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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된다는 것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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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읽어 놓고 제법 읽었을 걸? 하고 그저 무심하게 넘어가는 작가들 가운데 니콜 크라우스가 있다. 작년 초에 이이가 쓴 <위대한 집> 또는 <그레이트 하우스>를 읽고 쓴 독후감에도 “니콜 크라우스라는 이름은 귀에 못이 박이게 익숙하다.”라고 썼으면서 사실은 그게 첫번째 읽은 크라우스였던 것. 그리고 같은 문단 마지막에는 “이제 정신차리고 크라우스도 계속 읽어봐야겠다.” 해 놓고 이제야 소설집 한 권을 보탠다. 열 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소설집으로, 좋은 소설가의 작품집이 늘 그렇듯 모든 작품이 균일하게 좋다. 이이가 쓴 열 작품 모두 마음에 들지만 모든 작품에 포함되어 있는 니콜 크라우스의 유대 정체성은 별도로 하자. 원래도 그러했지만 이란 전쟁 이후 유대인, 아니지, 모든 유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깊은 관련이 있고, 이스라엘에 친인척이 살고 있어서 이스라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대를 이루는 전 세계 유대인은, 당분간이라는 단서를 달고 말해서, 이제는 더 알고 싶지도 않다. 이건 세상의 모든 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선량한 대부분의 유대인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80년 전에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당했던 무한정의 학살과 탄압과 폭행을, 이제 자신,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과 중동 등의 인종을 탄압하고 몰아낼 수 있는 근거로 삼는, 마치 면죄부로 써먹는 듯한 그들의 정부의 행악이 정말로 가관이라서. 면죄부도 그냥 면죄부, 은화 30냥에 죽은 후의 천국을 보장하는 종이쪼가리가 아니라 자기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피에 푹 젖은 면죄부. 그나마 죽은 후의 천국이라는 거짓이 아니라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 확실한 면죄부.
아쉽게도 니콜 크라우스도 이스라엘에 특히 친척이 있는 듯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벨라루스와 헝가리 출신으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이스라엘로 거처를 옮겨 살다가 만나 혼인했다. 할아버지는 20세기 초반의 유대남자 답게 가부장적이었으며, 할머니는 그런 남편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았다. 《남자가 된다는 것》에 실린 작품 속의 조부모를 보면 그랬을 거란 말이다. 전화해보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다. 그냥 짐작이다. 이스라엘에서 혼인을 하고 자식을 여럿 두었는데 이 가운데 한 명이 니콜의 아버지. 할아버지는 뉴욕에 와서 작은 규모가 아닌 듯 보이는 사업을 했고, 니콜의 아버지는 결혼을 했지만 할아버지와 대판 싸움을 벌여 유대인 특유의 가족 기업에서 쫓겨난 모양이다. 그래 수입이 극적으로 사라지자, 원래 들어오는 돈이 없으면 부부싸움이 격정적으로 심각해지는 법, 이 부부도 예외가 아니었고, 이런 와중에도 니콜의 아빠는 컬럼비아대학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녔단다.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따고 전공의 수련을 마친 아빠는 크게 벌어진 부부사이도 좀 회복해볼 마음이 없지 않았을 터인데, 가족과 함께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해서 외상외과 임상강사를 했단다. 책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면 그렇다. 이렇게 아빠는 이스라엘에서 출생한 엔지니어 경력의 정형외과 전문의. 엄마도 빵빵한 직업이 있던 것 같은데 하여간 독일과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부부의 딸이다.
비록 부모는 유럽 파시스트의 박해를 피해 런던으로 옮겨 갔거나,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장했더라도, 이들 부부의 딸 니콜의 (외)조부모 가운데 한 명 또는 니콜의 엄마는 이스라엘에서 노년을 보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작품 속 이스라엘/예루살렘과 친숙하고 잘 안다. 책 속의 내용처럼 친척이나 할머니 또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있던 건 픽션이라도, 이스라엘인 언론인이자 소설가 곤 벤 아리라는 남자와 적어도 5년 이상 연인 이상의 관계가 있었던 건 사실인 듯하다.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 정도이니 이것도 꼭 믿을 필요는 없지만.
비록 니콜 크라우스가 작품 속에서, 자기 딸 가운데 한 명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탄압에 반대하여 장갑차인지 탱크 앞에서 벌렁 누워 시위를 하고 있다는 것도 나오기는 하나, 자신의 입으로 이스라엘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폭력에 관해서는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도 일언반구가 없다.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하자는 시오니즘을 새롭게 해석하여,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온 유대인들은 다시 유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팔레스타인에는 원래 팔레스타인에서 살던 유대인만 남아 있으라고, 그러면 1940년대 이전의 팔레스타인 땅에서처럼 현지 사람들과 유대인들이 오소도손 서로 재미나게 콩 볶으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 필립 로스를 따라 하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의 공존방법을 모색하고 주장하는 데 노년을 모두 바친 아모스 오즈, 자기 아들이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와중에 전사했지만 그럼에도 아랍 국가들과의 평화 공존을 주장하고 있는 다비드 그로스만 등과는 의견 정도를 같이 할 수는 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 이게 많이 아쉽다는 얘기.
사업에 성공해 뉴욕에서도 부자로 사는 할아버지, 정형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는 아버지의 공부 잘하는 손녀이자 딸이면 자랄 때부터 어땠겠어? 가족을 비롯한 친척까지 모두 나서서 1974년 범띠 소녀를, 그때 기준과 시각으로 얘기해서, 제일 폼이 나는 미술사나 예술사 박사 정도 따서 뉴욕의 대형 갤러리의 큐레이터 정도를 하기 바랐겠지. 우리나라 엄마들하고 비교해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 극성 유대 부모는 니콜도 9학군과 특목고를 빼놓지 않았으니 어쨌건 뉴욕하고 비교해서 당시 살고 있던 바젤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제네바의 국제학교에 다니게 했다. 그래서 독자는 이 책 전편을 통해 미국 출신의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심성 착하고, 독립적이고, 마음껏 즐기는데 서슴없으며, 적어도 금전문제에 관해서는 곤란한 경우를 당해본 경험이 없는 즐거운 인생을 구경할 수 있다.
근데, 이렇게 써 놓으니 작품들이 별 거 없다고 칭얼대는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책의 제목이 “남자”가 된다는 것이니, 다분히 페미니즘적일 거 같기도 하고? 물론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그냥 사람에 대한 작품들이다.
진짜 소설 잘 쓴다. 내용은 여태까지 푼 구라 때문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라도, 소설 잘 쓴다는 건 꼭 말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어느 하나 어거지로 가져다 붙이고, 우연이 기막힌 타이밍에 맞춰 등장하고, 하나를 성취하기에 아등바등, 죽기살기로 덤벼들어야 할 사건 같은 것도 없다. 그러면서도 재미있으니 내가 상찬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가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질투까지 나더라니까. 그래서 다음 번에 읽을 니콜 크라우스로 <사랑의 역사>를 찍어 놓았다. 내년 초에는 독후감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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