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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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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디아스는 두 명. 한 명은 주노 디아스, 다른 한 명이 <트러스트>를 써서 퓰리처 상인가 뭔가를 받은 에르난 디아스. 아르헨티나에서 나 유소년 시절을 스웨덴에서 지내고, 다시 미국으로 가 뉴욕대학 철학 PhD.를 받은 소설가. <트러스트> 읽어 보신 분, 우리 솔직하게 얘기합시다. 그거, 당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줄창, 그것도 지루하게 쏟아냈다가, 다 읽은 다음에야 혹시 디아스가 책 속에 이런 의미를 숨겨 놓은 거 아닐까, 싶지 않았나? 그래서 다 읽고도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은 찜찜함을 갖게 만든 기억, 혹시 없었나? 돈 만 갖고 있으면 세상에서 못할 거 없는 배금주의에 대한 메시지 말이지.
오늘 새벽 세 시에 자다가 깼다. 새벽 세 시에 야식 배달시키는 사람은 아마도 늦게까지 일 하고 들어와서 배가 고파 그랬을 터.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걸 뭐라 할 수 없지만, 새벽 시간엔 유독 배민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래서 깼다. 깨면서 에르난 디아스가 쓴 <먼 곳에서>의 주인공 호칸 쇠더스트룀이란 캐릭터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괴물의 도플갱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럼 미국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호칸 쇠더스트룀의 이야기를 해보자.
호칸 쇠더스트룀은 19세기 초엽 스웨덴의 튀스트나덴 호수의 북쪽 끝에 있는 농장에서 소작인 에리크 쇠더스트룀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아사망율이 높던 시기라서 아들 가운데 맏이와 막내는 병들어 죽었고 호칸과 호칸보다 네 살 더 많은 아들 리누스만 남았다. 아버지는 살면서 딱 한 번 지주한테 거짓말을 해 쌍둥이 말 가운데 한 마리를 숨겨 키워, 그게 조금 자란 다음에 내다 팔았다. 이렇게 생긴 돈을 큰아들 리누스에게 주고, 호칸을 데리고 아메리카로 가게 했다.
형제는 스톡홀름에서 배를 타고 중간 기착지인 잉글랜드 포츠머스에 도착했다. 돈은 한 주머니에 보관하는 게 아니어서 서로 망아지 값의 반씩 나누었는데, 하늘도 그걸 알았는지, 스웨덴 깡촌에 비해 무지하게 큰 대도시 포츠머스에서 군중에 밀려 서로를 잃어버리고 만다. 호칸은 어릴 적부터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를 지켜주려 했던 착한 형 리누스를 찾다가, 뉴요르크, 뉴욕에 도착하면 틀림없이 형이 자기를 찾을 거라는 믿음으로 아메리카행 배에 오른다. 마치 짐짝처럼 선복船腹에 내던져진 채 몇 달을 고생하던 호칸은, 약속의 땅 아메리카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뉴욕에 떨어진 게 아니라 아메리카 해안을 따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케이프혼을 한 바퀴 돈 다음 캘리포니아까지 기어 올라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해서야 발을 땅에 붙일 수 있었다.
스웨덴 촌놈이 처음 배를 타고, 그것도 유일한 의지가지인 형을 잃은 채 몇 달씩이나 항해를 해야 했으니 오죽 고생이었겠나. 이때 거의 죽어가던 호칸을 마치 친아들처럼 돌봐준 아일랜드 석탄 광부 출신 브래넌 가족. 이들은 처음부터 캘리포니아를 목적지로 하고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금과 은이 무제한 적으로 묻힌 엘도라도를 찾아. 호칸은 애초부터 뉴욕이 목적지였다. 이제 뉴욕에 가려면 대륙을 횡단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심성이 착한 호칸이 마음에 차던 차에 광부 제임스 브래넌 씨가 소년을 데리고 금맥을 찾아 내륙으로 떠나면서 미국판 프랑켄슈타인 괴물 호칸 쇠더스트룀의 족적을 남기기 시작한다.
브래넌 부부와 두 아이들, 그리고 호칸은 정말 개고생을 한 끝에 심심유곡에 들어가 거의 초주검이 되었을 때 기어이 금맥을 발견한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눈이 돌아가버린 브래넌 씨 제임스. 그는 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딱 알아내자마자 호칸을 아내 아이린, 두 아이들과 함께 음식물 채집과 사냥 등 먹거리를 구해오는 일에 한정해버린다. 호칸이 겨우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엄연한 남한테 금맥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기 싫었다. 그리도 선한 제임스 브래넌이 금 앞에서 이렇게 바뀌었다. 파낸 금은 숲속에서도 외진 곳에 땅을 파서 묻고 그 위에 똥을 누워 특히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근데 세상에 비밀이 있어? 파낸 금을 묻고 그 위에 똥을 누는 장면을 호칸이 우연히 보게 된다. 금을 채굴한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 살 수 없는 일. 제임스는 호칸을 데리고 (혹시 자기 없는 새에 어찌어찌 호칸이 숨긴 금을 발견해 들고 튈 수도 있으니) 사흘을 걸어 가장 가까운 마을 클랭스턴으로 가서 필요한 장비를 사 온다. 물론 대금은 금으로 치루고. 이때 브래넌을 유심히 관찰하던 눈이 있었던 것.
금 채굴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고, 이들의 금을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여러 난폭하고 지저분한 무리들 또한 서부지역으로 몰려들었는데, 아무리 봐도 에르난 디아스가 좀 오버를 했나 싶은 게, 브래넌을 주목했던 집단을 요새말로 하자면 조직폭력단 정도일 터인데, 19세기 초중엽 무법천지였던 당시 서부에서 입술이 두꺼운 미녀가 두목, 왕 보스였다. 제임스와 호칸이 다시 자기 금광으로 돌아가 두어 달 열심히 채굴을 하고 있던 차에, 마차 한 대와 말을 탄 여러 명이 오더니 총으로 위협하면서 브래넌 가족을 쫓아내 버린다. 뭐 무법시대니까 자기들 마음이지. 단, 호칸은 입술이 두꺼운 여자가 탄 마차에 태워서 다시 클랭스턴으로 돌아가고.
이후 호칸이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입술이 두꺼운 여자의 펫. 말 그대로 성노예.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밖에서 열쇠로 닫은 방 안에서 하는 일이란 먹고, 싸고, 목욕하고, 밖에서 지키고 있는 간수에 의해 옆방의 입술이 두꺼운 여자 방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가서, 입술이 두꺼운 여자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하지만 호칸은 어떻게 해서라도 대륙을 횡단해 뉴욕에 도착해, 형 리누스로하여금 자기를 찾게 만드는 일. 형은 못하는 일이 없으니까. 분명히 뉴욕에 도착해 있고, 틀림없이 성공했을 터, 무엇보다 먼저 동생을 찾으려 들 터였으니.
그리하여 호칸은 기회를 잡아 이 조폭 그룹에서 탈출해버렸다. 하지만 클랭스턴을 벗어나자마자 호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끝간 데 없는 사막.
딱 여기까지, 여기까지는 읽을 만하다.
입술이 두꺼운 여자가 지배하는 폭력 조직에서 벗어난 호칸은 다시한번 지옥을 맛본다. 당연하겠지? 그러나 주인공이 쉽게 죽는 거 보셨어? 그는 박물학자 존 로리머와 그가 고용한 다섯 명의 호위대 겸 길잡이를 만나 박물학적 지식과 외과 수술법을 익히고, 우연히 조우한 인디언 캠프에서 인디언들의 약초와 마취 같은 것도 배운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해도 그때마다 고생 중에서도 상 고생을 하는데 일일이 다 이야기하면 차라리 책을 읽는 편이 낫겠다. 박물학자 로리머와 어쩔 수 없이 헤어진 다음에는 서부로 향하는 개척민을 상대로 하는 사기꾼 자비스 피킷을 따라다녀야 했으며, 사이비 종교집단을 상대해 전투를 벌여 무자비하게 몽땅 죽여야 하는 참상을 겪기도 한다.
이 와중에도 소년 호칸은 전례가 없이 큰 덩치로 성장하는데, 얼마나 큰 몸을 가졌느냐 하면,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만큼.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최홍만만큼. 스웨덴 사람이니 스웨덴 사람 가운데 최홍만만큼, 한 220cm 정도 되려나? 그러니까 한 방 쳤다 하면 최하가 중상이었겠지. 이 와중에 호칸이 돌봐주던 선량한 사람들이 악당들 손에 살해당하는데, 시절이 시절인 만큼 그것도 전부 호칸의 범죄로 알려지고, 호칸은 이후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홀로 살아간다. 저 광야에서. 황야, 캐니언 같은 곳에서 굴을 파고. 짐승을 잡아 가죽을 벗겨 옷으로 삼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다른 점은 여자를 갈구하지 않는다는 점. 광야에 땅을 파고 살아도 시계는 돌아간다. 미국 내전이 끝나고, 그래서 노예가 해방되었어도 아무것도 모른 채 호칸 쇠더스트룀은 노인이 되어 간다.
그러나 큰 거구의 살인마를 내버려두지 않겠지? 호칸을 광야에서 끄집어내는 것은 정의의 사법기관이 아니라 자본주의, 돈이었던 것. 호칸을 서커스에 끌고 다니면 구경값을 제대로 벌 수 있다고 믿는 사기꾼들. 이렇게 해서 이미 늙은 거인 호칸 쇠더스트룀은 다시 한 번 사람들 속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후는 직접 읽어보시라. 이미 이야기는 막판 비슷하게 와서 본격적으로 프랑켄슈타인 괴물의 도플갱어가 되는 순간만 남겨 두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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