좋은 소설가의 작품집이 늘 그렇듯 모든 작품이 균일하게 좋다. 이이가 쓴 열 작품 모두 마음에 들지만 모든 작품에 포함되어 있는 니콜 크라우스의 유대 정체성은 별도로 하자. 원래도 그러했지만 이란 전쟁 이후 유대인, 아니지, 모든 유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깊은 관련이 있고, 이스라엘에 친인척이 살고 있어서 이스라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대를 이루는 전 세계 유대인은, 당분간이라는 단서를 달고 말해서, 이제는 더 알고 싶지도 않다. 이건 세상의 모든 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선량한 대부분의 유대인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80년 전에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당했던 무한정의 학살과 탄압과 폭행을, 이제 자신,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과 중동 등의 인종을 탄압하고 몰아낼 수 있는 근거로 삼는, 마치 면죄부로 써먹는 듯한 그들의 정부의 행악이 정말로 가관이라서. 면죄부도 그냥 면죄부, 은화 30냥에 죽은 후의 천국을 보장하는 종이쪼가리가 아니라 자기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피에 푹 젖은 면죄부. 그나마 죽은 후의 천국이라는 거짓이 아니라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 확실한 면죄부.


  아쉽게도 니콜 크라우스도 이스라엘에 특히 친척이 있는 듯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벨라루스와 헝가리 출신으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이스라엘로 거처를 옮겨 살다가 만나 혼인했다. 할아버지는 20세기 초반의 유대남자 답게 가부장적이었으며, 할머니는 그런 남편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았다. 《남자가 된다는 것》에 실린 작품 속의 조부모를 보면 그랬을 거란 말이다. 전화해보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다. 그냥 짐작이다. 이스라엘에서 혼인을 하고 자식을 여럿 두었는데 이 가운데 한 명이 니콜의 아버지. 할아버지는 뉴욕에 와서 작은 규모가 아닌 듯 보이는 사업을 했고, 니콜의 아버지는 결혼을 했지만 할아버지와 대판 싸움을 벌여 유대인 특유의 가족 기업에서 쫓겨난 모양이다. 그래 수입이 극적으로 사라지자, 원래 들어오는 돈이 없으면 부부싸움이 격정적으로 심각해지는 법, 이 부부도 예외가 아니었고, 이런 와중에도 니콜의 아빠는 컬럼비아대학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녔단다.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따고 전공의 수련을 마친 아빠는 크게 벌어진 부부사이도 좀 회복해볼 마음이 없지 않았을 터인데, 가족과 함께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해서 외상외과 임상강사를 했단다. 책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면 그렇다. 이렇게 아빠는 이스라엘에서 출생한 엔지니어 경력의 정형외과 전문의. 엄마도 빵빵한 직업이 있던 것 같은데 하여간 독일과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부부의 딸이다.

  비록 부모는 유럽 파시스트의 박해를 피해 런던으로 옮겨 갔거나,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장했더라도, 이들 부부의 딸 니콜의 (외)조부모 가운데 한 명 또는 니콜의 엄마는 이스라엘에서 노년을 보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작품 속 이스라엘/예루살렘과 친숙하고 잘 안다. 책 속의 내용처럼 친척이나 할머니 또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있던 건 픽션이라도, 이스라엘인 언론인이자 소설가 곤 벤 아리라는 남자와 적어도 5년 이상 연인 이상의 관계가 있었던 건 사실인 듯하다.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 정도이니 이것도 꼭 믿을 필요는 없지만.


  비록 니콜 크라우스가 작품 속에서, 자기 딸 가운데 한 명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탄압에 반대하여 장갑차인지 탱크 앞에서 벌렁 누워 시위를 하고 있다는 것도 나오기는 하나, 자신의 입으로 이스라엘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폭력에 관해서는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도 일언반구가 없다.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하자는 시오니즘을 새롭게 해석하여,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온 유대인들은 다시 유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팔레스타인에는 원래 팔레스타인에서 살던 유대인만 남아 있으라고, 그러면 1940년대 이전의 팔레스타인 땅에서처럼 현지 사람들과 유대인들이 오소도손 서로 재미나게 콩 볶으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 필립 로스를 따라 하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의 공존방법을 모색하고 주장하는 데 노년을 모두 바친 아모스 오즈, 자기 아들이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와중에 전사했지만 그럼에도 아랍 국가들과의 평화 공존을 주장하고 있는 다비드 그로스만 등과는 의견 정도를 같이 할 수는 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 이게 많이 아쉽다는 얘기.

  사업에 성공해 뉴욕에서도 부자로 사는 할아버지, 정형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는 아버지의 공부 잘하는 손녀이자 딸이면 자랄 때부터 어땠겠어? 가족을 비롯한 친척까지 모두 나서서 1974년 범띠 소녀를, 그때 기준과 시각으로 얘기해서, 제일 폼이 나는 미술사나 예술사 박사 정도 따서 뉴욕의 대형 갤러리의 큐레이터 정도를 하기 바랐겠지. 우리나라 엄마들하고 비교해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 극성 유대 부모는 니콜도 9학군과 특목고를 빼놓지 않았으니 어쨌건 뉴욕하고 비교해서 당시 살고 있던 바젤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제네바의 국제학교에 다니게 했다. 그래서 독자는 이 책 전편을 통해 미국 출신의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심성 착하고, 독립적이고, 마음껏 즐기는데 서슴없으며, 적어도 금전문제에 관해서는 곤란한 경우를 당해본 경험이 없는 즐거운 인생을 구경할 수 있다.


  근데, 이렇게 써 놓으니 작품들이 별 거 없다고 칭얼대는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책의 제목이 “남자”가 된다는 것이니, 다분히 페미니즘적일 거 같기도 하고? 물론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그냥 사람에 대한 작품들이다.

  진짜 소설 잘 쓴다. 내용은 여태까지 푼 구라 때문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라도, 소설 잘 쓴다는 건 꼭 말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어느 하나 어거지로 가져다 붙이고, 우연이 기막힌 타이밍에 맞춰 등장하고, 하나를 성취하기에 아등바등, 죽기살기로 덤벼들어야 할 사건 같은 것도 없다. 그러면서도 재미있으니 내가 상찬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가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질투까지 나더라니까. 그래서 다음 번에 읽을 니콜 크라우스로 <사랑의 역사>를 찍어 놓았다. 내년 초에는 독후감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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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11-06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쓰긴합니다만…….. 묘하게 더 손이 안 가는 작가입니다. 😂

Falstaff 2026-11-06 16:53   좋아요 0 | URL
제 말이 그거 아닙니까. 여간해서는 손이 안 가는... 근데 읽어보면 잘 쓰는 ㅋㅋ

건수하 2026-11-06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역사> 에는 이스라엘 친척 얘기는 없습니다. :)

Falstaff 2026-11-06 16:54   좋아요 0 | URL
다음 읽을 크라우스로 찍어두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락방 2026-11-06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해보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전화 해보지 그러셨어요!!

저는 [사랑의 역사] 와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만 읽었는데, 이 책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Falstaff 2026-11-06 17:37   좋아요 0 | URL
ㅋㅋㅋ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제가 좀 바빠서 말입죠.
 
먼 곳에서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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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디아스는 두 명. 한 명은 주노 디아스, 다른 한 명이 <트러스트>를 써서 퓰리처 상인가 뭔가를 받은 에르난 디아스. 아르헨티나에서 나 유소년 시절을 스웨덴에서 지내고, 다시 미국으로 가 뉴욕대학 철학 PhD.를 받은 소설가. <트러스트> 읽어 보신 분, 우리 솔직하게 얘기합시다. 그거, 당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줄창, 그것도 지루하게 쏟아냈다가, 다 읽은 다음에야 혹시 디아스가 책 속에 이런 의미를 숨겨 놓은 거 아닐까, 싶지 않았나? 그래서 다 읽고도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은 찜찜함을 갖게 만든 기억, 혹시 없었나? 돈 만 갖고 있으면 세상에서 못할 거 없는 배금주의에 대한 메시지 말이지.

  오늘 새벽 세 시에 자다가 깼다. 새벽 세 시에 야식 배달시키는 사람은 아마도 늦게까지 일 하고 들어와서 배가 고파 그랬을 터.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걸 뭐라 할 수 없지만, 새벽 시간엔 유독 배민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래서 깼다. 깨면서 에르난 디아스가 쓴 <먼 곳에서>의 주인공 호칸 쇠더스트룀이란 캐릭터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괴물의 도플갱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럼 미국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호칸 쇠더스트룀의 이야기를 해보자.


  호칸 쇠더스트룀은 19세기 초엽 스웨덴의 튀스트나덴 호수의 북쪽 끝에 있는 농장에서 소작인 에리크 쇠더스트룀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아사망율이 높던 시기라서 아들 가운데 맏이와 막내는 병들어 죽었고 호칸과 호칸보다 네 살 더 많은 아들 리누스만 남았다. 아버지는 살면서 딱 한 번 지주한테 거짓말을 해 쌍둥이 말 가운데 한 마리를 숨겨 키워, 그게 조금 자란 다음에 내다 팔았다. 이렇게 생긴 돈을 큰아들 리누스에게 주고, 호칸을 데리고 아메리카로 가게 했다.

  형제는 스톡홀름에서 배를 타고 중간 기착지인 잉글랜드 포츠머스에 도착했다. 돈은 한 주머니에 보관하는 게 아니어서 서로 망아지 값의 반씩 나누었는데, 하늘도 그걸 알았는지, 스웨덴 깡촌에 비해 무지하게 큰 대도시 포츠머스에서 군중에 밀려 서로를 잃어버리고 만다. 호칸은 어릴 적부터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를 지켜주려 했던 착한 형 리누스를 찾다가, 뉴요르크, 뉴욕에 도착하면 틀림없이 형이 자기를 찾을 거라는 믿음으로 아메리카행 배에 오른다. 마치 짐짝처럼 선복船腹에 내던져진 채 몇 달을 고생하던 호칸은, 약속의 땅 아메리카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뉴욕에 떨어진 게 아니라 아메리카 해안을 따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케이프혼을 한 바퀴 돈 다음 캘리포니아까지 기어 올라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해서야 발을 땅에 붙일 수 있었다.

  스웨덴 촌놈이 처음 배를 타고, 그것도 유일한 의지가지인 형을 잃은 채 몇 달씩이나 항해를 해야 했으니 오죽 고생이었겠나. 이때 거의 죽어가던 호칸을 마치 친아들처럼 돌봐준 아일랜드 석탄 광부 출신 브래넌 가족. 이들은 처음부터 캘리포니아를 목적지로 하고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금과 은이 무제한 적으로 묻힌 엘도라도를 찾아. 호칸은 애초부터 뉴욕이 목적지였다. 이제 뉴욕에 가려면 대륙을 횡단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심성이 착한 호칸이 마음에 차던 차에 광부 제임스 브래넌 씨가 소년을 데리고 금맥을 찾아 내륙으로 떠나면서 미국판 프랑켄슈타인 괴물 호칸 쇠더스트룀의 족적을 남기기 시작한다.


  브래넌 부부와 두 아이들, 그리고 호칸은 정말 개고생을 한 끝에 심심유곡에 들어가 거의 초주검이 되었을 때 기어이 금맥을 발견한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눈이 돌아가버린 브래넌 씨 제임스. 그는 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딱 알아내자마자 호칸을 아내 아이린, 두 아이들과 함께 음식물 채집과 사냥 등 먹거리를 구해오는 일에 한정해버린다. 호칸이 겨우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엄연한 남한테 금맥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기 싫었다. 그리도 선한 제임스 브래넌이 금 앞에서 이렇게 바뀌었다. 파낸 금은 숲속에서도 외진 곳에 땅을 파서 묻고 그 위에 똥을 누워 특히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근데 세상에 비밀이 있어? 파낸 금을 묻고 그 위에 똥을 누는 장면을 호칸이 우연히 보게 된다. 금을 채굴한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 살 수 없는 일. 제임스는 호칸을 데리고 (혹시 자기 없는 새에 어찌어찌 호칸이 숨긴 금을 발견해 들고 튈 수도 있으니) 사흘을 걸어 가장 가까운 마을 클랭스턴으로 가서 필요한 장비를 사 온다. 물론 대금은 금으로 치루고. 이때 브래넌을 유심히 관찰하던 눈이 있었던 것.

  금 채굴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고, 이들의 금을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여러 난폭하고 지저분한 무리들 또한 서부지역으로 몰려들었는데, 아무리 봐도 에르난 디아스가 좀 오버를 했나 싶은 게, 브래넌을 주목했던 집단을 요새말로 하자면 조직폭력단 정도일 터인데, 19세기 초중엽 무법천지였던 당시 서부에서 입술이 두꺼운 미녀가 두목, 왕 보스였다. 제임스와 호칸이 다시 자기 금광으로 돌아가 두어 달 열심히 채굴을 하고 있던 차에, 마차 한 대와 말을 탄 여러 명이 오더니 총으로 위협하면서 브래넌 가족을 쫓아내 버린다. 뭐 무법시대니까 자기들 마음이지. 단, 호칸은 입술이 두꺼운 여자가 탄 마차에 태워서 다시 클랭스턴으로 돌아가고.

  이후 호칸이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입술이 두꺼운 여자의 펫. 말 그대로 성노예.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밖에서 열쇠로 닫은 방 안에서 하는 일이란 먹고, 싸고, 목욕하고, 밖에서 지키고 있는 간수에 의해 옆방의 입술이 두꺼운 여자 방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가서, 입술이 두꺼운 여자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하지만 호칸은 어떻게 해서라도 대륙을 횡단해 뉴욕에 도착해, 형 리누스로하여금 자기를 찾게 만드는 일. 형은 못하는 일이 없으니까. 분명히 뉴욕에 도착해 있고, 틀림없이 성공했을 터, 무엇보다 먼저 동생을 찾으려 들 터였으니.

그리하여 호칸은 기회를 잡아 이 조폭 그룹에서 탈출해버렸다. 하지만 클랭스턴을 벗어나자마자 호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끝간 데 없는 사막.

  딱 여기까지, 여기까지는 읽을 만하다.


  입술이 두꺼운 여자가 지배하는 폭력 조직에서 벗어난 호칸은 다시한번 지옥을 맛본다. 당연하겠지? 그러나 주인공이 쉽게 죽는 거 보셨어? 그는 박물학자 존 로리머와 그가 고용한 다섯 명의 호위대 겸 길잡이를 만나 박물학적 지식과 외과 수술법을 익히고, 우연히 조우한 인디언 캠프에서 인디언들의 약초와 마취 같은 것도 배운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해도 그때마다 고생 중에서도 상 고생을 하는데 일일이 다 이야기하면 차라리 책을 읽는 편이 낫겠다. 박물학자 로리머와 어쩔 수 없이 헤어진 다음에는 서부로 향하는 개척민을 상대로 하는 사기꾼 자비스 피킷을 따라다녀야 했으며, 사이비 종교집단을 상대해 전투를 벌여 무자비하게 몽땅 죽여야 하는 참상을 겪기도 한다.

  이 와중에도 소년 호칸은 전례가 없이 큰 덩치로 성장하는데, 얼마나 큰 몸을 가졌느냐 하면,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만큼.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최홍만만큼. 스웨덴 사람이니 스웨덴 사람 가운데 최홍만만큼, 한 220cm 정도 되려나? 그러니까 한 방 쳤다 하면 최하가 중상이었겠지. 이 와중에 호칸이 돌봐주던 선량한 사람들이 악당들 손에 살해당하는데, 시절이 시절인 만큼 그것도 전부 호칸의 범죄로 알려지고, 호칸은 이후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홀로 살아간다. 저 광야에서. 황야, 캐니언 같은 곳에서 굴을 파고. 짐승을 잡아 가죽을 벗겨 옷으로 삼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다른 점은 여자를 갈구하지 않는다는 점. 광야에 땅을 파고 살아도 시계는 돌아간다. 미국 내전이 끝나고, 그래서 노예가 해방되었어도 아무것도 모른 채 호칸 쇠더스트룀은 노인이 되어 간다.

  그러나 큰 거구의 살인마를 내버려두지 않겠지? 호칸을 광야에서 끄집어내는 것은 정의의 사법기관이 아니라 자본주의, 돈이었던 것. 호칸을 서커스에 끌고 다니면 구경값을 제대로 벌 수 있다고 믿는 사기꾼들. 이렇게 해서 이미 늙은 거인 호칸 쇠더스트룀은 다시 한 번 사람들 속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후는 직접 읽어보시라. 이미 이야기는 막판 비슷하게 와서 본격적으로 프랑켄슈타인 괴물의 도플갱어가 되는 순간만 남겨 두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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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채의 빈집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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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가 출간하는 외국 작품 번역 소설책을 잘 보면, 창비가 의외로 앤절라 카터 같은 고딕소설에도 흥미가 있는 것 같다. 일찍이 앤절라 카터 그룹에 가입원서를 내기는 했는데 회원으로 받아주었다는 증명서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어떻게 됐는지 오리무중인 나는, 창비가 발굴한 다른 한 명의 고딕 작가, 1978년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생한 사만타 슈웨블린의 책을 관심있게 읽고 있다. 《일곱채의 빈집》도 슈웨블린에 대한 관심의 일환으로 골라 읽었다. 장편 <리틀 아이즈>와 소설집 《입속의 새》도 흥미유발요인 인자가 가득했으나, 《일곱채의 빈집》이 단연 재미있다. 이 정도면 21세기형 고딕으로 쳐도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시대가 지나면서 고딕이 점차 엽기, 잔혹으로 넘어가 이젠 엽기나 잔혹 장면이 등장해야 고딕소설인 듯한 기분이 드는 시절이 되었지만, 슈웨블린의 이번 소설집은 딱 내가 바라는 수준의 고딕소설이라 흡족했다.


  이 소설집 《일곱채의 빈집》에 단편 <일곱채의 빈집>은 실려 있지 않다. 대신 책 속의 일곱 단편이 전부 집과 관련해서 소름이 오소소소 끼치는 것들이다. 그래서 일곱 작품 → 일곱채의 빈집으로 제목을 짓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모든 작품이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제일 앞에 배치한 작품 <그런 게 아니라니까>는 뇌활동에 틀림없이 조금 문제가 있는 여성이 십대 중반의 아들을 차에 태우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부유한 동네로 집구경을 가서 생긴 일을 썼다. 근데 하필이면 어제 밤에 비가 왕창 와서 아스팔트가 아닌 모든 길이 푹 젖은 날. 운전하고 가다가 비포장도로에 접어들어 그만 진흙탕에 푹 빠지고 만다. 이게 첫 장면. 그래서 첫 문장이 “아, 이제 망했네.”

  진짜 망하지는 않았다. 상당히 깊이 빠지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서 탈출에 성공한다. 그래 길을 따라 갈 수 있는 곳까지 갔더니 나오는 건 막다른 골목. 이제 뒤로 다시 돌아가야 할 터, 엄마는 부잣집의 넓은 잔디밭 위로 차를 몰고 올라가 크게 원을 그려 왔던 길로 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정말로 잔디밭, 아주 잘 가꾸어 놓은 론 그라운드 위로 이미 진흙투성이가 된 타이어 자국을 깊숙하게 내 놓았으니, 한 마디로 잔디밭을 거덜내 버린 거다. 처음부터 이 모자를 쳐다보던 꼬마가 득달같이 집으로 들어가더니 자기 엄마한테 일러바쳤겠지.

  이래서 일이 커진다. 저 잔디밭을 어떻게 하나. 집주인 여자는 잔디밭 보상에 대하여 말하고 싶어하고, 엄마는 뇌 운동이 정상이 아니라 횡설수설하는데, 그걸 본 여자가 앰뷸런스를 부르려 한다. 아들은 잔디 아래 진흙에 빠진 자기네 차를 빼기 위하여 타이어가 밟고 올라갈 수 있도록 집 너머 작은 숲 속으로 나무조각을 구하러 간다. 여자가 보기에 엄마의 증상이 심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였다. 이게 집주인 여자한테는 크고 큰 패착. 약간의 시간이 지나 몸의 상태가 조금 좋아진 엄마는 진흙이 무지 많이 묻은 신발을 신은 채 서슴없이 고급 양탄자가 깔린 실내 여기저기를 왔다갔다 하면서 눈에 딱 띄는 설탕 그릇에 유독 관심을 둔다. 그것뿐만 아니다. 심지어 부부 침실까지, 부부 침실에 딸린 욕실까지 진출한 엄마.

  도무지 어떻게 엄마를 저지해야 하는 지 모르고, 이해도 할 수 없는 집주인 여자의 속은 어떻겠어? 그냥 속만 터지려고? 천만에. 갑자기 눈앞에 이런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 상상할 수 없는 짓만 하고 있으니 속이 터지는 건 다음으로 하고, 이제 저 여자가 나한테, 그리고 내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할까? 이런 두려움, 두려움을 넘어 공포 같은 것이 집주인 여자를 완전히 채우지 않았을까? 그래도 알고 보면 여자가 정말 부처님 가운데토막이다. 물론 끝까지 읽어야 왜 그런 줄 알 수 있겠지만. 힌트 하나 드리지. 이 집을 구경하러 다니는 모자도 자기 집이 있다. 일이 생기고 며칠 후, 모자의 집에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어주니, 잔디밭이 거덜난 부잣집 여자가 찾아왔다. 그리고 사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 여자가, 며칠 전에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와 카펫에 함부로 진흙을 묻힌 모자의 집 안을 뒤져보기 원한다. 물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집 안을 잔뜩 어질러 놓기를 원하고, 상자에 있는 물건을 죄다 꺼내 발로 지근지근 밟고 아무 상자에나 다시 집어넣은 다음 바닥에 쓰러져 울기를 원한다. 이것들을 다 한 뒤에, 그러고나서, 그동안 밖에 나가 있던 엄마가 집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란다.


  조금 약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당신은 엽기, 잔혹 애호가이지 고딕 애호가라고 주장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거다. 사만타 슈웨블린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산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좋은 환경Good Air이란 뜻을 가진 남미 최고의 도시 가운데 하나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범죄율이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 밤이 내리면 특히 여성 혼자 거리를 걷는 건 극도의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각오하지 않으면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라서, 자기 집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나는 것도 그저 그러려니 하는 정도, 라고 들었다. 누구한테? 여간해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곳, 유튜브에서.

  책 속에서도 죽은 사람, 범죄에 의하여 피살된 사람들도 등장한다. ‘들’이라고 복수형을 썼으니 한 명 이상이다. 그러나 죽이는 장면, 당장 죽지는 않더라도 죽을 정도의 상해를 입히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독자로 하여금 공포 또는 공포의 낮은 단계인 두려움을 준비하는 느낌이다.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것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기도 하는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숨소리>였다. 84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니 조금 긴 단편, 중편이라고 해도 좋겠다.

  주인공은 롤라. 결혼하고 57년동안 같은 남자와 살고 있다. 스무 살에 결혼했다고 쳐도 대략 일흔일곱 살. 그러니까 적어도 77세의 할머니. 지금 가장 바라는 건 죽는 일이다. 5분 이상 서 있기도 힘들만큼 척추에 문제가 있고, 호흡도 가빠져 평소보다 더 많은 공기를 들이마셔야 숨이 쉬어질 때가 잦다. 이럴 때는 숨을 뱉으면 자주 휘파람 같이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 롤라의 기운도 빠지게 만든다. 한밤중에 침대에서 화장실로, 화장실에서 다시 침대로 돌아갈 때, 걷는 일만 해도 힘들어 미치겠는데, 이 숨소리까지 보태면 정말 사는 일 자체가 싫어진다. 이런 것 말고도 요실금 같은 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거라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위안삼아 그렇게 믿는다. 소망대로 죽는 것만 남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면 감정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한 번 이상의 커다란 타격을 받아야 하는 것도 이해하고 있고,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기꺼이 그 타격을 받을 준비는 하고 있다.

  하지만 롤라에게 더 치명적인 것은 기억의 소멸이다. 당연히 롤라 자신은 자기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상당한 부분을 알지 못하고, 만일 안다고 하더라도 그걸 언제 말했고 행동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만일 새로 이사와 얼마 되지 않은 옆집 싱글맘 집의 십대 사춘기 아들이 자기집 세면대 파이프를 고친다고 롤라의 남편한테 렌치를 빌려가, 그걸 가져왔는지, 아닌지 모른다. 아이가 불량한 친구하고 롤라네 시건장치가 되지 않은 차고에 무단으로 들어와 중요한 장비를 가져갔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밤에 창문으로 보이는 롤라네 집 생울타리 아래 옆집 아이가 혼자 앉아 있었는지, 둘이 앉아 있었는지, 아니면 혼자 누워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게 거기서 잔 것인지, 누구한테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고 있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미 죽어 있는 상태였는지 롤라는 기억할 수 없다. 페데르손 박사가 처방해준 약이 도무지 어떤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약인지 모른다. 더구나 롤라의 소원대로 이제 삶의 마지막 날이 다가올 때까지 병상의 자신을 돌보아줄 것으로 굳게 믿어왔던 남편이 갑자기 급성 심근경색인지, 급성 뇌졸중인지로 사망하자, 롤라의 모든 병증은 급전직하, 나락으로 떨어지고, 롤라의 생활과 행동의 기록과 결과는 완전히 미궁에 빠져 버린다.

  당사자인 롤라는 그렇다치고, 그걸 건건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새롭게 이사를 오자마자 크고 큰 불행을 당한 옆집 여자는 어땠을까? 롤라는 옆집에 닥친 불행하고 전혀 관계가 없을까? 그거야 읽어보면 알지.

  이제 슈웨블린 클럽에 가입을 할 때가 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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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11-04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대폰 앱 북적북적에 별넷 반. 차마 다섯 개를 찍을 수 없어 넷에 멈추지만, 넷이라고 같은 넷이 아님.

yamoo 2026-11-04 11:05   좋아요 0 | URL
댓글을 보니 이걸 구매하기가 아주 망설여지네요...^^;;

Falstaff 2026-11-04 16:34   좋아요 0 | URL
차마 만점을 주지 못해 네 개에서 머물렀다는 얘기였는데요, 제가 아무래도 잘못 쓴 모양입니다. ㅎㅎㅎ
 
여우 8
조지 손더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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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딱 하나, 조지 손더스라는 이름만 보고 골랐다. 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책을 선택하면, 출판사 또는 연계한 인터넷 책가게의 책소개만 참고할 수 있어서 가끔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책을 고르게 되는 데, <여우8>이 딱 그랬다. 오프라인 책방에서 이 책을 열어보았다면 절대로 구입하지 않을 것이고, 도서관 서가에 꼽혀 있는 걸 보았더라도 결코 대출하지 않았을 듯.

  본문이 54쪽에서 끝난다. 한 페이지에 큼지막한 활자로 열아홉 줄을 담았고, 열아홉 줄이 꽉 채워진 쪽도 거의 없어서, 나머지 공간을 삽화가 채웠다. 그림과 활자가 반반 정도.


  주인공 여우8이 속한 여우 무리는 각 개체마다 여우n. 숫자가 붙어 그렇게 불린다. 나이 많은 “위대한 우두머리” 여우를 지도자로 둔 여우 무리 가운데 여우8이 유난히 총명해서 인간과 접촉을 시도해 늦은 밤까지 사람이 사는 집 창문 아래에서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옛이야기, 읽어주는 이야기책을 아이들과 함께 듣는다. 이를 통해 여우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고, 심지어 글씨도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는데, 쓰는 일은 아직 능숙하지 않아서 맞춤법이 엉망이다. 이렇게 엉망인 맞춤법으로 인간에게 남긴 편지가 조지 손더스의 작품 <여우8>.

  내용은 자주 들어 새롭지 않다. 인간이 숲을 훼손해서 여우 무리로 대변되는 자연의 생명이 살 터전이 없어진다는 내용. 이에 그치지 않고 여우를 죽이는 걸 유희로 생각하는 인간의 잔인함까지.

  물론 이런 내용을 자꾸 반복해 읽어야 자연훼손과 소위 동물권 보호가 뇌에 박히겠지만, 읽는 입장에서 내가 그런 주의에 동의할지언정, 별로 새롭지 않은 것을 또 읽어야 한다는 건 그리 반갑지 않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게다가 엉망진창인 맞춤법으로 쓴 글을 읽는 것이 쉽지 않기도 하고.

  빌려 읽었는데도 김이 팍 새는데, 이걸 사서 읽은 사람들의 속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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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11-03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안 읽어서 다행입니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11-03 17: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다 내 덕입니다.
 
런어웨이 ㅣ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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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편의 중단〮편을 실은 소설집. 

  앨리스 먼로는 2013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로 짧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가 쉽지 않은데, 라고 생각했다가 지금 보니까, 단편 작가로는 최초로 그 상을 받았다고 한다. 2006년에 출판사 ‘따뜻한손’이 출간한 소설집 《떠남》이 우리말로 나온 최초의 먼로 소설집으로, 나중에 이 책의 원본을 완역한 것이 《런어웨이》라고 ‘옮긴이의 말’에서 밝혔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앨리스 먼로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부터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는 말이겠다.

  내겐 이 책이 여섯 번째 먼로. 2013년에 나는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책을 좀 읽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고전, 진짜 클래식 작품을 기초부터 읽던 시절이라 누가 노벨문학상을 받건, 부커상, 공쿠르상을 받건 관심이 거의 없었기에 먼로를 찾지 않았다가, 4년 뒤인 2017년에 가서야 먼로, 이 뛰어난 단편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뒤늦게 이 작가의 풍모를 깊이 흠향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때는 좋은 지도 몰랐던 것이 좀 우습다.


  《런어웨이》. 재미있게 읽었다. 문장의 앞에 “무척”이라는 부사를 붙이고 싶은 마음도 굴뚝이지만 그러지 않았다. 괜히 오버하고 싶지 않아서. 담담하게 펼쳐 나가는 등장인물들의 한 살이 그림에 붙어 파리똥을 묻힐 것 같기도 했고.

  2004년에 발표했으니 먼로가 73세, 인생을 겪을 만큼 겪어 ‘노작가’라는 품평이 어색하지 않을 시기. 작품들도 그렇다. 이제 삶을 살 만큼은 살아본 내공이 없으면 쓸 수 없을 것 같은 작품.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그렇다. 단편들이라 스토리를 밝히고 싶지 않지만, (표제작 <런어웨이>의 조연, 제이미스 부인 실비아가 특히 그런데)우리가 알고 베푸는 선함과 친절이 언제나 좋은 건 아닐 수도 있고, (세 편의 연작 단편 <우연>, <머지않아>, <침묵>의 주인공 줄리엣처럼)인생을 오래 산 후에야 자기가 그렇게 옳은 삶을 산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수도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거의 다 두번째 이야기 줄리엣과 비슷해서, 자기가 자신을 보기에 그래도 올바르게 살아온 것 같은 생각을 할 듯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라는 걸 다행스럽게 나는 안다. 문제는 내가 나를 보고 내리는 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겪고 내리는 판정이라는 것. 그걸 앨리스 먼로는 쓸쓸하게, 전혀 감추지 않고 그저 드러낸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라면 것.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읽고 쓴 독후감에서 “한 세대 윗사람으로 내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런 사람과 살아봤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표제작도 좋고, 마지막에 실린 <힘>도 반할 만하다. 백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의 중편소설. 노년이 아니면 이런 작품을 쓰기가 쉽지 않을 터. 이제 일흔 살에 근접한 먼로는 ‘낸시’라는 여성 등장인물을 설정해, 낸시의 인생을 크게 세 부분으로 가른다. 결혼 적령기, 장난기가 다분한 낸시의 결혼 전과 직후, 주위에서 가까운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60대 중후반, 그리고 정말로 삶을 다 마칠 순간이 그리 멀지 않은 시기.

  삶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읽었는데, 이는 독자마다 다르겠지. 스토리를 조금 쓰다가 말았다. 역시 단편소설의 내용 소개는 어렵다.


  나는 이 책 《런어웨이》을 읽고 여전히 똑같이 말한다.

  실패하지 않을 선택을 원하면 먼로의 책을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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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11-02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이 의미심장하네요 ㅎㅎ

Falstaff 2026-11-03 03:5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냥 믿고 읽는 작가라는 말입지요.

페넬로페 2026-11-02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앨리스 먼로 작가 시작으로 이 책부터 읽어야겠어요^^

Falstaff 2026-11-03 03:55   좋아요 1 | URL
좋은 선택입니다. 즐기셔요!

blanca 2026-11-02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앨리스 먼로 <곰이 산을 넘어오다> 정말 충격적으로 좋았어요. 머리를 띵하고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노년에 쓴 단편집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Falstaff 2026-11-03 03:57   좋아요 1 | URL
<곰이 산을 넘어오다>도 단편 같은데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우연히 읽었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답글이 늦어 죄송스헙네요. 일신상의 사정이 있어서 초저녁부터 꽐라가 돼서 지금에야 제정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